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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화 환향(還鄕)-1 서문 종과 황 보영이 송 철방의 집에 도착한 시간은 오시(午 時)가 지난 뒤였다. "아무도 없는가?" 서문 종은 송 철방의 집 앞에서 외쳤다. 그런데 송 철방의 집에서 마중은 고사하고 인기척조차 들리지 않았다. "서문 종이네. 도대체 무엇을 하느라 나오지 않는 건가?" 아무도 나오지 않자 서문 종은 울화가 치밀어 올라 목청이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그러나 대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아무도 없느냐." 서문 종의 거친 음성에 강력한 내력이 실렸다. 송가 가옥의 대문과 벽은 강력한 파동에 의해 미세한 진동을 일으켰다. 큰소리를 지르자 서문 종은 기분이 풀려 입가에 싸늘한 웃음 기가 나타났다. 그런데 서문 종은 흥분한 바람에 옆에 무공 을 모르는 황 보영이 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하, 할아버지..." 황 보영은 귀가 울리고 속이 뒤흔들리는 충격을 받아 고통에 빠졌다. 서문 종은 황 보영이 고통스런 목소리로 자신을 부 르는 순간 그 사실을 알아챘다. 그제 서야 서문 종은 자기가 저지른 실수를 눈치챘다. "이런..." 창백하게 변해버린 황 보영의 안색을 바라보는 서문 종의 눈 동자에 자책(自責)이 가득했지만 실수를 만회할 수는 없었다. "애야, 괜찮으냐?" "네. 괜찮아요." "흐음~, 그래 다행이구나. 할애비가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구 나. 용서해 다오." "아니에요. 어디에도 아픈 곳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황 보영은 아무 이상이 없다며 오히려 서문 종을 위로했다. 그러나 창백한 안색을 숨길 수는 없었다. 서문 종은 황 보영 의 고통이 송가 때문에 생겼다고 결론을 내리고 격분해 버렸 다. 서문 종의 분노는 자연스럽게 송 철방의 집으로 향했다. "이것들이 집안에 처박혀 나올 생각을 않는구나." 서문 종의 음성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서문 종이 큰 소리로 외친 것이 효과가 있는지 굳게 닫쳤던 대문이 열 렸다. "아니! 고 파파(婆婆)가 아니오?" 문을 열고 나온 인물은 송가의 일원이 아니고 고씨 성을 가 진 노파였다. "좌장 어른은 송가에 무슨 일로 오셨소?" 고 노파의 음성에는 숨길 수 없는 짜증이 역력히 드러나 있 었다. "나는 송가를 방문한 손님을 만나러 왔소. 그런데 고 파파는 여기에 웬일이오?" "산파가 온 이유가 무엇이겠소?" 고 노파는 산파였다. 이원의 주민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고 노파는 산파를 하면서 입에 풀칠을 하고 있었다. 서문 종보다 십여 세가 더 많아 백 살이 넘은 고령이었지만 산파 로써 훌륭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럼 자헌의 여식이 아이를 낳았단 말이오?" 해산한 여인과 갓 태어난 아기를 향해 내력이 담긴 큰 목소 리로 폭력을 가한 모양새가 되었다는 사실에 서문 종은 당혹 을 금치 못했다. 고 노파는 서문 종의 안색을 유심히 바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송가의 대를 이을 아이가 새벽에 태어났지요. 그런데 철방이 좌장 어른 댁에 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사실을 듣지 못하 셨소?" "철방이 오기는 했소. 하지만 아기가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금 시초문(今始初聞)이오." "호오~, 철방이 왜 말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네. 분명히 경사(慶 事)인데..." 고 노파는 송 철방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지 의아한 표정 을 지었다. "그건 철방이 생각한 게 있어서 그랬을 것이오." "하긴... 철방이 원래 생각이 깊은 사람이니..." 고 노파는 납득이 가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다 알 일이니 고민할 필요는 없는 것 같소. 그것보다 순산을 한 것 같으니 축하부터 해야겠군." "축하는 나중에 철방이와 자헌을 만나면 하시구려. 