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말 대한민국, GNP 82달러의 세계최빈국
당시 사회는 혼란과 가난, 그 자체였다.
6.25이후 한국은 생산시설 파괴로 인해 외국의 원조로 생존할 정도의 어려운 시기였다.
1960년 말 경제 사정을 보면 일인당 GNP는 단돈 82달러였고,
외환보유고는 2천3백만 달러에 불과했다.
무역규모는 대만, 필리핀에도 훨씬 못 미쳤다.
이외에도 1960년 당시 영국 외무부가 작성한 분석 자료에 한국의 실정은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한국이란 나라는 한반도 남쪽에 위치한 분단국으로서 별다른 가망이 없는 곳이다.
국민성은 게으르고 문맹률은 높으며 정치적 미숙에다
경제적 빈곤이 겹친 나라, 게다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군사적 불안 등 온갖 부정적 요인을 안고 있어서 가망이 없다”
실제로 1964년 한국이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을 때
이미 일본은 50억 달러를 넘어서고 있었고,
태국은 7억 3천 6백만 달러,
필리핀은 4억 5천8백만 달러의 수출을 기록했다.
특히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한국의 다섯 배 정도의 수출을 하고 있었다.
남미의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는 우리가 감히 넘보지도 못할 경제성장을 이룩한 시점이었다.
당시 북한은 남한을 훨씬 앞질러 가고 있었다.
남한이 정치적으로 혼란을 겪는 동안 북한은 강력한 철권통치 속에서 공업화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북한도 6.25로 피폐할 대로 피폐했음에도 불구하고
60년대 초 이미 수출 2억 달러를 달성한 상태였다.
한국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부터 경제개발에 관한 논의가 있었지만 실제로 경제개발 계획을 실시한 것은 1962년의 일이다.
따라서 북한은 남한보다 10년 앞서 경제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