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전 후 미조리호 함상을 나는 미공군기의 퍼레이드.
초 공중 요새-2
앞에서 말한 피난처 선산군 배시내는 낙동강본류와 지류가 만나는 곳인데 피난시절 이야기속에 시골에 살았던 나와 김천시에 살았던 고교동기가 그 당시는 상면이 없었지만 같은 날 같은 장소에 있었는데 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녔고 지금은 워싱턴 근교에 살면서 코로나 이전에는 계를 하니 한달이 두 번씩을 만나다가 미리 매입을 해놓은 천국의 대문 묘지[Gate of Heaven Cemetery]]는 이삼십 미터의 간격이 있다.
TV에나온 그 당시 영어를 할 줄 아는 일본인 목격자 여인의 증언에 의하면 히로시마에는 꼭 멸치가 타는 냄새로 덮여 있었단다.
지금도 노인이 되어 살아있는 그 당시의 미군 대위는 폭탄 한 개로 도시하나를 폭파한다는 말을 의심했으며 자기가 보았던 목격 장면을 표현하기 위하여 적합한말을 찾으려고 애를 썼으며 불기둥은 너무나도 커서 사상 전무후무할 것이라고 했으며 평화로운 도시가 단 몇 초 만에 검고 회색으로 변했다고 역사(History)채널 에서 설명했다.
병기는 간단한 돌도끼에서 발전을 거듭하여 핵무기까지 왔는데 보통의 폭탄
은 원자의 결합 때문에 에너지가 생겨서 폭탄이라 이름을 하지만 원자탄은 핵이 분열할 때 생기므로 원자폭탄 이라는 말은 잘못 된 것이다.
원폭 투하 후 곧
“소련은 연합국을 돕겠다.”
라고 제안을 했는데 이 말은 땅을 좀 나누어 가지겠다는 음흉한 계교이며 미국 측으로 봐선 전쟁이 끝난 상태이니 달갑지 않았는데 소련은 스스로 원폭투하 이틀 후인 8월 8일(미국은 7일)땅 짚고 해엄치기 격으로 일본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한국의 북쪽으로부터 전의를 상실한 일본군의 저항이 없이 파죽지세로 진격 해 들어오게 된다.
미국생각에 만약 일본까지 들어오는 날이면 또 반타작(지주와 소작인이 타작마당에서 곡식을 절반으로 나눔)이 되어 4년 동안 헛수고를 한 셈이 되니 “일본을 강점 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이라고 천명(闡明; 진리나 사실, 입장 따위를 드러내어 밝힘)했고 또
“단 한국은 두 나라가 분할점령을 한다.”
라고 했는데 한반도의 모양이 길 죽 하니 가장 땅을 나누기 쉬운 것은 미국이 본토에 사용했던 ‘직선경계’ 경험을 사용하여 위도 룰을 적용, 반 정도인 이미 그어진 38선을 즉시 이용하게 된다.
그 후 공산정치가 싫어서 남하한 사람들을 남한사람들은 비하하여 ‘삼팔따라지’라 불렀는데 그 후 육사에 입대 삼팔 광땡이 되어 별을 단 군인이 여러명 있었는데 이 북한 출신이 많았다.
이에 위압을 받은 박대통령은 여러 명에게 퇴직금을 두둑이 주고 한꺼번에 약 15명을 제대를 시키게 되는데 박대통령의 5.16때 거사를 도운 내 친구의 숙부님 대령 김K태님도 이 케이스에 포함되었는데 이민을 오신 후 뉴욕에서 생을 막음하게 된다.
이들 중에는 성질이 대쪽 같다는 장군이 포함이 된다.
나와 계군이셨던 권H술씨는 미군부대 식당에서 일을 하며 파카 내피를 사서 벽장속에 보관을 하셨단다.
세파트를 키우셨는데 어느 날 나들이를 나갔다가 돌아오니 개에게 수면제가 섞인 오징어를 먹이고 도선생이 몽땅 훔쳐갔단다.
이한림장군이 대구동촌옆 신천동에 있는 큰 땅을 불하해주겠다는 명목으로 거금을 주었는데 핼리콮터로 서울까지 동행을 한 것 외에는 아무것 도 없었단다.
그 장군의 이야기로 불하가 취소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사기를 당한 셈이며 서류상으로 아무것도 없으니 고소도 못하는 처지가 된 셈이다.
이 권성생님은 한국전쟁 때 참호를 파고 그 속에서 미군과 며칠을 견뎌야했으니 고생이 많으셨단다.
이민을 온 후에 펜실바니아주 그 미군 본가를 방문했단다.
반공포로로서 북한으로 돌아가지않고 자유의 몸이된 총각들이 한국군으로 참전했다가 휴전 후 결혼은 해야 되겠는데 가진 것 이라고는 두 쪽 뿐이니 딸을 주려는 사람이 없었다고 내가 아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고령인 월남한 여러 사람들로부터 이구동성으로 들었다.
이 사람들이 미국에 오니 제3국이 되며 월남 후 호적을 다시 만드니 본명이 아닌 사람도 있고 군대에 안 가려고 나이를 높인 사람도 있는데 그들은 정년 퇴직금을 더 빨리 타게 된다.
나쁜일은 이 ‘삼팔따라지[3+8=11]라는 나쁜 이름을 가진 침척이 없는 분들은 모두들 한결같이 아내에 대해서는 남자의 박력은 어디 갔는지 힘을 못쓰고 처가 하자는대로 종노릇을 하고 있는 처지가 된다.
아내가 골프를 같이 치자고 하면 부부골퍼가 되는데 남자가 100%이기게 되니 아무런 흥미를 못 느끼게 되는데 남편골퍼는 남자가 적수이니 도전자[challenger]가 되어서 구미를 더 당기게 하는 것은 남자는 다른 남자와 겨루어보고싶은 기저의 심리가 있다.
예쁜여자를 보면 "한번 보듬어 보고프 진다"는 말이 있고
"여편네는 남의것이 더 예쁘고 자식은 내자식이 더 예쁘다"라는 말이 있다.
남편과 아내가 같이 못하는것 3가지가 있는데,
1. 재판소에서 증인서는 것,
2. 동시에 못죽는 것,
3. 골프를 같이 치지 못하는것이다.
나의 아내도 다른 여자친구들끼리 나는 남자친구들끼리 그룹을 만든후 날짜가 바뀔때마다 다른 친구들을 접하여 겨루게 된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해방직전 소련은 온 세계의 적인 일본에게 모든 침략국으로부터 철수를 하라고 협상카드를 내어 놓았는데 도고 일본외무대신은
“소련이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일본이 중립을 지켰기 때문에
그 덕을 본 것이다.”
라고 말하며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어왔다.
그러던 중 원폭을 당하여 다급해진 도고는 사또 대사를 소련에 보내어 그동안 계속 미루어 왔던 협상을 수락하려고 했으나 모르토프는 선전포고문을 그의 앞에 내밀었는데 때는 이미 늦어서 그가 떠난 후 2시간 만에 부동항(不凍港)이 있는 북한을 호시탐탐 엿보던 소련은 즉시 160만 대군으로 만주를 돌파하여 두만강을 거쳐서 평양 쪽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첫댓글 잘보고 갑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