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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방랑기 374-닛코(日光)
7월30일 닛코으로 갔습니다. 아사쿠사(浅草) 역에서 시모이마이치(下今)역까지 가서 도부닛코(東武日光)역가는 열차를 갈아탓습니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닛코 절
도부닛코역에 도착했습니다
도치기의 산에 둘러싸여 관광 자원이 풍부한 닛코시는 닛코 온천 및 기누가 와 온천이 있는 온천지로 유명합니다. 닛코 온천은 1,200년 이상의 역사를 가 졌으며, '약사의 탕'이라고 불릴 만큼 피부병이나 상처 치유에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기누가와 온천은 귀족이나 승려만이 사용할 수 있었던 귀한 치유 온천으로 알려져 있으며, 피로 회복이나 건강 증진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현재는 닛코 및 기누가와 모두 관동지역 유수의 온천지로 유명해졌으며, 각각 다른 수질과 관광 명소, 맛집이 많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도쿠가와이예야스(德川家康)
일본 도치기현 닛코시에 위치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시신이 안장된 능. 린노지(輪王寺)닛코후타라산 신사( 日光二荒山神社)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 '닛코의 신사와 사찰(Shrines and Temples of Nikko)'을 이루고 있습니다.
동조궁에 있는 8개의 건축물과 신사에 있는 2개의 검이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외 수많은 중요 문화재가 있습니다.
1616년에 사망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죽기 전에 혼다 마사즈미, 난코보 텐카 이, 곤치인스덴(金地院崇傳)을 불러 자신이 죽으면 쿠노산(久能山)에서 장사 를 치르고 장례는 조죠지(增上寺)에서, 위패는 다이쥬지(大樹寺)에서 봉안한 후 1 주기에 닛코에 작은 사당을 지어 그곳으로 이장해 신으로 모시면 간토의 수호 신이 되겠다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1년 뒤 이에야스의 시신은 닛코 에 지어진 작은 사당으로 이장되었습니다.
이에야스의 사후 1년인 1617년, 천황으로부터 동조대권현 )이라 는 신호를 받고 이에야스가 신격화되자 이때부터 전국 각지에 동조사 가 500곳 이상 세워졌습니다.! 1634년에는 이에야스의 손자이자 3대 쇼군이 된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할아버지의 사당에 참배한 후 장인 1만 5천 명과 인력 4 50만 명을 동원해 대규모 증축을 개시, 1636년에 현재의 모습을 갖춘 닛코 동 조궁이 건립되었습니다. 1645년에는 궁호(宮號)가 내려져 동조사에서 동조궁( 東照宮)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원래는 지명을 붙이지 않고 그냥 동조궁이라 부르면 되지만 워낙 동조궁이 많기 때문에 구별을 위해 총본산 격인 이곳의 동조궁을 닛코 동조궁이라 부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신여(神輿)
제례때 신위를 모시고 메는 가마
도쿠가와이예야스 의 신여
미나모토노요리토모쿄의 신여
세사람의 신여 앞에서
참고로 에도 성 내부에도 동조궁이 있었고 에도에서 닛코 가도를 따라 동조궁 으로 이어지는 행렬 행사인 천인무자행렬( 千人武者行列)을 진행하였으나, 막부 말기를 겪으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 보신전쟁 때는 전란에 휘말려 서 파괴될 뻔한 적도 있었다. 신정부군이 동조궁에 포격을 가하려 했으나 명령을 받은 도도 타카유키(도도 다카토라의 후손)가 "다카토라 공이 곤겐(이에야스)께 입은 은혜가 있다."라며 명령을 거부했다고.
메이지 시대에는 신불분리령 (神佛分離令) 으로 동조궁에서 린노지(輪王寺) , 닛코 후타라산 신사(日光二荒山神社 )가 분리되어 나갔는데, 원래는 하나의 거대한 성역이었기에 세 시설의 건축물들이 분리되지 않고 서로 섞였다. 그래 서 동조궁, 린노지, 닛코 후타라산 신사를 합쳐서 2사1사 (二社一寺-)라고 부릅니 다.
