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111의 호위기에서 출발해서 F-111을 대체하다.
1960년대 초 케네디 정권의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포드사의 사장으로 재임했을 때의 경험을 살려 병기채택의 합리화를 추구하였다. 즉 한가지 모델을 가지고 용도에 따라 변형해서 구매하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었다. 이 방식은 개발 경비의 절감은 물론 부품공급 경비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리하여 그 첫 번째 작품으로 미 해군의 F-4 팬텀을 공군형으로 개조하여 해/공군의 주력 전투기로 사용하게 한 것을 시작으로 A-7 커세어 공격기도 해/공군 공통사용 공격기로 운용하게 한 것을 들 수 있다. 세 번째 공통운용 기체로 예정되어 있던 F-111에 이르러 이같은 방식에 따라 공군은 침공전투기(쉽게 말해서 종심타격용)를, 해군은 함대방공전투기로 사용하도록 개발을 진행했으나 해군형은 중량초과로 실패하게 되며 공군형만 채택되어 해군은 별도로 F-14 톰캣 전투기를 개발/양산하게 된다.
미 공군 전투폭격기의 한 축을 맡았었던 F-111A (위에서 두번째 기체는 전자전형인 EF-111A Raven)
한편 공군은 F-111 침공전투폭격기를 개발하는데 성공했으나 이를 호위하고 적진에서의 제공전투를 담당할 전투기를 새로 필요로 하게 되었다. (마치 2차대전 때의 B-17과 P-51처럼 말이죠...) 더욱이 베트남전 중반에 다목적 전투기로 도입된 F-4 팬텀이 공중전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었으며 1967년 모스크바의 도모도데보 에어쇼에서 공개된 가변익 전투기인 MiG-23과 최대속도 마하3 이라고 소개된 MiG-25에 충격을 받고 있었다. 미 공군 수뇌부는 MiG-23에는 개량중인 F-4E 전투기로 대항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으나 최대속도 마하 3인 MiG-25에 대항할 수 있는 전투기가 없음에 당황하게 되었다.(만일 이 미그쇼크가 없었더라면 항공기의 발달은 20년 뒤로 늦쳐졌을 거라는 어느 전문가의 말도 있습니다.)
차기 전투기 개발에 열심인 미 공군이 이런 사태를 맞이하게 된 것은 한마디로 베트남전에 개입하면서 얻은 교훈에 따라 전투기 개발방향이 흔들려 버렸기 때문이었다. 미 공군은 원래 1965년 미국내 13개 전투기 제작사에 차기 전투기에 대한 기초적인 설계제안을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베트남전의 교훈에 따라 수정하게 되며 1968년에 새로운 설계 제안 요구를 하게 된다. 미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설계 제안 요구에 응한 회사는 맥도널 더글라스, 노스 아메리칸, 그루먼, 제너럴 다이내믹스, 록히드, 노스롭, 페어차일드, 보잉 등 8개사로 압축 되었고 여기서 다시 맥도널 더글라스, 노스 아메리칸, 페어차일드 등 3개사로 줄어들어서 경쟁하게 된다. 이 당시 3사 기체의 특징을 살펴보면 페어차일드와 노스 아메리칸의 안은 수직미익이 하나인 것과 달리 맥도널 더글라스의 안은 두개의 수직미익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노스 아메리칸의 안은 미 해군에 인도한바 있는 A-5비질란트 핵무장 공격/정찰기의 외형을 상당부분 참고로 하여 설계안을 내놓았다.
♧ 작전요구성능
1969년 12월에 이르러 미 공군은 맥도널 더글라스의 안을 채택하는데 다음과 같은 성능을 요구하였다.
- 익면하중이 작은 주 날개를 가질 것 (마하 0.9 의 속도대에서 난기류, 충격파등의 진동에 견디는 동체) - 높은 추력대 낮은 중량비 - 미 본토에서 유럽으로 전개 할 수 있는 장거리 비행능력 - 1명의 조종사가 처리할 수 있는 칵핏과 화기관제 시스템 - 통상 임무수행으로 4,000 시간의 비행시간 보장 - 적은 정비 인력과 시간 - 360도를 볼 수 있는 캐노피 - 지상지원 시스템 없이 내장형 엔진시동 시스템 장착 - 제공 임무시 4만 파운드의 최대 이륙중량 - 마하 2.5의 최대속도 - 룩다운/슛다운 성능이 있는 장거리 탐지 펄스 도플러 레이더를 장착 - 개발 위험도의 최소화
♧ 새로운 개발 방법 - 시제기 대량생산!!
