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눈에 반한적 있나요?
프로세피네(또는 프로세피나, 페르세포네등으로 불려 집니다)라는 아름다운 처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농업의신인 데메테르의 딸이었지요.
그녀의 미모에 대한 소문은 지하세계에도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를 본순간 첫눈에 반한 지하 세계의 신인 하데스가 드디어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피크닉나온 페르세포네를 납치하여 지하세계로 끌고가서 아내로 삼아 버린겁니다.
요즘 같으면 112에 신고하면 되지만
그당시 경찰도 없었으니,,데메테르는 신중의 짱인 제우스에게 가서 딸을 구래 달라고 탄원합니다.
제우스는 딸이 지하세계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면 세상으로 나올수 있다며 그 소원을 들어 주었습니다.
신화에는 항상 이런 단서가 붙곤 하지요..
제우스 정도면 전화 한통화로 끝낼수 있을텐데,,하긴 그래야 이야기가 재미있어 지긴 합니다만..
하지만 아무리 신이라도 안먹고 살수는 없지 않습니까? 먹어야,,살죠..
지상에 올라오기전 그녀는 자기를 납치한 하데스가 준 먹음직한 석류를 한입 베어 먹고 맙니다.
그후에는 어찌 되었냐구요?
그후로 그녀는 1년중의 넉달은 지하세계로 들어가서
하데스의 신부로 머물러야만 했습니다.
Luca Giordano (18 October 1634 – 3 January 1705) was an Italian late Baroque painter and printmaker in etching.
위의 그림은 17세기 이탈리아 후기 바로크 작가인 루카 지오다노가 그린 <프로세피나의 납치>라는 그림입니다.
고대 신화들은 시기를 막론하고 많은 화가들의 그림 소재로 사용 되었습니다.
시기에 따라 표현 방법은 차이가 나지만 그림의 내용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소개할 라파엘 전파의 창시자중 하나인 로세티의 <페르세포네>는
지금까지의 신화 그림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많은 상징성 그리고 작가 자신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죠.
얼핏 보면 다른 사람의 손처럼 보이는 좌측의 손
(실재로는 오른손 입니다)은 왼손을 제지하듯이잡고 있습니다.
맛있어 보이는 석류는 이미 껍질이 벗겨져 있고 여인은
과일을 먹을것인지 아닌지 고민하는듯 합니다.
그녀의 뒤로는 지상의 밝은 빛이 보이고 단호한 표정의
그녀는 어떤 결정을 내린듯 합니다.
그녀는 오른손의 제지를 받아들여서
지상으로 돌아갈수 있을까요?
아니면 과육의 유혹에 넘어가 지하세계를 전전하게 될까요?
로제티의 이작품에 나오는 실재 모델은
제인 모리스라는 여인입니다.
모리스 하면 많이 들어본듯한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
이미 몇차례 소개된 적이 있는 사람 입니다.
바로 윌리엄 모리스의 아내 입니다.
로제티의 그림에 반해 나중에 절친한 친구가 된 시인이자
유명한 디자이너인 윌리엄 모리스.
Proserpine, by Dante Gabriel Rossetti.
Jane Morris by Evelyn de Morgan in 1904
Jane Morris, 19 October 1839 – 26 January 1914)
위에 있는 여인은 에블린 모건이라는 화가가 그린 모리스의 부인 제인 모리스의 말년의 초상화입니다.
로제티가 그린 <프로세피네> 그림속의 여인과 거의 흡사 합니다. 백발로 변한 머리만 제외 하고는.
아래 좌측은 윌리엄 모리스, 우측은 로제티 본인이 그린 자화상 입니다.
William Morris (24 March 1834 – 3 October 1896) Dante Gabriel Rossetti (1828.~1882) Self-portrait, 1847
첫눈에 반하다.
여러분은 처음 보자마자 빠져 드는 사랑을 믿으시나요?
여기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로제티와 제인 모리스.
사업적 파트너인 읠리엄 모리스의 부인을 본 로제티는 첫눈에 그녀에게 빠져 듭니다.
평소 남편 모리스와의 관계가 삐긋 거리던 제인도 로제티와 불같은 사랑에 빠져 들게 됩니다.
그녀는 로제티 에게 최고의 모델이었고 영감의 원천이었으며 삶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남들은 그들의 도덕적 파행을 손가락질 했지만 그들의 사랑을 막을 방법은 없었습니다.
위의 로제티가 그린 프로세피네 그림속에서 우측 상단을 보시면
로제티가 그녀에게 보내는 이탈리아어로 된 시가 있습니다.
