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보시 두 작품을 비교해보세요
(1) 칠보시(七步詩)
콩을 삶는데 콩대를 태우고
煮豆燃豆萁 자두연두기
콩은 솥 속에서 우네
豆在釜中泣 두재부중읍
본시 한 뿌리에서 태어났거늘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들볶기를 어찌 이리도 다급하게 하는가?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고문진보(古文眞寶)』에는 4 구로 되어 있음
(2) 칠보시(七步詩)
콩을 삶아 그것으로 국을 끓이고.
煮豆持作羹 자두지작갱
비지를 걸러 즙을 내네.
漉豉以爲汁 녹시이위즙
콩을 삶는데 콩대는 솥밑에서 타고.
萁在釜下燃 기재부하연
콩은 솥 안에서 우네
豆在釜中泣 두재부중읍
본시 한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本是同根生 본시동근생
어찌 이리도 급하게 삶는가?
相煎何太急 상전하태급
*『세설신어(世說新語)』에는 6 구로 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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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식(曹植:192~232)
자는 자건(子建). 삼국시대 위(魏) 나라 무제(武帝) 조조(曹操)의 셋째 아들이며, 조비(曹丕)의 동생이다. 아버지 무제(武帝) 조조(曹操)· 아들 문제(文帝) 조비(曹丕) ·조식(曹植)의 삼부자는 그 당시의 건안(建安) 문학을 주도하며 많은 걸작을 남겼다.
특히 조식(曹植)은 “천하의 재주를 한 석(石)으로 친다면, 8할은 조식의 것이다.”라고 할 정도로 시재가 출중하고 당대의 칭송이 자자했다. 어릴 때부터 천재적인 재주를 아꼈던 무제(武帝) 조조의 특별한 총애와 지나친 사랑을 받으면서도 태자로 책봉되지 않은 것은 그의 활달하고 자유분방한 성격과 구속받기 싫어하는 그의 기질 탓에 결국 그의 형 조비에게로 권력이 넘어갔다. 이로 인해 형 조비에게 미움을 받아 조비가 천자가 된 후에 그의 시련이 시작되었다.
조식은 형 文帝(문제) 조비가 七步(칠보)를 걷는 동안 시를 짓지 못하면 극형에 처한다고 하여 시를 지었다고 한다.
이로부터 그를 ‘칠보지재(七步之才)’라고 불렀다.
11년 동안 봉지(封地)를 옮겨 다녔으며, 형의 박해와 탄압 속에 우울증으로 40세에 목숨을 거두었다.
말년에 진왕(陳王)에 봉해졌고, 시호가 사왕(思王)이었으므로 진사왕(陳思王)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문집으로는 『조자건집(曹子建集)』10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