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물고기 - 황유원 너는 추어탕의 추어가 가을 물고기냐고 했다 나는 아마 ‘미꾸라지 추’자에 ‘물고기 어’ 변이 달렸을 거라며 말끝을 흐렸는데 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추어는 가을 물고기가 맞는 것도 같았고 해 지는 가을의 쓸쓸한 논두렁 아래를 어슬렁어슬렁 헤엄치는 미꾸라지가 떠오르기도 해서 갑자기 나까지 쓸쓸해지는 것이다 지도 교수님과 어느 선배랑 가끔 가던 동대 쪽문 쪽 추어탕집 거기서 추어탕에 소주 먹고 나와 둘이 피우던 담배 연기가 눈앞에 피어오르는 것이다 나는 다라이에 가득 담긴 미꾸라지를 보며 어떤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죽여야 하므로 사랑 같은 소리는 다 개소리라고 생각하며 선배에게 끊었던 담배 한 대 빌려서 함께 담배를 피웠던 것이다 그날 점심때 소주를 한 병은 마셨던 것 같고 나는 지도 교수님을 좋아했는데 결국 내가 모든 걸 망쳐버린 것 같고 다시는 있을 것 같지 않은 그날의 풍경은 내 마음속에서 이렇게 영원히 상영되고 있는 것이다 꺼지지 않는 담배 연기처럼 비워지지 않는 소주병처럼 나는 추어탕에는 역시 소주지라고 말했고 너는 다라이에 담긴 미꾸라지를 본 기억 때문에 추어탕을 잘 못 먹는다고 말했다 나는 가을 물고기가 다라이 속에서 가을과 함께 저물어간다고 말했고 이 모든 것과 무관하게 나는 지금 혼자 김오키의 라이브 영상을 틀어놓고 네가 마켓컬리로 주문해준 추어탕에 없는 소주 대신 장수막걸리를 먹고 있는데 장수막걸리는 교수님이 가장 자주 드시던 술이었는데 나는 다라이에 담겨 저물어가는 한 마리 미꾸라지가 된 심정으로 오늘 아침 너와의 대화를 떠올리는 것이다 대화 속을 헤엄치던 가을 물고기를 잡아보는 것이다 이 슬픔은 장수할 것이다 이 사랑도 장수할 것이고 사랑 따위는 미꾸라지처럼 뼈째 갈려버릴지라도 오늘 이 색소폰 소리는 감미로운 먼지 같고 뼈째 갈려도 기어코 사랑하려는 먼지가 천천히 휘날리는 것 같아 세상에서 가장 비천하게 놓인 고무 다라이 위로 불어오는 색소폰 음색은 스산한 가을바람 같았어 몇 가닥 긴 수염 느리게 흔들며 흐린 논두렁 내장 속까지 노을이 스미고 있었어
-『 현대시 』(2025년 1월호) ******************************************************************************************************* 오늘이 정기 상 '소서'이니 올 여름도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이 온통 기상이변으로 허덕이는데 그러려니 하면 한갖 여름 풍경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옛 사람들도 무더울 때 여러 피서법으로 견디고 이겨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며 천렵으로 잡은 매운탕과 추어탕을 끓여냈고, 부채질로 얼음물로 더위를 식혀가며 가을을 기다렸습니다 어제 오후 건강한 여름나기를 위해 찾아간 대형마트 주차장이 생각보다 비좁았네요 피서 할인 코너 마다 구매자들로 붐볐고, 남녀노소가 서늘한 매장을 피서지로 여기나 싶었습니다 새 정부도 곧 전국민에게 민생지원금을 소비쿠폰으로 나누어준다고 하니 기다림도 이어질테지요 어쩌면 소소한 일상에 흔들리는 사람들도 다라이에 담긴 미꾸라지 같은 삶일지도 모르겠다 싶은데 숨터 텔레비전에서는 법꾸라지로 매도당하는 탄핵당한 전 대통령 소식을 휘젖고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