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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제: 율법교사 되지 말라
소 주 제: 말보다 행함을. 예수님의 모습을. 변론은 시간낭비
날자 및 분류: 230521낮 설교 창 조 의 말 씀
성 구: 딤전1:3-7
저 자: 정 헌정 목사 http://cafe.daum.net/changcho
[본문]딤전 1:3-7. 3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4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5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6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7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 도다.
오늘부터는 목회서신인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를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먼저 이 디모데는 사도바울이 여러 교회를 개척하고 바울이 어느 한 교회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고 자기가 세운 교회들을 이곳저곳 방문하고 성도들을 격려하고 새로운 교회를 세워야 하는 선교여행을 계속해야 되는 그 와중에 에베소교회에 디모데를 자기가 없는 동안에 교회를 든든히 지키도록 후임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교회를 단속하고 지도하도록 교육자로 에베소교회에 머물도록 한 사람이다,
에베소교회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터기(튀르키예)에 있고 지금 바울은 마케도니아 지금의 그리스로 떠난 것이다,
디모데 서에 드러나는 내용들은 다 교회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하는 것들이다,
교회를 어떻게 지켜야 하느냐 하는 것은 방법에 관한 것이 아니고 근본 믿음의 본질에 대한 말을 하고 그 일을 위하여 부름받은 일꾼들의 자세 책임 이런 것들까지 디모데전후서에서 또 디도서 우리가 확인하게 될 것이다,
가장 크게 등장하는 첫 번째 지적하는 명령은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것을 금해야 하며 그걸 가장 경계해야 한다하는 것이다,
기독교신앙의 가장 무서운 적은 같은 기독교신앙의 이름으로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크게 이단이라고 말한다,
이단이란 같은 내용을 말하며 같은 표현은 쓰는데 따져보면 전혀 다른 다른 것을 말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아닌 신을 믿자고 하거나 예수그리스도로 만으로 구원을 얻는다. 를 그 외에 다른 메시야를 다른 중보자를 말하거나 하는 것을 우리는 이단이라고 말한다, 한문으로 이단(異端)은 시작은 같은데 끝이 다르다는 뜻이다,
우리가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극단적인 이단들과 분명히 차이가 나는 윤리성이나 도덕성이나 기독교진리에 대해서 크게 차이나 나는 것에 대해서 경계를 하는 것이 아니라 휠씬 더 교묘한 문제 훨씬 더 미묘하고 그러나 조심해야 할 문제를 다루고 있는 보게 된다,
딤전 1:4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하나님의 경륜을 이룬다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고 변론을 낸다, 여기서 말하는 변론을 낸다는 건 뭐냐 하면 쓸데없는 논쟁만 일으킨다는 말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식의 논쟁 기독교적인 말을 하면 예수를 믿으세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 하는 것이 더 빨리 먹혀들어가지 않느냐고 따지는 젊은 친구들도 전도하고 있는 현장에서 마주치는 경우가 있다, 그 사람과 마주대하여 그와 논쟁을 하면 어느 것이 옳은 답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성경이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우월감만 내세우게 되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데 실패하게 된다,
고후 4: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시기를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내 지식이나 학식이나 남보다 우월하거나 남보다 낫은 것을 남보다 성공한 스토리를 말하기 위해서 선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심 것 우리의 구주가 되시며 우리의 생명과 길과 진리가 되시는 분이 예수님 이신 것과 예수를 위하여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너희 종 된 것을 전파하는 것이다, 자신보다 남을 섬기기 위해서 오신 분이 예수님이기에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섬기기 위해서 서 있다는 것을 전파하는 것이 주 목적이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고 따라서 우리들의 우월감이 어떤 것인지 내 세우는 이스라엘백성의 자리가 아니라 언제나 필요를 채우시기 위해서 동분서주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내 모습에서 발견하는 것이 현재의 우리들의 삶의 열매라고 사도바울이 고백한다, 그래서 이런 싸움은 논쟁만 일으킨다,
여기에서 변론을 낸다는 말은 소모적인 일에 빠져든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변론을 낸다는 말속에 이미 사활이 걸린 문제 아닌 것 같고 싸우지 말라 하는 얘기가 여기에 중요한 문제이다, 따지고 보면 기독교신앙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크게 분명하게 따졌을 때 잘못된 가르침들 이단 사설들은 분명히 우리로 하여금 잘못된 길을 가게하며 잘못된 내용을 추구하게 하며 잘못된 방향을 잡게해서 우리를 넘어뜨릴 것이다, 그러나 마찬 가지로 그렇게 크게 잘한다 못한다가 아니고 사소한데 궁극적으로는 결국 신자로 하여금 신앙적인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것이 사실 무수히 많다, 사소한 것으로 인하여 우리가 훨씬 쉽게 무너지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래서 바울잉 디모데에게 첫 번째 경계가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무엇을 기준하여 살펴봐야 하느냐 할 때 신앙생활을 결실하게 하느냐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느냐. 라는 차원에서 봐라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딤전 1:5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사랑이라는 결심을 내지 않는 것은 다 소모적인 것이다 이런 뜻이다, 그리고 그 뒤에
딤전 1:6-7. 6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7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 도다.