일광 동조궁보물관
조선의 흔적
지금의 화려한 동조궁이 막 완성된 1636년(인조 14년)은 4대 조선 통신사가 에도에 방문했을 때이다. 본래 통신사들의 기본적인 임무는 에도에 도착해서 쇼군을 만나 조선이 보내는 외교 문서인 국서를 전달하고 일본 측의 답서를 받 는 것이었으며, 따라서 답서를 받으면 에도에 오래 머물지 않고 곤 조선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는 답서를 받았음에도 막부가 굳이 닛코의 동조궁에 방문해달라고 강권하여 방문하였습니다
4대 조선 통신사가 에도에 방문함은 표면적으로는 양국의 태평을 축하하기 위 해서였지만, 실은 쓰시마의 다이묘인 소 요시토시와 그 가신인 야나가와 일가 사이에 분쟁이 생겨 야나가와 시게오키가 막부에 국서 조작을 고발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에 막부는 쇼군이 직접 재판을 연 끝에 소 요시토시의 편을 들었으나, 통신사행을 실현하여 외교적인 능력을 보일 것을 요구 했습니다. 한편 조선 측으로서는 청나라의 위협으로 불안했기에 일본의 사정을 자세히 알면 알수록 좋았으며, 이에 따라 정사 임광 등을 파견하긴 했지만 상 황이 상황이다 보니 귀국을 서둘러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동조궁 방문이 갑자기 결정되었으니 명분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가, 결국 유람만 한다는 조건 으로 방문했습니다.
그렇게 동조궁에 간 통신사 일행은 이에야스의 사당에까지 들어가면 참배를 해야할 수도 있어 이를 피하기 위해 눈이 많이 온다는 이유로 그냥 내려와버렸습니다. 임광은 이 과정을 사행록 병자일본일기에 남겼는데 동조궁 방문은 사전 논 의 없이 갑자기 이뤄진 일이었으므로 나중에 문책받을까 두려워 부정적으로 기록하고 묘사했습니다. 임광 뿐 아니라 부사 김세렴, 종사관 황호도 마찬가지이며, 연구자들 중에는 세 사람의 사행록 내용이 서로 비슷비슷하므로 동조 궁을 열심히 까자고 사전에 논의라도 한 것은 아닐까 하고 추측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후 1642년(인조 20년), 도쿠가와 이에츠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5대 조 선 통신사의 방문에 앞서 막부는 사신을 보내 동조궁의 사당에 걸어 둘 어필과 시문(詩文) 범종과 서명(序銘)을 청했습니다. 인조는 이를 들어주기로 하였는데 조정에서 어필만큼은 보낼 수는 없다고 하여 대신 의창군 이광이 대필하여 일광정계창효도량(日光淨界彰孝道場)라는 편액을 보냅니다. 한편 동종을 주조하게 하고 대제학 이명한(李明漢) 이 서(序)를, 예조참판 이식(李植)이 명 (銘)지은 후 행사직 오준(吳竣)이 동종에 글씨를 새겼습니다.
오중탑
1648년 쇼나이(庄內)의 다이묘 사카이 타다가츠(酒井忠勝))가 봉납하였으나 1812년에 화재로 소실되었기에 1818년에 다시 지어습니다. 각 층은 땅, 물, 불, 바람, 공기 순으로 각 요소를 나타내었습니다. 목탑의 심주(心柱: 중심 기둥)가 내부에 있어 지진으로부터 피해를 최소화하는 기능을 했습니다.
양명문(陽明門)
문 양쪽에 물결 모양의 합각 4개가 있는 화려한 카라몬인 카라요츠아시몬(唐四脚門) 일종으로, 팔선과 칠복신을 장식한 611개 장식이 달렸습니다.
