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돋보기 쓰고 읽기도 하찮은 쓰레기 글을 계속 써야 하는가 ? 이만 중단해야 하는가?
커피 가져와서 흘금 흘금 훝어보는 며느리의 눈치도 그렇고 ........
거기에 동기님들의 관심도 전혀 없고........ 그러나 일단 칼을 꺼냈으니 썩은 무우 라도 잘라야 하거늘.....
참으로 고민되네요. to be ? or not to be ? 저게 문제로고.....
그럼에도 원고(??)는 이미 작성했으니 이번 것은 올리죠.
[ 사진을 올리지 않는 이유 -- 저작권 이라나 뭐라나 해서 일부러 올리지 않습니다 ]
M1919 Browing Machine Gun. [역사 이야기]
개발자: 존 브라우닝.(John Moses Browning 1855 -1926)
-- 어떤이는 이 양반을 무기의 신 이라고 부른다 더라 --
* 주 = M1919 혹은 브라우닝 기관총 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지만, 한국에서는 특이하게 엘엠무지삼공 [LMG30]이라고 불렀지만 정식 이름은 아니다.
한국군이 처음으로 다루었던 최초의 기관총이며,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전장에서,
근무지에서 함께 했던 기관총이었기에 그렇게 부르지 않았을까? 또는 영어 발음을 정확하게 발음하기 어려워서 혹은 엠 일구일구 라고 길게 말하는 게 귀찮아서 ?
사용탄: 7.62 x 63mm / 7.62 x 51mmNATO탄(베트남전). 전장: 964mm.
중량: 14kg.(본체무게) 작동방식: 쇼트 리코일 방식. 사격속도: 약 500발/min.
유효사거리: 1000m.
<1> M1895- 엘엠무지30의 시조.
1800년대 말에 설계를 시작하여 1895년 완성한 기관총으로 당시 제대로 된 기관총은 맥심, 호치키스, 그리고 브라우닝 M1895(해군에서 명명한 제식명)정도였다. 이 기관총은 중량 약 17kg. 공랭식. 캔버스(천)딴띠 급탄방식. 분당 발사속도 약 450발의 성능을 가진 화기로, 가스 활대 방식이 아닌 총열하단의 가스 발생 구멍에서 방출되는 가스를 이용하여 노리쇠에 연결된 송탄 지렛대를 연속적으로 작동시키는 독특한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이는 핵심부품을 총의 하단에 배치한 결과 삼각대의 높이가 너무 높아지므로 사수가 저격병에 노출되기 쉽고, 고지나 높은 건물에서 사격할 때는 각도를 낮추기가 어렵다는 단점 그리고 보수적인 군 당국에 의해 아주 소량만 채택되어 1898년 쿠바 독립전쟁에 개입한 미군이 잠깐 사용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어차피 예산으로 구입한 무기이므로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그렇다는 의미이지 완전 파기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와 달리 미국은 워낙 군대가 방대하여 군별로 무기를 조달할 수 있는 규정이 있다)
이에 실망한 브라우닝은 기관총 개발을 잠시 미루고 권총 역사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콜트45[M1911 콜트45]-- 우리는 45구경 권총이라고 불렀다 --를 개발하였고, 이 권총은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군(한국군 포함)에서 현역으로 활약하였다.
1910년 M1895의 문제점을 보완한 개량 기관총을 만들어 미 육군에 테스트를 의뢰하였지만, 신뢰성을 의심하여 돌아오는 대답은
"우리 미합중국 육군은 귀하의 기관총을 검토할 정도로
기관총이 부족하지 않습니다”였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뒤, 1914년 제1차 대전이 발발하자 미국은 중립을 유지하면서 영국 과 프랑스에 막대한 무기와 물자를 판매하는 이중적 태도를 취했다. 독일의 입장에서 보면 중립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결국 U-보트 공격으로 1917년 4월까지 미국 상선 3척이 격침되고, 짐머만 비밀전보에 분노한 미국은 제1차 대전에 참전을 선언하고 원정군(참전군 사령관 존 퍼싱 장군)이 프랑스로 상륙하여 독일군 과 맞붙었다. [2차 대전에서 활약한 미군 퍼싱 전차 이름의 유래]
그러나 막상 참전을 하고 보니 미군이 쓸 만한 기관총은 1100정에 불과했던 관계로 미군은 프랑스군과 영국군으로부터 맥심 기관총을 빌려 쓸 수밖에 없었다.
