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학구열은 끝이 없습니다. 지리적 제약으로 관련 강의-대부분 수도권에 개설-를 듣는 게 제한적이다 보니 아내는 책을 많이 봅니다. 봤으면 하는 책 정보를 접하면 먼저 도서관 장서 목록 검색을 합니다. 구미에는 시립도서관 8개소, 경상북도교육청 구미도서관까지 총 9개의 도서관이 있어 어지간한 책은 여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대출받아서 보고 필요한 책이라고 판단되면 바로 삽니다. 하지만 어떤 책은 절판되어 중고도 사기 어려운 경우도 꽤 있습니다. 수년 전에는 중고서적 사이트를 돌아다닌 끝에 절판 전에 6만원 하던 책을 35만원에 산 적도 있습니다. 강의에 필요하다면, 전문성을 높이는데 필요하다면 가격은 중요치 않습니다. 가치가 가격보다 더 높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아내가 보고 싶은 책이 있어 도서관에 가 찾고, 신간 중 아내에게 필요한 걸로 보이는 책 한 권을 추가로 대출받았습니다. 신간 서가를 보다가 눈에 띄는 책이 한 권 있었습니다. ‘경북의 보호수’. 평소 자연, 환경에 관심이 많았기에 바로 빌렸습니다. 문화재청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전국에 천연기념물이 260여본 있는데, 그 중 경북에 50여본 있답니다. 또한, 산림보호법에 따라 노목, 거목, 희귀목으로, 특별히 보호할 필요가 있는 나무는 시·도지사 및 지방산림청장이 보호수로 지정, 관리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전국에 15,000본의 보호수가 있고 경북에는 2,000본, 구미에는 50본의 보호수가 있답니다. 신간‘경북의 보호수’는 경북 소재 2,000본 중 300여본을 추려 사진에 기본 사항과 스토리텔링을 가미해 무려 1,296쪽의 무거운, 그러나 마음 가볍게 해주는 책이었습니다. 먼저 구미 걸 보니 50본 중 19본 관련 내용이 들어 있는데, 그 중 제가 가 본 곳은 불과 6곳이었습니다. 관련 스토리텔링에는 아는 내용도 있었지만, 모르는 내용도 꽤 있었습니다. 구미 산지가 만 36년이 넘었고 자연에 관심을 가진 세월도 상당한데 이 정도인가, 살짝 허망한 생각도 들었지만, 가볼 곳이 엄청 늘었으니 이제부터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를 즐기면 되겠다는, 기분 좋은 생각이 더 컸습니다. 한 나무 당 잎이 무성한 계절, 나목이 되었을 때 한 번씩 가본다 해도 -물론 상록수는 다르지만- 최소한 80번 이상은 다닐 거리가 생겼습니다. 도서관을 좀 더 자주 찾아 이런 정보를, 지식을 더 많이 쌓는 즐거움을 누려야겠다, 새삼 다짐했습니다. 자연의 유산 속에서, 선현의 유산 속에서 내 삶을 제대로‘짓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어머니와 가을의 끝자락을 잡으러 다닌 대구 근교 나들이 참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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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중도에서 국향을 맡으며 가을맞이 마무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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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날씨에 라면축제장에서 봉사를 하는 즐거움도 참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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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다(모셔온 글)========
