|
수석 코치님 말씀
주제말씀 : 야고보서 5장 14~18절, 마태복음 18장 15절~20절
14절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5절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16절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17절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절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야고보서에서는 교회 안에 병든 자가 있을 때 교회가 함께 모여서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해 기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특별히 이 병든 자가 구원함을 얻는, 병에서 나음을 얻는 그 기도의 비결 몇 가지를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는 15절에 있는 것처럼 믿음의 기도입니다. 믿음으로 하는 기도. 하나님이 능히 고치신다는 사실을 기도하는 사람들은 다 믿어야 한다는 것이죠. 사람의 능력이나 본능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으로 능히 고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한 많은 약속과 선포들이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나는 여호와라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다. 내게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 라고 하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창조주 여호와십니다. 친히 흙을 빚어 그의 말씀으로 모든 육체를 이 땅에 태어나게 만드신 주권자요, 창조주이십니다. 생명을 주신 이가 하나님이시고,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생명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그 생명 가진 인간에게 있는 각종 질병을 고치지 못할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 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반문하시면서 그런 하나님을 믿으라고 요구하십니다.
최근에 영성학교에서는 하나님의 기적이 필요한 10명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광주에서 매주 올라오고 계신 한 장로님은 한쪽 눈이 거의 실명되었고, 반대쪽 눈도 안압이 계속 올라가는 상황이셨습니다. 이 안압을 낮추는 약을 써야 하는데 약을 쓰면 알레르기 반응이 너무 심해서 약을 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정상 안압은 10~21mmHG이어야 하는데 이분 한쪽 눈은 50mmHG가 넘는 매우 높은 상태라 사실은 보지를 못했고, 반대편 눈도 38mmHG 정도의 압력이 있어서 시력이 굉장히 희미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한 달 이상 영성학교에 오면서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38mmHG이었던 안압이 23mmHG으로 내려갔고요, 50mmHG 넘었던, 거의 실명했다고 했던 그 눈이 30mmHG 초반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이분 스스로도 굉장히 놀라고 계시죠. 이것이 끝이 아니고 완전히 회복되기를 영성학교 식구들이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기도가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오늘 나누려는 말씀의 핵심 내용 중 하나입니다.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그다음 말씀입니다. 15절 후반부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많은 질병이 죄가 그 원인이라는 사실을 전제하면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그 죄의 결과로 질병이 그에게 왔을 것인데 하나님께서 그 범죄한 죄도 사하여 주신다 그러면서 이제 16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이 15절 하반절하고 16절은 이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이 질병이 떠나가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병만 고치길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있는 죄 문제를 같이 다루시고 해결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도록 “서로 죄를 고백하라. ” 그냥 죄가 공중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죄를 서로 고백하라는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 우리가 뭘 해야 할 것인가? 제가 제 아내한테 죄를 지어놓고 우리 장로님한테 와서 “아우, 장로님. 제가 아내한테 죄지었습니다.” 이거는 할 필요 없는 것입니다. 아무 쓸데 없는 데 가서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한테 죄를 고백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 죄의 고백에 가장 일차적인 대상은 죄지은 당사자입니다.당사자한테, 즉 부부 사이에서 또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어떤 영향을 줬을 만한 일이 있는지 기도하다가 생각이 나면 “딸아, 엄마가 미안하다. 그때 너에게 이렇게 이렇게 말하거나 이렇게 이렇게 행동했던 거에 대해서 엄마가 딸한테 진짜 미안하다. 엄마를 용서해라.” 이렇게 하시라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 자백을 당연히 해야 합니다. 해야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인간 사이의 죄에 대해서 이 죄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그 원칙을 마태복음 18장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5절부터 20절까지 말씀인데 죄를 서로 용서하는 것이 기도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말씀입니다. 15절로 20절까지 말씀입니다.