자영은 아 직 일어날 힘도 없을 정도로 지쳐 있으니 나중에 만나 하시 구려." "허허허. 고 파파. 나는 막 해산한 여인을 만나는 몰상식한 인물이 아니오. 그 정도의 상식은 가지고 있소. 그런데 아이 가 태어나면 고 파파가 할 일은 다 끝난 것이 아니오." 서문 종은 고 노파가 아직도 송가에 남아 있는 이유가 궁금 했다. "산모가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있소이다." 고 노파는 손에 들고 있던 각종 해산물과 보혈제들을 서문 종의 눈앞에 내밀었다. "고 파파는 산파노릇만 하는 거 아니었소?" "송가에 여자라곤 자영이 뿐이 없지 않소. 게다가 송가 놈들 은 무슨 바쁜 일이 있는지 다들 코빼기도 보이지 않으니 나 라도 해야 하지 않겠소. 덕분에 내가 자영이의 친정 어머니 신세가.... 가만 있자, 그리고 보니 잘됐구려." 고 노파는 서문 종과 황 보영을 훑어보면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서문 종은 고 노파의 눈빛이 불길하다는 생각이 들 었다. "고 파파, 왜 그런 눈빛으로 내 손녀를 보시오?" "지금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인데 자청해서 들어온 일꾼이 내 눈앞에 있으니 기뻐서 보는 것이라오." "뭐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서문 종의 음성은 위압적이었다. 하지만 고 노파에겐 통하지 않았다. 고 노파는 히죽거리며 황 보영의 위아래를 쳐다보았 다. 황 보영에게 무슨 일을 시킬까 생각하는 고 노파의 모습 은 서문 종에게 단 하나의 길을 제시하게 만들었다. "우린 이만 가겠소. 고 파파. 나중에 자헌이 돌아오면 내가 왔다고 알려주시오. 그럼 수고하시오." 서문 종이 선택한 길은 황 보영을 데리고 집밖으로 피신하는 것이었다. 귀한 손녀딸을 고생시킬 생각은 털끝만치도 없었 다. "할아버지..." "안 된다. 고생을 사서 할 생각이냐." 황 보영이 잡힌 손에 힘을 주며 발걸음을 멈추자 서문 종은 손사래를 쳤다. 서문 종은 황 보영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머나먼 소주에서 놀러온 손녀가 고생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 아이는 제게 동생이 되요." "그 무슨 헛소리냐! 너는 황씨고..." "숙부님의 아들이면 제게 동생이지요." 황 보영의 말투는 부드럽지만 강한 의지가 실려 있었다. "왜 고생을 자처하느냐?" "당연히 해야할 일이니까요. 그리고 아기도 보고 싶어요." 서문 종은 한숨을 쉬고 말았다. 한편으로는 황 보영의 배려 가 기특하지만 고생을 사서하겠다는 손녀를 생각하면 가슴이 쓰렸다. 그런데 서문 종이 쓰린 가슴을 쓸어내는 동안 고 노 파는 아기가 보고 싶다는 황 보영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가야. 너는 방에 들어가서 아기를 보려무나." "고 파파, 이 애는 일을 하러 온 게 아니오." 서문 종의 볼멘 소리가 나오자마자 고 노파는 혀를 차며 말 했다. "쯧쯧, 좌장께선 손녀딸보다 못하구려." 고 노파의 비웃음은 서문 종을 격분케 했다. 그러나 틀린 말이 아니기에 할 말이 없었진 서문 종은 고개를 숙인 후 이 를 갈았다. "송가 놈들. 돌아오기만 해봐라. 내 손으로 다리뼈를 분질러 버릴 테다." "고정하세요. 할아버지." 황 보영은 송 자헌과 송 철방에게 화살을 돌리고 씩씩거리는 서문 종을 달랬다. 그런데 송가 일족은 아기가 태어났는데도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생각한 고 노파가 불만을 토로 했다. "아니다. 아가야. 송가 놈들은 혼이 나야 해." "할머니..." 고 노파마저 서문 종의 의견에 호응을 하자 황 보영은 당혹 해 어쩔 줄 몰라했다. "흥, 제 손자가 태어났는데도 얼굴 한 번 비추지 않고 도자기 나 굽는 자헌이나, 제 자식을 낳고 힘들어 드러누워 있는 마 누라를 팽개치고 친구를 만나러 간 철방이나 똑같은 놈들이 야. 에이~, 그저 여자로 태어난 게 죄지. 죄야." "고 파파의 말이 맞소. 내 당장 철방이를 찾아 혼을 내주겠 소." 서문 종은 씩씩거리다가 황 보영의 손을 잡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좌장께선 어딜 가려는 것이오?" "내 말했지 않은가! 철방이를 혼내려 간다고." "허! 좌장 어른. 뜨거운 맛은 나중에 보여줘도 되니까 지금은 할 일부터 처리하시오." 서문 종의 얄팍한 생각은 고 노파의 일격에 힘없이 무너졌다. 