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5.24.부활 제6주간 화요일>
<요한16,5-11>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5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그런데도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너희 가운데 아무도 없다.6 오히려 내가 이 말을 하였기 때문에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찼다.7 그러나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8 보호자께서 오시면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9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10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11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찬미를 드릴 때,
예수님을 통해서 성부께 드려지는 것이고,
성부께서는 그러한 찬미를 받으시고 그 답례로 예수님을 통해서 성령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피조물과 창조주의 레벨 차이 때문입니다.
그 차이를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십자가의 피흘리심의 댓가를 통해서 없애주시는 것입니다.
이 때 흘러들어오는 것이 죄의 용서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그러한 죄의 용서를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이 용서 받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성당 옥상에서 중학생 형들과 축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강슛을 날렸는데 그만 큰 유리창을 깨고 말았습니다.
“뛰어! 뛰어!”
형들의 말에 정신없이 옥상에서부터 계단을 뛰어 내려왔습니다.
막 성당 마당에 내려온 순간 수단을 입으신 신부님께서,
“얘야! 너희들 유리창 깨지는 소리 못들었니?” 라고 물으셨습니다.
형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제가 나서서 “제가 깼습니다.”라고 말씀드렸지만, 신부님께서는 제게는 야단을 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중학생 형들을 바라보시며, “내가 너희들에게 옥상에서 놀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니?” 라고 하시며 형들만 야단을 치셨습니다.
그리고 보내주셨습니다.
이처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은 아버지 하느님께 있습니다.
형들은 예수님 처럼 저를 대신해서 야단을 맞고, 저는 무죄로 풀려난 것입니다.
그 죄에 대한 보속으로는 이모님께 말씀드려서 이모님이 그 유리창을 대신 끼워주셨습니다.
제게는 예수님이 형들과 이모님인 것입니다.
본당 신부님께로 부터 흘러나온 용서는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성령입니다. 성령을 통해 성사 안에서 용서를 받게됩니다.
하지만 심판을 받은 것은 “혼날줄 모르니 도망가자!”는 내면의 어두움, 즉 세상의 우두머리였습니다.
그날 오후 저는 야구 연습을 한다고 하면서 돌을 벽에 던졌습니다.
“쨍그랑!”
담 밖에서 “누가 던졌느냐!”며 왁자지껄 했습니다.
용서를 받았던 저는 용기를 내어 담을 힘겹게 올라가서 “제가 그랬는데요.” 라고 말하며 겨우 얼굴 반을 내밀어 제가 죄인임을 알렸습니다.
이제는 제가 창피를 당할 준비가 된 것입니다.
이제는 세상의 우두머리가 심판받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모님이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오늘은 웬일이냐?” 하시며 해결해주셨습니다.
그 죄의 창피함과 댓가는 어린 나를 대신해서 이모님이 해결해주셨습니다.
솔직하게 말한 것에 대해 관대하게 용서해 주셨던 신부님과 이모님은 유리창을 깨고 숨기려한 내면의 어두움인 세상의 우두머리가 심판 받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한 이모님을 믿고 나는 말씀드리듯이 예수님을 믿고 우리는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나는 그 죄의 씻음이 나의 정직함과 이모님의 보상으로부터 옴을 알고 있으니 의로워지는 것입니다.
그 죄의 심판은
우리 내면의 어두움인 세상의 우두머리입니다.
기도와 정화로 어려움을 직면하여 세상적 어두움과 타협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을 찾도록 수련이 필요합니다.
그 방법은?
세례(수세, 혈세, 화세)를 받은 상태에서 완전 의탁을 하던지, 아니면 완전 정화를 하면 됩니다.
1.완전 의탁
1)성모성심께 의탁하며 봉헌하기
예수님을 낳으신 성모성심께 내 자신을 봉헌합니다.
봉헌된 내 자신이 사랑의 용광로이신 성모성심 안에 다 녹게 됩니다.
예수님으로 다시 나게 됩니다.
내 머리가 예수님의 머리,
내 심장이 예수님의 심장,
내 손이 예수님의 손,
내 발이 예수님의 발로 새로남을 감사드립니다.
2)성체를 영합니다.
음식이 나의 살과 피가 되듯이,
성체로 내가 예수님의 몸과 피가 됩니다.
3)내가 예수님으로 거듭나게 되었음을 믿고 하루에 50번~500번 떠올리기.
일주일이 넘게되면 장기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에 의해서 무의식적으로 예수님처럼 살지 않으면 목숨의 위협을 느껴 저절로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이것이 100일 정도 지속되면 습관화 됩니다.
4)자비의 기도를 바칩니다.
(1) 성호경
(2) 주님의 기도
(3) 송모송
(4) 사도신경
(5) (묵주기도 매단에서 하는 주님의 기도 대신 아래의 기도문을 바친다)
영원하신 아버지, 저희가 지은 죄와 온 세상의 죄를 보속하는 마음으로, 지극히 사랑하시는 당시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 영혼과 신성을 바치나이다.(1번)
(6) (묵주기도 매단에서 하는 성모송 대신 아래의 기도문을 바친다) 예수님의 수난을 보시고 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10번)
(7) 6과 7번을 위와 같은 방법으로 반복한다.
