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과 충신들의 공간 경기 연천 숭의전(崇義殿) 과 어수정
< 경기 연천군 미산면 숭의전로 382-27>
2025.12.21(일) 06:30 경기 연천역 인근 1박 장소인 신라모텔을 출발하여 고려왕과 충신들의 공간인 숭의전으로 이동한다.
오전 6시 50분 숭의전 주차장에 도착하여 오전 7시 40분 부터 숭의전 경내를 둘러본다(07:40~08:10)
<입장료 : 무료 (연중 무휴), 주차장 : 무료, 편의시설 : 화장실>
경기 연천에는 구석기는 물론 삼국시대 전쟁이 치열했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뿐만아니라 고려를 개국한 태조 왕건이 물을 마시며 머물렀던 어수정이라는 우물이 있고 조선시대에 세운 고려 왕과 충신들의 사당인 숭의전이 있다.
숭의전은 미산면 아미리 임진강변의 아미산 자락 정상부 못 미쳐 조성된 아늑한 평지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임진강이 북동방향에서 남서방향으로 굽이쳐 흐르는 모습이 한눈에 조망된다.
숭의전 주차장에 평화누리길 안내판이 있다.
평화누리길은 11코스인데, DMZ 평화의 길은 12코스이다.
어수정(御水井)은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877~943, 재위 918~943)이 궁예의 신하로 있을 때 개성(당시 송악)과 철원(당시 태봉)을 왕래하면서
중간에 있는 이곳에서 물을 마신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곳 숭의전 자리에 왕건의 옛집 또는 왕건이 세운 앙암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숭의전 입구인 홍살문
조선시대 종묘나 궐문, 왕릉 앞에 세워져 있는 하마비가 숭의전 입구에 서있다.
하마비가 있는 곳에서는 왕도 예외 없이 말에서 내려서 가야 하는 곳이다.
홍살문에서 200여 미터 오르면 숭의전이 나온다.
평화누리길 11코스(임진적벽길) 19km, 5시단 20분 소요 <안내도>
숭의전은 태조가 세운 앙암사 자리에는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1397년(태조 6)에
고려의 왕들과 충신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모시기 위해 만든 사당이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초기에 고려 종묘를 헐고 조선의 종묘를 건립하며 고려 왕족들을 탄압했지만
민심을 달래기 위해 숭의전을 지은 것이라고 한다.
조선 태조가 사당을 지은 후 1399년(정종1)에 고려 태조를 비롯해
혜종, 성종, 현종, 문종, 원종(충경왕), 충렬왕, 공민왕 등 고려 8왕 위패를 봉안하였다.
이후 1425년(세종 7)에는 전대의 왕조를 예우하여 숭의전이라 이름 짓고 고려 4왕(태조·현종·문종·원종)과 더불어
고려 충신 16명(복지겸, 홍유, 신숭겸, 유금필, 배현경, 서희, 강감찬, 윤관, 김부식, 김취려, 조충, 김방경, 안우, 이방실, 김득배, 정몽주)을 배향했다.
숭의전은 조선시대 1605년(선조 38), 1727년(영조 3), 1789년(정조 13), 1868년(고종 5), 1908년(순종 2) 등
총 5차례에 걸쳐 개수(改修)와 중수(重修)를 반복하였다.
그러다가 한국전쟁 중에 전소하였으나 1972년에 사적으로 지정하고 1973년부터 현재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현재 매년 춘·추계 대제 및 고려문화제가 개최되고 있다.
연천 숭의전 관광안내소
조선이 개국하자 고려 왕족의 수난은 시작됐습니다.
왕족은 제주도와 거제도, 강화도로 보내졌고 1392년 개경에 있던 고려 종묘를 헐고 그 자리에 조선의 종묘를 건립했다.
1394년 맹인 이흥무의 점괘사건이 발생해 고려 왕족을 피바람으로 몰아넣게 되었다.
이곳에 조선 태조가 사당을 지은 후 1399년(정종 1)에 고려 태조를 비롯해 혜종, 성종, 현종, 문종, 원종(충경왕), 충렬왕, 공민왕 등 고려 8왕 위패를 봉안하였다.
이후 1425년(세종 7)에는 전대의 왕조를 예우하여 숭의전이라 이름 짓고 고려 4왕과 더불어 고려 충신 16명을 배향하였다.
1452년(문종 2)에는 고려 현종의 먼 후손을 공주에서 찾아 순례라는 이름을 내린 후 부사를 삼아 제사를 받들고 토지와 노비를 내렸습니다.
