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면허를 딸 때 수동은 꼭 이뤄야만 하는 로망이었다. 두 번째 도전에서도 스틱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변화라면 차 크기가 조금 많이 커졌다는 정도?
“안녕하세요? 1종 대형 면허 따는 과정을 취재하고 싶어서 연락드리는 데요…” “학과랑 기능 교육 예약하고 오세요!” 이토록 시원시원한 취재협조라니. 여세를 몰아서 시험도 시원시원하게 한 번에 합격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면허 취득을 향한 여정은 고통스럽기까지 한 기온 40℃의 무더위 속에서 시작됐다.
다시 만난 학과 교육
교육을 받기 위해선 제일 먼저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만에 하나 사고 발생 시 대인, 대물 및 자기신체사고 보상을 받기 위해서다. 1종 대형이 1종 특수와 함께 8,400원으로 가장 높은 보험료를 자랑한다. 아무래도 사고 발생 위험이 높기 때문일까? 여기서는 지정된 보험사 한 곳 밖에 가입할 수 없으니 굳이 비교 견적 때문에 골머리를 앓을 필요가 없다.
교육 첫날, 장내 기능 교육 전에 학과 교육도 받으란다. 혹시 내가 모르는 내용이 추가된 건 아닐지 설레는 마음을 안고 교육장에 들어섰지만, 사진에서 보듯 기초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블랙박스 사고 영상을 보며 안전운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새기는 시간이었다. 학과 교육을 마치고 장내 기능 교육장으로 향한다. 올해엔 적성검사나 받고 끝일 줄 알았는데 다시 장내 기능 교육을 받을 줄이야. 더군다나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버스를 내 손으로 몬다 생각하니 처음 운전대를 잡을 때만큼의 긴장감이 전해졌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교육이 일상인 담당 강사님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몇 가지 수칙을 알려주고는 교육용 버스로 향했다.
범퍼, 물받이, 그리고 와이퍼
장내 기능 교육 그 첫 번째는 T자 코스(방향전환코스)다. 첫 주행은 강사님이 운전대를 잡아 시범을 보였다. 물려도 진작에 물렸을 시범 주행의 고단함을 눈치 챈 기자는 꼬치꼬치 묻기보다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체험기용 사진을 찍는 데 열중했다. 기능 교육은 철저한 족집게식 과외로 이뤄진다.
이 과외에서 기억해야 할 건 범퍼, 물받이, 그리고 와이퍼다. 상황에 따라 이 세 가지를 기억하며 때에 맞게 이들 지점을 키포인트 삼아 조작하면 된다. 예를 들어 T자 코스에서 방향 전환을 위한 첫 번째 미션은 후진각 만들기. 후진을 정확히 하기 위해선 우선 범퍼가 경계석 앞 노란 차선과 일치할 정도로 깊게 넣는 게 중요하다. 이후 운전대를 한바퀴 반 감아 전진해 앞바퀴 물받이(펜더) 하단이 차선에 닿으면 그때 운전대를 반대로 완전히 감은 후 후진하면 된다. 탈출 시에도 방법은 같다. 다만 탈출 시에는 와이퍼 힌지를 노란 선과 일치시키는 스킬이 추가된다. 이렇게 T자 코스에서만 세 포인트가 두루 활용되며 장내 기능 시험 통과를 위한 산뜻한 출발을 완성하는 거다.
외우지 않는 게 포인트
T자 이후엔 S자 코스, 평행 주차, 굴절 코스로 이어진다. 신호등과 횡단보도 및 정지선을 갖춰 도로처럼 꾸민 코스는 10시간 과정인 장내 기능 교육 중 중반 무렵에 배운다고. 위 코스에서도 아까 말한 세 가지 포인트와 한바퀴 반 감기, 완전히 감기 신공이 번갈아 이용된다. 사실 방향전환코스 하나만 시험 본다고 하면 모조리 외워도 좋다. 그러나 이후 굵직한 중요 코스가 연달아 세 개나 이어지는 만큼 그저 외우다가는 어디선가 엇박자가 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운전 감각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작은 차는 수험생 각자의 공식이 어영부영 적용될 수 있겠으나 1종 대형은 다르다. 차체가 큰 만큼 각도 계산에 약간의 오차가 생겨도 나중에 큰 차이를 보일 수 있다.
각 코스를 외워서 하면 연습 주행 때는 잘 넘긴다 해도, 긴장하기 마련인 시험 날은 머릿속이 하얘지며 각도고 뭐고 다 까먹는, 그야말로 멘붕이 올 공산이 크다. 10여 년 전, 한창 스펙용으로 인기를 끌던 프레젠테이션 대회에서 대본을 이해하지 않고 외우기만 하던 친구가 무대에 올라 인사만 하고 내려온 기억이 생생하다. 이는 운전면허시험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기자 역시 연습 주행 중 앞범퍼를 벽면에 받을 뻔한 실수를 하자 외운 걸 다 까먹고 순간 바보가 됐다. 응시료 55,000원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다면 코스를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자.
지형지물은 군인에게만 요긴한 게 아니다
그럼 강사님의 가르침을 진리로 받아들이면 만사 오케이냐? 그건 또 아니다. 코스를 제외한 코스 간 이동에서는 아까 코스에서처럼 타이트한 밀착 지도가 들어오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지형지물 활용이 필요하다. 이런 식이다. 평행 주차 시에 주차 공간 앞으로 얼마나 전진할 것이냐는 무척 중요한 이슈다. 덜 전진한다면 앞바퀴가, 더 전진한다면 뒷바퀴가 경계석에 걸리기 때문이다. 경계석을 건드리는 건 중대한 감점 사유가 된다. 이때 기자는 가로등 기둥을 요긴하게 써먹었다. 버스 탑승구 측 차창을 통해 보이는 가로등 기둥이 어깨선과 일치할 때 멈추니 후진 주차하기에 아주 좋은 각이 만들어졌다.
이 외에도 코스 간 이동에서 차 크기가 익숙하지 않다 보니 자칫하면 한 번에 다음 코스로의 진입이 어려울 수 있다. 이에 왼쪽 사이드 미러가 특정 경계석을 다 가릴 즈음 운전대를 완전히 감는다는 식으로 혼자만의 해법을 만들었다. 이렇게 강사님의 지도와 나만의 코스 공략법이 완성되자 어느덧 연습 주행이 일상인 것마냥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장내 교육 3교시 째를 맞이했다. 코스를 한번 돌고 다시 T자 코스로 가려 운전대를 꺾으려는 찰나, 강사님이 급히 내 오른팔을 붙잡았다. “이번엔 장내 도로주행 코스로 갈 겁니다” 에? 벌써 장내 도로주행 코스라고요? 下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