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6번째 편지 - Waiting isn't a verb, It's an attitude
저는 늘 시간을 통제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소련의 저명한 과학자 류비세프를 참 좋아했습니다. 그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의 제목은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입니다.
1916년 1월 류비세프는 시간에 대해 매우 비상한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날 이후 그는 자기의 모든 시간을 철저히 계획, 관리, 기록, 통계, 평가하였습니다.
그는 이른바 <시간통계법>을 통하여 죽는 날까지 56년간을 시간의 효율을 극대화해 살았으며 엄청난 양의 일을 하였습니다. 그는 70권의 전문서적과 원고지 12,500장 분량의 논문과 글을 남겼으며 13,000마리의 곤충표본과 그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였습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흉내도 못 낼 일입니다.
저는 젊은 날 그를 닮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성공을 위한 자기 평가표>라는 것을 고안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이를 2010년 1월 18자 월요편지에 소개한 바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수치로 평가할 수 있다면 우리가 삶을 좀 더 짜임새 있게 살아갈 텐데 과연 가능할까요.
저는 하루에 하는 일을 5개 분야로 나누었습니다. 1 건강, 2 가족, 3 드림, 4 인맥, 5 학습. 각 분야별로 네다섯 개 하위 항목을 두고 항목마다 점수를 매겼습니다.
‘1. 건강’ 분야에 ‘1-1 6시 기상’이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6시에 기상하면 기본 점수가 5점입니다. 그런데 30분 늦게 일어나면 2점씩 감점합니다. 그리고 30분 일찍 일어나면 2점씩 가점합니다."
성공을 위한 자기 평가표의 목적은 류비세프처럼 저의 시간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저의 시간에 대한 철학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의 생각과 맞닿아 있습니다.
“모든 것이 죄다 우리의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이라오. 오로지 시간만이 우리 자신의 재산이라오. 시간이란 다시 찾을 수 없는 유일한 재산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조금도 시간을 아낄 줄 모르고 있다오.”
이런 생각을 하고 살다 보니 하루하루가 충실하기는 하였지만 늘 쫓기는 삶이었습니다. 어느 상담자가 저에게 한 말처럼 저는 가만히 서 있지 못하고 늘 앞으로 달려 나가는 자세를 하고 산다고 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빠른 시간내에 제가 직접 해결해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여기서 방점은 <빠른 시간내>에 있습니다. 문제에 대한 해법을 여러 가지 생각해 내고 그것을 하나하나 적용하여 <제가 직접>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니 항상 힘이 들었고, 다른 사람들은 게으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금년 초 건강이 나빠져 어쩔 수 없이 삶의 속도가 느려지고 부득이하게 게을러지자 이런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직접 하기보다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도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누가 했는지 몰라도 그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되어 있었습니다.
한번, 두 번, 세 번 이런 경험을 하면서 제가 시간에 대한 무엇인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는 살면서 문제를 해결할 때 <시간의 힘>이라는 것을 아예 고려하지 않고 살았던 것입니다. 무조건 빠른 시간내에 문제를 직접 해결하여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에는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물론 저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이론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This, Too, Shall Pass Away"는 솔로몬이 한 말로 <미드라시 Midrash>를 통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글귀로 여류 시인 Lanta Wilson Smith는 같은 제목의 시를 지었습니다. 저는 두 번째 연에서 인사이트를 얻었습니다.
"When ceaseless toil has hushed your song of gladness,/ And you have grown almost too tired to pray,/ Let this truth banish from your heart its sadness,/ And ease the burdens of each trying day:/ "This, too, shall pass away."
끝이 보이지 않는 고난이 당신을 짓누를 때면 / 그래서 당신이 기도할 힘조차 없을 정도로 지쳐 버렸을 땐, / 이 한가지 진실만이 당신을 슬픔에서 벗어나게 해주리라. / 지친 일상 속의 당신을 홀가분하게 만들어 주리라. /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제가 시간에 힘이 있음을 실감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은 <기다림>에 대한 저의 시각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늘 쫓기며 살았던 저로서는 <기다림>이란 <게으름>이나 <낭비>의 쌍둥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미국 펜실베니아주에 <아미쉬> 마을이 있습니다. 19세기 산업혁명기 이전의 유럽 농촌 생활상을 보존하고 사는 재침례파 공동체입니다.
저는 2012년 그 마을을 갔었습니다. 그곳에서 사 온 <아미쉬 격언집>을 서가에 꽂아 놓고 삶이 벽에 부딪히면 꺼내서 읽어 봅니다. 우리와 전혀 다른 시각을 제공해 주니까요.
그 책의 <Time> 항목을 읽었습니다. 눈에 들어 오는 문장이 있습니다. <To the Amish, waiting isn't a verb, It's an attitude.> 아미쉬 사람들에게는 기다림이란 동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태도입니다.
이어지는 설명입니다. "그들은 씨를 뿌리기 위해 봄을 기다리고, 추수하기 위해 가을을 기다립니다. 그들은 계절은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의 격언에는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건장한 오크 나무가 만들어지는 데는 100년이 걸린다." "추수는 1년 내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 시간의 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게으르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등 시간 도둑을 멀리합니다. 그들은 하지 않지만 우리가 매일 하는 전화로 수다 떨기, 인터넷 웹서핑, SNS 등도 모두 시간 도둑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한 번 밖에 인생을 살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인생을 올바르게 산다면 그 한 번으로 충분하다."
저는 아미쉬의 생각을 읽고 자연의 힘을 무시하고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구를 이렇게 만든 것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입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인간이 이룩한 위대한 업적에 매몰되어 자연의 힘을 잊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그 자연의 힘 중 가장 위대한 힘 <시간의 힘>을 잊고 살았던 것입니다. 기다림은 동사가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라는 아미쉬의 생각, 어떠신가요?
2023.8.14. 조근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