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관을 갖춰 입는 것을 중시했던 조선조에 문어 차림새가 양반들 입살에 자주 오르내렸다.
망건을 쓰고, 위에 갓을 올려야 했던 시절에 민머리 모양을 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보면 당시 양반들 식생활에 문어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문어는 귀한 사람에게 선물로 주고, 제물로 올려지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식용으로 즐기는 문어는 대문어(Paroctopus dofleini)와 참문어(Octopus vulgaris)다. 대문어를 두고 강릉에서는 피문어라고 한다. 겨울이 제철이다. 대문어의 수명은 5년 정도 되는데, 큰 것은 길이 3미터에 무게가 50킬로그램 이상이다. 하지만 2, 3년 자라는 참문어는 여름철이 제철이지만, 수온상승으로 겨울에도 남쪽에서 잡힌다. 돌문어 혹은 작다는 의미로 왜문어라고 불리는데, 자라면 60센티 내외의 크기에 무게는 3, 4킬로그램 정도 한다. 전 연안에 잡히지만, 여수 돌문어가 유명하다. 색으로 보면 참문어는 어두운 암갈색을, 대문어는 밝은 붉은색을 띤다. 제주에서는 문어를 뭉게나 물꾸럭이라고 한다.
문어는 오징어, 낙지, 꼴뚜기 등과 함께 몸, 머리, 다리로 순으로 이루어진 두족류다. 일반적으로 피는 빨간색이지만 문어는 파랗다. 붉은색을 띠게 하는 헤모글로빈 대신 헤모시아닌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리가 녹이 슬면 파랗게 변하는 것도 헤모시아닌의 영향이다.
서유구의 ‘청정관전서’의 우항잡록어명(靑莊館全書 第 55卷 盎葉記二 雨航雜錄魚名) |
* 조선의 특산물, 중국이 탐하던 물고기
‘지봉유설’에는 ‘문어는 팔대어, 다른 이름으로 팔초어다(文魚名八帶魚.亦名八梢魚)’라 했다. 또 ‘성소부부유고’는 ‘팔대어는 동해에서 난다. 중국인들이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서 중국 사신들이 오거나 중국에 보내는 예단에는 곧잘 문어가 포함되곤 했다. 인조 3년 4월 7일자 ‘승정원일기’를 보면, 천사에게 보낼 예단물선을 위해 산지로 공문을 보내 문어, 건복어, 다시마, 홍합, 해삼 등을 마련하자는 내용이 있다.
全湜, 以戶曹言啓曰, 各年天使時謄錄相考, 則禮單物膳中八帶魚·乾鰒魚·海帶菜·紅蛤·海蔘等物, 則自京下送, 羔·豬·鷄·鮮·海松子·乾獐·鴨子·鵝細酒等物, 則自本道備呈矣。今亦依前例預爲措備事, 開城留守·京畿·黃海·平安監司處, 發馬行移, 何如 傳曰, 依啓。
이덕무는 ‘청정관전서’의 ‘우항잡록어명’(靑莊館全書(第 55卷 盎葉記二 雨航雜錄魚名)에 ‘석거는 문어를, 낙제는 낙지를, 망조는 꼴뚜기를, 면어는 민어를 칭한다’고 했다. ‘우항잡록’을 참고해 정리한 것이다. 풍시가(馮時可)가 지은 ‘우항잡록’을 참고해 정리한 것이다.
‘자산어보’에는 문어를 장어(章魚)라 하고, 속명은 문어(文魚)라 기록했다. 그리고 문어의 특징을 잘 묘사했다. 당시 많은 서책에서 다리에 붙은 빨판을 ‘못’에 비유하는데, 자산어보에는 ‘국화꽃처럼 생긴 빨판이 마주하며 두 줄로 되어 있다. 한 번 달라붙으면 몸이 끊어질 지언정 놓지 않는다. 빨판을 이용해 이동한다.’고 설명했이다. 다만 배 안에 ‘온돌(溫堗)’이라는 것이 있는데 부스럼이나 단독(丹毒, 피부병)에 효과가 있다는 부분은 이해하기 힘들다. 온돌은 오적어라 기록한 갑오징어의 뼈로 추정된다. 갑오징어 뼈는 지혈효과가 있다. 또 이청이 덧붙여 기록한 것을 보면, 본초강목 등 중국 서책에서 중국에서 문어를 장거어(章擧어魚), 길어(佶魚), 망조어(望潮魚) 등으로 불린다고 소개하며, 우리나라는 팔초어(八梢魚)라 한다고 기록했다.
