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뿌리를 찾아 나서다, 4대강 발원지
우리에게 강은 늘 넘실대며 출렁이는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실개천이 아무 때나 발목을 담그고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즐기는 곳이라면, 강은 선뜻 들어가기보단 눈으로 즐기며 먼발치서 강바람을 쐬는 곳입니다. 여름 밤에 한강 같은 큰 강을 가 보신 분이라면 아실 테지요? 덥다고 한강에 풍덩 뛰어드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여름밤, 한강에 눈으로 뛰어들다> (사진 : 한국관광공사)
바다는 시작도 끝도 없는 곳이지만, 강은 그 시작과 끝이 확실합니다. 아무리 큰 강이라도 그 시작점부터 크지는 않습니다. 조그마한 수증기 알갱이가 모여 뭉게구름이 되는 것처럼, 여러 개의 가느다란 샘물이 흘러와 개천이 되고 강이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에 집중하지만, 사실은 그 원천을 살피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이는 수도꼭지를 잠그더라도 이미 떨어지던 물은 그대로 나오지만, 이후로는 물이 나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생명을 탄생시키고 번영과 발전을 불러오게 한 강, 그 강의 발원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의 근원을 찾아 떠나는 여행일 것입니다. 수천 년 동안 우리 민족을 보듬어왔던 그 한결같은 모습에서, 한반도가 한민족에 대해 여전히 변함없는 애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요.
가장 잘 알려진 한강의 검룡소는 지난번에 다루었기에 생략하고, 이번엔 나머지 4대 강의 발원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못 vs 너덜샘
어쩐지 제목이 수상합니다. 낙동강의 발원지인데, 어째서 두 개나? 발원지는 오직 하나 아니었나요? 이걸 설명해 드리자면, 강이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여러 개의 샘물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의 샘에서만 물이 흘러내린다면, 그 샘물이 갈수록 커지는 걸 설명할 수 없겠지요. 그렇게 여러 개의 샘이 모이는 가운데, 강의 끝에서 가장 먼 샘을 발원지로 잡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거 지리학이 지금보다 정교하지 못할 무렵에는 그 거리를 효과적으로 재지 못했기에, 과거부터 쭉 이어져 내려온 발원지가 현대에 와서 뒤집어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입니다.
지금 설명해 드리는 낙동강도 그런 사례입니다. 그간 태백시에서 1486년에 발간된 <동국여지승람> 삼척도호부 편을 근거로 ‘황지못’을 낙동강의 발원지로 주장해 왔는데, 학계에서 현지답사해 보니 그보다 약간 더 상류에 있는 천의봉의 ‘너덜샘’이 낙동강의 진짜 발원지라고 합니다. 수백 년간 정설로 알려졌던 사실이 뿌리째 뒤흔들린 터라, 논리적으론 너덜샘을 발원지로 생각하면서도 심적으론 황지못을 발원지로 믿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사정은 한강도 마찬가지인데, 그간 오대산 우통수가 한강의 뿌리라 생각되어 오다가 1980년대에 와서야 검증에 의해 검룡지가 진짜 발원지라고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먼저 너덜샘부터 볼까요? 이곳은 태백시 화전동에서 정선군 고한읍으로 넘어가는 싸리재(두문동재)를 사이에 두고, 금대봉과 함백산 사이에 있습니다. 정확히는 두문동재(1,268m)와 천의봉(1,442m) 사이의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지요. 황지는 합수점에서 3.5Km 거리에 불과하지만, 너덜샘이 있는 천의봉은 합수점에서 13km라고 하니, 낙동강의 키를 조금 더 늘여 주는 키높이 깔창의 역할을 톡톡히 해 주고 있답니다.
너덜샘은 지름이 50cm 정도에 불과한 작은 샘으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꽤 실망스러울 외양입니다. 또 인근에 가게가 없으므로 미리 간식거리 등을 싸오셔야 합니다.
이곳의 물맛을 보려면 여기서 마시지 말고, 조금 더 내려가는 게 좋습니다. 너덜샘은 파이프를 연결해 아래 지대에 있는 ‘너덜샘터’로 물을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샘터라 해도 제대로 된 샘이 아니라 약수터처럼 꾸며진 건 다소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렇지만 그 물맛만은 평범한 약수터와 질을 달리 한다고 보증할 수 있답니다.
<일상에 치여 너덜거리는 당신, 이곳으로 오라!> (사진 : 연합뉴스)
다음은 황지입니다. 황지는 너덜샘과 달리 태백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시내에서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태백시가 확장되면서 태백시의 중심부로 이동된 것이라고 하네요.