한편 미 공군은 20대의 시제기를 발주하는 등 전에 없던 시제기 대량발주를 하게 되는데 이들 기체중에는 화기관제 시스템 등의 탑재 전자장비의 비약적인 발전만큼 복잡해져 평가 기체와는 별도로 시험평가용이 등장한다. 또한 개발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여러대의 기체를 필요로 했다. 원형 시제기 20대의 각각의 시험평가 분담은 다음과 같다.
1호기(F1) - 성능영역의 연구와 운용특성, 외부 탑재물 시험 2호기(F2) - F100 터보팬 엔진 테스트 3호기(F3) - APG-63 화기관제시스템 탑재기체, 전자장비 개발, 대기속도 계측 4호기(F4) - 구조 테스트 5호기(F5) - 최초의 M61A1기관포 탑재기, 기내장착 기관포 발사테스트, 무장 사출 테스트 6호기(F6) - 에이비오닉스 테스트, 비행제어평가, 미사일 발사평가 7호기(F7) - 무장, 연료, 파일런 시험용 8호기(F8) - 스핀 테스트, 높은 받음각 평가 9호기(F9) - 기체, 엔진적합평가 10호기(F10) - 레이더, 에이비오닉스 테스트 11호기(T1) - 복좌형 평가 12호기(T2) - 복좌형, 맥도널 더글라스사 데몬스트레이터 (후에 F-15E의 프로토타입기로 사용) 13호기(F11) - 실용 테스트 14호기(F12) - 최초의 컨포멀 연료탱크 장착기, 실용 테스트, 테스트 후 이스라엘에 매각 15호기(F13) - 실용 테스트 16호기(F14) - 기상환경 테스트, 테스트 후 이스라엘에 매각 17호기(F15) - 개발, 시험, 평가에 사용 후 이스라엘에 매각 18호기(F16) - 실용 테스트, 데몬스트레이터 후 이스라엘에 매각 19호기(F17) - 스트라이크 이글 계획에 사용 20호기(F18) - 개발, 시험, 평가에 사용 후 이스라엘에 매각
F-15 제공형의 홍보를 위해 세계각국을 돌며 홍보비행을 했던 F-15 데몬스트레이터기
♧ 최초의 이글전투기 첫 비행
시제1호기는 1972년 6월 26일에 출고되었으며 한달 후에 첫 비행에 성공한다. 이후 약 2년간의 시험평가 기간을 거쳐 주 날개 익단과 수평안정날개 등의 형상을 현재의 형태로 변형하는 개수를 거치게 된다. 이것은 마치 최근의 YF-22와 F-22의 기체 차이점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스트라이크 이글의 행동반경을 넓혀준 항공병기계의 유니크 아이템이라 할 수 있는 컨포멀 연료탱크는 F-15 개발 초기단계부터 개발되었던 것으로 컨포멀 연료탱크는 급유기 없이 대서양을 횡단비행하기 위해서였다.
F-15의 에어 인테이크는 필요에 따라 흡입구의 각도를 변화할 수 있는 가변식으로 동시에 내부의 가변면적 램프도 작동한다. 이것은 최적의 상태에서 흡입공기를 확보할 수 있다. 램프의 작동각은 상방향으로는 4도, 아랫방향으로는 11도에서 15도까지이며 높은 받음각시 확실하게 추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준다. 2매의 수직미익 역시 높은 받음각에서 방향타로서의 효과를 확실하게 얻을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놀랄만한 사실이 이미 YF-15A개발 단계부터 주날개와 동체 중심 하부에 파이론을 설치하고 멀티플 런처에 지금처럼 주렁주렁 재래식 폭탄을 장착하고 투하 시험을 행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전자광학, 레이저 유도폭탄, CCIP장치를 사용한 정밀 자동폭격도 실시할 예정이었다. 양산 초기단계에서는 공대지 무장탑재를 위한 배선이 깔리기도 했으나 소프트웨어는 무장 시스템에 연결되지 않고 나중에 요구에 따라 쉽게 개조 할 수 있는 선에서 마무리 된다.
