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때 고은 시인이 환속해서 처음 쓴 피안앵(彼岸櫻)이란 소설을 읽었다. 내용인즉 고아원 원장이 수용된 여자 고아들을 성노예로 삼는다는 이야기로 주인공 여자가 음(陰)씨로 기억이 된다.문장도 조잡스럽고 스토리 전개도 엉성했지만 제목이 철학적 냄새가 나기 때문에 읽다가 실망해서 그만 두었다. 이 당시 최의선씨가 쓴 <벽속의 여자>란 책이 나왔는데 이것은 영화화 되기까지 했다.
젊은 여자 작가가 당시만해도 봉건적 색채가 사회 전반에 깔렸을 때 이런 획기적인 소설을 쓴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최의선씨는 나중에 종로 5게에 소재한 여원이란 잡지에서 함께 근무한적도 있었다.얼굴도 예쁘게 생긴 작가가 어떻게 남녀관계를 리얼하게 그릴 수 있었는지 그녀를 볼때마다 이상한 생각이 들곤 했다.혹시 저 여자가 경험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 들어 불쾌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살았으면 아마도 69세쯤 됐을 것이다. 그 당시(60년도 초) 쟌느 모로란 불란서 여배우가 주연한 연인들이란 영화가 개봉이 되었는데 참으로 색스런 내용이었다. 그 영화를 중구 소공동 경남 극장에서 몰래 보았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모두 마귀할멈이 됐지만 김지미나 최은희 이경희,외국 배우로는 자크리노 사살, 캬롤 베이커 브리짓 바르도 같은 예쁜 배우들이 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을 때 그들이 출연한 영화가 대부분 남의 목소리로 취입한 순정영화였는데 "젊음이 밤을 지날때"란 제목이 매우 요란한 영화가 나왔다. 주연배우가 미남스타인 남석훈씨였다.남씨는 그후 홍콩으로 건너가 감독생활을 했다.살아있다면 80중반쯤 됐을 것이다
지금이야 아무것도 아니지만 당시에 남녀가 윗도리를 벌거벗고 침대에서 희롱하는 장면이 매우 선정적이었다.전체 줄거리를 보지 않고 단편적인 것에 방점을 찍는 독자들에게 그녀는 대중 작가였다.대중 소설과 순수소설과의 구분이 없는 서구와 달리 자신이 순수작가라는 꼴같지 않은 자들이 많은 한국적 풍토에서 그녀의 소설들은 순수를 고집하는 평론가들에게 시선을 끌지 못했던 것같다.
지금이야 별거 아니지만 그때는 매우 충격적이었다.바로 그 영화의 원작자가 박계형 소설가였다.그녀는 대학생이던 64년 동양방송 개국기념 현상문예에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이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등장, 70년대 후반까지 60여편의 작품을 발표하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나는 그 당시 그 작가가 쓴 소설을 대본집에서 빌려다 보곤했다.그러나 지금 기억나는 것은 거의 없다.
남녀간의 육신적인 사랑이란 그 즐거움이 끝난지점에서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오기 때문이다.그녀는 너무 일찍 세상을 알기도 전에 소설을 썼기에 인간의 심오한 고뇌와 고통에서 비켜갔고 남녀관계에서 오는 주위의 시선만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섬세한 심리 묘사와 감히 뒤따르지 못할 문장력과 스토리 구성은 천재적이었다.지금 아마도 칠순은 넘었을 것이다.그만한 필력을 갖춘 여류작가가 지금도 드물 것이다.아마도 좀더 무거운 글에서 시작을 했다면 박경리 선생을 훨씬 뛰어넘을 작가로 회자되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글을 놓고 문단을 한때 떠났다.
“내 소설에 회의를 느낀다”며 82년 ‘사랑의 샘’을 마지막으로 절필했다가 2001년 ‘환희’로 다시 문학의 품으로 돌아왔다.
아무튼 그녀는 우리가 살던 젊은 시절에 가장 많은 글을 썼고 지금은 모두가 칠순을 넘긴 그녀의 독자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작가로 남아있다.나머지 짧아진 날들 속에서 모쪼록 인생의 깊이 있는 이야기로서 부활해줄 것을 바라마지 않는다.톨스토이가 부활을 쓴 것이 70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