(자존심 상하지만 없으면 빌려서라도 쓸 수밖에... 사실 초창기 유명한 걸작 기관총을 설계한 사람 3명[맥심, 부라우닝, 호치키스]이 모두 미국인 임에도 정작 이들의 모국인 미국은 우수한 기관총이 없어서 곤란을 겪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 이다.
........... 그러니까 있을 때 잘해....)
맥심 --원래 미국인 이었으나 자기의 발명품(맥심기관총)을 여기 저기에 팔려면 영국국적이 유리하
므로 영국으로 귀화했다고 한다. (당시 대영제국 이었지 않나?)
훗날 가스압 작동 방식에 대해 먼저 특허를 출원했던 맥심에 의해 그리고 탄띠 급탄 방식도 맥심이 보기에는 특허 침해로 보았기 때문에 소송에 휘말렸다. 그러나 이 소송은 미국의 국방 사안과 직결된 문제여서 그랬는지는 모르나 확실한 결론 없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해군 과 해병대는 M1895을 채용하였으며, 영화[바람 과 라이언. 숀 코넬리. 켄디스 버겐 ]에서 모로코 해안에 정박중이던 미 해병대가 슐탄의 궁전을 무력으로 점령하는 장면에서 바퀴식 기관총좌에 장착된 기관총이 M1895이다.
(영화 소품도 역사를 알고 감상하면 재미가 배가된다?)
이후 많은 수량의 M1895는 각국의 탄환에 맞게 개량되어 러시아. 영국. 프랑스. 기타 유럽 여러 나라 그리고 남미 여러 나라에 수출되었다.
(1895년 우리는 뭘 했나? 10월 명성황후가 시해 당했네..)
<2> M1917A1- 1차 대전 전쟁을 수행하면서 우수한 기관총의 필요성을 절감한 미 육군은 부랴부랴 신형 기관총 채용 경합 공고를 발표하였고, 브라우닝은 1910년의 실패를 경험삼아 더 개량된 수랭식 기관총을 1917년 5월 육군 및 관계자들 앞에서
48분 12초 동안 5만발 이상의 탄환을 잔 고장 한번 없이 발사하는 기염을 토했다.
육군 관계자들은 경악하였고, 이 기관총은 M1917이라는 제식명을 받는다. 이후 M1917은 동시대의 맥심, 빅커스 기관총에 비해 간단한 구조와 견고한 설계 그리고 영국군의 7.7mm탄, 프랑스의 8mm탄 보다 더 강력한 신형탄(스프링필드탄. 7.62 x 63mm)에 맞게 개량하고 총 몸통 강화. 신형 가늠좌로 교체 하여 사거리와 명중률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성능을 보여주었고, M1917A1제식 명으로 42,750정이 유럽전선의 미군에게 실전 배치되었다.
그러나 M1917A1이 배치 된지 2달 만에 제1차 대전이 종료되는 바람에 겨우 일부가 사용되고 대부분의 M1917A1은 그리스를 칠한 포장지에 싸여 창고에 보관되고 말았다. 1948년 창설된 대구 병기학교 교육생들의 교육용 화기로 처음 도입된 M1917A1은 6.25전쟁에서도 사용되다가 그 후 공랭식으로 교체되자 1963년에 폐기되었다. 미군은 1957년 퇴역시켜 주 방위군에서 운용되다가 1960년대 초에 사라졌다.
무기라고 하는 게 신형이 나왔다고 구형은 버리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1942년 10월 24일 태평양 콰달카날 전투에서 기관총 분대장 존 바실론 해병 하사는 일본군 약 3000명의 돌격을 M1917A1으로 격퇴하였다. 그는 분대원이 전사한 상황에서도 그 무거운 기관총을 양손으로 직접 들고 싸웠고, 탄약이 떨어지자 옆 부대까지 달려가 탄약을 가져오기도 하고 다른 중대의 벙커에 있던 M1917도 가져와 사격하는 등 과히 전쟁의 신(람보?)처럼 활약하여 일본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는 이 공로로 명예훈장. 해군 십자상을 수훈했는데 해병대 사병으로는 유일한 케이스이다. 그의 고향에는 동상이 세워져있고 여러 지명. 건물. 군함에 그의 이름이 붙여져 그를 기리고 있다.(1945년 2월 19일. 이오지마 전투에서 전사)
[시리즈 영화 더 퍼시픽]
(유럽전선 과 태평양 전선에서 동시에 전쟁을 치루어야 했기에 창고에 처박아둔 비축 무기
들을 사용했다는 예 임.)
