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1일 토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Hallelujah!
- 오늘은 갑작스런 한파의 아침을 맞고 보니 한 겨울을 실감하며 세월이 너무 빨라서 오늘 지나 내일 주일은 동지 날이며, 대강절 넷째주간 성탄을 기다리는 주말 아침인데, 감기조심 하시고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거룩한 성탄절 주간에 은혜와 사랑이 충만 하시고 주의 평강이 늘 함께 하시고 강건하시기를 바랍니다.
- 혹 뜻하지 않는 일로 인하여 고난을 받고 있는 경우라도 강한 주님의 손을 붙들고 소망 가운데 인내로 참아 내어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가시는 복된 성탄의 계절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 욥기 14장 1- 6절 }
1.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
2. 그는 꽃과 같이 자라나서 시들며 그림자 같이 지나가며 머물지 아니하거늘
3. 이와 같은 자를 주께서 눈여겨 보시나이까? 나를 주 앞으로 이끌어서 재판하시나이까
4.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에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
5. 그의 날을 정하셨고 그의 달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의 규례를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
6. 그에게서 눈을 돌이켜 그가 품꾼 같이 그의 날을 마칠 때까지 그를 홀로 있게 하옵소서!
◑◑◑◑ 제 목 ◑◑◑◑
◗◗ 욥이 절망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함
◑◑◑본문 이해와 요약 ◑◑◑
◗ 14장에서는 욥은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같이 신속하여서 머물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 이는 영원한 존재인 창조주 하나님에 대하여 인간의 제한성을 표현함으로서 인간은 그 짧은 시간마저도 기쁨과 행복을 누리면서 살지 못하고 수많은 괴로움으로 고난을 당하며 살아갑니다.
- 욥의 이 같은 진술은 자신이 당하고 있는 처지를 부각시키는 뜻이 있습니다.
- 욥은 자신의 병의 고통이 심해져 가자 자기를 본 자가 다시 볼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였습니다.
- 이러한 생각을 욥은 나무와 물에 비유하여 표현하였고, 욥은 나무에게 소망이 있는데, 그것은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한다고 하였으나 나무의 소망에 비하여 자신의 죽음에 따르는 소멸을 말하였습니다.
- 욥은 자기가 음부에 가 있을 때, 하나님에서 부르시면 곧 대답하겠노라고 하였습니다.
- 욥이 이러한 죽음을 기대한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아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께서 창조주로서 피조물을 아끼심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재창조 사역에서 밝히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걸음과 죄악을 살피신다고 했으며, 욥은 하나님께서 내 허물을 주머니에 봉하시고 내 죄악을 싸매신다고 하였습니다.
- 또한 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싸움에서 하나님께서 항상 승리하신다고 하였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명을 주관하신다는 뜻입니다.
-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심은 창조주이신 동시에 심판 주이심을 나타냅니다.
-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므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으며, 그 결정은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 욥은 사람이 죽으면 자손의 흥망을 알지 못하고 오직 자기 살이 아프고 자기 마음이 슬플 뿐이라고 하였는데, 그의 이러한 진술은 죽은 후에 썩어 가는 육체의 비참한 상태를 묘사한 것입니다.
◗ 결론적으로 욥은 인생의 무상함에 호소하여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소망은 끊어지고 깊은 슬픔만 느끼고 절망에 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 소발에 대한 욥의 마지막 답변이 기도문 형식으로 펼쳐지고 있는데, 그는 인생의 무상함과 현세의 종말이 되는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 욥은 자신의 인생관과 내세관을 피력하였습니다.
- 자기에게 찾아온 세 친구와의 본의 아니게 격론을 벌인 욥은 자신을 정죄한 친구들의 변론에 맞서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죽음을 앙망하기까지 합니다.
- 그래서 구원의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던 욥이 희망을 상실하고 극한 슬픔에 잠기는 모습을 우리는 본 시편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우리의 기도도 이럴 때가 있을 것인데, 기도를 하면서도 간절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중단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 그러나 우리는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간절하게 지속적으로 기도를 드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인간의 죄는 하나님의 의 앞에 항복 된다.(욥기14장4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선을 행할 능력이 없는 인간의 본질을 알 때, 주의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게 됩니다.
- 4절을 살펴보면 욥은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 이것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불의한 자임을 시인한 것으로 인간은 본질적으로 부정하여 의를 행할 수 없다. 라는 말입니다.
