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세계종교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전북의 아름다운 순례길인 완주군 '천호성지'가 주목을 받았다. 병인박해 순교 150주년이 되는 올해 천호성지에서는 9월 22일 오전 9시30분부터 세계종교문화축제 행사 프로그램인 '이웃종교돌아보기, 천호-여산' 행사가 진행됐다.
전북 완주군 비봉면 매월리 천호마을에 있는 천호성지(天呼聖址)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천주교 성지다. 순교자의 골짜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천호성지(天呼聖址)의 한자는 하늘 천(天), 부를 호(呼), 성스러울 성(聖), 터 지(址)로 ‘천호산의 성지’를 말한다.
‘천호성지’는 150여 년의 전통을 가진 교우촌 천호(天呼) 공소의 천호산(天壺山) 기슭에 있다. 천호공소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백성들이 하느님을 부르며 사는 신앙 공동체이다. 천호산 역시 이름 그대로 순교자의 피를 담은 병(甁)의 구실을 하고 있다. 이곳에는 1866년(고종 3년, 병인박해) 12월 13일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여섯 성인 중 성 이명서 베드로, 성 손선지 베드로,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성 한재권 요셉과 1866년 8월 28일 충청도 공주에서 순교한 김영오 아우구스티노도 함께 안장되었다. 천호성지와 그 주변의 산은 본래 고흥류씨 문중의 사유지로서 조선조 때 나라에서 고흥류씨 문중에 하사한 사패지지(賜牌之地)였다. 따라서 이곳에 살던 신도들은 언젠가는 쫓겨나야 할 처지였다. 그러던 중 1909년 되재본당 목세영 신부를 중심으로 12명의 신도들이 어렵사리 돈을 마련하여 150 정보의 임야를 매입했다. 이렇게 해서 공소 신도들은 생활 터전을 마련하게 되었다. 또한 이미 모셔진 순교자들의 묘소들도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땅을 봉헌한 사람들은 목세영(베르몽)신부, 김여선(金汝先), 이만보(李萬甫), 장정운(張正云), 김현구(金顯九), 박준호(朴準鎬), 민감룡(閔甘龍), 송예용(宋禮用) 등 8명이다. 이들의 공로로 오늘의 성지를 보존하게 된 것이다. 전주교구 호남교회사연구소는 1983년 5월, 천호산에 묻힌 순교자들의 유해 발굴 작업을 벌였다. 그 동안 실전(失傳)되었던 성 정문호와 성 한재권의 유해, 그리고 1868년 여산에서 치명한 후 합동으로 묻혀 있던 여덟 분의 유해와 천호산 기슭에서 두 분의 유해를 발굴하였다. 그러나 천호산에는 지금도 어디에 묻혔는지 알 수 없어 발굴하지 못하는 많은 순교자들이 있어 안타깝게 하고 있다. 조선말 천주교 박해를 피해 충청도 서산 등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 박해를 피해 이곳 호리병 모양의 천호산(天壺山) 깊은 골짜기로 숨어들었다. 프랑스 신부를 포함한 천주학쟁이들이었다. 이들은 언제 관군에 잡혀 죽을지 모르는 불안한 운명이었다. 이들이 이곳에 머무는 동안 천호산 골짜기엔 하늘에 대한 감사와 찬송이 끊이지 않았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과 다름없었다. 하늘의 성스러운 뜻이 날마다 이 땅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1866년 전국에서 8천명의 천주교도가 처형당한 병인박해의 광풍도 예외 없이 이곳에 불어 닥쳤다. 천호산 골짜기에서 천국을 이루고 살던 천주교도들도 여산원이나 전주감영에 끌려갔다. 하느님을 부인하면 살고 하느님을 인정하면 죽었다. 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하느님을 인정했다. 참혹한 고문 중에서도 여유로움과 미소를 잃지 않았다. 죽음의 땅을 천국으로 여기는 그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순교자들의 유해는 하늘의 뜻에 의해 그들이 천국을 일구었던 이곳 천호산 골짜기로 되돌아 왔다. 그래서 이곳을 천호성지라 부르게 된 것이다. 천호공소는 최근에 한옥으로 복원되었고 실제로 미사도 드려지고 있다. 일요일 아침에는 미사를 알리는 아름다운 종소리가 어김없이 천호산 골짜기에 울려 퍼진다. 이곳에는 외부인에게 잘 공개되지 않는 보존 유물실이 있다. 수백점도 넘는 부활성당의 보물들이다. 700년 전에 만들어진 모자상도 있다. 천호성지 안에는 또 다른 명소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그곳은 바로 < 토마스 쉼터 >이다. 토마스 쉼터의 주인 김경애씨(83.여)는 전주성심여고 교사였다. 41년 동안의 교사생활을 마감한 김씨는 이곳에 아예 거처를 옮기고 본격적으로 토마스 쉼터를 만들었다. 숙박시설과 세미나실을 갖춘 건물도 2동이나 지었다. 토마스 쉼터를 찾는 이들은 대부분 김경애 선생의 제자들이다. 20대에서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제자들의 연령대도 매우 다양하다. 김씨가 쉼터를 마련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김씨의 5대조인 김성첨(토마스 62세)이 천주교 박해로 순교한 뒤 이곳 천호성지에 안장된 것이다. 그래서 이곳의 이름도 < 토마스 쉼터 >라고 부르게 됐다. (정복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