<3> M1919A2- M1917A1은 자체 중량(38.9kg)도 무거운데다 삼각대. 냉각수를 포함하면 47.0kg이나 되는 중량에 수랭식이라 반드시 물이 필요하여 다양한 전투상황에서 불편하였다.
(수랭식이라 하여 총열을 덮고 있는 냉각통에 냉각수를 한 번만 넣어주면 되는 것은 아니다. 연속 사격으로 총열이 과열되어 냉각수가 뜨거워지면 냉각수를 교체해 주고 보충도 해야 하기 때문에 물을 쉽게 구할 수 없는 지역에서는 사용하기가 곤란하다. 그래서 물 당번이 따로 있었다는 말도 있고,.... 이 무거운 걸 , 산악지역. 밀림지역. 길도 없는 야지에서 어떻게 가지고 다녔을까? )
미군은 M1917(M1917A1)의 성능에 만족하면서도 더 우수한 기관총을 원했다.
미군이 요구하는 ROC는
(1) 중량은 10kg을 초과하지 말 것.
(2) 길이는 96.5mm(38인치)을 초과하지 말 것.
(3) 명중률은 5발 연발 점사로 M1919A1 과 동일하거나 그 이상일 것.
(4) 금속제 링크벨트로 급탄하고 총열 교환은 별도의 도구 없이 30초 이내에 교체가 가능할 것. (초창기 기관총은 캔버스 벨트로 급탄 했음.
그러나 끝내 총열교환의 ROC는 해결되지 않음)
자세히 보면 오늘날의 다목적 기관총인 M60, M240급의 기관총에 해당되는 ROC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다목적 기관총 제작 기술은 고사하고 그런 개념조차도 모호하여 주어진 기간 내에 어느 총기 회사도 ROC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결국 미군은 “구관이 명관 이다”
라는 생각으로 기존의 M1917A1을 발전된 수냉식의 M1919를 만들고 다시 냉각방식을 대폭 개량하여 최종적으로 공랭식 M1919A2. A3형(삼각 거치대)을 만들어 1934년에 실전 배치되었다. M1919시리즈 기관총은 동시대의 영국. 소련. 일본. 이태리 등 다른 나라의 기관총과 비교하면 성능이나 신뢰성에서 분명히 우수하였다. 2차 대전을 주제로 만든 영화를 보면 먼저 부사수가 삼각대를 들고 잽싸게 앞으로 튀어 나가서 자리를 잡아놓으면 사수가 몸통을 들고 뛰어가 삼각대 구멍에 몸통을 끼운다.
(아 ! 숨차네...) [A5 = 장갑차. 전차의 동축 기관총]
* 동축 이라는 말은 전차포 와 함께 움직인다는 뜻임. 전차포가 우로 가면 기관총의 총열도 우로 움직인다는 뜻 *
그러나 M1919의 원본인 M1917은 1차 대전의 참호전에는 최적의 무기였지만, 참호전은 2차 대전에서는 이미 사라진 전투 양상이었다. 1차 대전에서는 보병을 제외하고는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어 보병이 화기를 직접 들고 뛰는 수밖에 없었지만,
2차 대전은 각종 장갑무기의 등장으로 보병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고, 항공기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되어 좀 더 적극적인 화력지원이 가능하고, 야포. 박격포 등의 지원화기가 많이 편제되어 참호 정도는 쉽게 파괴되는 고정 목표물에 불과하였다. 때문에 참호 와 참호를 끼고 싸우는 것이 아닌 누가 더 빨리 움직이느냐가 중요한 전투 환경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참호의 중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언제 어디서 적군의 탄환이 나를 향해 날아올지 아니면 포탄이 옆에서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내 몸을 보호해 주는 절대적인 엄폐물이기에 지금도 온 힘을 다해 손바닥에 물집이 잡혀 터지도록 참호를 판다.
야외 전술훈련 시 참호랍시고 겨우 엉덩이 한 개 들어갈 구멍을 파고 앉았더니, 교관이 와서 메모지에 관등성명 기록하고 지휘봉으로 머리통을 때리면서 더 깊이 파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 군번이 늦나?)
원래 방어용 개념에서 탄생한 미군의 M1919 기관총들은 그런 전쟁 시대 상황에 적합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서유럽 전선에서 독일군의 무서운 괴물을 만나게 된다.
그 괴물은 앞서 열거한 ROC를 거의 충족시키는 독일의 MG42기관총이었다.
