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 볼가라는 카페가 있었다. 마치 숲속의 동굴처럼 입구에 있는 출입문 외에 나머지 건물 전면은 온통 담쟁이와 각종 식물로 완전 포위된 카페였다.
밖에서 본 빨간 출입문은 서양식 풍경이지만 한옥을 개조해서 만든 탓에 카페 안의 천장은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난 이색적인 공간이었다.
카페 3면을 빽빽하게 메운 아기자기한 각종 소품들도 어찌나 많은지 눈이 모자랐다. 특히 오페라 가면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가면이 참 많이도 걸려 있었다.
이 물건들은 카페 주인장이 해외 여행을 갈 때마다 수집한 것이라 했다. 카페 이름인 볼가는 러시아의 강 Volga에서 따왔다. 이상하게 볼가라는 이름에 친근감이 생겼다.
나는 오랜 기간 인사동을 드나들었지만 볼가는 가본 적이 없었다. 싸구려 술집이 체질에 맞는 사람이라 인사동을 돌고 나서도 근처 낙원동이나 피맛골로 가는 날이 많았다.
함께 살았던 여자가 처음 이 집을 데려갔다. 아마도 막바지 연애를 하던 1992년쯤일 것이다. 그녀는 이 카페의 단골이었다. 하긴 볼가 분위기가 여성 취향이긴 했다.
그녀는 가는 곳마다 딱 정해진 찻집이 있었다. 한 번 정을 주면 좀처럼 딴 생각을 하지 않는 성격 그대로였다. 그녀의 인사동 서식지는 주로 볼가였다. 가끔 귀천도 갔다.
볼가에서 그녀와 차를 마시고 있으면 턴테이블에서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국적인 분위기답게 오페라 아리아나 샹송 등 평소 듣기 힘든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이 집은 카페이면서 음식점이었다. 그녀가 파스타가 맛있다고 했다. 쩍 벌어진 조개와 새우가 들어간 해물 봉골레 파스타가 나왔다. 파전에 소주가 좋은 촌뜨기는 많은 것을 배웠다.
볼가는 가을이면 벽면을 온통 단풍이 든 담쟁이로 뒤덮였다. 카페 문을 열 때면 머리 위 담쟁이 잎에서 단풍물이 뚝뚝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가을 담쟁이도 좋지만 여름이면 지붕까지 올라가 피는 능소화가 대단했다. 그때까지 나는 능소화란 꽃 이름을 모르고 살았는데 그녀가 이 꽃이 능소화라고 알려줬다.
어쩌면 나와 러시아의 인연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볼가를 가끔 드나들던 어느 날 진짜로 러시아에 갈 기회가 생겼다.
지금부터 23년 전이다. 나는 러시아에서 2년을 꼬박 살았다. 놀러 간 것이 아니라 달랑 두 쪽만 달고 돈 벌러 갔기에 디지게 일만 했다.
당시 러시아는 소련이라 해야 빨리 알아들었다. 내가 살았던 도시 상트 뻬쩨르부르그도 오랜 기간 레닌그라드로 불렸다. 여름이면 백야 비슷한 것도 경험했다.
자정이 가까울 무렵 어두워졌다가 두어 시간 지나면 날이 밝았다. 일만 하며 짐승처럼 살았으나 휴일이면 반나절 정도 에르미타쉬 미술관에서 그림 구경이 유일한 낙이었다.
러시아에서 돌아와 볼가를 갔다. 주인이 묻지도 않았는데 나는 러시아에서 2년을 살다 왔다고 말했다. 내가 볼가와의 인연을 말하자 주인이 웃음으로 맞장구를 쳐줬다.
러시아에서 돌아와 2년도 안 돼서 영국으로 갔다. 런던에서 15년을 살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는데 결국에는 그래도 고국이었다. 영국에서 여러 일들이 있었다.