고 노파는 서문 종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며 미소짓다가 주방 으로 향했다. 서문 종은 한숨을 쉬며 황 보영에게 시선을 돌 렸다. "보영아. 고생을 좀 해야겠구나." "아니에요. 할아버지." 강직하고 위압적인 느낌의 서문 종이 자그마한 노파에게 휘 둘리는 모습은 황 보영에게 묘한 즐거움과 재미를 선사했다. "그런데 할아버지. 궁금한 것이 있어요." "무엇이 궁금한 것이냐?" "저 할머니는 누구 신데 할아버지가 꼼짝도 못하세요?" 황 보영은 고 노파의 정체가 궁금했다. 서문 종을 대하는 태 도를 보아서 평범한 산파로 규정짓기엔 힘들었기 때문이다. "고 파파는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할멈이란다." "네! 할아버지보다 연세가 많다고요! 제가 알기론 할아버지 연세는 아흔이 넘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도대체 저 할머니의 연세는 얼마나 되나요?" "백 살이 넘었단다." "아무리 보아도 육순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데 백 살이 넘으 셨다니 놀랍군요! 게다가 저렇게 정정하시다니 참으로 믿을 수가 없어요." "앞으로 백 년은 더 살수 있을 게다. 저 나이에 저렇게 팔팔 하니 무슨 말을 더하겠느냐." 서문 종은 허탈한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런데 주방문이 갑자기 열고 나온 고 노파의 냉랭한 음성으 로 인해 두 조손(祖孫)의 다정한 대화는 멈추어야 했다. "좌장께서 장수를 기원해 주니 이 할멈은 감격에 복받쳐 눈 물이 앞을 가리오." "고 파파... 오해는 하지 마시오." 고 노파의 싸늘한 목소리에 서문 종은 난감한 표정을 역력히 드러냈다. '제기랄, 귀가 먹어도 수십 번은 먹었을 나이인데 저렇게 청 력이 좋다니... 이건 완전히 이팔 청춘의 젊은이보다 청력이 좋잖아.' 서문 종은 입으로 변명을 하면서도 마음속으로 고 노파의 흉 을 보았다. "나같이 미천한 노파가 존귀한 좌장 어른을 오해할 일이 있 기나 합니까!" 고 노파는 마당에서 나누는 대화를 주방 안에서 일부로 엿들 을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들었을 정도로 청력이 좋 았다. '빌어먹을... 이거 혹시 자기를 흉보는 소리만 잘 들리는 거 아냐?' 서문 종은 언성을 높이는 고 노파를 바라보며 고개를 설래설 래 흔들었다. 그런데 서문 종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딴 청을 부리는 듯 하자 고 노파는 노기가 몇 배로 치솟아 안색 이 싸늘하게 변해버렸다. "고 파파. 내가 잘못했소." 서문 종의 정신이 되돌아 왔을 때에는 고 노파의 분노가 극 에 치닫고 있을 때였다. 고 노파의 심상치 않은 안색을 발 견한 서문 종은 안색이 대번에 변해 급히 사과를 했다. "나처럼 미천한 노파에게 존귀한 좌장어른의 사과는 어울리 지 않는군요." 서문 종의 사과는 너무 늦었다. 고 노파의 냉랭한 음성은 듣는 사람의 귀를 얼릴 정도였다. 서문 종은 다급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당황한 어조로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고 파파를 누가 천하다고 하겠소. 내가 손녀 앞이라 그만 실수를 했소. 내 실수를 무엇으로 만회할 수 있겠소? 뭐든지 부탁하시오." "좌장께서 허리를 굽혔는데 미천한 노파가 무슨 말을 하겠 소." "고맙소. 고 파파." "다른 것은 필요 없으니 한 가지 일을 해주시구려." 고 노파가 넘어가자 서문 종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가 뭘 하면 되는 것이오?" "주방에 장작이 없으니 그것부터 해결해 주시구려." "자, 장작..." 서문 종은 어이가 없어 힘없이 중얼거렸다. 구순이 넘은 나 이에 남의 집 머슴살이를 살아야 한다는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서문 종은 장작을 꼭 패야 하냐고 반문하고 싶었지만 주방을 향해 걸어가는 고 노파의 등을 보고는 포기 했다. 고 노파가 백살이 넘은 자신도 일을 하는데 무슨 소리냐고 말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서문 종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목재가 쌓여 있는 장소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힘없이 걸어가 는 서문 종의 뒷모습은 황 보영에게 유쾌함을 선사하다 못해 폭소를 터트릴 정도였다. "빌어먹을... 