이익의 ‘성호사설’을 보면, 임진왜란 때 조선에 출병한 명나라 장수가 문어갱(文魚羹)을 보고 난처해하며 먹지를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두고 ‘문어는 우리나라에만 생산되는 까닭에 천장이 처음 보게 된 것이다’라고 했다. 이익은 임진년에 조선에 파견된 이여송 등이 중국 북쪽 사람으로 어물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문어는 중국 남쪽의 바다에서 잡히기 때문이다.
* 양반과 유학자들이 관혼상제의 제물로 즐겼던 해산물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문어는 가장 낮은 곳에서 서식하는 겸양의 덕을 갖춘 해산물로 해석했다. 또 붓글씨를 쓸 때 사용하는 것과 같은 먹물을 가지고 있으며 영리해 ‘선비고기’리 인식했다. 유교의 본향이라는 경상북도 일대에서는 제사는 물론 결혼식 등 잔치에 문어를 올린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비늘 없는 생선은 제물로 올리지 않았지만 문어는 예외였다. 특히 안동과 영주 지역에서 문어없는 제사는 생각할 수 없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함경도 등 37개 고을의 토산물이었다.
문어는 낮에는 바다 밑의 돌 틈이나 굴에 머물며, 어두워지면 활동한다. 어민들이 문어단지를 바닥에 내려 잡거나, 밤에 문어 낚시를 하는 이유이다. 여수를 비롯해 고흥, 완도 지역에서도 문어를 잡을 때 단지를 이용한다. 일본의 세토내해에서도 비슷한 모양의 문어단지를 본 적이 있다. 옛날에는 흙으로 빚어 구운 문어단지를 사용했지만, 지금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을 사용한다. ‘임원경제지’의 ‘전어지’에 낙지(章魚)를 잡을 때 항아리를 줄에 묶어 물속에 던져 넣으면 낙지가 스스로 항아리로 들어온다고 했다. 이를 문어잡이 어법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고성과 강릉 등 동해해역에서 잡히는 피문어는 지가리라 부르는 낚시를 이용해서 잡는다. 지가리는 연승어업의 일종이다. 긴 줄에 철사를 이용해 만든 30여 개의 낚시를 매달고 추를 은박지 싸고 비닐 테이프를 매달아 유인한다. 또 커다란 통발을 40여 개씩 매달아 정어리나 청어를 미끼로 넣어 100여 미터의 깊이에 넣어 잡기도 한다. 통발은 서해나 남해에서 돌문어를 잡는 어법인데 동해의 피문어잡이에 응용된 것은 오래된 어법이 아니다.
제주도에서는 ‘뭉게풍금대’라는 어구를 이용한다. 긴 장대에 미늘이 없는 낚시를 여러 개 묶고 그 위에 마른 장어살을 매달아 조간대 갯바위 틈에 넣어 문어를 유인한다. 최근에는 정어리나 고등어 등을 미끼로 넣은 통발을 이용해 문어를 잡기도 한다. 어민들만 아니라 낚시객들도 가을철이면 사천시를 비롯한 남해안에서 문어 낚시가 성시를 이룬다.
* 맛있는 문어는 물에 삶지 않는다
지금까지 먹었던 문어숙회는 잊어야 할 것 같다. 고흥에서 먹었던 문어숙회 맛을 잊을 수 없다. 조리하는 방법도 간단하다. 식용유에 마늘을 넣어 복아 향을 올린 다음 문어를 넣으면 더 좋다. 이때 물을 넣지말고 문어에서 나오는 수분만으로 숙회를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파나 양파 등 좋아하는 채소를 넣으면 된다.
동해에서 피문어는 삶는데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삶은 문어는 갈고리에 걸어서 건조대에 걸어 작은 꼬챙이나 칼로 다리나 몸통의 껍질 부분을 찌른다. 그러면 살과 피부 사이에 가득 찼던 물이 줄줄 빠진다. 피문어를 물문어라고 하는 이유이다.
글쓴이 김준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학술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