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뒷북치는 꼴이다.
러시아의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이 지난해 봄 수감 중인 중범죄자들을 사면을 미끼로 대거 용병으로 고용한 뒤 격전지 '바흐무트' 전선에 투입하자, 죄수들을 '고기 분쇄기'로 집어넣었다고 비판하던 우크라이나가 8일 자국의 수감자들을 최전선으로 동원하기 위한 법안을 의결했다. 최근 동원 기피자 처벌을 강화하고, 대상 연령을 '27세 이상'에서 '25세 이상'으로 확대하는 등 동원 대상을 확대하는 법안을 채택했지만, 여전히 최전선의 병력 부족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당국에게 동원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지만, 동원을 기피하는 사회 분위기상, 이번 수감자 동원 법안도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지 의문이다.
우크라이나도 수감자들을 전쟁에 동원하기로 했다/사진출처:novyny.live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최고라다(의회)는 범죄 행위로 수감된 죄수들을 징병할 수 있는 내용의 법안을 8일 채택했다. 러시아와 다른 점은, 잔여형기 3년 미만이고, 살인이나 성폭행범, 소아성애자, 마약사범, 음주 교통사고 등 강력범이나 부패 공직자, 안보 관련 범죄자 등은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것 등이다.
동원 대상자를 제한한 것은, 양날의 검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벌써부터 나온다. 러시아와 달리 중범죄자의 사회복귀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사회적 도덕적 우월성은 확보했을 지 모르지만, 의도한 규모 만큼 동원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데니스 말류스카 우크라이나 법무장관이 지난 2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수감중인 죄수 동원을 통해 병력을 최대 5만명 정도 확보할 수 있다"며 법안 채택을 지지했지만, 통과된 법안으로는 어림도 없는 전망이 더 유력하다.
집권 여당 '인민의 종'의 다비드 아라하미아 대표는 이날 법안이 채택된 뒤 "동원 가능한 수감자 규모는 약 1만5천~2만명"이라면서 "그러나 동원은 당사자의 동의가 전제돼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몇 명이나 이에 응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아라하미아 '인민의 종' 대표/인터뷰 영상 캡처
가장 큰 장애물은 '잔여 형기 3년 이하'라는 조건이다. 그 정도 남겨놓은 수감자들 가운데 자발적으로 전선에 나가려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냐는 게 담당자의 고민이다.
자칫하면 장기전으로 인해 남은 형기보다 더 오랫동안 전쟁터를 전전해야 할 수도 있고, 시시각각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껴야 하는 참호보다 감옥이 안전하고 편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특히 수감자들은 러시아군의 공격이 바로 눈 앞에서 펼쳐지는 최전선에 배치될 것이라는 소문도 흉흉하다고 한다. 막상 자원자가 기대에 턱없이 못미칠 경우, 각 교도소별로 인원 할당이 떨어질 것이라는 불길한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봐야 동원 인원이 5천명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고 스트라나.ua는 예상했다.
오히려 전쟁 중에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교도소에 수감되지 않고 보호관찰 대상이 된 경범죄자들을 동원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들은 약 5만3,000 명으로 추산되는데, 절반만 동원하더라도 2만7천명에 이른다. 이들에게도 막상 '감옥에 갈래, 입대할래'라고 물으면, 감옥에 간다고 할 수도 있다.
이같은 문제는 결국, 동원을 유인하는 메리트(유인책·誘引策, 혹은 대가)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러시아의 경우, 앞으로도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지내야 하는 중범죄자들에게 최전선에서 6개월만 버티면 사면된다는 확실한 메리트를 제공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지켜지고 있다. 사면된 후 이전 주거지(고향)로 돌아가 다시 중범죄를 저지르는 부작용도 없지 않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다. 수감자를 동원한다는 당초 목표는 100% 달성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게다가 연방 보안국(FSB)의 압력과 설득으로 2000년대의 주요 마피아(조직범죄) 대부들이 조직원들에게 징집에 응하도록 지시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러시아 교도소를 돌며 수감자들의 자원 입대를 설득하는 생전의 프리고진 '바그너 그룹' 수장/현지 매체 영상 캡처
자발적이 아니라, 마지 못해 끌어오다시피 한 우크라이나 수감자들이 전선에서 사고를 칠 가능성도 러시아 수감자들보다 높다고 한다. 러시아 수감자들은 일단 규율이 엄격한 '바그너 그룹'에 소속돼 전장에 나섰지만, 우크라이나는 어디든지 배치될 수 있다. 최고의 배치 부대는 참호를 구축하는 공병부대이고, 최악은 역시 최전선이다.
최전선의 한 장교는 스트라나,ua에 "최전선에 배치된 일반병은 어떻게든 상관에게 복종하고 잘 보여 후방으로 빠져나갈 생각을 하는데, 수감자들은 그런 기대가 없기 때문에 지휘관 명령에 불복종하거나 대들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수감자 동원은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전쟁 초기부터 논의되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방안을 두고 설왕설래하는 사이, 러시아는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을 내세워 선수를 쳤고, 이에 대한 비판여론이 우크라이나와 서방에서 비등하자, 논의 자체가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그 대안으로 미결수(폭넓게는 피고인, 수사 대상자)를 대상으로 한 '자원 입대'는 허용했다. 당연히 수사및 기소 중지가 '자원 입대'의 대가로 제공됐다. 실제로 전쟁 첫해(2022년)에는 '조국을 지킨다'는 자원입대 바람을 타고 많은 미결수들이 입대했고, 그들에 대한 범죄 수사가 중단됐다. 2022년 2월부터 지금까지 자원 입대로 1만1천여건의 형사사건에 대한 수사가 중단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한 언론이 최근 400건의 형사 사건을 분석한 결과, 약 100명(25%)이 군복무 중에도 기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300건의 경우, 군 입대 후 95%가 법원에 의해 무혐의 혹은 기각됐다.
올해 들어 수감자 동원 문제가 다시 화두로 떠오른 것은, 수세에 몰린 최전선에서 병력 부족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새 동원법 채택이후, 의회는 수감자 동원을 위한 법안의 심의에 본격적으로 돌입해 한 달만에 결론을 내놨다.
스트라나.ua는 교도소 담당자들을 인용, 동원 가능한 인원이 대략 1만명~1만5천명 정도로 예상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적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