닛코 동조궁(日光東照宮)은 일본 도치기현 닛코시에 있는 신사입니다. 닛코의 신사와 사원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범종
인조가 선물한 청동 종. 양명문 앞에 있으며 맞은 편에 아래 등롱이 있습니다.
세 원숭이(三猿)
닛코 동조궁의 상들 중 여러 미디어에 모티브로 등장할 정도로 유명합니다.
1617년 건립되었으며, 처음에 구노잔 도쇼구에 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 골이 긴 행렬 끝에 이곳에 안장되었다 도쿠가와 막부의 3대 쇼군 도쿠가와 이 에미쓰 때 크게 확대되었다. 에도 시대 에 에도 막부는 닛코 가도를 따라 에도 에서 닛코 도쇼구까지 장엄한 행렬을 거행하였다. 오늘날에도 이를 재현하는 천인무자행렬(千人武者行列) 된다.
잠자는 고양이(眠り猫)
동쪽 회랑에 있는 히다리 진고로(左甚五郞 )의 작품으로, 닛코를 대표하는 상이기도 하다. 진고로는 고양이를 닛코와 이에야스의 정신을 상징한다고 생각하였으며, 해당 일화가 다음과 같이 전해집다.
세 원숭이가 각각 눈, 귀, 입을 가리고 있는 이유는 '사악한 것은 보지도, 듣지 도, 말하지도 말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르침에서 유래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 다. 위의 논어에 나오는 격언 외에도, 마하트마 간디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 으며 간디가 힌두교 극단주의자 나투람 고드세의 총에 맞아 타계하기 전 남긴 유품 중 하나로 세 원숭이 조각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원숭이라는 상징은 없 이, 삼불원(三不願)이라는 단어가 보기 싫은 것, 듣기 싫은 것, 말하기 싫은 것 이라는 바라지 않는 세 가지를 의미합니다.
논어를 통해 알려진 만큼 아시아 전반에서 인지도가 있는 개념인데, 원숭이와 연결되는 것은 일본의 말장난에서 나온 개념이다. 세 원숭이들은 일본에서는 ~ざる로 독음하는데, 이는 '~원숭이'라는 뜻과 '~하지 않다'라는 2가지 의미 를 갖고 있습니다. 눈을 가린 원숭이는 미자루(見ざる:보지 않는다), 귀를 가린 원 이는 키카자루( 聞かざる:듣지 않는다), 입을 가린 원숭이는 이와자루( 言わざる:말하지 않는다)입니다. 그래서인지 주로 일본 창작물에서 이를 모티브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날에는 옛날의 해석과는 달리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아무것도 듣도보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라는 뜻으로 사용되거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을 상징하는 데에 세 원숭이를 활용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며느리가 시집을 가면 3년 간은 보지 말고, 다음 3년 간은 듣지 말고, 다음 3년 간은 말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원숭이와는 관련 없지만 설화와는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 최소한 3년이 3번이나 언급되고, 하지 말라는 것도 세 원숭이와 비슷하니 아는 사람이 보면 연상케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영어 숙어로도 있는데, 'See No Evil, Hear No Evil, Speak No Evil'이라고 쓴다. 할리우드 영화나 게임에도 써지는 문구이니 한번 귀 기울여봅니다. 일본의 세 원숭이 신앙을 칭할 때는 보통 도'Three Wise Monkeys'라고 합니다.
• 상신고(上神庫)코끼리 조각
에도 막부의 전성기에 재건된 만큼 각 건물의 처마, 기둥 등에 화려하고 정 교하게 조각된 장식들이 많이 있으며 그중에서 코끼리 조각은 조각가가 실제 코끼리를 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들은 얘기와 기록만 가지고 조각했다고 합니다.