그녀에 대한 사랑과 그로인한 고통이 녹아 있는 시.
로제티가 사랑에 빠진 친구의 부인을 주인공으로 그린 프로세피네는 여러가지 상징이 담겨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지하의 세계는 바로 로제티와 그녀의 세계라고 볼수 있을 겁니다.
그녀와 첫눈에 사랑에 빠진 로제티는 지하의 신인 하데스라도 되어서 그녀를 옆에 두고 싶었을 겁니다.
1년에 4개월만이라도,
밝은 지상은 그녀와 그녀의 남편 모리스의 세계를 상징 한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녀가 과일을 먹을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모습은 그녀가 느끼는 심적인 갈등을 표현합니다.
남편과 사랑하는 남자를 선택하기 어려운 보통 여인의 고민.
로제티에게로 향하는 왼손과 이를 막으려는 모리스에게 향하는 오른손은
사랑에 빠진 여인의 힘겨움을 상징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아니,,그건 여인의 고통이 아닌 로제티의 고통과 소망이 더 많이 담겨 있다고도 할수 있겠군요.
라파엘 전파[ ―― 前派, Pre-Raphaelite Brotherhood ] PRB
앞글에서 간단히 라파엘로 전파와 전후 영향을 주고 받은 화파들을 알아보았습니다.
이번글에서는 라파엘로 전파의 핵심 삼인방이라 할수 있는 로제티, 헌트, 밀레이의 작업에 대해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라파엘 전파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도록 하죠.
(중략)
My Lady Greensleeves
로제티[ Dante Gabriel Rossetti ] 본명은 Gabriel Charles Dante Rossetti.
1828. 5. 12 런던~1882. 4. 9 잉글랜드 켄트 버칭턴언시. 영국의 화가·시인.
비전통적 방식으로 종교와 도덕 및 중세의 주제를 다루는 화가들의 단체인 라파엘 전파(前派) 협회 창설에 이바지했다.
로제티를 오늘날 관점에서 바라보면, 영국만이 아니라 유럽 대륙에도 영향을 미친 상징주의의 한 형태를 창시한 인물로 존경받을 만하다.
헌트[ William Holman Hunt ]
The Hireling Shepherd, 1851
헌트의 그림은 처음볼때 생경한 느낌이 앞서갑니다.
고전주의 작가보다 더 세밀한 묘사와 익지 않은듯 뛰어 다니는 색채 그리고 과다한 그림자의 사용등
잡초 한포기 부터 원경에 있는 나무들 하나 하나까지 세밀하게 파고들어 표현해내는 그의 집념을 보면
마치 미국의 하이퍼 리얼리즘 회화를 보는듯 생경합니다.
그는 집요한 표현속에 여러가지 종교적 상징성을 녹여내고 있습니다.
위의 양치기 그림을 보면 마치 에덴 동산을 연상케 하는 푸른 초원위의 두 청춘 남녀는
아담과 이브를 연상케 합니다. 여인의 붉은 치마근처에 있는 한입 베어먹은 사과도 그러한 추측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큰 그림을 보면 뱀도 보일듯 한데,,제가 노안이 와서 찿을수가 없네요.^^(농담 입니다)
The Shadow of Death (1871)
우측에 보이는 연장으로 보아 그는 목수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뒤에 보이는 그림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때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라파엘로 전파가 많은 부분을 신앙에 의지 했듯이 이그림도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 합니다.
당시 많은 비평가들이 이러한 라파엘 전파들의 극사실적인 상징적 종교화를 맹비난하였지만
그들은 자신의 작업을 열심히 이어갔습니다. 아주 오랜 기간은 아니었지만.
헌트[ William Holman Hunt ] The Lady of Shalott (1905)
헌트의 말년의 이그림은 그의 세밀한 표현력이 고도의 장식성으로 발전하였음을 볼수있는 작품입니다.
라파엘 전파 작가들이 장식적인 아르누보 예술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것을 볼수 있는 좋은 예이기도 합니다.
헌트[ William Holman Hunt ] 1827. 4. 2 런던~1910. 9. 7 런던.
영국의 미술가.
