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公州)의 옛이름은 '고마', 지금도 고마라는 이름이 '고마나루'에 남아있다. 물론 '곰나루'로 많이 부르기는 하지만.
그 고마가 곰으로 압축되고, 한자 표기로는 곰 웅(熊)자를 빌려서 웅진(熊津)이 된다.
그것은 다시 고려 때에 이르러 '곰주'가 '공주'로 음운변이를 일으켜 지금의 공주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땅이름 풀이다.
고맛나루(고마나루)는 지금은 이름만 남아있지만, 1960-70년 대까지도 나룻터 노릇을 했고, 거기에는 주막같은 집이 한 채 있었는데. 지금은 다 사라지고 말았다. 낙동강의 삼강나룻터 삼강주막처럼.
전해 내려오는 고마나루 전설을 읽어본다.
<삼국유사 기이편>에 나오는 내용과 비교해본다. "고조선 왕검조선"
붉은 점 표시 부분부터 왼쪽으로 대충 훑어 본다.
( 아주 먼 옛날 옛적에) 곰(熊)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한 굴에 살고 있었는데.. 늘 신(神) 환웅에게 빌기를 사람되게 해달라 고...
이에 쑥(艾:애) 한 줌과 마늘(蒜:달래 : 산) 20개를 주면서 햇빛보지 않고 3.7일을 정성들이면 사람이 될 것이라 했단다.
우직한 곰은 성공하고, 범은 못하고.
그래서 곰은 여자가 되어 환웅(桓雄과 짝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이야기.
이 곰은 나중에 '삼신할머니'가 된 것이 아닌가 한다.
<단군신화 곰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 보기>
붉은 점 표시 부분 이하 : 有 一 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雄願化 . . . .
고마나루가 있는 공주 연미산에는 이와 비슷한 전설을 안고 있는 '곰굴'이 있다.
고맛나루 백사장 솔밭 사이에 있는 곰 웅신상, 사당도 있었다는 데... 조각상만 보인다.
아래 사진은 국립공주박물관 도록에 나와있는 '석상'이다.
곰나루 웅진동(熊津洞)에서 발굴된 백제시대 석상, 마치 곰의 모습을 닮았다.
(무주 적상산 서창마을의 고석할미상과도 흡사한 것이 많은 의문을 가지게 한다.)
아래 사진은 충청감영의 정문 " 충청도포정사(布政司) " . '올바름(正=政)을 베푼다(布)는 뜻'의 정문 현판.
복원된 문은 현재 공주사대부설중고등학교 정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뒷산은 봉황산, 앞에는 제민천(濟民川) 이 흐르고 있다.
일제시대에는 봉황산 중턱에 일본신사가 자리하고 있었고, 그리로 올라가는 계단이 남아 있었다.
일제시대에는 충남도청 정문이었다가. 1932년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그 터에 공주사범대학이 들어 선다.
백제시대 왕궁자리는 현재의 공산성으로 추정되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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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 속에 나오는 곰(곰 웅 熊) 이야기를 해본다.
갑골문에는 곰을 상형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금문(金文)에 오면 곰이 형상이 제법 닮은 꼴을 갖기 시작한다. 큰 머리. 앞부분과 몸통과 앞뒤 두 다리씩.
해서체에서는 오늘날의 '능(能)'자로 완성된다.
곰의 본래 한자는 '능할 능(能)' , 그것이 오늘날에 와서는 곰 웅(熊)자로 바뀌어 사용된다.
그 변천 해석이 재미 있다.
곰의 모습을 상형한 갑골문은 재주, 능할 능(能)자로 나와 있다.
훗날 발 네개를 뜻하는 불 화(火) 밑이 더해져서 오늘날의 곰 웅(熊)으로 변한다.
곰이 본래 재주가 많단다. 나무타기에도 능하고, 수영도 잘하고, 물고기 낚기도 능해서 연어도 잘 잡아 먹고,,
못하는 것이 없는 만능 재주꾼, 그래서 재주의 뜻을 갖는 능(能)자로 본래 의미가 변해버리고,
그 자리를 빼앗기자 곰은 발 네개를 다시 첨가한 누증자 웅 (熊)자로 변신한다.
곰은 점 4개가 있는 곰 웅(熊)자로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이른바 누증자, 또는 후기자의 탄생이다.
한자에는 이 누증자가 부지기 수 (수 백 자도 더 된다는데...)....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받아간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고마, 꼬마, 고맙습니다; 감, 검 개마, 구마.. 등이 모두 이 '곰'에서 나왔다고 어느 국어학자는 말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나중 기회로 미루고.
(감사합니다.)
( 2024.12.14(토) 카페지기 자부리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