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읍 하월리에 있는 한양 조씨 사월 종택(漢陽 趙氏 沙月 宗宅)은
영양에 처음 입향한 조원(趙源, 1511-?)의 손자 조임(趙任, 1573~1644)이
1602년에 건립한 조선시대의 종가(宗家)로, 북쪽의 야산을 뒤로하고
남쪽으로는 반변천과 농경지를 바라보고 있는 배산임수의 형국을 이루고 있다.
사월 종택(沙月 宗宅) 전경
이 건물은 "ㅁ"자형 본채와 좌측의 방앗간채, 우측 후면에 별도의 영역을 이룬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건립과 중수 등의 기록을 알 수 있는 문헌과 편액 등
관련 기록이 비교적 잘 남아 있고, 고택의 보존 상태도 양호하며,
조임의 사월문집책판이 타 문중의 책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등 종가가 갖는 역사성과 학술성의 보존 가치가 있어
국가민속문화재 제294호로 지정(2017.12.29)되었다.
본채 중 왼쪽은 안채 출입문이고 오른쪽은 사량채
조임(趙任, 1573~1644)의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자중(子重), 호는 사월(沙月)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20세의 어린나이에 형과 함께
곽재우(郭再祐)의 휘하(揮下)에서 적과 싸웠으며, 1597년 의병이 해산될 때
곽재우가 조임에게 사월(沙月)이란 호를 지어주면서 의로운 행동을 극구 칭찬하였다.
사랑채인 월담헌(月潭軒)
조임은 1614년(광해군 5)에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1621년 군자감판관(軍資監判官)이
제수되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으며, 1627년(인조 5)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관찰사(觀察使)를 방문하여 사재를 털어주면서 군량미(軍糧米)를 보충하게 하였다.
후에 이 일로 인하여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임명되고 삼대(三代)가 추증(追贈)되었다.
측면
안채와 장독대
안채 우측
안채 좌측
사랑채 뒤쪽에서
사랑채 뒷면
사랑채 측면
사랑채 쪽에서
방앗간채
본채앞 마당
본채 뒤로 조금 떨어져 있는 사당
사당 전면
사당 건물
마을잎의 숙운정(宿雲亭)으로 사월 조임이 1621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숙운정 옆의 사월선생 신도비
숙운정(宿雲亭) 편액
마을 옆쪽 원당지
첫댓글 6월 싱그러운 초록색의 자연과 고풍스런 한양 조씨 종택 문화재 감상 잘 했습니다.
오래 전 산나물 축제 때 가보았는데 시골 풍경이 참 좋았습니다.
그때 남자현 열사 생가에 가서 예를 올리고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즐거운 한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