- 욥의 이 말은 그가 친구들의 주장에 따라 자기의 죄인 됨을 인정한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 그러나 욥이 인간의 본질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불의함을 인정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세상 사람들과 친구들의 주장에 따라 자기 자신을 죄인이며 불의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 욥이 이 말을 한 것은 그 의도가 세 명의 친구들의 주장들과는 전혀 다름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 사실 욥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본질적 의를 주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 욥은 9장 2절에서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만 자신은 친구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죄악, 곧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난의 원인으로서의 죄악을 범한 일이 없음을 주장한 것입니다.
- 하여튼 욥은 여기서 다시금 인간의 본질적 불의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이처럼 욥이 인간의 본질적 불의를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완전한 의를 기대하시고 자신이 거기에 미치지 못하여 징계하셨다면, 그것은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이를 수 없는 일을 요구하신 것임을 밝힙니다.
- 비록 자신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완전한 의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해도, 긍휼을 베풀어 자기를 고난에서 놓아주기를 바란다는 의미에서 한 것입니다.
- 그러나 그 의도가 무엇이든지 간에 욥이 인간의 본질적 불의에 대하여 말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 태초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두 사람의 혈통에서 DNA가 태어난 인간 가운데에는 죄와 무관한 깨끗한 자가 아무도 없기에 모든 인간은 다 죄악 중에 태어나 죄를 짓고 삽니다.
- 그리하여 불순종한 이후로 인간에게는 본디 선함이란 없는 것이고, 도무지 선과 의를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 이와 관련하여 시편14편 2,3절에서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사실 하나님께서 노아 시대에 대 홍수로 인류를 쓸어버리신 것도 인간에게는 선함이란 없고 하는 일마다 악한 것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도 이러한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할 것이며, 그래야만 우리는 하나님을 바르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 그래야만 아기 예수께서 왜? 이 땅에 오셔야 했으며, 왜? 십자가를 지셔야 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 이사야53장 6절에서 “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 그러므로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크며, 절실한지를 알고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감격과 감사함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 사도 바울이 율법아래 있다가 왜 그렇게 복음을 접한 후에 감격하고 감사하며 일생을 복음 앞에 헌신하는 자가 되었습니까?
- 그는 율법 아래서 죄를 깨닫되 선과 의를 행할 아무런 능력도 없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 그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곳이 로마서 7장인데, 거기에는 율법 안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 우리가 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깨닫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알면서도 율법을 다 행할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 그는 선을 행할 마음은 있지만, 행할 능력은 전혀 없는 자신의 한계를 반복적으로 한탄 하듯이 하소연합니다(참고: 로마서7장15-21절).
- 이러한 그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로마서7장24절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도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처절한 자기 패배, 자기 절망을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 하지만 이것이 그의 최종적 결론은 로마서 8장에 나타나는데, 거기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 로마서8장 1,2절에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라고 하였습니다.
- 무엇을 말해 주는 것입니까? 예수 만난 기쁨, 예수로 말미암은 구원의 행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에베소서2장 5절에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 지금 내가 바르게 산다는 인간의 의가 하나님의 의 앞에 자랑거리가 될 수 있겠는지? 그리고 나의 죄와 허물이 무엇으로 정하게 될 수 있는지? 아무리 흉악한 범죄인이라도 예수님의 의 앞에 용서가 될 수 있다고 믿는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선을 행할 능력이 없는 인간의 본질을 알게 되면 주님의 대속의 은혜에 감격하며 항복하게 됩니다.
- 그러므로 진정한 구원의 감사와 감격은 오직 자기가 얼마나 큰 죄인이며, 동시에 자기가 얼마나 의를 행하기에 구제 불능 즉 인간의 전적부패성을 가진 인간인가를 깨닫는 자만이 얻을 수 있습니다.
- 골로새서2장 13절에서“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 예수님을 백 날 천 날 믿어도 그 자신이 의를 행할 수 없는 죄인임과 동시에 철저한 무능함과 한계를 처절하게 깨닫지 못한다면, 그는 구원의 진정한 감격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 그저 한 사람의 종교인으로 남을 뿐입니다만, 이것을 깨닫고 느끼는 순간 그 어떤 죄인, 완악하고 강퍅한 마음의 소유자라도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구원의 감격 속에 사는 성도로 변할 수 있습니다.
- 그러므로 본문을 통해 욥의 고백처럼 ‘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 이것을 다시 한 번 깊이 묵상하여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의 삶이 오염 된 세상 것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감격과 은혜에 깊이 젖는 성탄절 감사의 삶이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