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번에 선생은 세번 째 수필집을 출간하였다. 글이 한층 그윽하면서도 정치해졌다. 그리고 사유는 더욱 깊어졌다. 공자님은 '삶도 모르는 자들이 어떻게 죽음을 논할 수 있겠는가' 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말씀의 진정한 속뜻은 죽음을 깊이 사유하는 자만이 삶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라는 뜻으로 읽힌다. 그의 죽음에 대한 사유가 그의 삶에 더욱 짙은 음영을 주었고, 그의 글에 보다 깊은 밀도를 주었다.
2. 나는 이번에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좀 특이한 체험을 하였다. 친숙한 이가 옆에 앉아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처음엔 그냥 평범한 이야기처럼 들렸다. 특별히 감동적이거나 경이로운 서사가 있는 건 아니었다. 표현이 완벽하다거나 기발한 비유가 넘치는 문장도 아니었다. 그러나 읽혔다. 읽힐 뿐만 아니라 일견 평범해 보이는 그 문장들에 자기도 모르게 매료되어 갔다. 그것은 뭐랄까, 잘 닦여진 마룻장 같은 매력이었다. 한두 해의 손때로 나무의 아름다운 결이 살아나지는 않는다. 그의 문장의 질박함 뒤에는 진주보다 검고 영롱한 세월의 빛이 감춰져 있었다.
3. 선생의 글 속에는 작은 깨달음들이 빛을 발하고 있다. 결코 한 시대를 호령할 만한 큰 깨달음은 아니다. 시대를 선도할 만큼 새로운 사상도 아니다. 어쩌면 낡고 진부한 지혜서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선생의 지혜에는 기묘한 설득력이 있다. 누가 이미 한 이야기라도 선생의 입을 통해서 들으면 거부감이 사라진다. 그 지혜의 말씀들 속에는 한 평생을 진심으로 살아온 이만이 체득할 수 있는 생명력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글들은 정성과 애정으로 빚어진 글들이다. 날마다 먹는 집밥이 질리지 않는 이유는 그 음식들이 산해진미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 음식 속에 주부의 정성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얼마나 살아 있음을 고마와하고 그가 얼마나 고향과 죽은 이들을 그리워하고, 그가 얼마나 아내와 가족들을 사랑하고 있는지, 아무리 여러 차례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그의 이야기는 이미 한 인간의 경험을 넘어서서 인간의 보편적 지혜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4. 그는 자연을 사랑한다. 그는 자연 속을 걸음으로써 자연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다. 그의 걸음은 숲 속을 향한다. 그는 죽음이 자연으로의 회귀임을 알고 있다. 그의 걸음은 회귀에 대한 강력한 실천 의지이다. 선생은 이미 자연과의 합일을 경험한 숲 속의 현자이다. 나는 그를 따라서 깊고 유현한 숲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맑고 그윽한 솔향에 취한다.
5. 다음은 선생의 글을 읽다가 두서없이 메모한 문장들이다. 그의 글의 편린만으로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경이로운 생명의 순환을 바라보며 언젠가 맞이할 마지막 나의 뒷모습을 생각한다. 그때 남길 수 있는 건 거창한 유산이나 이름 석 자가 아니다. 누군가의 가슴에 잠시 머물다 가는 맑은 바람 같은 기억이면 충분할 것 같다. (한 걸음 앞서 걷던 사람)
어둠이 짙게 깔린 밤, 성산포 해안가를 홀로 걸었다. 바다는 거친 숨을 몰아쉬듯 차가운 파도 소리로 허공을 채우고 있었다. 무심코 고개를 들었을 때, 성산일출봉의 거대한 암벽이 앞을 가로막고 섰다. 낮에 보던 수려하고 다정한 관광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수직으로 치솟은 암벽은 마치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내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 앞에 서자 걸음을 턱 멈추었다. 서늘한 두려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렸다. 그 압도적인 침묵 속에서, 묵직한 질문 하나가 던져졌다.
'만약 지금의 삶이 너의 마지막이라면, 너는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침묵의 암벽)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여전히 서늘하고 낯설다. 하지만 그 필연적인 끝을 응시할 때 비로소 순간의 생이 선명한 색채로 남는다. 언덕 넘어 노을이 짙어지는 마지막 순간에 서게 된다면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게 될까.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랐느나가 아니라, 누구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는지, 누구를 끝까지 사랑했는지, 그리고 타인에게 작은 그늘이라도 되어주며 살았는지를 묻게 되지 않을까. 그때 마음의 스크린에 영사되는 것은 화려한 훈장이 아닐 것이다. 함께 웃으며 나누던 밥상, 진심이 통했던 따스한 눈빛, 그렇게 조용히 흐르던 평화로운 시간이 삶의 마지막 풍경으로 남을 것이다
삶은 결국 그런 작고 사소한 것들로 완성된다. 요란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끝내 마모되지 않고 남는 것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가 온 힘을 다해 붙잡게 되는 것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우리를 지탱해 준 그 작고 낮은 마음들이다. (마지막에 남는 것)
비우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정결한 준비다.
같은 가을 하늘을 바라보면서도 어떤 날은 아무 감정 없이 지나가고, 어떤 날은 오래된 생각이 떠오르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비가 지나간 뒤 바람이 나무를 흔든다. 잎이 조금씩 떨어진다. 자연은 소리 없이 계절을 다음 단계로 옮겨 놓는다. 이런 순간에는 브람스의 피아노 간주곡 같은 음악이 어울린다. 화려하지 않지만 깊은 울림을 남기는 선율이다. 낮게 눌린 건반에서 번져 나오는 음은 마치 오래된 생각처럼 천천히 퍼진다. 삶의 시간이 쌓일수록 사람은 이런 음악에 더 오래 머문다. 젊은 시절에는 강하고 빠른 감정이 마음을 움직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용한 울림이 더 깊게 남는다. 기쁨보다 오래 남는 슬픔이 더 많은 의미를 갖게 되는 것도 아마 같은 이유일 것이다. (가을의 노래)
오랫동안 비양도의 다섯 가지 색이 연출하는 푸른 바다와 중산간 곶자왈의 이름 모를 나무들에 매료되어 종종 이곳을 찾았다. 제자리에서 욕심없이 생을 일구는 무수한 생명은 그 자체로 고결한 가르침이었다. 섬은 언제나 영원한 안식처처럼 그 자리에 있었다. (숲이 남긴 숨결)
이제야 깨닫는다. 첫 문장은 완성의 결과가 아니라 용기의 흔적이라는 것을. 삶도 글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시작을 기다리는 동안 삶은 저물어간다. 어설픈 문장이라도 일단 지면 위에 올려놓을 때 비로소 다음 문장이 뒤를 잇는 법이다. (천국의 작은 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