독일군은 이러한 시대 흐름에 잘 부합된 다목적 기관총(GPMG) MG42를 개발하여 시대에 뒤떨어진 미군의 M1919기관총을 농락하였고 여러 면에서 미군의 불평이 터져 나왔다.
다목적 기관총 = GPMG = general purpose machine gun
요즘 기관총은 다 다목적 기관총의 개념이 들어간다.
필자도 무기 공부(?)를 하기 전에는 양키 무기가 최고 인 줄 알았다. 당시 나를 가르친 교관(대부분 고등하교 학력)들이나 나나 오십보백보 였 을 것이고... 그러나 후일 알고 보니, 한마디로 우물 안 개구리(좌정관천. 정저지와)였다는 소리.
하긴 2차 대전에 참전하는 미군 병사들도 자기네 기관총이 최고인줄 알았다더라. 미리 주눅이 들까 봐 독일군의 기관총은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고 하니...
그러면 여러 객소리 집어 치우고 기관총 병들의 불평불만이나 들어보자.
(1)무겁다.
독일군의 MG42는 12kg.으로 양각대만 펴면 곧 바로 사격이 가능하다. 그러나 M1919A4는 자체 중량이 14kg 이고, 여기에 삼각대 포함하면 더 무겁다. 그럼에도 반드시 삼각대에 거치해야 사격할 수 있다. 보병들과 함께 기동해야하는 경기관총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난감한 요소다.
(2)반동이 심하다.
MG42는 진지 안에서 사격할 경우, 전용 거치대 라페테42에 거치하면 반동이 거의 없다. 그러나 M1919 기관총은 삼각대에 모래주머니를 쌓아 올려야 된다. M1919 원형은 처음부터 참호전에 알맞게 개발된 것이라 총열에 냉각통 과 냉각수가 들어가 무거워지므로 반동을 줄일 수가 있었으나 공랭식은 무게를 줄였기에 반동은 오히려 늘었다.
(3)총열 교환이 힘들다.
M1919는 총열 교환을 하려면 총열이 하늘로 향하게 한 후, (석면 장갑을 끼고) 총열을 빼내서 교체 하고 다시 두격 조정까지 마쳐야 한다. MG42는 불과 십 여 초 만에 가능했다. (동기님들 두격 조정 기억나나요? ㅎㅎㅎㅎ 기억나면 귀하는 화기 소대장? )
(4)다루기 힘들다.
기관총 장착대 = 라페테42에 장착된 MG42는 방향 전환이 매우 쉽지만, 삼각대에 거치된 M1919는 마음대로 돌리기가 힘들었다. 억지로 돌리면 기관총이 마구 흔들린다. MG42를 양각대 이용한 경기관총으로 사용할 경 우에도 양각대의 성능이 좋아서 돌리기가 쉬웠다.
( 이런 불만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 나온 모델이 M1919A6 견착식이다.)
결국 MG42의 기막힌 성능에 화가 난 미군은 무거운 M2중기관총(cal 50)을 중대 단위까지 배치하여 보완하였다. 이런 문제의 근본 원인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정식 방어용 무기로 개발한 기관총을 다목적 기관총으로 사용하려다 보니 생겨난 문제점인 것이다. 물론 새로운 개념 과 용도에 맞는 기관총을 새롭게 개발하여 생산하면 되겠지만, 그게 말이 쉽지, 쉽게 될 일이 아니다.
(이럴때 그대가 생각납니다. 총기 개발의 신. 브라우닝 1926년 사망).
결국 미군은 MG42를 카피하려고 했지만 이것 또한 실패하고 말았다.
( 다른 나라의 무기를 카피(복제)한다는 건,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지....)
어떻든 이런 불평불만에도 M1919 시리즈 기관총은 2차 대전 과 한국전쟁에서 활약했다. 물론 공랭식 M1919는 수랭식에 비해 무게는 18.5kg으로 줄어지는 장점은 있었으나 총열 과열로 연속발사 시간을 수랭식만큼 유지할 수 없고 명중률도 낮았다. 결국 수랭식은 방어용으로, 공랭식은 공격용으로 적합했지만 가벼운 탓에 공랭식이 일선 보병들에게는 인기를 끌었다.