도자기를 굽는 집에 장작이 없다니, 이건 반점(飯 店)에 음식이 없는 꼴이 아닌가." 황 보영은 투덜대는 서문 종을 바라보며 미소를 그리다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30대 초반의 여인이 창백한 얼굴 로 침대에 누워 있었고, 그 옆에는 갓 태어난 아기가 새근새 근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었다. "아.. 가씨는 누구세요?" 방안에 들어온 낮선 여인을 본 산모는 힘없는 목소리로 질문 했다. "제 이름은 황 보영입니다. 숙모 님." "수, 숙모? 아가씨는 누구 신데 저를 숙모라고 부르는 거죠?" "송씨 성에 자영이라는 이름을 쓴다면 제게 숙모가 됩니다." "내 이름이 송 자영이기는 하지만..." 송 자영은 난데없이 나타나 자기를 숙모라고 부르는 황 보영 의 정체가 궁금했다. "제 부친의 함자는 황씨 성에 철자를 쓰십니다." "아! 자은 선생님의 따님이군요." 송 자영은 그제 서야 황 보영이 자기를 숙모라고 부른 이유 를 납득했다. "말씀을 낮추세요. 숙모 님. 조카가 듣기 민망해요." "음... 그게 편하다면 앞으로 편하게 부르도록 할게." "네, 앞으로는 제 이름을 불러주세요." 송 자영은 다정한 미소를 짓고 있는 황 보영을 바라보며 고 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송 자영이 몇 마디 말을 하고는 힘이 부쳐 가냘프게 미소를 짓자 황 보영의 마음에 안타까움이 휘 몰아쳤다. 가슴이 메여 주체하기 힘들자 시선을 돌려 잠자 고 있는 아기에게 향했다. "이 아기가 내 동생이군요. 정말 예쁘고 귀엽군요." "호호, 고맙구나. 새벽에 태어나서 아직은 이상하게 보일 거 야. 하지만 며칠 지나면 살이 올라 귀엽고 예뻐질 거야." "이상하다니요! 무슨 말씀이세요. 제 눈에는 너무나 사랑스러 운 걸요." 아기를 바라보는 황 보영의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 었다. "보영이는 아기는 정말 좋아하는구나." 송 자영은 아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황 보영이 마음 에 드는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숙모님. 푹 쉬세요. 동생은 제가 책임지고 돌보겠어요." "고맙구나. 그런데 아버님이나 그 분이 오셨나? 밖에서 장작 을 패는 소리가 들리는구나." "할아버지가 하고 계세요." "할아버지? 설마 보영이의 조부님?" 황 보영이 말한 할아버지가 부친인 송 자헌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 송 자영의 질문은 당연한 것이다. "네. 맞아요. 숙모 님. 서문 씨에 종자를 쓰셔요." 황 보영의 대답은 어느 정도 예측했지만 서문 종이라는 예상 밖의 이름이 튀어나와 송 자영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서문 어른이 자영이의 조부님이라고?" "네. 정확히는 제 어머님의 외 조부님이세요." 황 보영은 송 자영의 질문을 대답하고 아기에게 시선을 돌렸 다. "너무 예뻐... 정말 사랑스럽구나." 황 보영은 아기를 바라보며 넋을 잃고 보는 바람에 송 자영 이 당혹한 얼굴을 하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악삼이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 온 것은 갈씨 자매였다. "운매... 지매..." "악 가가. 괜찮아요?" 갈씨 자매는 동시에 외쳤다. 악삼이 고개를 끄덕이자 갈씨 자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갈씨 자매의 부축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난 악삼은 가부좌를 했다. 악삼은 내력을 운 용해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태을진결에 따라 진기를 운용하자 일곱 종류의 태을진기가 움직이던 평소와 달리 단 한 개의 진기만 일어나자 악삼의 입가에 기쁨이 가득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 진기는 부드러 우면서도 강했고 순후(淳厚)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일원기로구나.' 각각 성질이 달랐던 일곱 종의 태을진기와 달리 일원기는 무 색 투명한 느낌과 순수한 힘을 느끼게 했다. 악삼은 전신에 일원기를 분포시킨 뒤에 태을선천강기의 요결을 생각했다. 