상처 투성이로 돌아온 후, 한동안 볼가를 잊고 살았다. 그녀가 없는 볼가를 잊고 싶었다. 인사동을 갈 때면 가끔 볼가를 떠올렸지만 그 쪽은 가능한 발길을 끊었다.
그러다 지난 여름 인사동 쌈짓길에서 능소화를 보았다. 죽은 아내가 떠올랐다. 능소화를 보자 뭔가가 울컥 밀려왔다. 오랜 만에 볼가를 찾았다. 그런데 볼가가 없다.
분명 이 자리가 맞는데 내가 잘못 찾아 왔나? 볼가를 찾다가 근처 구멍가게 아저씨한테 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 수퍼 주인도 여태 가게를 지키는 인사동의 오랜 터줏대감이다.
볼가가 문을 닫은 지 한참 된다고 했다. 그랬구나. 내 아내처럼 볼가도 떠났구나. 아니, 아내가 죽자 볼가가 망했구나. 여름이 끝날 때까지 피고지고 했던 능소화도 말라 죽었다.
나는 늦여름 오후에 문을 닫은 볼가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그 빼곡했던 담쟁이 덩굴은 어디로 갔을까. 내 추억 하나도 이렇게 소멸되고 있었다. 사라진 볼가를 아시는가.
한 달 전쯤의 인사동 쌈짓길 능소화, 그리고 아래 사진은 영업을 접은 볼가다. 능소화는 말라 죽었다. 같은 날 현덕이 찍었다.
첫댓글 역시 풍류는 음악이지요.
미워하지 않고 피었다면 별나라로 갔겠지요.
볼가도 가고 능소화도 가고 사랑도 가고
음악만 남아 도네요..
.
역시 풍류를 제대로 아시는 선배님이십니다.^^
영영 안 잊힐 것 같던 사람도 살다 보니 차차 잊혀지더군요.
음악은 아내가 좋아했던 노래였답니다.
편안한 휴일밤 되세요.
글 읽으면서 내내 볼가에서
글쟁이 라고 자칭 타칭 불리는 분들
볼가로 모두 모이셔요!!
해야지
했는데..
지금은 없군요.
능소화는 임금님을 사랑하고
그리워 하다 죽은 궁녀의 혼이
꽃으로 환생했다고 해요.
일찍이 러시아와 영국에서
경제 활동(?)을 하셨군요.
인오술의 인이여서 참 좋습니다.
ㅎㅎ
백만송이 꽃
저 음악을 들으며 강의 하시던 스승님이
생각납니다.
우리 들은 모두 다 주변을 환하게
해 주는 꽃 피우고 오라는 사명을 갖고
태어났으니
어렵다고 힘들다고 하지말고
고통아
시련아
다 끌어 안고도 꽃 피우라시던~
무자 천서 의미도 깊게 알려 주시던..
음악과 함께 글
애잔한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맞아요. 볼가가 없어지지 않았다면 풍류방 글객들 한번 모이는 건데요.
러시아와 영국에서 도합 17년 2개월을 살았답니다.
햐~ 인오술, 환상적인 삼합입니다.
나중 모임 하나 만들까요. 범말개 요렇게 모여 삼띠회라고,,^^
효주님 댓글 보면 제가 풍류방에 오기를 잘한 것 같군요.
글만 봐도 효주님은 볼매입니다.
볼면 볼수록 매력 있는,,^^
볼가에 꼭 가봐야겠네요.
음악 너무 잘 들었습니다...
샤론님 어쩌죠?
볼가는 지금 문을 닫아서 가셔도 들어갈 수가 없답니다.
그냥 제 글 다시 한 번 읽으시고 아쉬움으만 간직하셔야 할 듯,,^^
@유현덕 애구...결국 볼가가 문을 닫았군요..
종로에서 아들차를 기다리는 동안 너무 더워서
K은행 365 코너 안에 들어가서 읽다가
러시아 이야기까지 듣고
댓글을 달았는데
본의 아니게 너무나 성의없는 댓글이 되었네요.