닛코 도쇼구의 8개의 건축물이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있고 34개의 건축물이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있습니다. 또한 신사에 있는 두 개의 검은 국보로 지정되 어있고 그 밖에 다른 유물들이 중요 문 화재로 지정되어있다. 도쇼구의 유명한 건물은 화려하게 장식된 양명문(陽明門)입니다. 두 번째 문인 당문( 唐門)은 흰 장신구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닛코 도쇼구를 방문하면 여러 가지 건 물에 다양한 동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당문 주변에는 히다리 진고로가 만든 잠자는 고양이가 조각되어있으며 평화로움을 상징합니다. 신사의 마구간에는 세 원숭 이의 8개 부조 그림이 조각되어있습니다. 원숭이는 말을 수호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8개의 그림에는 원숭이의 일생이 그려져 있고 이것은 인간의 평화로운 생활 방법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이들은 나쁜 것은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가르침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곳의 5층탑은 1650년에 다이묘가 기부해 세워진 것이었으나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18년에 재건되었다. 각층은 각각 "흙" "물" "불" "바람", "하늘"을 청동냅니다.
수 백개의 계단은 삼나무 숲을 거쳐 이에야스의 무덤까지 이릅니다. 도리이 현판의 글씨는 고미즈 노오 천황이 쓴 것입니다. 5m 높이의 청동탑에는 이에야스의 유골이 담겨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능
잠자는 고양이를 지나 720계단을 올라가면 나오는 장소로, 우측에 있는 청 동 그릇에 유해가 남아있습니다. 이때 이에야스의 시신이 안장된 청동탑 앞에 있는 삼구족(三具足)은 인조가 보낸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것은 아니며 1812년에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만든 것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일본 : 1543~1616, 덴분 11년 음력 12월 26일[2| ~겐나 2년 음력 4월 17일[3])는 일본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이자 센고쿠 다이묘입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함께 향토삼영걸로 불립니다. 가계는 미카와의 고쿠진 마쓰다이라 씨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 이후 1600 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을 지휘 하였으며, 승전 이후 에도 막부를 개 창하여 첫 쇼군(재임: 1603년 ~ 1605년)이 되었습니다. 1605년 3남 히 데타다에게 쇼군 직을 물려준 다음에 도 오고쇼의 자격으로 슨푸에 머무르 며 정치에 참여하였습니다. 사후에는 닛코 동조궁에 묻혔으며, 도쇼다이곤겐( 동조대권현)으로 신격화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이에야스는 1543년 1월 31일 (和歷 덴분 11년 12월 26일) 미카 와국 오카자키성에서 태어났습니 다. 아명은 마쓰다이라 다케치요(松平竹千代)로 아버지는 마쓰다이라 히로타다( 松平広忠)이며 어머니는 가리야성의 성주인 미즈노 다다마사 (水野忠政)의 딸 오다이노가타( 於大の方)입니다.이에야스가 태어났을 때에는 각각 열일곱 살과 열다 섯 살의 젊은 나이였습니다.당시 미카와 마쓰다이라 씨는 히로타다의 아버지 마쓰다이라 기요야스(松平淸康)가 살해당한 모리야마의변 사건이 발생한 후 세력이 크게 쇠퇴하여 기스 루가국의 이마가와 요시모토에게 원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마쓰다이라 씨가 지배하던 미카와 국 동부는 이마가와 씨가 지배하고 있었고, 서부는 오와리국의 오다 노부히데가 계속 노리던 상황이었습니다.
소원을 종이에 적어 접어서 놓습니다.
獻酒樽(헌주준) 헌납한 술통
석등이 내키보다 큽니다.
나무의 둘레가 나보다 더 굵습니다.
이곳의 높이와 도쿄의 스카이튜리랑 같은 높이입니다.634 m은 일본어로 무사시로 발음이 됩니다.
