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례10 성서적 침례 10.8.23(침례식주일)
행 8:26-40
에루살렘에 핍박이 일어났을 때 빌립은 사마리아로 갔다. 거기서 주의 복음을 전파했다. 그런데 성령께서 빌립에게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로 가도록 지시를 했다.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사람 즉 재무장관이 예배드리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가 수레를 타고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다. 가까이 가라고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아 그에게 다가간 빌립은 “읽는 것을 이해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지도해 주는 이가 없으니 알 수가 있어야지요”하면서 “저를 지도해 주시겠습니까?”하고 청했다. 그래서 빌립은 그와 함께 가면서 그가 읽고 있는 이사야서에 나오는 사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예수님의 생애를 소개하면서 그에게 주님께 대한 믿음을 갖도록 격려를 했다.
본래 신앙심이 깊은데다 성령의 도움으로 그 사람은 쉽게 이해를 했고 예수님을 믿게 된 그는 자원해서 침례를 받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침례가 이뤄졌는데 바로 이 기록은 성서적인 침례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가 된 것이다.
그러면 본문이 보여주고 있는 성서적인 침례는 어떤 것인가?
Ⅰ.성서적인 침례는 받는 사람이 자원해야 한다.
16절에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라고 반문한다.
이 말은 물도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는데 달리 문제가 없겠지요 하는 말인 것이다.
즉 그는 침례를 받겠다고 자원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은 침례받는 것을 자원함으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침례는 장사지냄과 부활을 상징하는 예식이다. 물속에 잠기는 것은 죽은 몸을 장사지내는 것이고 물에서 올라오는 것은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내시가 침례를 받겠다고 한 것은 다음과 같은 고백이 되는 것이다.
1.예수님이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믿으니 침례를 받겠습니다 하는 고백이다.
그러므로 침례를 받는 사람은 예수님이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셨음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구세주임을 믿습니다 하는 고백이 되는 것이다.
내시는 빌립의 가르침과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 예수님이 구세주라는 것을 믿게 되었고 그래서 침례를 받겠다고 한 것이다.
2.예수님을 믿어 나의 죄된 몸이 죽어 장사지낸바 되고 새 생명으로 거듭나게 되었으니 침례를 받겠습니다 하는 고백인 것이다.
그러므로 침례를 받는 사람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로마 카토릭과 다른 교파에서는 어린아이들에게 세례를 주고 있다. 부모가 그 아이를 대신해서 앞으로 꼭 믿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받게 하지만 성서적이 아니다.
이 유아 세례는 3세기에 북 아프리카 구부로인이 최초로 시작했고 5세기 때 어거스틴에 의해 카톨릭의 의전으로 실천 된 것이다.
유아 세례를 주장하는 성서적 근거는 사도행전 10장 44절에서 48절에 나오는 가이사랴의 백부장인 고넬료와 그 가정이 믿고 침례를 받았다고 했는데 그 중에는 어린이도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들 중에 어린이가 있었을 경우는 반반이다. 어린이가 있었다고 하여도 어린이에게 침례를 베풀었다고 주장할 근거는 없는 것이다.
성경은 베드로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였고 그래서 그들에게 침례를 베풀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 16장 31절에서 34절 사이에도 빌립보의 옥사장이 그와 온 집안이 믿고 침례를 받은 일이 기록되어 있다.
이 때도 온 집안이 침례를 받았으니 그 안에는 유아도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역시 아이가 있었을 경우는 반반이고 그것으로 아이들이 침례를 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되지 않는다. 바울은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였고” 그들에게 침례를 베풀었다고 말한 다.
그런 경우 말씀을 들을만한 모든 사람이 들었다는 것이지 유아들까지 들었다고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유아가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고 그들이 어른처럼 성령을 받았다고는 믿지 않는다. 옥사장의 가정에서 바울의 설교를 들은 사람 중에는 유아들도 있었고 그래서 유아들도 침례를 받았다고 믿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유아 세례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교회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이고 유아 뿐 아니라 그 부모들 신앙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서적인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 다만 추측만으로 성경의 진리를 잘못 가르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3.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이 장차 육체적으로 부활할 것을 믿으니 침례를 받겠습니다 하는 고백인 것이다.