♧ 준비된 전투기 Strike Eagle
이리하여 F-111을 호위할 뿐만아니라 뛰어난 제공전투력을 가진 F-15 제공형 전투기가 확보되자 얼마 후 F-111의 후계기 도입을 원하게 되고 당시 소련의 룩다운/슛다운 능력을 갖춘 신형 전투기에 F-111이 쉽게 격추 될 것이란 위험성이 예견되자 F-111급의 전천후 정밀타격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상황에 따라 적 요격기의 저지선을 뚫을 수 있을정도의 공대공 전투능력을 갖춘 기체를 물색하게 된다.
일명 이 계획은 능력 강화형 전투기 (ETF)라고 불리웠고 나중에 다시 이중 임무 전투기 (DRF : Dual Role Fighter)로 바뀌었다. DRF의 뜻에는 대 제공능력을 보유한 전투폭격기라는 의미도 있다. 이 DRF 계획에는 F-15D를 개조한 스트라이크 이글과 제너럴 다이내믹스사에서 신기술을 의욕적으로 투입해서 제작한 F-16XL 두기종을 놓고 2년간의 각종 비교 실험을 실시하게 된다.
F-15E는 맥도널 더글라스와 레이더 제작업체인 휴즈(현 레이디온)사가 자체 개발계획으로 출발한 발전형 전투기 능력 실증계획인 AFCD로 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F-15 이글은 표면적으로 제공 전투기였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미리 전폭기로 발전할 가능성을 안고 있었다. 애초에 설계할 때부터 여유있게 큰 사이즈로 설계한것이 바로 그것이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F-15A/C와 같은 단좌기를 보면 마치 후방석이 있는 듯한 여유로운 조종석 설계를 들 수 있다. 후에 F-15E를 복좌형으로 설계하기 위함이거나 아니면 이곳에 추가적인 전자장비를 탑재할 의도였던 것이다. 실제로 F-15C와 D는 조종석의 외형상 캐노피가 조금 더 크다는 것 밖에 없고 C와 E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F-15A의 기체에는 기존의 연료탑재량의 30%정도의 여유공간이 있었고 후방의 전자장비 수납부에는 절반만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다목적기로의 개발은 아니었고 단지 연구에 목적이 있었다.
당시 F-15B형을 개조해서 스트라이크 이글이라는 이름을 명명하였다. 이 기체의 특징은 컨포멀 연료탱크, 신형의 대용량 기내컴퓨터, 매핑 성능이 있는 신형 레이더 개발, 항법 및 목표조준용 시스템(LANTIRN)의 개발, 신진화된 조종석 칵핏이다. 이 AFCD는 기존의 제공형 이글의 단계별 능력 향상 계획인 MSIP 계획과 함께 진행되어 AFCD에서 얻어낸 기술 일부를 전용하는 계획이었다.
上 F-15B를 개조한 스트라이크 이글 下 제너럴 다이내믹스의 야심작, F-16XL
♧ DRF, F-16XL과의 경합
경쟁기인 F-16XL을 살펴보면 기존의 F-16과는 거의 딴판으로 생긴 기체이다. 더블 델타익의 크랭크드 애로우 날개를 가지고 있으며 무장은 넓은 주익하면에 세미 컨포멀 방식으로 저항을 대폭적으로 감소시키고 있고, 기내 탑재 연료가 82% 증가하였고 탑재량과 항속거리는 기존 F-16A의 두배에 이른다. 엔진 또한 제너럴 일렉트릭의 F-110GE-100으로 교체되어 수퍼크루징이 가능하다. 조종석에는 여타 다른 전투폭격기들과는 달리 1명이 탑승한다. 제너럴 다이내믹스사는 F-16XL의 진보된 성능으로 1명의 승무원으로도 충분히 임무를 수행할수 있다는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맥도널 더글라스사는 공대지 임무수행을 감안해 2명의 승무원이 필수적이라는 보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고, 기체설계에 그대로 반영하였다.
이 두기종을 종합적으로 비교하자면 F-15E는 기존 기체에 센서 및 탑재 전자장비의 혁신에 개발 초점이 맞춰져 있고 F-16XL은 기체외형의 변화와 더 파워풀한 엔진으로의 교체였다. 처녀비행은 F-15E가 1980년 8월에 하였고 F-16XL은 1982년 7월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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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스트라이트 이글 많이도 달고 비행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