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우유보다 달콤한 딸기 맛이 나는 딸기 우유를 좋아하나요? 그런데 이 분홍색 딸기 우유를 만들기 위해 '벌레'를 사용한다는 걸 알고 있었나요? 딸기 우유·사탕 등에 붉은색을 내기 위해 천연 색소를 사용하는데요. 이 색소는 선인장에 기생하는 연지벌레 수만 마리를 말려서 가루로 만들어 추출한다고 해요. 이 사실을 알고 나서 "연지벌레 때문에 딸기 우유를 못 먹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지난달 카이스트 이상엽 교수 연구팀이 연지벌레를 사용하지 않고도 붉은색 색소를 생산할 방법을 찾아 화제가 됐어요.
과거에는 인공적으로 색소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자연물을 이용해 색깔을 만들었습니다. 음식을 더욱 먹음직스럽게 보이도록 하거나 화장품에 색깔을 입히는 데 색소를 이용했지요.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자연에서 색소를 얻었을까요?
벌레 수만 마리로 붉은색 만들어요
자연에서 얻는 천연 색소는 원료에 따라 동물성·식물성·미생물성 색소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동물성 색소는 연지벌레에게서 얻는 붉은색입니다. 연지벌레는 남미에서 자라는 선인장의 액즙을 빨아먹는 벌레인데요. 연지벌레의 몸에는 화학물질인 '카민'이 있습니다. 이 카민이 붉은색을 내요. 연지벌레는 몸속에서 카민을 만들어 저장합니다. 몸의 17~24%나 된다고 해요. 그래서 고대 남미에서는 이 연지벌레를 붉은색을 내는 데 이용했습니다. 16세기에 유럽으로 전해져 현재 전 세계에서 사용하고 있어요.
선인장에 붙어 있는 연지벌레를 손으로 잡아 한데 모아서 삶거나 쪄낸 다음 말려서 가루로 만들어 붉은 색소를 추출하는데요. 1㎏의 카민을 얻기 위해서는 8만~10만 마리의 연지벌레가 필요하다고 해요. 카민은 밝고 선명한 붉은색을 내고 멕시코 등 일부 지역에서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16세기에는 왕족의 의상에만 사용될 정도로 귀했어요. 오늘날에는 딸기 우유처럼 붉은색을 내는 식품에 사용됩니다. 아이스크림·사탕·젤리·햄·게맛살 등에 연지벌레에게서 추출한 카민이 쓰이고 립스틱 같은 화장품에도 널리 쓰이고 있어요.
봉숭아 꽃에서 붉은색 얻었어요
우리나라 전통 혼례를 보면 신부의 양 볼과 이마에 동그랗게 붉은 점을 찍었어요. 연지곤지라고 하는데요. 이때 사용한 원료는 국화과에 속하는 식물인 잇꽃에서 얻었어요. 잇꽃은 노랗게 피었다가 점점 빨갛게 변해요. 그래서 우리 조상은 잇꽃을 홍화(紅花)라고 불렀다고 해요.
여러분도 봉숭아 꽃잎으로 손톱을 붉게 물들여봤을 거예요. 왜 다른 꽃이 아닌 봉숭아 꽃을 이용했을까요? 봉숭아 꽃잎을 모아 으깨면 액포가 터져 색소가 나오는데요. 다른 꽃에 비해 색소가 쉽게 빠져나오고, 색소 입자 크기가 작아 손톱을 구성하는 단백질 성분인 케라틴 조직 사이로 쉽게 스며들 수 있답니다. 이때 착색이 더 잘되게 하기 위해 우리 조상은 백반이나 소금을 함께 섞어 손톱을 감쌌는데요. 백반이나 소금이 매개 물질이 돼 색소 입자가 진하게 더 잘 스며들도록 돕는다고 해요.
당근, 토마토 등으로 천연 색소 만들었어요
요즘은 화학적으로 만든 염색약으로 머리카락을 물들이지만, 옛날에는 머리카락을 염색하는 데에도 천연 색소를 이용했어요. 기원전 3000년쯤 고대 이집트에서는 검은 암소의 피와 거북이 등껍데기, 선인장 열매 등을 원료로 만든 즙으로 머리를 염색했다고 합니다. 때로는 황토나 백토, 돌을 곱게 갈아 만든 가루를 뿌려 머리 색깔을 바꾸기도 했대요.
우리나라에도 머리를 염색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요. 조선 시대에는 머리를 검게 염색하기 위해 식물을 이용했다고 하는데요. 기름 두 되(곡식을 헤아리는 사각형 그릇)와 오디 한 되를 그늘진 처마 밑에 놓고 바르거나 호두의 겉껍질을 깻잎과 함께 넣고 달여서 그 물로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이 검은색으로 염색됐다고 합니다. 손톱과 마찬가지로 머리카락도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는데, 머리카락 표면의 단백질 사이로 색소 입자를 넣어 착색하는 방식입니다.
이 밖에도 적양배추, 당근, 토마토, 고추, 파프리카, 수박, 오미자(적색), 자색고구마, 포도(자색), 메밀(황색), 쪽(청색), 오징어 먹물(흑색), 코코아(갈색) 등 다양한 천연 색소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우리 생활 곳곳에 이용되고 있답니다.
[천연 색소 카민은 인체에 해가 없을까?]
대표적인 천연 색소인 카민은 연지벌레를 이용해 추출하는데 벌레를 이용하기 때문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색소를 추출할 때 벌레에게서 나온 단백질 등이 포함돼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고 벌레에게서 나온 물질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1960년대 미국과 일본 등에서 카민 색소가 있는 식품을 먹고 두드러기나 복통, 과민성 쇼크 등의 증상이 나타난 사례들이 보고됐어요. 세계보건기구(WHO)는 "카민 색소가 사람에 따라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카민 색소를 이용해 만든 식품을 파는 것을 꺼리기 시작했고 많은 업체가 카민 사용을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벌레 걱정은 조금 덜어도 됩니다. 연지벌레 없이 카민을 생산하는 데 성공한 카이스트 연구팀은 "이번 기술로 다양한 천연 색소를 고효율로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안주현 박사·서울 중동고 과학 교사 기획·구성=최원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