우리말엔 같은 글자를 갖고 있어도 여러 가지 다른 의미를 갖는 말들이 많다. 그것이 우리말의 묘미이기도 하다. 그런 말 중에 나는 '짓다'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짓다'라는 단어가 늘 나를 미소 '짓게'한다. 밥을 짓고, 옷을 짓는 것처럼 재료를 들여 어떤 것을 만드는 일을 짓는다고 한다. 시를 짓고 노래를 짓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논밭을 다루어 농사를 하는 것도'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모두 생산의 의미가 있다. 말을 생산하는 것도 지어낸다고 한다. 엉뚱한 거짓말을 하는 것을 말을 지어서 한다고 한다. 묶거나 꽂거나 해서 매듭을 만드는 것도 짓는다고 하고, 이어져 온 일을 끝맺는 것도 짓는다는 표현을 쓴다. 이렇게 다양한 의미로 쓰이고 있어서 영어로는 make, build, construct, write, compose, name등 여러 단어로 표현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사는 모습이 계속 무언가를 짓는 일의 연속이 아닌가 싶다. 만들어내고 마무리하는 일의 반복이니까 말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밥을 지어 먹고 길을 나선다. 회사에 도착해서는 말을 지어서 일을 하고 , 마무리를 짓는다. 퇴근하면 힘든 하루를 마무리 지으며 잠자리에 든다. 하루 종일 짓고 지어서 짓는 일의 연속이니, 짓는 것만 잘하면 인생을 잘 살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면 과연 짓는 일을 잘하고 있는지 되짚어보게 된다. 밥을 지을 때는 물의 양을 잘 조절하는 것이 관건인데, 쌀의 종류에 따라 물의 양도 세심하게 달라진다. 밥 짓기 초보는 물의 양을 말 맞추지 못해 죽을 만들거나 떡을 만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몇 십 년 주방 일에 이골이 난 주부라면 매번 같은 농도의 밥을 끼니때마다 척척 해낸다. 짓는 일의 연속인 우리 삶의 모습도 그렇다. 처음엔 손에 익지 않아서 실수를 반복하던 일이라도 시간이 지나 꾸준히 그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고수가 되어 있기 마련이다. 짓는 일은 꾸준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조바심을 내고 처음부터 잘 지어지지 않는다고 성질을 부리다보면 결코 단단하게 지을 수가 없다. 시를 짓고 노래를 지을 때는 한순간 떠오른 영감으로 짓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도 작곡가도 순간의 창의력만으로 짓지는 않는다. 한편의 시가 나오기까지 쓰고 버린 수백 장의 파지들이 있을 것이다. 하나의 명곡이 나오기까지 쓰고 버린 수백 장의 오선지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은 그렇게 수많은 노력을 통해 지어낸 창작물인 셈이다. 우리가 살아가며 많은 것을 지을 때는 혼자 힘으로 지을 수 없는 것들도 많다. 협동하고 도와가며 이루어야 할 것들이 많다. 하지만 오로지 내 힘으로 견디며 지어야 할 것들도 많다. 협동할 것과 스스로 할 것, 이 두 가지를 혼동하며 우왕좌왕한다면 결코 훌륭하게 지어 낼 수 없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만약 모든 사람의 충고대로 집을 짓는다면 비뚤어진 집을 짓게 될 것이다.
- 마이클 린버그의 <너만의 명작을 그려라> 중에서-
누군가의 충고가 절실할 때 여러 사람의 서로 다른 충고 속에서 방황을 하기도 하지만 결국 집을 짓고 그 안에 살 사람은 나 자신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내가 지은 것에 책임을 지을 줄 아는 사람이 인생을 제대로 짓는 사람이다. 지어서 세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세운 것이 소홀함이 없도록 마무리를 잘 짓는 일도 중요하다. 매듭을 짓는 일을 잘못하면 제대로 된 마무리하는 과정이라 할 수 없다. 아무리 많은 것을 지어놓았어도 마무리를 제대로 못하면 빛이 바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작하는 순간에는 거창한데 늘 마무리가 빈약한 사람을 더러 보게 된다. 활기차게 짓기 시작했지만 늘 마감을 제대로 짓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밥을 지을 때는 물을 잘 맞춰야 하고, 집을 지을 때는 기초를 잘 다져야 하고, 시를 지을 때는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 말을 지을 때는 거짓이 없어야하고 마무리를 지을 때는 깔끔하게 해야 한다. 생활의 전반에서 짓는 일만 제대로 한다면 걸림돌이 없다. 나는 지금 제대로 짓고 있는지, 내가 짓고 있는 것들을 한 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고도원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