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조원 감상문 보니 내 강의 아니야" 주장
당시 강의 자료 등 통해 조원 출석 명확히 확인돼
재판부 "피고인이 확실하게 입증 못했으니 유죄"
검찰의 일방적 추측뿐 증거 전혀 없는 유죄 판결
메일 첨부 문서로 증인 오인하게 만든 검찰 신문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수사가 한창 진행될 무렵, 검찰이 조 전 장관 일가를 그야말로 탈탈 털어대고 있지만 그래도 아들 하나는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온 가족을 빠짐없이 털어대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너무도 가혹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기대가 무색하게 검찰은 초반부터 아들 조원 씨에 대해서도 치밀한 수사에 들어갔다. 그것이 본격화한 것은 진중권 씨의 ‘풍기문란(인문학 콘서트) 스펙 따먹기’ 발언 이후였다.
2019년 11월 15일 TV조선 보도
진중권 “조원 감상문 보니 내 강의 아니야”
진 씨는 2019년 11월 14일 서울대 사범대학에서 열린 강연에서 “조 전 장관의 아들이 내 강의를 들었다고 감상문을 올렸는데 올린 사람의 아이디는 정경심 교수였다”면서 “감상문 내용을 보니 내가 그런 강의를 한 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진 씨는 이어 “동양대 인턴프로그램은 서울에 접근하기 어려운 (동양대가 있는 경북 영주시) 풍기읍의 학생들이 이거라도 (스펙에) 써먹으라고 만든 것인데, 정 교수가 서울에서 내려와 그것을 따먹었다”고 말했다.
진 씨의 이런 발언을 바탕으로 “딸에 이어 아들까지도 스펙 조작”이라는 여론이 거세게 일어났고, 검찰은 이를 빌미로 조원 씨에 대한 전방위 수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결국 진 씨가 얘기한 ‘풍기문란’은 기소조차 되지 못했다. “내 강의 안 들었다”는 진 씨의 말이 기억의 착오에서 나온 것이었고, 조원 씨가 출석한 근거와 수상자로 결정된 과정 등이 충분히 입증됐기 때문이다.
진 씨의 원래 강의 계획은 <디지털 시대의 인간>이었지만 실제 강의는 <원근법>이었다. 조원 씨의 감상문도 <원근법>에 대한 것이었다. 계획 상의 강의 주제와 실제 강의가 다른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진 씨는 아마도 자신이 가진 어떤 기록을 통해 2012년 강의 주제가 <디지털 시대의 인간>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조원 씨의 <원근법> 강의 감상문에 대해 “그런 강의를 한 적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보인다.
조원 씨가 '풍기문란' 카페에 올린 진중권 씨의 강의 감상문
실제 조원 씨가 들었던 진 씨 강의 주제가 <원근법>이었다는 것은 당시 강의 자료를 통해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진 씨는 이처럼 자신의 부정확한 기억을 바탕으로 ‘허위 스펙’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어쨌든 수사 이전에 조원 씨에 대해 ‘알려진 혐의’는 이 정도였다. 그 이외에 검찰이 기소한 사안들은 모두 조국 전 장관 일가의 컴퓨터를 탈탈 털어서 찾아낸 '별건의 별건' 혐의였다. 그러나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도 이 ‘풍기문란’ 프로그램을 집요하게 거론해 피고인과 증인들을 괴롭히면서 여론전에 활용했다.
특히 진 씨의 ‘스펙 따먹기’ 발언은 동양대의 지역학생 프로그램 전체를 ‘대학의 지역사회 기여’라는 원래의 취지 및 의미와 관계없이 ‘스펙 쌓기’ 용도로 격하하여 조원 씨의 모든 활동을 오로지 ‘스펙’ 차원에서만 생각하도록 프레임화했다. 이런 검찰의 전략에 언론은 충실히 부역했고, 재판부 역시 이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19년 11월 15일 TV조선 보도. 진중권 씨의 '스펙 따먹기' 발언은 조국 전 장관 자녀의 모든 활동을 '스펙'의 차원으로 프레임화시켰다.
재판부 “피고인이 입증 못했으니 유죄”
검찰이 기소한 소위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업무방해’ 혐의의 내용은 조원 씨의 2학년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동양대 청소년 인문학 영재 과정’과 봉사활동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풍기문란’과는 별개의 프로그램으로 원래 1기부터 4기까지 계획되어 있었으나 3기와 4기 계획은 폐강됐다.
검찰의 주장은 조원 씨가 이 프로그램 전체에 걸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 중에서 특히 정경심 교수의 PC에서 발견된 3기와 4기 수료증은 위조된 것으로, 이처럼 허위 1~4기 수료증과 상장을 담임교사에게 제출하여 허위 내용이 2학년 생활기록부에 기재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1기는 조원 씨의 참석이 명확하게 입증됐다. 재판부는 2기 활동을 전면 부정하면서 ‘입증된 1기 활동’을 제시해 이와 대비시켰다.
“피고인과 조원은 ‘동양대 청소년 인문학 프로그램 제1기 영어 에세이 쓰기(영재 과정) 등’ 강의에 참석한 날짜, 조원이 동양대 캠퍼스에 오고 간 교통편 등을 특정하여 주장하였고, 이는 그 무렵 조원이 이용한 고속버스 승차권 대금 신용카드 결제 내역, 티머니 발권 내역, 인터넷 이메일 등 객관적 자료에 부합한다.