15절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절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절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절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절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앞부분에 있는 내용은 나의 형제가 나한테 죄를 범했는데 본인은 그것을 죄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거나, 잘못해 놓고도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거나, 그것이 나의 마음에 계속 걸림이 되고 있을 때 그냥 꾹 참아라 하신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는 가서 이야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경우는 예를 들어 저는 약간 다른 사람이 저에 대해서 싫은 소리 하는 거에 대한 민감도가 되게 낮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뭐라고 이야기해도 별로 상처를 입거나 그게 막 기분 나쁘거나 그런 게 거의 없는 사람입니다. 근데 또 사람마다 민감도가 다르잖아요. 어떤 사람은 굉장히 예민해서 작은 것에도 쉽게 상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넌 왜 이렇게 민감하게 굴어?” 이렇게 우리가 말해선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코치님이 영성학교에서 굉장히 많이 섬기십니다. 충주에 와서도 많이 섬기고, 토요일에 땀범벅이 되면서 일을 하셨습니다. 제가 전혀 그러지는 않습니다만, 만약 제가 예의 없게 “코치님! 오늘 일이 수준이 영 아닌 거 같아요.” 이렇게 말했다고 칩시다. 그러면 속상하죠. 아침부터 본인은 열심히 일했는데 자기는 늦게 와서 입만 살아서 설교만 하고, 남은 그냥 아침부터 땀 뻘뻘 흘리면서 일했는데 자기는 일도 안 해놓고는 와서 뭐, 오늘 수준이 떨어진 것 같네요. 이런 식으로 본인은 농담이라고 말하는 거죠. 하지만, 실제로는 당사자한테 상처를 입히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우리 코치님이 워낙 마음이 넓으시기 때문에 허허 웃고 지나가실 수도 있지만, 사실은 또 상처를 입으실 수도 있죠. 그러면 자꾸 마음에 걸림이 되면 와서 이야기하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 코치님이 설교가 끝나고 나서
“수석 코치님, 오늘 설교 잘 들었는데 제가 좀 마음에 심히 걸리는 게 있어서 왔습니다.”
“예, 말씀하세요.”
“아까 오시면서 저보고 뭐 오늘 일이 뭐 이러쿵저러쿵 훈수를 두셨는데 사실 교수님은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해놓고,
더위에 땡볕에 일하신 이러한 사람들 여럿 있는 데서 그건 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덕스럽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실 수가 있는 거죠. 그랬을 때 저의 반응이
“에이, 농담 가지고 뭘 그래요.”
이렇게 반응 보이면 마음이 더 상하죠. 진짜 마음 상합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가장 좋은 것은 상대가 어려움을 겪었거나 마음의 상처를 입었으면 그 가해자는 잘 들어야 한다고 하십니다.가장 바람직한 것은 제가 그 코치님 손을 잡고
“코치님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게 애쓰는 걸 맨날 알면서도 저는 농담이랍시고 했는데 그게 전혀 덕스럽지도 않고,
마음에 기쁨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다른 사람 마음 상하게 만드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제가 그렇게 해서 너무 죄송합니다. 제가 주중에 찾아뵙고 밥 한 끼 사겠습니다.”
이렇게 하라는 거죠. 이렇게 하면 내 형제를 얻은 것입니다. 이 코치님은 또 나를 얻은 게 됩니다. 그래서 서로도 친해지고, 아주 아름다운 관계가 되게 됩니다. 예수님이 이걸 원하십니다. 이게 안 되면 어떤 문제가 있냐면 부부 사이에서도 이게 계속 걸려 마찰감이 항상 남아있습니다. 같이 살아는 가고, 영성학교도 같이 가긴 가는데 항상 마찰감이 남아있고 깨끗하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다음에 16, 17절을 안 들으면 두세 사람이 가서 또 권면하고 그래도 안 들으면 교회 전체가 또 목사님까지 말씀드려야죠. 그 코치님이 목사님께 가서
“수석 코치님이 영 아닙니다. 지금 보니까 잘못해 놓고는 오리발을 내밀고 말이죠. 수석 코치로서 영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 다.”라고 목사님께 말씀드려야 되는 거죠. 그러면 목사님이 저를 부르시겠죠.
“수석 코치가 이러이러했다던데 맞습니까?”
“아! 예, 맞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발뺌하세요?”
그런데 여기서도 제가 만약에
아이, 목사님! 그거 가지고 뭘 그러세요?”
이러면 이제 쫓겨나는 거죠. 내쫓아라. 그런 사람을 내쫓아라. 그런 사람은 놔두면 안 된다. 교회를 무너뜨리는 사람이라는 거 예요. 그런데 늦게라도
“아이구, 목사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그러면 목사님께서
“그 코치님한테 가서 직접 사죄하고 밥이나 한 끼 사세요.”
그러면 제가 가서 사죄하고 밥 한 끼 사고 포옹 한번 하면 이제 해결이 되겠죠.
이런 순서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어떤 갈등 해결 방법에 관한 문제라기보다는 왜 서로 죄를 고백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 고백한 것에 대해서 용서하고 서로 푸는 것이 중요하냐? 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18, 19절 약속의 말씀 때문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이 말씀에서 ‘너희가’는 복수입니다. ‘너희들’은 어떤 너희들이냐면 용서를 구하고 미안하다고 이야기하고, 내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고, 그 용서비는 마음에 대해서 괜찮다, 이제 충분히 마음이 풀렸다고 용납해주고 용서해 주는 것. 이것이 해결된 너희들입니다. 이런 너희들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인다. 이게 전부 다 기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런 너희들이 땅에서 하나님께 매어달라고 구하면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그걸 매실 것이고. 땅에서 너희가 하나님께 풀어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오냐, 내가 풀어주마.”하고 풀어주시겠다는 겁니다.
