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명·무진 스님 권유로 영천 백흥암으로 출가 안거 중 갑상선암 진단 병마 이겨내면서 도심속 국제포교 발원 비로자나국제선원 개원
어린이·청소년 포교와 외국인 참선 프로그램 등 영어 접목한 법회로 대중들에게 호응 얻어 “포교공동체 설립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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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우 스님은 … 1992년 영운 스님을 은사로 백흥암에서 출가 1999년 동학사승가대를 졸업하고 비구니계를 수지했다. 2003년 스리랑카 캘라니아대학에서 불교학 석사를 받았고 파라마담마사 영어담마스쿨 교사로 활동했다. 2003~2005년 인도네시아 해인사포교원 주지를 맡았으며 2006년 비로자나국제선원을 개원 국제포교를 펼치고 있다. 현재 LMB싱어즈 지도법사, 조계사 청년회와 7051전차부대 백호대대 법사로도 활동중이며 동학사승가대 불교영어 강사를 맡고 있다. 2013년 제 25회 조계종포교대상 원력상을 수상했다. 사진=박재완 기자 wanihollo@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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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교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죠. 내가 주고 싶은 걸 주는 게 포교는 아니에요. 아이들이 원하는 건 아이들에게 묻고 어른들이 원하는 건 어른들에게 물어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게 중요해요. 이렇게 상대를 위해 나를 낮추고 끊임없이 비우고 사는 것이 포교이며 수행입니다.”
1월 20일 눈 내리는 겨울 아침 서대문구 홍제동에 위치한 비로자나국제선원 주지 자우 스님을 만났다. 지난해 하반기 본지에서 전법일기를 연재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스님의 포교 이야기와 수행 이야기를 들어봤다.
수좌의 꿈을 안고 백흥암으로
비로자나국제선원은 어린이 청소년 포교와 외국인들을 위한 참선 프로그램으로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스님에게 출가를 권유했던 원명 스님과 무진 스님 모두 국제포교의 원력을 가진 스님들이라 지금 자우 스님이 국제포교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스님은 출가 당시에는 선방에서 공부하는 수좌스님으로 살기를 간절히 발원했다.
가족들의 만류로 첫 번째 출가에 실패(?)하고 스님이 두 번째로 출가하기 위해 찾아간 곳은 다큐 영화 ‘길 위에서’로 유명해진 비구니 선방 백흥암이다. 스님은 이곳에서 선원장 영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백흥암은 최근 다큐 영화로 유명해졌지만 비구니 스님들 사이에서는 행자 생활이 고되기로도 유명한 곳이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밤 9시까지 노동하고 수행하며 치열하게 사는 곳이 백흥암이며 이곳에서 행자 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큰 산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님은 행자 시절에 가장 큰 공부를 했다고 말한다.
“당시 백흥암은 3년 행자 생활을 해야 강원을 보내줬어요. 그때 스님으로 살아야 할 모든 걸 다 배운 거 같아요. 행자 생활은 용광로와 같아요. 자기가 가지고 있던 속세의 습을 녹이고 비워 내는 시간이죠. 정말 완전하게 녹여내지 않으면 자기 수행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가질 수 없어요. 그런 면에서 백흥암에서의 행자 생활은 수행자로서 살아야 할 가장 기초적 덕목을 배우는 시간이었죠.”
이후 스님은 동학사 승가대에서 강원을 마치고 비구니계를 수지한 후 승가대 강사 제안을 받지만 거절하고 석남사 대원사 약수암 백흥암 등을 돌며 안거에 들어간다. 하지만 사형들의 권유로 서울로 올라와 영어학원을 다니고 사서삼경을 공부하며 국제포교사를 품수한 후 스리랑카로 유학을 떠난다.
이후 원명 스님의 제안으로 인도네시아 해인사포교원 주지 소임을 2년간 맡는 등 해외 포교도 경험하게 된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스님은 이후 백흥암 대성암 등의 선방에서 안거에 들며 다시 수좌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어느날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증상이 발생한다. 병원에 가니 갑상선암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안거 중에 나와 결국 수술을 받게 됐어요. 암이라고 하니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죠. 수술 전에 짐을 정리하니 제 짐이 두 박스로 정리가 되더라고요. 그 박스를 바라보니 수행자로 살아온 내 삶이 너무 단출하고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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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인도네시아 해인사 포교원 어린이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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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를 극복하고 포교의 길로
스님은 수술 후 잠시 쉴 곳을 마련해 들어간 곳이 현재의 비로자나국제선원이다. 스님은 그리고 이곳에 포교의 길을 결심했다. “부처님께서 왜 나에게 이런 병을 주셨을까를 생각했어요. 도심 속에 있으니 또 이곳 사람들의 아픔과 번뇌 고민이 느껴졌어요. 산속에서의 참선도 중요하지만 이곳에서 방황하는 이들의 아픔을 해결해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죠. 그렇게 도심포교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스님은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해외에서 한국불교를 접하고 출가를 해서 들어온 외국인 비구니 스님들이나 한국에서 출가를 발원하는 외국인 스님들을 보호해 주는 곳이 없잖아요. 이곳이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했어요.”