숭의전의 제례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개성왕씨 종친회와 숭의전보전회 주관으로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봉행된다고 합니다.
숭의전지(崇義殿址)는 조선시대에 전조(前朝)인 고려시대의 왕들과 공신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받들게 했던 숭의전이 있던 자리이다.
이곳은 원래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원찰이었던 앙암사(仰巖寺)가 있었던 곳으로
1397년(태조 6)에는 고려 태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건립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 숭의전의 시초이다.
사당 건립 이후 1399년(정종 1년)에는 왕명에 의해 고려 태조를 비롯하여
혜종(惠宗), 성종(成宗), 현종(顯宗), 문종(文宗), 원종(충경왕, 元宗), 충렬왕(忠烈王), 공민왕(恭愍王) 등 고려 8왕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이후 1425년(세종 7)에 이르러 조선의 종묘에는 5왕(五王)을 제사하는데 고려조의 사당에 8왕을 제사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하여
태조, 현종, 문종, 원종 등의 4왕만을 봉향토록 하였다.
1451년(문종 1)에는 전대의 왕조를 예우하여 숭의전이라 이름 짓고 고려 4왕과 더불어
고려조의 충신 16명(복지겸, 홍유, 신숭겸 유금필, 배현경, 서희, 강감찬, 윤관, 김부식, 김취려, 조충, 김방경, 안우, 이방실, 김득배, 정몽주 등을 배향토록 하였다.
사적 제223호 숭의전
입구 좌측부터 전각 순서는 앙암재, 전사청, 숭의전, 이안청, 배신청 순이다.
현재 재건된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숭의전(崇義殿, 4왕의 위패를 모신 곳)을 비롯하여
배신청(陪臣廳, 고려 16공신의 위패를 모신 곳), 이안청(移安廳, 위패를 잠시 모셔 두는 곳), 전사청(典祀廳, 제례 때 사용할 제수를 준비 하는 곳),
앙암재(仰巖齋, 제례 때 사용하는 향, 축, 폐등을 보관하고 제사에 참여하는 제관들이 제례준비를 하며 머무는 곳) 등
5동의 부속건물과 내신문(內神門), 외신문(外神門), 협문(夾門) 3동, 운조문(雲鳥門) 등 6개의 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부속건물들은 모두 돌담장으로 둘러져 내부가 잘 보이지 않으며 앙암재와 전사청은 각각 별도로 독립된 구조를 갖추고 있다.
마전군 읍지(麻田郡 邑誌)에 의하면 1899년 당시 숭의전은 지금 재건된 것보다 규모가 더 컸음을 알 수 있다.
즉, 당시는 18칸 규모의 정전과 배신청, 이안청, 향배청, 전사청, 주방 등의 건물과 2개의 문이 있었다.
전사청 좌측에 위치한 앙암재(仰巖齋)
'바위를 우러른다'라는 뜻인데 실제로 뒤쪽 산세가 높고 암반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제례때 사용하는 향, 축, 폐 등을 보관하고 제관들이 제례준비를 하며 머무는 곳이라고 한다.
제례 때 사용할 제수를 준비하고 제기를 보관하는 숭의전 좌측에 위치한 전사청
기단과 삼문 - 기단석으로 쌓은 돌은 현무암이다.
고려 16충신의 위패를 모신 '배신청'
복지겸 / 신숭겸 / 유금필 / 서희 /강감찬 / 윤관 / 정몽주 / 홍유 /배현경 / 김부식 / 김취려 / 조충 /김방경 / 안우 / 이방실 / 김득배
이안청(배신청 옆의 건물)
숭의전의 청소 및 공사시에 위패를 잠시 모셔두는 곳이다.
위패를 옮겨 모실 때에 이안제와 환안제를 올려 고유례를 행한다고 한다.
숭의전에는 고려 4왕(고려 태조, 현종, 문종, 원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보호수 느티나무 2그루
숭의전을 600년 간 지켜온 두 그루의 느티나무는 보호수로 지정(1982.10.15)
수령 650년, 수고 20m, 나무둘레 390cm
고려 왕실을 지키는 나무 (느티나무)
이 느티나무들은 조선 문종 2년 왕씨 자손이 심었다고 전해진다.
이 나무가 철따라 웅웅 소리를 내며 울면 비나 눈이 많이 오고
이 나무에 까치가 모여들면 마을에 경사가 나고, 까마귀가 모여들면 틀림없이 초상이 난다고 한다.
숭의전에서 바라보는 임진강의 일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