19절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이 합심의 기초가 바로 서로 자기 죄를 구하는 것입니다. 자기 죄를 고하고 미안하다고 이야기하고, 그다음에 그것에 대해서 마음 깊이 용서하고 이렇게 합심한 사람. 이 합심 기도는 그냥 모여 앉아서 자리에 같이 있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마태복음 문맥에서 예수님은 서로 자기의 죄를 죄지은 사람에게 고하고, 미안하다고 사죄하고, 그것에 대해서 온전한 용서가 서로 이루어졌을 때, 이것을 합심이 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을 걸고 모인 곳, 교회마다 기도회 하면 다 예수 이름으로 모이지 않습니까? 다 예수 이름으로 모여서 교회마다 새벽 기도를 하고 있고, 금요 철야 기도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응답이 안 내려옵니까? 예수님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어서 다 응답하겠다고 말씀하시는데 이 마태복음 18장의 문맥은 이처럼 야고보서에서 명령하신 그 명령과 맞닿아 있습니다.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고하라 그리고 “너희 사이에 용서가 이루어지게 하라” 용서하라그리고 죄지은 사람은 진실로 미안하다고 사죄하라.그냥 지나간 이야기로 “에이, 미안해. 뭐, 그래.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당신이 다 이해해.” 이렇게 하고 지나가지 말라는 거예요. 가해자는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내가 미안한 일을 행했으면 손을 붙잡고 제가 아내한테 한다면, “여보, 진짜 미안해. 그 영역은 내가 진짜로 내가 잘못했다. 너무 미안해. 용서해 줘.” 이걸 해야 합니다,
함께 기도하는 식구들, 특히 영성학교에 함께 오는 가족들이라면 이것을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이 가족 사이에, 서로서로 사이에, 앙금과 금 간 것들이 없도록 하라. 오늘 야고보서 말씀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그다음 말씀이 뭐였냐면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그 의인은 어떻게 된 의인이냐면 서로 자기 죄를 고한 의인들입니다. 자기 죄를 미안하다고.
어린 시절에 동네에서 같이 놀던 친구한테 지은 죄는 지금 그 친구가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찾아가서 미안하다 하겠습니까? 그건 하나님께 회개하면 됩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지금 같이 옆에 있는 사람입니다. 같이 옆에 사는 가족들, 그다음에 같은 영성학교 지체들, 여기는 내가 언제든지 미안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제가 동네에서 애 한 명 몰래 뒤에 가서 꼬집었거든요. 미안하다고 안 했는데 이거 어떡하면 좋아요. 그걸 맨날 저한테 와서 묻는 나이 드신 권사님이 한 분 계세요. 그런데 지금 걔가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데 어떡하면 좋아요. 이러는데 그냥 하나님께 얘기하시면 됩니다. 지금 하나님 우리보고 그 친구 찾아가서 용서 구하라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지금 너 옆에 있는 사람에게 구하는 용서, 이거 하나를 보고 하나님은 나의 죄를 용서하실지 말지를 결정하십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을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그다음 약속이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오”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회개하는 하나의 태도를 보시고서 이 사람이 정말 예수 피의 공로로 죄 씻음 받을 자녀가 될지 말지를 결정하신다는 겁니다. 하나의 죄에 대해서라도 내가 깨달아지고 하나님이 내 마음에 회개할 마음을 주실 때 그걸 진심으로 “하나님, 제가 진짜 죄를 지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나님 다시는 이 죄에 빠지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용서를 구합니다. 하나님 회개합니다. 예수 피로 씻어 주시옵소서.”하고 그 죄를 버리는 결단을 하고 그 죄와 연결된 내 삶의 모든 것을 잘라내고, 버리고, 돌이키는 태도를 보면 그 태도 하나를 보고 하나님께서 “니가 정말로 죄를 떠나려고 하는구나!”라고 평가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100만 가지 죄를 지었지만, 그중에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죄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죄에 대한 나의 회개의 태도가 하나님께서 나를 예수 피로 씻어 의인으로 삼으실지 말지를 결정하는 거예요.
요한일서 1장 9절 말씀의 의미는 그렇습니다. 야고보서 5장 말씀과 마태복음 18장 말씀도 동일합니다.