그렇게 스님은 수술을 계기로 2006년 비로자나국제선원이라는 이름을 걸고 도심 속 포교를 시작한다. 결국 병마의 고통을 이겨내고 국제포교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스리랑카 유학시절 3~4살 때부터 아이들이 절에서 글자도 배우고 인터내셔널 담마스쿨 과정으로 영어공부하는 것을 인상 깊게 보았던 스님은 이와 함께 어린이 영어 포교도 시작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어린이 영어 포교였다.
“청소년부는 국제청소년포상제 프로그램으로 진행이 돼요.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봉사 정신을 길러주는 프로그램인 동시에 진학에도 도움이 되니 멀리서 찾아오는 학생들이 많아요. 아이들이 영어도 배우고 체험 프로그램도 하면서 발표력도 기르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죠. 어린이들은 담마스쿨과 선원의 자체 교재 등으로 영어 법회를 진행합니다. 어린이들이 법당에서 형 누나들과 함께 어우러져 공부하니 영어에 더 큰 흥미를 느끼게 돼요.”
특히 스님이 진행하는 영어 캠프는 아이들이 여름이면 손꼽아 기다리는 행사다. 매년 70~80여 명이 참여하는데 아이들이 영어에 흥미를 가지게 되는 것은 물론 불교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익힐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매년 아이들의 의견을 반영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다 보니 가족여행보다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 스님의 여름 캠프다.
이렇게 비로자나국제선원에서 영어를 배운 어린이들은 자타카 암송대회 등에 나가 대상과 최우수상을 6년 연속해서 받아오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고 연등축제 불교문화마당에 나가 외국인 어린이 손님을 맞아 불교를 설명해주는 재능을 발휘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어우러져 놀이하며 영어를 공부하니 흥미도 가지고 경쟁심도 가져요. 이런 환경속에 자연스럽게 영어실력이 쑥쑥 늘어나죠. 물론 아이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일이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나 결과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캠프가 끝나고 나면 재정상으로는 적자가 날 때도 있어요. 하지만 아이들이 받았을 행복을 생각하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한한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또 이 아이들이 훗날 불교의 재목으로 쓰일 것이라 생각하면 더 큰 보람을 느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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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문화한마당에 참여한 비로자나국제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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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에 꽃피는 한국 불교
스님은 우리 불교가 좀더 세련되고 현대화 되고 국제화되기를 서원한다. 그래서 국제포교는 다방면에서 우리 불교를 알릴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도 스님의 지론이다. 매주 일요일 외국인들을 위한 참선 법회를 여는 것도 이런 뜻이 반영된 것이다.
“제 목표는 서구사회와의 국제적 교류를 통해서 승가를 건강하게 발전시키고 한국불교를 세계에서 꽃피울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제가 추구하는 국제 포교는 미국 등 서구에서 한국 불교를 접한 이들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신행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고 출가를 원하는 이들에게도 길을 안내해주는 교량 역할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스님의 이런 원력이 발현이 되어 출가를 시킨 이들이 꽤 있다. 대표적인 스님이 ‘길 위에서’의 주인공으로 미국 유학생활 중 교수 임용을 앞두고 출가한 상욱 스님과, 현재 송광사 강원에서 공부중인 인도네시아계 미국인 진담 스님이다.
“사실 외국 생활을 했던 분들이 한국에서 출가를 하는 길을 잘 모를 수도 있고 출가를 했다고 해도 우리 수행 문화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아요. 발심을 했다고 해도 승가공동체에서 적응해서 살아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제가 먼저 걸어온 길을 후배들에게 안내해주고 왜 그런 과정이 필요하지를 설명해주다보면 그들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스님은 조계종 국제불교학교의 개교 당시 초대 학감을 역임했다. 국제불교학교는 조계종이 운영하는 비구니 스님 영어전문교육기관으로 스님은 이곳에서 초창기 커리큘럼을 짜고 제반적인 과정을 정성스럽게 준비하기도 했다. “6개월 정도 종단 일을 맡아 하면서 종단이 아직도 국제 포교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국제포교는 단순히 영어를 잘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예요. 영어는 기본이고 우리의 불교를 세상에 알릴 수 있는 국제적 감각을 가진 인재가 필요하죠. 그런 면에서 종단이 국제포교를 좀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님은 한국불교가 세계속에서 꽃피기 위해서는 탄탄한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어떤 식으로 국제포교에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수행지도법이나 연구법 등을 늘 연구하죠. 가장 큰 문제는 종단 차원에서 공식화 된 게 없다는 거예요. 외국인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또 조계종의 근본은 지키면서 세계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종단과 스님들이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스님은 국제포교와 어린이 포교를 발원한 스님들이 숙식을 함께하며 연구할 수 있는 포교 공동체도 꿈꾼다. “사실 포교를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는 스님들이 많잖아요. 앞으로 저희 선원의 공간이 확보된다면 스님들이 모여 숙식을 해결하고 포교를 고민하고 또 각자의 위치에서 일할 수 있는 포교공동체를 만들고 싶습니다.”
늘 마음의 평화 평정 부동심을 유지하기 위해 수행하고 포교한다고 말하는 자우 스님. 그래서 산속에서도 도심속에서도 수행의 끈을 놓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스님의 모습은 고요한 가운데에서도 강하고 밝은 힘이 느껴졌다. 늘 도전을 정진의 기회로 삼는다는 스님은 국제포교의 새로운 길을 위해 오늘도 최선을 기울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