지금은 신자들이 영적으로만 거듭난 상태이나 세상 마지막 때 주님의 재림이 이뤄지는 때에는 죽었던 육체들이 홀연히 부활의 몸으로 변화될 것이다.
그래서 내시는 죽음과 부활의 복음의 진리를 나타내고 있는 침레를 받겠다고 자원한 것이다.
Ⅱ.성서적인 침례는 믿는 사람이 즉시 받는 것이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사건은 이것에 대해서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에디오피아 사람은 빌립을 통해서 처음으로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들은 사람이다.
그의 전도와 가르침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로 따지면 초신자요 시간으로 따지면 믿은지 한 시간도 안된 사람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그가 침례를 받겠다고 한 것이고 그에게 침례가 베풀어진 것이다.
그래서 성경적 침례는 되도록 빨리 받는 것이다.
앞서 유아 세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근거로 내세우는 고넬료의 일이나 빌립보 옥사장의 경우에도 말씀을 듣고 즉시 받았던 것이다. 시간적으로 따지면 하루를 넘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침례를 즉시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1.침례를 즉시 받는 것은 그것이 신앙 고백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음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고백은 믿는 순간부터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성경적인 침례를 주장하는 우리 교회에서는 믿는 사람이 언제라도 받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2.침례를 즉시 받는 것은 그것이 입교식과 같은 것이지 진급식이나 성화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침례란 믿음을 가졌다는 표시로 받기 때문에 입교식과 같은 것이다.
학생이 되면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입학식을 하는 것처럼 신자가 되면 바로 침례를 받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침례를 진급식이나 성화식처럼 여겨서 자기 믿음이 어느 수준에 도달해야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것은 성서적이 아닌 것이다.
3.침례를 즉시 받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리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성경이 그것을 명했기 때문에 신자는 오직 순종하기 위해서 즉시 받아야 하는 것이다.
Ⅲ.성서적 침례는 물에 잠기는 것이다.
38절과 39절 말씀을 보면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침례를 베풀고 둘이 물에서 올라올 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침례 받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온 몸이 물에 잠기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1.성경에 기록된 침례의 모습이 물에 잠기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과 다른 교파에서는 온 몸을 물에 잠그는 것 대신 머리에 한 두 방울 물을 뿌리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성경적인 예식인 침례를 잘못된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대로 두 사람이 물에서 올라왔다는 것은 “물가에서 올라온다는 말이 아니고 물 속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빌립과 내시는 침례 때문에 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을 때도 같은 말이 사용되었는데 예수님이 물 속에서 나올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였다고 하였다.
2.성경에 사용되고 있는 침례란 말이 잠기는 것을 나타낸다.
침례로 표기된 헬라어 밮티조는 배가 침몰할 때 물 속에 잠기는 것이나 염색할 때 쓰여지는 말로서 완전히 물 속에 잠기는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성서적 침례는 물 속에 잠기는 것임을 믿어야 한다.
3.성경이 밝히고 있는 침례의 의미가 잠기는 것을 나타낸다.
침례의 의미가 잘 기록된 곳은 로마서 6장 1절에서 11절이다.
거기에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장사지내는 것이 물 속에 잠기는 것이고 물에서 올라오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부활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세례는 성경의 이 의미를 잘 나타내지를 못하는 것이다.
세례는 사람들이 편리하도록 고친 것이다. 그래서 침례교회에서는 성경대로 받아서 성경의 가르침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불편하지만 일생에 한 번인 것이다.
교훈과 적용
지금까지 성서적인 침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다.
그러므로 침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이 예식에 참여하기를 바란다.
믿음의 고백을 분명히 하는 예식이 되므로 결단하고 받아야 한다.
믿음의 입교식이 되므로 주저하지 말고 받아야 한다.
믿음의 순종과 증거가 되므로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