(한국은 1948년 철수하는 미군으로부터 M1919시리즈 기관총을 인수)
유럽 전선에서는 MG42와 비교 당하며 눈물을 삼키던 M1919 시리즈였지만 태평양 전선에서는 그야말로 왕 대접을 받는다. 그 이유는 당시 일본군의 제식 소총이 볼트액션 방식의 소총에 그나마 기관총은 기관총이라고 부르기도 무색할 만큼 초보적 수준의 기관총으로 무장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전장이 주로 좁은 섬이었던 관계로 평야가 펼쳐진 유럽 전선과는 달리 무거운 무기를 들쳐 메고 이리 저리 뛰어다녀야 하는 일도 적었다. 그러니 M1919의 무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 무거운 수랭식M1919(초기형)이 대접을 받았다.
특히 태평양 전쟁 중에는 자살 공격(반자이[만세] 공격 = “천황 폐하 만세”를 부르면 개인 및 소수의 일본 병사가 총검 상태로 돌격하는 자살 공격)을 감행하는 일본군을 제압하기 위해 미군은 수랭식 기관총 10만 정을 따로 보급했다. 이런 경험 때문이었는지 특이하게도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 해병대는 방어용인 수랭식을 더 애용했다고 한다.
냉각용 물통에 부동액을 넣은 무거운 M1919는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굳게 믿는 지원 화기였으며 어떤 날씨에도 많이 쓰였고, 중공군의 인해전술과 같은 격렬한 공격 속에서도 안정된 사격이 이루어졌다고 평가 받는다. (장진호 전투)
현역 시절 차일피일 사격을 미루다가 장마 닥치고, 장마 끝나니 진지가 허물어져 보수 공사만 하다 보니 탄피 반납을 못하자 탄피 반납하라고 날마다 볶아 대더라. 할 수 없이 보병연대 사격장에서 버려진 클립을 주어와 물에 씻겨서 밤새 끼운 후, LMG 4정 거치하고 번갈아 탄피확보 사격(?)하여 겨우 탄피 반납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다... 돈인데. 그렇다고 해서 내 호주머리로 들어 올 수도 없지
만 .... 그래도 아깝다)
<4> M1919A6- 무게: 14.7KG. 중량: 826mm. 총열길이: 610mm. 250발 벨트.
사격속도 400-500발/min.
M1919 삼각대 거치형은 이동시 반드시 2명의 병사가 필요하며(따로 탄약병도 필요함), 장비 배치의 느림과 다루는 병사들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불평이 나오게 되어, 이후 견착식 A6형(중량: 14.7kg)이 나오게 된다. M1919A6는 거치형의 변형으로써, 서서 사격하기에 편하도록 총열 손잡이 와 철제 개머리판이 추가 되었다. A6형이 배치됨으로써 병사 1명이 운반 휴대 하고 분 소대와 함께 기동하면서 지원 사격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경무장이 필요한 공수부대에서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동기들이 소대장 할 때 소대에 1정씩 있었지....)
A6형이 전선에 배치되는 때는 1945년 초반으로 43,000정이 배치되었으나 곧 종전이 되어 많이 사용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한국전쟁에서 기관총을 빠르게 운용해야할 상황 때문에 많은 수량의 A6형이 한국에서 사용되어 활약하였다. 이후 7.62mm x 51 NATO탄에 맞게 개량된 MK21(M1919A4 & A6)는 베트남 전쟁 초기 M60에게 자리를 내줄 때까지 사용되었다.
(후보생 시절 병영훈련 입소하면서 비나이다 ! 비나이다 ! LMG 사수만 걸리지 않게 하소서! 라고 속으로 빌었다. 그런대 AR 사수로 걸리더라...)
여담이지만 2차 대전 중 오랜 기간 전쟁준비에 몰두했음에도 독일이 생산한 다목적 기관총 MG42는 약 39만4천정에 그쳤고, 진주만 기습을 당하고 본격적인 전쟁준비에 들어간 미국이 생산한 M1919 시리즈는 62만정 이상이라고 하니 미국의 생산력이 얼마나 막강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한국군은 월남전 이후 M60. K-3기관총이 배치되면서 현역에서 퇴역하였고 2000년대 까지 예비군에서 운용되었으나, 예비군에도 M60이 배치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미스 코리아 도 나이 들면 할마씨 되고 이빨 빠진다. 하물며...?)
[M1919M37= 사수 없이 원격조작으로 사격하는 버전.
M1919 AN/M2= 항공기용 기관총으로 개량된 버전] -- 아버지 부시 대통령 의 젊은적 사진을 보니 폭격기 뒷 꽁무니에 붙은 기관총좌에서 기관총 사수로 이걸 잡고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