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영이 있었다. 6년 전 2004년에 입단했으나 기자가 한동안 대만 출신의 진시연(陳詩淵ㆍ천스위엔)과 헷갈려 했을 정도로 무명의 '중고' 신예. 재작년 13회 삼성화재배 본선진출과 더불어 중국1위 구리를 반집차로 꺾고 크게 주목받았으나 그 이후 되돌아간 무명의 터널. 13승13패를 기록한 작년 한해 국내외 기전을 통틀어 본선진출은 전무했다.
올 시즌의 한국바둑리그는 생애 처음 몸 담은 무대. 평소 그를 눈여겨본 차민수 감독과 한게임 스태프가 자율지명으로 발탁한 혜안이 없었다면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이는 팀원 강동윤ㆍ안형준과 같은 스물한 살.
○… 리그 신참 진시영 '신인왕 예약' 진시영이 흔히 말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27~28일 바둑TV 스튜디오에서 만난 한게임과 영남일보는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컵을 놓고 치열하게 다퉜던 강팀. 결과는 최종국까지 가는 명승부 끝에 영남일보가 웃었지만 그 차이는 실로 간발이었다.
양팀은 2009시즌의 전ㆍ후기 리그에서 3-2로 승리를 주고받았으며, 2008리그에서도 4-1로 주고받는 등 만날 때마다 풀세트의 접전을 벌여 왔다. 원년챔프를 비롯 7연속 출전 중인 한게임, 2007시즌부터 3연패를 달성한 영남일보는 자타가 공인하는 명문 기단이며, 올 시즌에도 우승 영순위로 꼽히는 전력을 겸비하고 있다.
▲ 두 기사의 모습에서 승패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왼쪽이 진시영 3단, 오른쪽이 박정상 9단.
오더가 공표된 순간 양측 진영의 눈길은 5국으로 쏠렸다. 이른바 승부판. 한게임이 첫날 1ㆍ2국에 1ㆍ2지명을 포진시켰고, 영남일보가 둘째 날 3ㆍ4국에 1ㆍ2지명을 배치시킨 것. 그러나 경기의 주인공은 진시영이었다.
한게임의 4번주자로 나선 진시영은 2-2로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영남일보의 2지명 박정상을 2집반 차로 꺾고 팀승리를 결정지었다. 1라운드에서 티브로드의 주장 목진석을 격파한 데 이어 또한번의 대형 홈런. 바둑리그에 첫선을 보인 9명 간의 신인왕 경쟁에서도 기선을 잡았다.
▲ 주장 강동윤 9단의 완승에 차민수 감독은 "여태까지 경기 중 가장 떨림없이 (편하게) 봤다"고 했다.
○… 2라운드 3경기 모두 2-2에서 팀승부 갈려 예상대로 첫날은 한게임이 순조롭게 발을 뗐다. 투톱 강동윤과 이영구가 각각 백대현과 유창혁을 불계로 제압했다. 한게임의 힘을 보여준 주력 멤버의 '연승 휘파람'이었다.
2-0에서 맞은 둘째 날은 우려했던 대로 영남일보의 거센 추격을 받았다. 3국에 나선 김주호가 영남일보의 주장 김지석의 예봉에 꺾인 데 이어 4국(장고대국)보다 먼저 끝난 5국에선 안형준이 강유택에게 패했다. 두 선수 모두 전반전의 열세를 만회하지 못했다.
▲ 3연속, 통산 4회째 한게임에서 뛰고 있는 이영구 8단은 '한게임 직원'으로 통한다.
위기감이 팽배한 한게임 진영. 더욱이 그즈음 4국의 상황도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진시영이 동문(허장회 도장) 선배 박정상을 격파한 것이다. 복기 때 진시영의 입에서 나왔듯이 한때는 '대책없는' 국면에 처했으나 집념, 투혼, 집중력 등등 정신적 요소가 역전승의 원동력이 됐다. 바둑TV 양재호 해설자는 "시합을 하고 또 연구실에 가서 공부하는 노력파"라고 진시영을 설명했다.
종국시각은 5국보다 15분 늦은 밤 10시 55분. 반상의 수수는 300수를 넘어서고 있었다. 1라운드 티브로드 전을 4-1로 대승한 한게임은 숙적 영남일보마저 격파함으로써 2연승을 기록, 신안천일염과 공동 선두에 나섰다.
반면 3연속 우승팀 영남일보는 2연패 수렁에 빠졌다. 지난주 넷마블과의 경기 도중 "2라운드에서 한게임과 붙게 되어 골치 아프게 됐다"라고 기자에게 토로했던 영남일보 이정환 단장의 한마디가 괜한 걱정이 아니었던 결과로 드러났다.
기전 규모 29억5000만원, 우승 상금 2억5000만원의 2010한국바둑리그는 9개팀이 더블리그를 벌여 상위 네 팀이 포스트시즌에 올라 스텝래더 방식으로 최종 우승팀을 가린다. 주말엔 하이트진로-충북&건국우유가 맞선다. 대진은 최철한-한웅규, 김형우-윤준상, 이원영-김정현, 안성준-조훈현, 원성진-허영호(이상 앞쪽이 하이트진로).
■ 승자 한마디 & 톡톡 한마디 "(이번 경기의 예상 스코어는?) 팀원들이 오더가 안 좋게 나왔다고 하는데 제가 첫판을 이겨 이제 5-5의 승부라 생각합니다." (한게임 강동윤ㆍ사진) "항상 재미를 주는 강동윤 선수의 오늘 인터뷰는 실망인데요." (최유진 진행자) "너무 완승이라 상대에게 미안해서 그런가 봅니다." (김영환 해설자) "요즘은 평범 속에서 진리를 찾지." (영남일보 박정상 - 최근의 강동윤 9단은 예전처럼 과격한 수를 고집하지 않는다며) "내가 가려도 흑, 상대가 가려도 흑, 제3자가 가려도 흑. 이건 말이 안 돼!" (영남일보 박정상 - 최근 8연속 흑을 쥐었던 데다 바둑리그까지 타의에 의해 흑을 쥐게 됐다며. 그뿐 아니라 9연속 1시간짜리 바둑을 두고 있다) "김지석 선수가 이겼습니다만 아직은 한게임이 1집반 정도 두텁다고 봐야죠." (양재호 해설자) "바둑을 잘 두려면 그림도 잘 그리고 음악적 재능도 뛰어나고, 무엇보다 수학을 잘해야 합니다." (양재호 해설자)
▲ 한게임은 팀로고 색깔도 그렇듯이 '오렌지 군단'. 새로 지급받은 하절기 유니폼 역시 오렌지 색이다.
▲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났던 한게임의 차민수 감독(오른쪽)과 영남일보의 최규병 감독.
▲ 몸이 찌뿌드드한지 대국 전의 이영구 8단은 가만 있지 못했다.
▲ 아시안게임 상비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자선수들이 첫날 대국을 끝까지 함께 검토했다.
▲ 바둑판 위에 놓인 돌은 4국의 장고대국, 세 선수의 대화는 김지석 7단이 승리한 3국의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