황지를 알려면 먼저 황지의 전설부터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황지는 원래 황씨 성을 가진 황씨 가의 옛터로, 주인 황씨는 노랭이 갑부였다. 어느 날 노승이 찾아와 시주를 청하자 황부자는 쇠똥을 바랑에 담아 주었다. 이를 본 며느리가 급히 쌀을 퍼와 황부자 몰래 시주하자, 노승은 그녀에게 이 집에 큰 변고가 있을 테니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며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 것을 당부한다. 하지만 며느리는 산 어귀에 이르렀을 때 뇌성벽력이 치자 그만 뒤를 돌아보았고, 그 자리에서 돌이 되고 만다. 또 황부잣집은 땅 속으로 꺼져 큰 연못이 되었는데, 상지가 집터, 중지가 방앗간, 하지가 화장실 터라고 한다. 그리고 황부자는 큰 이무기가 되어 연못 속에 살게 되었다고 한다.>
유명한 전설이지요? 여러 문학작품에도 등장했던 이야기가 여기에 나왔습니다. 이 전설 덕분에 황지는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낙동강의 근원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태백시는 이를 공고히 하기 위해, 옛 지리서에서 황지(潢池)라 쓰던 것을 고쳐서 황부자의 성을 딴 황지(黃池)로 쓸 정도입니다.
태백시가 이곳을 공원으로 꾸며 놓은 덕에, 이곳을 찾는 건 매우 쉽습니다. ‘낙동강 천삼백 리 예서부터 시작한다’는 비석을 지나면 바로 나오는 황지는, 둘레가 100미터에 이르는 작은 연못입니다. 그래도 하루 용출량이 5천 톤에 달한다니, 이름만 못이다 뿐이지 제법 위풍당당한 모습입니다.
<노승, 하루 새 낙동강의 발원지를 만들다> (사진 : 한국관광공사)
이곳의 물은 1년에 두어 차례 흙탕물이 되곤 하는데 그때마다 이무기가 된 황부자가 심술을 부리고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더군요. 또 30년 전까지 연못에 큰 나무기둥이 여러 개 잠겨 있었는데, 사람들은 이것이 황부잣집의 대들보와 서까래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연못이 모두 마르면 황부자가 꿈틀거리는 걸 볼 수 있을까요? 물론 이곳이 마르는 걸 바라서는 안 되겠지만(2009년 봄에 30cm 넘게 말라 사람들이 우려하기도 했었지요), 괜한 호기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조사에 의하면 낙동강의 물줄기는 1643개라고 합니다. 위에서 말한 너덜샘과 황지도 이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발원지가 어디냐는 것으로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는 것을 피하고, 1643개의 물줄기가 우리에게 주는 축복에 대해 되짚어 보는 시간을 한번 가져봐야겠습니다.
-봉황 날다? 금강의 발원지 뜬봉샘
금강의 원천은 별 논란 없이 뜬봉샘으로 정의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뜬봉샘이란 이름은 다소 뜬금없게 다가옵니다. 저 이름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한자 표기를 살펴야 합니다. 뜬봉샘(飛鳳泉) – 봉황이 떴다 - 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르시겠죠?
이곳은 장수읍에서 남원 방향19번 도로로 약 8km 정도 전진해 수분마을에 도착한 후 뒷산 계곡을 따라 2.5km 정도 올라가면 나오는 곳입니다. 차가 한 대 겨우 지나갈 정도이니, 차라리 회관이나 산 중턱에 차를 놓고 가는 편이 낫습니다. 마을부터 샘까지 나무계단을 깔아 놨기 때문에 수월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단, 왕복 1시간 30분 정도의 코스이니 만만하게 보시면 안 될 듯합니다.
<뜬봉샘 생명의 숲 나무심기에 동참하는 사람들> (사진 : 연합뉴스)
이곳에도 전설이 있습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천지신명의 계시를 받으러 이곳에 단을 쌓고 백일기도에 들어갔는데, 백 일째 되는 날에 근처 골짜기에서 무지개가 떠오르더니 봉황새가 그 무지개를 타고 날아갔다고 합니다. 이성계가 급히 봉황새가 뜬 곳을 가 보니 풀숲으로 가려진 옹달샘이 있었고, 이후 그는 봉황새가 떴다고 하여 샘 이름을 뜬봉샘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저런 어마어마한 길몽이었기에 이성계는 이후 자신감을 얻어 조선을 세울 수 있었겠지요.