라파엘 전파의 주요구성원이었다. 그의 양식은 선명하고 강렬한 색채와 뚜렷한 명암 효과, 꼼꼼한 세부묘사가 특징적이다. 1843년 왕립 아카데미 학교에 들어가 거기에서 그의 영원한 친구가 된 화가인 존 에버렛 밀레이를 만났다. 헌트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처음에는 냉담한 편이었지만, 1854년 인간 영혼의 문을 두드리는 그리스도를 우의적으로 그린 〈세상의 빛 The Light of the World〉(옥스퍼드 키블 칼리지)이 존 러스킨의 찬사를 받으면서 그는 처음으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1854~55년에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방문했으며, 거기에서 1855년 7월에 사해의 바닷가를 어슬렁거리는 버림받은 외로운 동물을 묘사한 그림인 〈속죄양 The Scapegoat〉을 완성했다. 대표적인 후기 작품으로는 2점의 〈순결한 사람들의 승리 The Triumph of the Innocents〉(1884 런던 테이트 미술관, 1885 리버풀), 〈모드린 타워의 5월 아침 May Morning on Magdalen Tower〉(1889, 레이디레버 미술관), 그가 시력을 잃기 바로 전에 완성한 〈신성한 불의 기적 The Miracle of the Sacred Fire〉(1898) 등이 있다.
Sir John Everett Millais
The Order of Release (1853) Tate Britain, London
스코틀랜드 병사의 옷을 입은 부상당한 남자가 감옥을 나오고 있습니다.
제임스 2세로 야기된 시민전쟁에 참여 했던 그는 기나긴 감옥생활을 이제막 끝내고 석방되는 중입니다.
영국군 복장의 간수는 여인이 보여주는 석방 통지서를 살펴보고 있는 중입니다.
검둥이 강아지는 오랜만에 보는 주인의 부상당한 손을 핥으며 반가워 어쩔줄 모르고
여인의 팔에 안겨 있는 아이는 아빠를 만나면 주려고 꺽어났던 꽃을 한손에 늘어 뜨리고 잠에 빠져있습니다.
여인이 쓰고있는 베일은 성모 마리아를 연상케하는 청색 베일입니다. 발도 순결을 상징하는 맨발입니다.
왠일인지 아내는 남편과 눈을 맞추지를 않습니다.
그녀의 경직되어 보이는 하지만 당당한 태도는 이그림 <석방 통지서> 이전 그림을 보야야 이해가 됩니다.
이전 그림에서 그녀는 남편의 석방을 위해 높은 사람과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됩니다.
자신의 몸을 내던진 댓가로 남편을 되찿은 이 여인에게 함부로 돌을 던지긴 힘들겁니다.
아내의 어깨에 한없이 얼굴을 기대고 고뇌하는듯 눈감고 있는 남편의 얼굴은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듯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주 잡은 두손은 그들의 사랑을 확인 시켜줍니다.
이 그림속 부인의 실재 모델은 에피라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당시 거의 유일할 정도로 라파엘 전파에 대해 열렬하고 우호적인 비평을 하던
비평가 존 러스킨의 아내였죠.
밀레이의 팬이자 친구 였던 러스킨은 밀레이가 자신의 그림에 부인을 모델로 하고 싶다는 제의에
혼쾌히 이를 승락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두사람은 이그림을 그리며 사랑에 빠져 들고 맙니다.
밀레이가 러스킨의 부인 에피를 자신의 모델로 세운것이 의도적 이었을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원래 남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는 어떠한 기회를 만들더라도 같이 있고 싶어 하니까 말이죠.
러스킨의 부인 에피도 남편과의 관계가 좋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밀레이의 구애를 받아들이고 그들은 밀레이의 스튜디오에서 불같은 사랑을 불태웁니다.
이그림 또한 로제티의 프로세피네와 같은 사랑의 상징으로 가득 합니다.
친구의 부인에게 사랑을 느껴버린 양심의 가책과 그녀에게 기대고만 싶은 밀레이를 나타내는
스코틀랜드 병사는 몸도 마음도 엉망인채로 에피의 어깨에 몸을 의지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에피는 담담하면서도 결연한 의지를 내보이며 가녀린 몸으로 상처 받은 밀레이에게
손을 굳게 잡아주며 힘을 주고 있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또한 그녀를 순결한 맨발과 성스러운 베일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은 밀레이가
그녀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숭고하고 순수한것인가를 나타내는듯 합니다.
많이 앞서가는 상상이긴 하지만 아그림을 그릴때 이미 이들은 그들의 아기를
만들었던것이 아닌가 하는 억측을 해 보기도 합니다.(순전히 제 생각 입니다 ^^::)
Sir John Everett Millais, 1st Baronet, PRA (8 June 1829 – 13 August 1896) & "Effie C. Millais".
결국 러스킨과 이혼한 에피는 밀레이와 재혼하여 밀레이 부인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찿습니다.
위의 왼쪽 사진은 밀레이, 우측 사진은 결혼후 찍은 사진 입니다.
사진속의 그녀 옆모습과 The Order of Release 속의 여인의 모습은 거의 흡사 합니다.
