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조리있게 말해봐."
앞 뒤 잘 연결할 수 있게, 그래서 잘 이해할 수 있게 말하라는 뜻이죠.
그러려면 물리적 원인이나 논리적 이유를 가지고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근데 그게 좀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마치 아는 사람이 이사해서 집들이를 갔는데, 집 구조도 맘에 안 들고, 가구 배치도 맘에 안 들고, 그집 식구들도 불친절해 보이고, 이것저것 맘에 안 들고 불편한 심정이 들 때처럼요.
사람이 싫고, 집도 싫고, 그러면서 전부 싫은 거죠.
집은 우리 인간이 사는 세계를 지칭합니다.
세계를 이해하려고 해도 잘 알아지지가 않고, 불편하기도 하고, 곳곳에 위험들이 또 도사리고 있죠.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은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데, 무지 춥거나 무지 덥거나 날씨도 안 도와주고, 화재나 지진 해일 폭우 벼락 등도 아주 위협적입니다.
더구나 먹을 걸 쌓아놓으면 언놈들이 훔쳐가고, 마적떼가 나타나 살생도 저지르고, 멧돼지가 나타나 논밭도 다 망치고, 엄청난 메뚜기떼가 날아와 농작물들을 다 먹어치우고, 이웃 나라에선 조공을 강요하고, 기타등등
도무지 믿을 게 하나도 없어요. 믿을 놈도 없습니다. 좋은 놈도 있지만 나쁜 놈 이상한 놈들 천지죠.
왜 그런거죠? 설명 좀 해줬으면 해요. 이해가 되야 말이죠. 조리가 있었으면 해요.
근데 이게 원래 불가능한 일이에요. 세계가 인간을 위해 있는 게 아니거든요.
결국 아쉬운 놈이 먼저 손 내민다고, 인간이 세계에 굽히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덤벼들어서 원하는 걸 찾고 얻어야 하는거죠.
이때 드는 감정이, 부조리입니다. 뭔가 이질적인 것이 이빨 사이에 끼어들었을 때처럼.
그런 일들이 살면서 수없이 반복되요. 형태만 바꿔가면서. 삶 자체가 부조리하다고 느끼죠.
그러다보니 태어난 것부터가 부조리해요. 왜 태어났는지, 왜 먹는지, 왜 일하는지, 왜 아픈지, 왜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죽는지, 전부가 부조리한 것 뿐이죠.
그래서 세계와 나, 나와 친구, 나와 가족, 나와 국가, 나와 애인, 나와 일, 모든 관계에서 실패했다고 여기죠. 경제적 용어로 표현하면 관계의 파산인 겁니다. 납득이 잘 안 되는 거죠.
인간소외, 부조리한 삶, 관계의 단절, 이런 것들이 부조리란 단어로 집약되는 겁니다.
내가 하는 것이 어떤 것에도 영향을 주지 못할 때 느끼는 좌절과 절망 역시도. 그래서 관종도 생기고 일베도 생기고 화살촉도 생기는 거 같습니다.
관계가 생략된 삶이란 인간의 삶이라 할 수 없죠. 그래서 부조리는 관계의 부조리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관계의 부조리 / kjm
2022.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