무사시(영어: Musashi, 일본어: 武蔵)다음과 같은 대상을 가리킵니다.. 무사시노쿠니는 일본의 옛 구니로, 현재의 도쿄도와 사이타마현의 대부분(스미다강 동부), 가 나가와현의 일부(가와사키시 전체와 요코하마시 동쪽)에 해당합니다.
이곳은 린노지(輪王寺)입니다.
린노지와 후타라산 신사 다는 모두 불교 승려인 쇼도 쇼닌이 산 중 종교시설로 세운 장소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린노지 사원은 일본에서 신토와 불교가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 입니다.
키 큰 삼나무와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어 가을이 되면 주변 전 체가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경치로 바입니다.
린노지에서 가장 인상적인 명물은 각 7.5미터에 달하는 높이의 세 금박 불상입니다. 이 불상들은 닛코 지역에 있는 난타이산, 뇨 호산, 다로산의 산신들을 각각 상징합니다.
산신을 모시는 닛코의 화려한 사찰 린노지 사원은 이웃한 도쇼구 신사 더와 마찬가지로 금박을 입힌 화려한 조각이 돋보이는 곳으로서, 뒤쪽에 있는 세 산을 지키는 부처들을 모시고 있습니다. 쇼도 쇼닌이라는 승려가 창건한 이곳 은 닛코에서 가장 중요한 불교 사찰입니다.
766년 불승 쇼도 쇼닌이 지은 곳이며, 여전히 천태종 수행 암자로 이용 중입니다.
린노지(輪王寺)는 일본 도치기현 닛코시에 있는 15개의 건물로 이루어진 천태종의 사원 단지입니다. 766년에 불교 승려인 쇼도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깊은 산 속이라는 지리적 고립성 때문에 사원은 곧 불교 승려들이 고독을 추구하기 위해 찾는 곳이 되었습니다.
절의 가장 유명한 건물은 삼불당(三仏堂)로 이 곳에는 본방표문, 호법천당 .상륜 등이 있습니다. 후타라산 신사 서쪽에는 도쿠가와 막부의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의 무덤인 대유원영묘(大猷院靈廟)가 있습니다. 그 남쪽에는 상행당(常行堂)과 법화당(法華堂)이 있으며 이곳으로 부터 긴 돌층계를 오르면 중흥의 선조 덴카이를 모시는 자안당(慈眼堂)이 있습니다. 쇼도를 모시는 개산당 (開山堂)은 동조궁 북쪽, 다키오 신사에의 참배길 도중에 있습니다
닛코 동조궁, 후타라산 신사와 함께 닛코의 신사 와 서원으로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고지도 높은지 그리 덥지않고 숲이 많아서 공기가 맑습니다.
역주의의 란부르 면집으로 왔습니다
자루소바(모리소바)를 먹었습니다
식사후 온천을 물어보니 친절하게 가르켜준 이집주인.
그래서 이곳에서 커피를 먹었습니다
홈메이드 치즈케익과 커피가 이집의 자랑입니다
40년 넘게 치즈케익과 커피를 만든 맛집입니다.
맛있습니다.
닛코 하면 온천입니다. 소개로 호텔에 있는 온천을 즐겼습니다
커피집입니다. 닛코에서 도쿄로 돌아갑니다
우에노역에서 가까운 아메야요꼬쵸 거리입니다. 먹거리거리입니다.
아메요코 이곳은 전란때 미국부대에서 나오는 물건들을 팔았는데 당시 조선인들이 이곳을 자리잡기 시작하여 만든거리라고 막내삼촌이 이야기 하더군요. 그래서 80년대까지 이곳저곳에서 한국어가 종종 들렸다고 합니다 아메는 아메리카의 뜻이고 요코(橫)는 가로질르는 거리라는 뜻입니다
이곳의 맛집 우나토토를 찾아왔습니다
줄서서 기다리다 들어갔습니다. 장어덮밥이 일품입니다
1,900엔 짜리 장어덮밥와 2,500엔 덮밮을 주문했는데 2.500에 짜리에는 김치도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