순식간에 악삼의 전신에서 투명한 강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거대한 구체를 이루었다. "호신강기(護身 氣)!" 사람들은 악삼이 투명한 강기를 뿜어내더니 거대한 구체를 형상화시키자 일제히 탄성을 지르며 놀라워했다. 호신강기 는 전설로만 내려올 뿐 특정한 인물이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삼대이인 중에 최강자로 불리는 진룡거사 송 자헌이 호신강기를 사용한 것조차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겨우 약 관의 청년인 악삼이 호신강기를 내뿜는 명백한 증거를 보여 주자 일제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말았다. "송 노 선배님과 악 소협이 격전 중에 사용한 강기는 호신강 기는 아니라 단순한 강기의 집합체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조 집사는 송 자헌과 악삼이 호신강기를 사용했다는 증거를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어 시선을 허공으로 향한 채 넋 두리를 했다. "전설로만 내려오던 호신강기를 이십대 초반의 나이에 사용 하다니... 어떻게 이렇게 빠른 진전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가공할 속도로 증진하는 악삼의 역량에 조 집사는 허탈해 했 다. "송 노사께서도 호신강기를 펼쳤잖아요." 척 금방은 허탈한 표정을 하고 있는 조 집사의 등뒤에서 말 했다. 조 집사는 고개를 돌려 척 금방을 보더니 한숨을 쉬 고는 입을 열었다. "송 노사는 강호제일고수로 공인을 받은 분입니다. 호신강기 를 사용해도 가능하다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악 소협 은 이제 이십 대입니다. 한마디로 악 소협의 역량은 재능과 세월을 뛰어넘은 것입니다." "악 소협을 괴물로 보는군요." "맞소. 나는 5년 전에 겨우 호신강기를 사용할 수 있었소. 그 런데 저 청년은..." 송 자헌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 들었다. 그리고는 악삼이 호신강기를 펼치며 운공 중인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설래 설래 흔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송 자헌의 마음과 비슷했는 지 악삼을 바라보는 시선에 경이가 가득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악삼의 역량에 경이의 시선을 보 내며 질린 표정을 짓고 있는 것과 달리 갈씨 자매는 기쁨을 이기지 못해 흥분해 있었다. 갈씨 자매는 자신이 뛰어난 경 지에 오르는 것보다 악삼이 높은 경지에 오르는 것이 더욱 기뻤던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경이와 기쁨을 느끼는 것과 달리 운공 을 끝내고 눈을 뜬 악삼의 안색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일원 기를 체득해 한 단계이상의 높은 경지에 올랐지만 태을선천 강기의 경지는 고작 초입단계에서 멈추었기 때문이다. "악가가, 설마 내상을 입었거나 잘못된 일이 생겼어요?" 악삼의 안색이 좋지 않자 갈 운지는 언제 기뻐 흥분했냐고 말할 정도로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 이상 없으니 걱정하지 마라." "그렇지만 안색이 안 좋잖아요." "연거푸 패배를 당해 기분이 안 좋은 거란다." 갈 운지는 낙담한 악삼의 대답이 어이가 없었지만 나쁜 일이 없다는 사실에 일단 안도했다. "풋, 그것 때문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악 가가의 역량에 놀라 고 있는데... 정말 우습네요." "영매, 그건 무슨 말이지?" 갈 운영이 웃으면서 말하자 악삼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 다. "악가가와 겨룬 분이 누구인지 아세요. 강호에서 첫 번째 가 는 고수로 자타가 공인하는 진룡거사 송 자헌 노 선배님이에 요." "진룡거사 송 자헌! 삼대이인 중에 한 분이신 그 송 노 선배 님 말이니?" 갈 운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호신강기를 사용하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진룡거사 송 자헌 선배일 줄이야!' 