그러니까 경계의 목적은 즉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는 것 신앙을 제대로 실천하여 결심하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무엇으로 확인해야 되느냐하면 거기에 사랑이라는 결심이 있느냐를 바라이거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 소모전에 빠진다, 그리고 그 소모전은 대표적으로 무슨 문제 때문에 가느냐하면 율법의 선생이 되려는 데서부터 간다, 율법의 선생이 되려고 한다는 말은 하지 않고 심판만 하려고 한다는 뜻이다,
딤전 4:1-2. 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잘못된 자들 완전히 이단으로 가기도 하고 또 헛된 것을 가지고 싸우기도 하고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경륜(일정한 포구를 가지고 일을 조직적으로 계획) 신앙의 정도를 걸어 도달해야 되는 자리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들은 결국 율법의 선생이 되려하는 것 여기에서 지금은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하는 것이다, 외식은 겉치장만 하는 것이다, 라는 말이다,
이 싸움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고전 4:1-5. 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이 말씀은 고린도교회에 있었던 가장 큰 문제는 고린도교회 특별한 은사 지식과 성령의 은사가 있었다,
이것으로 인하여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매우 교만했다 자기네들은 다른 사람들과 종자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훨씬 영적인 사람들이고 수준이 높아서 하나님의 고급한 진리를 본인들이 이해도하고 깨우쳤고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네들에게 특별한 은사를 줬다고 생각을 했다, 어디까지 이 문제가 부작용을 일으켰느냐하면 사도바울에 대해서마저도 비판을 하기 시작했다,
사도바울의 편지는 내용으로는 훌륭하지만 직접 만나보면 생긴 거나 바라는 것이 시원치 않다, 이 사람이 정말 하나님의 일꾼이라면 하는 말이나 정도의 수준에서 우리를 감탄시킬 만큼 높아야 되지 않느냐 이들의 말은 우리가 지식이 있고 실력이 있어서 기독교의 진리를 깨달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우리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출발했다는 것을 확인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이 일부러라도 문벌 좋은 자나 지혜있는 자를 쓰시지 않는다, 이 말씀은 고린도전서 1장부터 시작하시는 말씀이다,
고전 1:26-29.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은 목사자신이 알아야 하는 가장 큰 이슈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린 다 죄성을 가지고 있어서 좋은 말하는 습관보다는 빈정거리는데 훨씬 익숙한 사람들이다, 자기가 생각하는 수준보다 낮게 평가받을 때 우린 참 화나고 약 오른다. 그래서 화를 내는데 그 이유는 왜 그 사실을 폭로하느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무한하심을 하나님의 종들을 세워서 어느 한 면씩 증언을 하게 하시는 것 같다, 하나님의 무한하심을 전부 증언할 수는 없다,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의 증언에서 하나님은 나에게 복음의 비밀을 전하라고 일을 맡겨서 내가 전하고 있다, 너희가나에게 대해서 이런 말 저런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난 변명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와 나의 관계에서는 잘 생겼다 못 생겼다 똑똑하다 미련하다를 따질 관계는 아니고 내가 너희에게 나간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셔서 너희에게 전하라고 한 복음의 비밀을 전하기 위해서 너희를 만난 것인데 왜 딴 싸움을 하자고 그러느냐 그 얘기는 나중에 천국가서 하자 지금에 그 싸움을 하자고 하느냐
고전 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이 말씀이다, 이 말씀의 끝으로고전 4:6-8. 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8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너희가 왕 노릇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고자 하는 복이며 하나님께서 주시고자하는 승리이다, 그러나 너희가 만든 걸로는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이 너희희 진정한 자랑과 진정한 복을 위하여 예수를 보내셨고 나를 일꾼삼아 너희에게 보낸 것이다 너희 왕 노릇해라 그걸 위하여 하나님이 나를 종으로 삼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는 너희가 잘 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얘기다,
고전 4:19-20. 19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왜 여기로 가야하는가, 그것은 다른 사람보다 보다 낫고 똑똑하고 영적으로 특별해서 너희를 붙잡고 쓰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너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고 복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에 걸 맞는 너희를 인도하시고 끌어오셔서 채우셨기 때문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너희에게 준 것들로 인하여 너희가 왜 자리에 앉아서 율법의 선생 노릇만 하고 있느냐 이 말이다,