뜬봉샘은 최근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전북 장수군은 뜬봉샘을 기점으로 장수읍 수분리 일대에 생태공원을 조성해 2011년 10월 27일에 개장했습니다. 이곳은 뜬봉샘과 연결된 곳으로, 금강사랑 물 체험관, 체험학습장, 수족관, 금강테마관, 야생화군락지 등을 아기자기하게 배치해 놓고 있습니다. 특히 이색적인 것은 광장에 금강과 비슷한 형태의 물줄기를 조성해 금강의 흐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한 것인데요. 소소하지만 기발한 아이디어입니다. 또 야영장도 있으니 여름이 되면 이곳을 거점으로 장수의 이곳 저곳을 둘러보는 것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뜬봉샘의 입구에 개장한 생태공원> (사진 : 연합뉴스)
수분마을의 원래 이름은 물뿌랭이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물의 뿌리라는 의미였겠지요. 게다가 이 마을의 어르신들은 물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해서 뜬봉샘을 똠방샘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만약 이성계가 이곳에서 기도를 드리지 않았다면 이곳은 지금도 물뿌랭이 마을의 똠방샘일까요? 사라져가는 찰진 우리말이 입에서 착착 감기는 맛은 제법 좋습니다.
-흔들다리에서 찰칵! 영산강 발원지, 용소
용소라는 말을 들어 본 분이 많을 것입니다. 용소란 폭포 바로 아래에 생기는 깊은 웅덩이로, 다른 지역에서도 얼마든지 쓸 수 있는 말입니다.
<일반적인 용소의 지형> (사진 : 한국관광공사)
이곳의 지형도 위에 말한 조건에 들어맞긴 하지만, 이곳의 용소라는 이름은 지명으로서의 의미가 더 강합니다. 옛날 용이 승천하다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그 외에도 전라도 안겸사가 용을 보려고 이곳에 왔다가 막상 용이 모습을 드러내자 놀라서 죽고 말았다는 썰렁한 전설도 있답니다.
용소는 담양의 가마골에 있습니다. 가마골은 담양 시내에서 북쪽으로 추월산을 지나 담양호의 가장 북쪽에 자리하고 있는데요. 옛날부터 그릇을 굽는 가마터가 있어서 가마골이라는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고 합니다. 얼마 전 인기리에 끝난 <공주의 남자>의 원형이 된 이야기의 무대가 바로 이 담양 가마골이기도 합니다. 세조를 피해 도망친 두 남녀가 운명의 사랑에 휘말리게 된 자리이지요. 서울서 담양까지의 고속버스를 이용하시거나, 아니면 승용차로 서울-광주-담양-향교교 –(29번 국도) – 용면 – 추월산 터널 – 담양호 – 용치삼거리 – (792 지방도) – 가마골 입구 코스로 가셔도 됩니다.
용소로 걸어가는 길에는 시원정이라는 정자와 거대한 흔들다리가 있습니다. 능선끼리 연결한 대형 다리인데, 흔들거림은 생각보다 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운데로 갈수록 흔들림의 폭이 커져서 더욱 짜릿한 느낌이 들 것입니다. 발아래에는 용소가 그대로 보이는데, 그렇다고 여기서 ‘으아아아! 나는 자연인이다!’ 하며 뛰어드시는 분이 없길 바랍니다.
다리를 지나 오른편 산을 넘으면 6.25 때 빨치산 사령부가 주둔했던 사령관 동굴과 계곡이 나옵니다. 그곳은 다음에 보기로 하고 다리를 휘돌아 용소로 내려가면 용처럼 구불구불하게 바위를 타고 흐르는 폭포가 보입니다. 이곳에서 물이 시작되는 게 아니라, 그 위에서 시작된 여러 갈래의 물이 이곳에서 1차적으로 모이는 거지요.
<용소를 보며 홍소하는 소녀들> (사진 : 연합뉴스)
혹 영산강의 시작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하고 싶으시다면, 용소에서 나와 제1등산로를 따라 용연1폭포와 용연2폭포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둘 다 용소보다 작은 규모이기에, 역으로 더욱 역동적인 물의 움직임을 보여준답니다. 단 용연2폭포는 탐방로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으므로, 탐방로 가드레일 중간에 열려 있는 곳으로 진입해야 만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 주세요.
4대강의 발원지는 이처럼 하류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작은 규모입니다. 이 작은 샘들이 우리의 4대 강을 넉넉하게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습니다.
자연이 이러할진대, 국가와 국민도 이와 마찬가의 관계일 것입니다. 우리는 국가 안에 있는 작은 존재이지만 우리가 있어야, 그리고 우리가 끊임없이 샘솟아야만 국가라는 큰 개체가 존재할 수 있겠지요. ‘나’에서 ‘우리’로, 그리고 ‘국가’로 이어지는 그 발전의 과정을 항상 가슴 속에 그려두신다면, 하시는 모든 일이 보다 보람찰 것이라 믿습니다.
Y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