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예배영상
몬 1:11, 전에는 무익했으나 지금은 유익한 사람입니다. 24-11-17
사람들은 다들 ‘사람은 절대로 안 바뀐다’고들 말합니다. 왜 사람이 바뀌는 것이 이렇게도 어렵습니까? 인간 스스로의 정체성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전히 내가 주인 된 삶을 살게 될 때, 그 주인 된 내가 바뀌지 않으니까,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믿게 되면, 다시 말씀드려서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고, 예수님의 뜻만 따르게 되면, 내가 내 주장을 더 이상하지 않게 되면, 그 때부터 사람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대로 ‘거듭난 새사람이 됩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재창조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역사가 있었다면,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바뀌지 않던 죄인된 삶이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하고나서 바뀌기 시작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역사가 바로 재창조의 역사, 곧 구원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능력, 구원의 능력입니다. 새 사람이 되는 능력입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 선언하게 됩니다. ‘나는 거듭났다. 나는 새것이 되었다’고 선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누구나 할 것이 없이, 예외 없이 ‘예수님 안에 있으면’, 곧 예수님을 믿으면 ‘새로운 피조물’(창조물)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파레르코파이). 지나가다. 쓰이지 않거나 사라져 버리다(그냥 내 버려두고 떠나다). 보라(이두, 감탄사). 새 것이 되었습니다(기노마이). 일어나다, 발생하다. 존재의 특징을 가지다. 이 얼마나 놀라운 선언입니까?
이렇게 변화된, 새 것이 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오네시모입니다. 신앙인들은 누구든지 오네시모처럼 새 것이 되어야만 합니다. 감탄받아 마땅한 그런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첫째. 전에는 무익하고, 해롭던 사람이였습니다.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그러하듯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오히려 사람들과 교회와 하나님께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자기밖에 모르는 무익하고, 심지어 해롭기까지 했던 사람들이였습니다. 사도 바울 같은 경우에는 교회를 핍박하고, 신앙인들을 옥에 가두고 죽이려는데 가담했던 박해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을 때,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박해자가 복음전하는 사도가 되어 수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빌레몬 교회에 오네시모라고 하는 종이 있었습니다. 그가 빌레몬의 집에 있는 교회에서 그의 주인 빌레몬에서 막대한 돈을 훔쳐 로마로 도망쳤습니다. 오네시모는 특히 빌레몬에게 막대한 손실을 입힌 도둑이자, 도망한 종이였습니다. 그런 오네시모가 사도 바울의 전도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고 회심했습니다. 회심, 성령을 통해서 마음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몬 1:18–19, 18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19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이렇게 사람들에게 무익하고도 도둑질을 통해서 남에게 손해를 입혔던 오네시모가 예수님을 믿어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 믿음의 능력입니다. 믿는 신앙인들에게는 다 변화가 일어납니다. 거듭남입니다.
몬 1:10–11, 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사람이 안 바뀌는 것이 아니라, 그가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새 것이 될 수 없었던 것뿐입니다. 십자가는 새것이 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다 바뀝니다. 변화가 일어납니다.
둘째.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한 사람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이제는 신앙인이 변하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네시모가 주인의 집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힐 정도로 돈을 훔쳐서 도망쳤지만, 그가 사도 바울의 전도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어 회심하게 되자, 바울에게는 엄청나게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만이 아니라 돈을 훔쳤던 그 주인 빌레몬에게도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로 되돌려 보냅니다.
몬 1:11–12, 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2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여기서 요점은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라는 말씀입니다. 곧 복음전파자인 사도 바울과 빌레몬의 집의 교회에 유익한 사람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오네시모는 경제적으로 유익한 사람이 아니라, 복음과 말씀에 있어서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사람을 변하게 하는데, 어떻게 변화시킵니까? 이제는 예수님과 복음과 교회를 위해서 유익한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심지어 ‘그는 내 심복이라’는 말까지 하고 있지 않습니까? ‘심복’(스플라그크나)는 ‘애타는 마음(깊은 연민), 창자, 내부 장기’를 뜻합니다.
무익했던 오네시모가 이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복음전파자 사도 바울의 심복, 곧 내부 장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내부 장기(창자)가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 오네시모를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보냅니다. 왜 보냅니까? 빌레몬의 허락이 없이는 안 되겠다고, 다시 말씀드려서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교회의 지도자로 영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몬 1:13–16, 13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14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15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16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셋째, 유익한 사람이 되었으니, 교회가 영접합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과 빌레몬의 집의 교회에 막대한 손실을 입힌 도둑이자 도망친 종이였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고 회심하게 되자, 이제는 교회에 유익이 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오네시모를 아낌없이 영접합니다. 그것도 도둑맞은 손실금을 되찾았기 때문이 아니라, 복음과 교회를 위해서 그 모든 손실금을 계산하지 아니하고, 오네시모를 영접할 때에 사도 바울을 영접하는 것처럼 기꺼이 감사하면서 영접합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의 요청이였고, 기꺼이 빌레몬의 교회는 그렇게 오네시모를 영접하게 됩니다.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다른 신앙인들을 보면, 그 신앙인이 교회와 예수님을 위해서 수고하는 것을 보면, 모든 손실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기꺼이 그를 영접합니다. 영접한다는 말은 그가 복음 사역을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고 기꺼이 기도하고 협력한다는 말입니다.
몬 1:17–21, 17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18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19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20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21 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사도 바울이 도둑질한 빚을 자신에게로 계산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빌레몬과 빌레몬의 집의 교회가 어떻게 오네시모에게 빚을 갚으라고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20절에, 사도 바울이 주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과 평안을 얻을 수 있도록 빌레몬과 그 집의 교회는 오네시모를 영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