반면에 피고인은 조원과 2기 강의에 참석한 날짜, 조원이 평일인 화요일에 동양대 캠퍼스에 오고 간 교통편, 서울에서 원격으로 수업에 참여한 방법, 조원이 작성한 영어 에세이 및 그 제출 방법 등을 특정하지 못하고 있고,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아무런 객관적인 자료도 찾을 수 없다.”
즉 2기 활동에 대해 “1기만큼 명확하게 입증하지 못했으니 유죄”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1기가 2012년 겨울방학 때 출석수업으로 진행된 데 반해, 학기 중에 진행된 2기는 학생의 수준에 따라 분반이 이루어져 조원 씨가 참여한 클래스는 주로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던 까닭에 입증 수준과 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재판부는 당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다른 학생의 증언으로 “2기는 1기와 다르게 분반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사실, 2기 프로그램 공지가 조원 씨에게 전달됐던 사실, 조원 씨가 수상자로 선정된 수료식이 실제로 진행됐던 사실 등은 철저하게 외면하고 무시했다.
‘검찰의 추측’ 뿐 증거 없는 유죄 판결
이 판결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 것은 실제로 진행되지 않았던 3기와 4기의 수료증이었다. 검찰은 있을 수 없는 수료증이 정 교수의 PC에 있다는 이유로 정 교수가 위조한 것이라고 주장해 사문서위조 혐의로 기소했고 1심 재판부는 유죄를 선고했다. 정경심 교수는 이 문서들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이 3기와 4기 수료증을 정경심 교수가 담임교사에게 실제로 제출했느냐의 문제다. 정경심 교수는 1, 2기 수료증과 상장, 그리고 봉사활동 확인서만 보낸 것으로 기억하고 있고, 2학년 담임교사는 “첨부 문서가 많았다” 정도로 기억하지 검찰이 주장하는 대로 1기부터 4기까지의 수료증이 모두 첨부되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을 못하고 있다.
(2021년 8월 27일 조원 씨의 고2 담임교사에 대한 증인 신문)
변호인(이하 '변') 증인은 검사가 제시한 '1기부터 4기까지 수료증' 즉 수료증 전체 5장과 최우수상 1장 등 수료증과 상장 총 6장 모두를 정경심의 이메일에서 받았다고 확실히 기억하나요?
증인(이하 '증')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변 그렇다면 이 생활기록부 기재 내용이 바로 정경심 피고인이 3기, 4기 수료증을 증인에게 보냈다라고, 그리고 증인이 그것을 보고 기재했다고 단정할 근거는 아니지 않나요? 즉 증인은 3기, 4기의 수료증을 보고 이 생활기록부를 기재했다고 단정적으로 기억하나요?
증 기억에 대해서 물으신다면 기억은 잘 안 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 교수가 관련 서류를 모아 2학년 담임교사에게 보낸 메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 교수와 담임교사 모두 메일을 보내고 받았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지만 메일 자체는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그 메일에 어떤 문서들이 첨부되어 있는지, 즉 3기와 4기 수료증이 담임교사에게 제출됐는지 여부에 대해 정확하게 확인할 길이 없다.
물증이든 증언이든 '허위 수료증'인 3기와 4기 수료증을 담임교사에게 제출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전혀 없는 것이다. 단지 PC에 파일이 있으니 보냈을 것이라는 검찰의 추측이 있을 뿐이다. 재판부는 이 추측을 근거로 정경심 교수가 있을 수 없는 문서를 위조하여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했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메일 첨부문서로 오인하게 만든 검찰 신문
검사는 2학년 담임교사에 대한 검찰 조사에서 1~4기 수료증과 상장을 제시하면서 “이 문서들이 정경심 피고인이 증인에게 이메일로 보낸 수료증이 맞냐”고 물었고 담임교사는 이에 대해 “맞다”고 대답했다.
검사 (동양대 수료증 및 동양대 상장을 증인에게 제시하고) 조사 당시 증인은 검사로부터 이와 같은 조원의 동양대 청소년 인문학 프로그램 제1기·제2기·제3기·제4기 수료증 및 제2기 상장을 제시받고 증인이 간인도 하였는데, 당시 정경심 피고인이 증인에게 이메일로 보낸 수료증과 상장이 맞나요?
증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저기 있는 문구랑 생활기록부에 있는 문구가 일치하는 것으로 봐서는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검찰 조사 당시 담임교사는 검찰이 이메일에 첨부되어 있던 문서들을 제시하는 것으로 생각해서 “맞다”고 대답한 것이었고, 법정에서 변호인을 통해 그것이 이메일과 관계없는 다른 곳에서 압수한 문서라는 사실을 알고는 화들짝 놀라며 “그런 말(다른 곳에서 압수한 것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고 진술했다.
변호인(이하 ‘변) 검찰 조사 당시 검사가 제시한 1~4기 수료증과 최우수상 상장은 피고인 정경심이 증인에게 보낸 이메일에 첨부된 것이 아니라 검사가 다른 곳에서 압수한 수료증 파일들을 제시한 것인데 조사 당시 증인은 그 사실을 알고 답변했었나요?
증 그것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은 없습니다.
검찰은 문서들을 제시하면서 마치 정경심 교수가 보낸 이메일에 첨부된 문서를 제시한 것처럼 오인하게 만들어 담임교사로 하여금 “맞다”는 대답을 이끌어낸 것이었다. 애매한 질문으로 원하는 답을 이끌어내고, 그 답을 원하는 결론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검찰의 상습적 수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