(8) (5단이 끝난 뒤에 성모찬송 대신 아래 기도문을 바친다.)
거룩하신 하느님,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분이시여,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3번)
오 ! 저희를 위한 자비의 샘이신 예수 성심에서 세차게 흘러나온 거룩한 피와 물이여,저희는 당신께 의탁하나이다.(1번)
(9) 성호경으로 마무리한다.
2.완전 정화
1)복음 묵상
(1)기도
매일 미사책에 복음 말씀을 2번~10번 읽습니다.
눈을 감고 영화처럼 성령께 의탁하여 등장 인물 중에 한 인물이 되어 예수님을 만나고 대화를 합니다.
30초~1분간 무념무상으로 머뭅니다.
(2)정화
삶에서 복음 묵상 중에 만난 예수님의 현존하에서 대화하며 살아갑니다.
2)단순기도
(1)정화
지성으로 예수성심이 어디에나 계심을 믿습니다.
순간순간 내 모든 기억을 비워내고 예수성심과 일치하려고 소망합니다.
의지로 내 모든 기억을 봉헌하기 위해 사랑자체이신 예수성심을 향해 봉헌합니다.
(2)기도
일생이 한 번 봉헌될 때마다 30초~1분 무념무상으로 예수성심 안에 머뭅니다.
일생이 10번 이상 다 봉헌되면,
내 머리는 예수님의 머리.
내 심장은 예수님의 심장,
내 손은 예수님의 손,
내 다리는 예수님의 다리가 될 수 있도록
예수성심께 몸을 봉헌하고,
몸이 한 번 다 봉헌될 때마다
30초~1분 예수성심 안에 머뭅니다.
이 때는 몸에 붙은 무의식이 예수성심의 사랑의 용광로를 견디지 못하고 튀어나오기에 다시 봉헌하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그 악습들이 떨어져 나갑니다.
하느님의 자녀,
예수님의 지체로 거듭나게 됩니다.
아무것도 없게 되면 빛 속에서 순간 봉헌만 남습니다.
머리이신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십자가의 성요한이 말한,
육의 능동적인 밤, 영의 능동적인 밤, 육의 수동적인 밤, 영의 수동적인 밤을 거치게 됩니다.
3.하느님의 뜻으로 살기
1)하느님의 뜻 선택하기
(1)이성적 단계(구성기도,묵상의 단계)
a.혼soul(정신), 즉 이성적으로 A와 B중에서 내가 선택해야 할 것에 대한 장, 단 점을 적습니다.
b.30분에서 1시간 (묵주기도나 성서묵상)기도 하시고 난 다음에 영spirit(마음)이 끌리는 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선택합니다.
(2)경험적 단계(묵상의 단계)
이성적 단계에서 하느님 뜻을 식별하는 것을 반복하다보면 영spirit(마음)적으로 나에게도 너에게도 유익함을 느끼게 됩니다. 즉, 영적인 경험이 쌓이게 됩니다.
그 영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더 정확하게 하느님의 뜻을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3)하느님 지혜의 단계(관상의 단계)
단순기도를 통해서 주부적 관상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하느님 지혜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그 지혜로 하느님의 뜻을 가장 정확히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마태16,16-17).
2)하느님의 뜻 실천하기
예수님의 몸이된 나는 작은 희생이나 선행을 하되,
지구상에서 그 일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모아 각각의 일에 “하느님 아버지! 찬미합니다, 흠숭합니다,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라는 꼬리표를 붙여서 아버지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3)하느님의 뜻대로 생각과 말과 행위를 하시는 예수성심 안에 머뭅니다.
<John 16,5-11>Jesus said to his disciples:5 “Now I am going to the one who sent me,and not one of you asks me, ‘Where are you going?’6 But because I told you this, grief has filled your hearts.7 But I tell you the truth, it is better for you that I go.For if I do not go, the Advocate will not come to you.But if I go, I will send him to you.8 And when he comes he will convict the worldin regard to sin and righteousness and condemnation:9 sin, because they do not believe in me;10 righteousness, because I am going to the Fatherand you will no longer see me;11 condemnation, because the ruler of this world has been condem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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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 책을 읽을 정도의 나이가 되면 당신은 상당한 행동 체계를 가지게 되는데, 그 체계에는 신호를 받을 때마다 당신이 행하고 생각하고 신체 반응하면서 학습한 모든 것들이 즉시 사용될 수 있도록 저장되고 조직되어 있다. 사진의 차이로 신호가 오면 그것은 우리로하여금 즉시 자신의 행동 체계를 살펴보고 조직화된 많은 행동 중에서 사진의 차이를 줄일 수 있다고 판단되는 가장 바람직한 것 중 한 가지나 그 이상의 행동을 선택하도록 한다. 수잔이 필자의 아내를 만났을 때, 그녀는 아내가 자신을 도와줄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서 ‘나는 어떤 행동이라도 하겠으니 내게 충고를 해 달라.’는 식의 행동을 선택했다. 우리의 행동은 항상 우리가 원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결혼 생활이 싫었지만 의무 때문에 얽매여 있을 때 마침 다행하게도 남편이 집을 나갔다면, 필자의 아내를 만났을 때 그녀는 위의 경우와는 완전히 다른 행동을 선택하였을 것이다. 즉 그녀는 자기의 결혼 생활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는 채, 더/ 이상 사랑하지도 않는 남편에게 매달릴 필요없이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계획에 대해서만 말했을 것이다.
