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왕건이 당나라황제의 후손임을 자칭한적이 없습니다.기록상으로 작제건설화는 고려 의종시기 김관의가 저술한 편년통록에 의해 나왔습니다.고려 태조시기 기록은 고려 현종시기 거란의 침입으로 사초가 불탄지라..자세한 기록은 남아있지를 않고 과거 사관으로 일한 노인(....)들이 기억나는것을 적어서 매우 간략합니다.그저 왕건의 조상들을 왕으로 추봉했다는것이 다입니다.
2.그 작제건설화도 당나라황제의 후손임이 너무 부각된나머지 욍건의 조상을 "고려인"으로 기록한 것은 상대적으로 잘 안 알려져 있더군요.지리적인 특성으로 고려인을 설명하려해도 당대 신라인들과 구별되게 고려인으로 기술하기에 그 점도 아닙니다.즉 정체성으로 작제건설화조차도 고려인의 정체성을 드러내었죠.다만 당나라황제부분이 인상깊은지라..
.그리하여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상선(商船)에 (몸을) 맡겨 바다를 지나던 중, 구름과 안개가 앞을 가리고 배(舟)가 사흘 동안 나아가질 않았다. 배의 사람들이 점을 쳐 말하니 "마땅히 고려 사람을 치워야 한다(宜去高麗人)."고 했다.
민지(閔漬)의 편년(編年)이 혹 이르길: 신라 김양정이 사신으로서 당에 가려 하니 (작제건이) 그 배에 (몸을) 맡겼다. 양정이 꿈을 꿨는데 백두옹(白頭翁)이 말하길 "고려 사람을 남기면 순풍을 탈 수 있다(留高麗人, 可得順風)."고 했다.
3.그러나 고려정부가 당나라황제의 후손임을 주장한 적은 있습니다.고려 충숙왕시기 지어진 관찬사서인 본조편년강목은 엄연히 충숙왕의 주도로 민지가 저술한 관찬사서입니다.그래서 고려왕실의 의도가 들어갔다 할 수 있죠.
1.고려태조는 당나라황제임을 주장한 적 없음
2.고려태조이후 의종때 당나라황제이야기가 나옴
3.그 이후 원간섭기 고려충숙왕때 민지의 본조편년강목에 작제건설화가 실리면서 고려왕실이 인정함
4.그러나 이제현이 비판하였고 이제현이 참조한 고려왕조의 족보격인 성원록과 왕대종족기에서는 이러한 내용이 없다하여 프로파간다수준인 듯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