악삼은 놀란 눈으로 송 자헌을 바라보았다. 그제 서야 악삼 은 송 자헌이 펼쳤던 가공할 무위를 이해했다. 송 자헌은 악 삼이 놀란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자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송 자헌일세. 자네의 이름은 무엇인가?" "악삼이라고 합니다." 송 자헌이 다가와 이름을 묻자 악삼은 곧바로 대답했다. "악삼이라... 혹시 산동악가 출신인가?" 출신이 어디인가를 묻는 송 자헌의 질문은 악삼의 입을 굳어 버리게 했다. '내가 산동악가 출신인가? 과연 내가 산동악가의 일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악삼의 굳게 다문 입과 달리 머릿속은 빠르게 움직였다. 송 자헌의 질문은 악삼의 뇌리를 헤집어 버렸다. 악삼은 굶어 죽은 두 형과 어머니에 대한 아련한 기억부터 태을궁 수련시 절에 있었던 많은 일을 한순간에 떠올렸다. 송 자헌은 악삼이 한마디 대꾸도 없이 깊은 생각에 빠져 있 자 뒤로 한발 물러났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많은 경 험을 한 송 자헌은 악삼이 기로에 섰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 다. 이럴 때는 한 발 뒤로 물러서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갈씨 자매는 악삼이 강호의 대선배 앞에서 무례한 행동을 하 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악삼에게 다가가 주의를 주려고 했다. 송 자헌은 갈씨 자매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미소를 지 으며 손사래를 쳤다. 당황해 하는 갈씨 자매에게 악삼이 고 뇌에서 빠져 나올 동안 방해하지 말라는 눈짓을 주고는 가마 터에 있는 움막으로 향했다. 움막에 도착한 송 자헌은 갈씨 자매와 조 집사 등에게 조용 히 오라는 손짓을 했다. 갈씨 자매와 다른 사람들은 송 자헌 이 움막에서 손짓을 하자 서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 다. 그들은 움막을 향해 조용히 걸어갔다. 한편 악삼은 일행들이 송 자헌의 움막에 들어간 것도 알지 못한 채 자신만의 세상에 몰입해 버렸다. 송 자헌의 간단한 질문은 악삼의 뇌를 뒤흔들어 지금까지 생각지 않았던 자기 에 대한 정체성을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악삼은 매서운 추위가 휘몰아치는 가마터의 마당에 홀로 서 있는 자신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깊은 사고(思考) 속으로 빠 져 버렸다. 그저 하염없이 나는 과연 산동악가의 일원인가라 는 질문이 찾아낸 무수한 답을 생각하고 있었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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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쥴리강님 고맙습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새해 건강하세요
용수마을님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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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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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정말 즐감입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 입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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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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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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