(당신의 삶은 누가 통제하는가, William Glasser 지음, 김인자 옮김, 생활심리시리즈4, 한국심리상담연구소, 2016, p.84-85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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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제2부 주님의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YUCAT 가톨릭 청년 교리서, 오스트리아 주교회의, 최용호,2012,p.403)
513 ‘주님의 기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요?
‘주님의 기도’는 하늘에 계신 자비로우신 아버지에게 드리는 일곱 가지 청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반부의 세 가지 청원은 하느님과, 우리가 그분을 올바르게 섬기는 방식에 관한 것입니다. 후반부의 네 가지 청원은 인간으로서 우리가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들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게 알리고 있습니다.[2803-2806, 2857]
(YUCAT 가톨릭 청년 교리서, 오스트리아 주교회의, 최용호,2012,p.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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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편 그리스도인의 기도
제2부
주님의 기도
“우리 아버지!”
(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975)/
제3절 일곱 가지 청원
->2803 우리가 우리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흠숭하고, 사랑하고, 찬양하기 위해 하느님 앞에 나아 오게 되면, “자녀의 영”(가라4,6)은 우리 마음 속에서 일곱 가지 청원과 일곱 가지 축복이 솟아나게 하신다. 첫 세 가지 청원은 하느님을 향한 간구로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우리를 이끌어 준다. 나머지 네 가지 청원은 아버지께 나아가는 길로서, 우리의 비참한 처지를 하느님의 은총에 내맡기도록 해 준다. “심연은 심연을 부른다”(시편41[42],8).
->2804 첫 세 가지 청원들은 우리가 아버지를 향하도록, 아버지를 위하도록, 곧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뜻을 추구하도록 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그분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사랑의 특성이다. 이 세 가지 청원 중 어느 것에서든 우리는 ‘우리’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사랑하는 아들에게는 ‘고뇌’가 된 그 ‘열렬한 소망’이 우리를 사로잡는다(루카22,15; 12,50 참조).”….거룩히 빛나시며,…..오(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993)/
시며,……이루어지소서.”라는 이 세 가지 탄원은 이미 구세주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 안에서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아직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지 않으셨으므로(1코린15,28 참조), 이 간청들은, 희망하는 가운데, 이제 그 최후의 성취를 향하고 있다.
->2805 나머지 네 가지 청원들은 우리가 아버지를 향하도록, 아버지를 위하도록, 곧 우리가 기대하는 바를 자비로우신 아버지께 말씀드리며 그 자비의 눈길을 우리 쪽으로 끄는 것이다. 우리 안에서 우러나는 이 청원들은, 바로 이 순간에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와 관련된다. “….저희에게 주시고,….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저희를 구하소서.”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청원은 양식을 얻거나 죄를 치유받기 위한, 우리의 생명 자체와 관련되는 것들이다. 그리고 마지막 두 가지 청원은 삶의 승리를 위한 우리의 싸움, 바로 기도의 싸움과 관련된 것이다.
->2806 처음 세 가지 청원을 통해서 우리는 믿음 안에서 굳건해지며, 바람으로 가득 차게 되고, 사랑으로 불타게 된다. 피조물이며 아직도 죄인인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청원을 드려야 한다. 이 ‘우리’는, 세상의 넓은 공간과 오랜 역사만큼 최대한으로 확대된 ‘우리’, 곧 ‘만인’을 포함한 의미의 ‘우리’이며, 이러한 우리를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에 맡겨 드리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아버지께서는, 당신 그리스도의 이름과 당신 성령의 다스림을 통해서 우리와 온 세상을 위한 구원 계획을 실현하신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994)/
간추림
->2857 ‘주님의 기도’의 첫 세 가지 청원은 아버지의 영광이 그 목적이다. 곧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고, 하느님 나라가 오시며,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하는 것이다. 나머지 네 청원들은 우리의 소망을 아버지께 말씀드리는 것이다. 이 청원들은 우리의 생명 유지를 위한 양식을 얻고 죄를 치유받기 위한 것이며, 악에 대한 선의 승리를 위한 우리의 싸움과 관계되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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