앞으로는 끝까지 읽지 않은 글에는 댓글을 달지 않아야겠네요..지송해요..ㅎㅎ
@샤론2 오히려 솔직한 님의 고백이(?) 더 감동입니다,
대부분 이럴 경우 댓글을 지우는 사람이 많답니다.
풍류방에 자주 오셔서 우리 더 친해지도록 해요.
샤론님의 아름다운 솔직함을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유현덕 고맙습니다..
'죽여주는 여자'
영화 평론도 잘 읽었습니다..
@샤론2 네, 그렇군요.
나중 풍류방에 영화이야기도 쓸 생각이네요ㅣ
제가 이대 나온 죽여주는 남자거든요.^^
가슴아픈 볼가 카페의 추억 이야기군요.
문을 닫아 넘 아쉽습니다.
문을 닫아 저도 아쉽답니다.
아내와의 오래전 추억입니다.
지금은 다 잊고 살려고 합니다.
편안한 휴일밤 되세요.
떠난 후에 느껴지는 감정.
무심했던 날들이
무심했던 기억들이
그 때 그것이 사랑이었나 !
메마른 가을 창가에 서서
빈 마당에 뱅뱅 돌아가는
작은 회오리.
이제 허탈하게 부르는 바람의 노래.
갈 것은 가고
찾을 길 없으니
나 또한
돌아가야 하네
온 적이 없으니
간 적도 없다는 선승의 말에
무슨 선문답인가 했더이다
그대 댓글 또한
내 마음을 위로하더라도
이미 내 님은 떠나고 없는 것을
일찍 알았던들 내 사랑
다시 돌아와 줄 것인가
능소화 진 뒤 그 자리엔
마른 이슬이 맺혔다네
사연이있는 카페와 사연이있는 음악이군요.
백만송이장미라고 번역해서 대중화됬던곡이죠.
저는구소련의음악 백학이라고 번역됬던음악좋아합니다
춥고 메마른땅에서 오래살다오셨군요.
고르바초프는 만나보셨나요 ㅎ
백학이라,,
모래시계 배경음악으로 저도 좋아합니다.
글구보니 제 아내도 백학을 좋아했던 것 같군요.
메마른 땅을 좋아합니다..
고비 사막이나 안데스 산맥에서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답니다.
고르바초프는 고르바씨가 저를 만나겠다 했는데도 제가 넘 바빠서,,^^
볼가도 사랑도 모르옵니다.
능소화만 알아 본 나는 세상 어캐 살았나 싶네요. 난 참 바보처럼~~
수수깡님 아무 걱정 말아요.
볼가든 사랑이든 고런 거 몰라도 사는데 지장 없어요.
능소화만 알아도 세상 사는 재미가 얼마나 많은데요.
글구 풍류방에 자주 오시면 바보를 벗어난다는 전설이,,^^
인사동 하니 생각나는 노포하나 있습니다
잔치국수에 막걸리에 부추전이 참 맛있던
노 부부가 하던 그 곳
낡은 기와집 으로 담장이 낮았던.....
불가라는 멋진 카페가 있었군요
네 그렇군요.
제가 부추전을 좋아하는데 그 노포 지금은 사라졌을 듯하네요.
오래 서울을 떠나 있던 사이 인사동이 너무 변했더라구요.
볼가는 오렌지를 갈아 만든 오렌지차가 유명했더랬습니다.
쥬스가 아닌 뜨거운 오렌지차,,
석우님, 편안한 휴일밤 되세요.
언제나 축복이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아름문학 응모 글 중에
"죽여 주는 여자" 공감있게 읽었습니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죽여주는 여자 영화평론 팬이 상당히 많이 있군요.
얼마전에 쪽지로 장문의 소감을 보낸 분도 있었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구요.
님도 언제나 축복과 건강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글구 영화 좋아하신다기에 닉이 둘시네마인 줄 알았는데 둘시네아네요.^^
@유현덕 인사동 볼가...같은 대한민국 하늘 아래 살고 있지만 남쪽의 끝이라 인사동은 큰 마음을 먹어야 갈 수 있는 곳입니다.그래서 아름문학 주제로...아니 볼가...아픈 기억을 떠올리시는 것 같아 주제를 돌렸습니다.