의인의 간구은 역사하는 힘이 많은데 내가 어떻게 의인이 되느냐?특별히 병 낫는 기도와 또 하나님의 기적이 필요한 이 기도와 관련해서는 내가 죄지은 사람, 바로 가까이 있는 사람한테 진심으로 사죄하느냐? 이것을 보시고 하나님은 의인으로 삼을지 말지를 예수 피로 정결하게 씻어 줄지 말지를 결정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의 말씀은 너희 죄를 서로 고하라 병 낫기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렇게 서로 자기 죄를 고하여 용서하고 용서받은 관계들이 될 때 의인이 된다는 겁니다. 이런 관계를 자기 안에서 또 교회 공동체 안에서 행하고 있는 공동체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습니다.
특히 우리가 살다 보면 인간관계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갈등이 가장 많은 것이 부부 관계입니다. 대체로 남자들이 죄를 많이 짓지요. 그래서 남편들은 아내한테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합니다. 살아오면서 여자들보다는 지은 죄가 많아요. 여자들은 고생을 많이 하고 남자들은 죄를 많이 짓습니다. 그래서 이 일에 있어서 특별히 남편들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아내에게 내가 생각나는 죄들에 대해서는 한번 이야기했으니까 이제 끝이다. 이렇게 있어도 안 됩니다. “지난번에 미안하다고 했잖아. 또 그 이야기를 왜 꺼내? 신경질 나게!” 이렇게 하면 하나 마나입니다. 차라리 안 하는 것만 못합니다. 미안한 거는 계속 미안해야 하는 겁니다. 죽을 때까지 미안해야 합니다.
“여보 그거에 대해서 내가 진짜 미안해. 그때 당신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하고 내가 임의로 그렇게 했던 거 진짜 미안해. 당신 마음 속상하게 만들었다면 진짜 미안해. 용서해줘.”
“괜찮아. 그만 해도 돼요.”라고 하더라도 다음 날 또
“여보, 또 생각해 보니 내가 참 당신한테 미안해.” 이것을 자꾸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게 잘 될수록 부부간의 관계는 친밀해지 고, 신뢰가 생기고 합심하여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것 없이 자글자글 금이 여기저기 나 있는데도 불구하 고, 이거 없는 걸로 ‘퉁’ 치고 “옛날에 한번 미안하다고 했잖아. 그러면 이제 당신이 용서해야지. 이제 좀 그만해. 똑같은 이야 기를 몇 번 해야 하는 거야?” 이런 식으로 반응을 보이면 안 됩니다.
미안해. 또, 미안하다. 또, 미안하다고 하면서 내 죄를 고하는 그런 태도를 취하면 여러분의 기도는 의인의 간구가 됩니다.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이것을 잘하시는 우리 식구들이 되시길 원합니다.
세 번째는 야고보서 말씀에서 응답받는 기도는 간절한 기도라고 하십니다. 영성학교 버전으로 이야기하면 전심의 기도입니다.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3년 6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않았고 또 그가 다시 비 오기를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내렸다고 했습니다.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기도할 때도 특히 대전 영성학교에 힘들고 아픈 자매님을 고쳐주신 하나님, “믿음으로 하나님은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하십니다.”라고 기도할 때 이미 된 겁니다. 이것은 될지 말지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입니다.이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그 시간을 당겨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그 시간을 당겨주시옵소서.” 믿음의 기도. 그다음에 서로 죄를 고함으로 의인이 된 기도. 이 기도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아내분들, 혹시 이제 속상한 것이 있어서 마음 상한 게 있었으면 기도하고, 남편에게 “이 부분은 당신이 한번 더 나한테 진심으로 사과해 주면 좋겠어.” 이것을 요구하셔도 됩니다. 물론 이 기도를 안 하는 분에게 요구했다가 또 싸움 날 수 있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배우자한테는 그걸 우리가 요구할 순 없지만, 함께 기도하고 있는 배우자 사이에서는 “이 일에 대해서는 당신이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한 번 더 이야기해 주면 내 마음이 더 시원하게 풀릴 거 같애.”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것을 능히 받아서 “그래 내가 100번이라도 미안하다고 할게. 그건 진짜 내가 미안해.”라고 이야기해 주는 것. 이것을 하면 하나님께서 이 공동체를, 이 부부 관계를 의인의 공동체로 여기십니다.두세 사람이 합심하여 기도한 그 합심이 이루어졌다고 하나님이 여겨주십니다. 그래야 기적이 일어납니다.이것을 잘하는 우리가 되고 마음을 다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합심하는 믿음의 기도, 의인의 기도, 간절한 기도로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 자매를 하나님께서 속히 치유하셔서 전국 모든 지역 영성학교의 본이 되는 그런 대전 영성학교가 되기를 원합니다.
첫댓글 짝짝짝~~짝짝짝~~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