John Ruskin (1853–54) Private Collection
친구에게 아내를 빼앗긴 러스킨의 초상화입니다.
이그림도 밀레이가 그려준 것입니다. 그들의 러브 트라이앵글은
그들간의 심각한 갈등을 빚어낼수도 있었지만 러스킨은 라파엘 전파에 대한 지지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A Huguenot on St Bartholomew's Day (1852)
A Huguenot, on St. Bartholomew's Day, Refusing to Shield Himself from Danger by Wearing the Roman Catholic Badge (1852
"로만 카톨릭 배지 달기를 거부하는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위그노"
라는 아주 긴 제목의 그림입니다.
위그노란 카톨릭에서 신교도
(프로테스탄트. 칼뱅파)들을
비하해서 말하는 명칭입니다.
전통적으로 카톨릭 국가인 프랑스
에서도 신교와의 분쟁은 피할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분쟁의 타개책
으로 1572년 8월 18일 왕의 여동생
마르그리트(마르그리트 드 발루아)는 위그노였던 나바라의 엔리케(훗
날 프랑스의 앙리 4세)와 결혼하게 되어 많은 위그노 귀족들이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파리로 왔습니다.
8월 24일 동트기 직전 구교도들은
3천명에 가꺼운 위그노들을 습격
하여 대학살의 만행을 저지릅니다.
이 학살은 왕의 정지명령에도
불구하고 그후 몇일동안 파리시내
안에서 자행되었고 지방에까지 살
육행위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사건 이후 구교와 신교와의
갈등은 더 커졌고 프로테스탄트들도
평화적 대응을 포기하게 됩니다.
여인은 남자의 왼쪽팔에 자신의 미사포인듯한 흰색천을 묶어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남자는 오른손으로 가볍게 제지하며 그녀를 사랑스러운듯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그녀의 눈은 사랑하는 남자를 지키려는 간절한 소망으로 가득 차 있지만
남자는 자신의 종교에 대한 신념을 버릴수 없다는 부드럽지만 확고한 의지를 그녀에게 보입니다.
성 바르톨로메오의 대학살 당시 모든 위그노(신교, 프로테스탄트)들은 살육의 대상이었습니다.
자신의 몸보다 더 소중한 연인의 목숨을 이한장의 천으로 지킬수 있다면
그녀는 어떤일도 할수 있었을 겁니다.
'
"제발 잠시만 이 혼돈과 살육과 광란의 시기를 이한장의 천에 의지해 살아남아 주세요.
당신이 정말 저를 사랑 하신다면 단 한번 만이라도 이교도가 되어 주세요"
라는 메시지가 그녀의 표정에 가득 합니다.
The Eve of Saint Agnes (1863) HM The Queen
미래 자신의 배우자를 미리 만나보고 싶은 것은 이세상 모든 소녀들의 이쁜 바램중 하나일겁니다.
성 아그네스 기념일 전날밤 (1월20일밤--20일에서 21일로 넘어가는밤) 정해진 의식을 행한 소녀는
잠들기전 깨끗히 몸을 씻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면 에서 미래의 배우자를 만날수 있다고 합니다.
바로 오늘밤이네요,,
잠들기전 샤워는 필수, 그리고 기도하세요,,
그러면 꿈속에서 장동건이 나올수도,,,만약 보스코가 나오면 기도가 부족하신 겁니다..^^
The Grey Lady (1888) Private Collection
밀레이[ Sir John Everett, Millais 1st Baronet ]
1829. 6. 8 잉글랜드 햄프셔 사우샘프턴~1896. 8. 13 런던.
영국의 화가, 삽화가, 라파엘 전파(Pre-Raphalite Brotherhood)의 창시자.
1838년 그는 런던으로 가서 11세에 왕립 아카데미 부설 학교에 들어갔다. 어릴 적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인 밀레이는 아카데미의 모든 상을 휩쓸었다. 1848년에 그는 윌리엄 홀먼 헌트와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라는 두 미술가와 함께 라파엘 전파협회를 결성했다. 이들은 당시의 아카데미 회화에 반대하여 이 협회를 세웠는데, 라파엘로 시대 이후 여러 양식과 아카데미를 지배해온 아카데미 회화가 이탈리아의 라파엘로로부터 유래했다고 믿었다. 밀레이는 1885년에 준남작작위를 받았고, 1896년에 왕립 아카데미 원장으로 선임되었다.
첫댓글 후후후 역시 love story는 재밌네요
잘~ 읽었어요. 감솨 ^ ^
재미있어요^^
정말기도열심히 해봐야겠어요 보스코님나오지않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