다시 영화 이야기..ㅎ
죽여주는....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노인 문제에 주목했습니다 저는..
최근에 본 영화는 공조2입니다.
둘시네아...
자칭 돈키호테 그 이상이라 말하던 제법 총명했던 그 놈(?)이 둘시네아라는 닉네임을 안겨주고 화랑대로 입성을...ㅎ
수 십 년이 흐른 전설의 이야기입니다.
편한 밤 되십시오~~~~
@둘시네아 닉에 대한 사연이 있군요.
처음 님의 댓글에다 닉에 대한 농담을 했다가
수위가 높은 것 같아 살짝 몇 자 고쳤답니다.
진짜 영화를 좋아하시는군요.
저는 공조2는 못 봤고 얼마전에 수리남을 봤네요.
언제 영화 이야기로 밤 한 번 꼬박 새볼까요.^^
@유현덕 웬만한 수위는 감당할 수 있는 경지에 와 있습니다.
네네...언제 영화 이야기 좋습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구체적인 노후 설계가 부족했던 소영처럼 되지 않으려 아직 일을 하는 입장이라
저는 이만~~꿈나라로~~ㅎ
"아줌마, 하나요"하고 주문하면 세숫대보다 약간 적은 양은 그릇에 막걸리 한거와 구운 고등어 한손을 가져 오지요. 간판도 번지수도 없는 인사동 입구 왼편에 있었던 그 집이, 현덕님의 글을 보니 생각 납니다.
아! 그러시군요.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딱 이 집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도 친구 따라 가 본 적이 있는 곳으로 보여지네요.
님의 댓글 보니 갑자기 막걸리와 고등어 생각이^^
이 글을 통하여
죽어가는 영혼을 되살리는 일이
글을 쓴 사람의 소명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듭니다ㆍ
볼가는
이렇듯 가뭇없이 사리졌지만
유현덕님의 글을 통하여
인사동 어디엔가
볼가가 있을 듯ᆢ
어쩌면 이렇게 끌림이 있는 꿀댓글을 달아
휴일 밤의 고요가 더욱 정감이 있습니다 그려,,
하여, 윤슬님의 가슴엔 허난설헌의 시혼이 담겨 있지 않을까 싶네요.
볼가는 헐리지 않았으니 행여 다른 것으로 부활한다면 모임 한 번 갖자구요.^^
@유현덕
인사동 골목 골목
친정집 마당처럼 훤하지요 ㆍ
불혹의 나이에
황진이와
신사임당이 널 뛰기하는
속과 겉사람을 다스리기 좋은
곳이기도 했지요 ㅎ
지금은
죄값인지
행운인지
돈 속에 묻혀 살지만요
@윤슬하여 헐, 이걸 어째요.
돈 속에 묻혀 사는 그런 불행한 삶을,,^^
제가 인사동을 빠삭하게 꿰고 있는 줄 알았는데 님이 더 고수네요.
하여, 윤슬님이 앞으로 쭉 인사동 가이드를 맡아주시기를,, ㅎㅎ
좋은 밤 되세요.
@유현덕
ㅎㅎ
하여님이 말하는 돈은
돼지 돈입니다.
돼지 2천마리를 백성으로
살고 있는 여황폐하이지요.
나의 절친이구요.
깊어 가는 가을 밤에
문인들의 회합을 꼭 가져야 겠습니다.
@유현덕
허난설헌--초희
참 멋진 여인이였지요~~^^
정호승님의
<산산조각>이 떠올랐습니다.
몽연님 다녀가셨군요.
정호승 시인 산산조각 잘 읽었습니다.
제 삶이 산산조각이 났다고까지는 생각하진 않았으나
이 시를 읽고 나서 더욱 살고 싶은 마음은 확실하게 챙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