고전 4:19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너희가 가진 것 너희가 깨우친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누구시며 하나님이 왜 그 아들을 보내셨으며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얻은 구원과 그 구원의 결국이 뭐냐 의와 진리와 거룩 아니더냐. 그능력이 너희에게 있느니라, 너희에게 사랑이 있느냐 너희에게 겸손이 있느냐 너희에게 자비가 있느냐 그걸 알아보겠다, 너희가 앉아서 저 사람은 사랑이 없어 저 사람은 지혜가 없어 저 사람은 하나밖에 몰라 이게 바로 율법의 선생이 되려하는 것 외식하는 자 말만 있고 능력이 없다, 이거다, 이게 문제라는 말이다,
우리는 이단사슬에 빠지지 않았다, 여호와증인이나 정명석에 빠지지 않았다, 신천지에 빠지지 않았다, 그런 것은 다 좋다, 거기에 성경이 우리에게 계속적으로 말씀하시는 것 바로 이 말씀이다,
빌 2:5-8.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고후 4: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신앙을 점검하는 중요한 기준들이다,
고전 8:1-3. 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여기에서는 무얼 비교하고 있느냐하면 지식이 전부가 아니라 사랑이 전부라는 것이다, 지식은 교만하게 한다, 지식은 필요하다, 지식은 신앙의 끝이 아니다 지식은 신앙의 시작이다, 신앙의 끝은 사랑이다, 여기에서 지식과 사랑을 비교하고 있느냐하면 신앙이 지식에 머물러 사랑으로 가지 않으면 그 지식은 교만으로 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엇이 옳다 무엇이 그르다, 무엇이 맞다 무엇이 틀리다, 이런 비판과 이런 분별이 전부가 아니다, 기독교신앙이란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리느냐가 아니라 맞는 것을 옳은 것을 알뿐만 아니라 옳아야 된다, 옳다는 것의 대표적인 것은 하나님의 의 그 하나님의 옳으심은 십자가로 나타났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것이 복음의 정의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 하나님이 우리를이렇게 사랑하셨다, 다 맞다, 더 중요한 것이 뭐냐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 하는 것이라는 거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하나님이 지은 복중에 인간들이 그 하나님을 배반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을 처벌하여 당신의 옳으심을 증명하시기보다, 저들을 용서하고 고쳐 구원하여 원래 만드시려고 의도하셨던 약속했던 복을 주어 기어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복된 자리에 세움으로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가가 드러나는 것을 더 좋아하시는 분
시 103:8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이런 하나님으로 가장 먼저 당신을 알리고 싶으신 분 이것이 하나님의 옳으심이다,
우리 사회는 물질문명의 후진국으로 피해를 너무 많이 봐서 힘을 가져야겠다, 잘 살아야겠다 그래서 있는 힘을 다하여 ,선진국의 대열에 우리나라만 올라섰다, 그러다 보니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의리. 신의. 예의 관용.이런 것들이 다 없어졌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참 많이 비열해 진 것 같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면 내 아니요 모르겠습니다, 그렇겠습니다, 라는 것은 한국인들 말에는 없어졌다,
상대방이 무엇을 얘기하면 저 사람이 무엇을 요구하는가를 생각해서 대답을 하지 실제로 네 아니오. 로 대답하는 적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네팔사람들의 예화 그들은 고의성이 있는 죄를 범하기보다 과실치사정도의 죄를 짓고 그 지은 죄에대한 벌을 당연히 받는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중대한 죄를 지을 만한 어떤 것도 없다, 같은 환경과 처지에 살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우리는 모든 일에 억울하다, 모든 기회를 이용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린 자녀들에게 병신같은 놈 누구 닮아서 그래?
이렇게 우리는 야비하게 되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무엇이 달라져야 하느냐하면 이기심과 적대심과 물욕과 상대방을 해하는 죄성에서 벗어나야 되는 것이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 주심과 돌보심과 인도하심과 약속 속에서 우리의 힘과 소망과 확신과 자랑과 영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신앙고백들이다, 그것이 우리 안에 있고 그래서 그것이 나타나야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이 있지 않고 능력이 있다, 이렇게 요구하고 있다, 그러니까 큰 싸움가지고 신앙생활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는 잘못된다. 라고 말함으로서 우리가 말만 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질하는 것을 보여야 된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모든 것들을 온유하며 겸손하며 사랑하며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상대방이 잘못되기를 기대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 이것이 신앙이 가야하는 방향이며 하나님의 경륜이며 교회를 세워 하나님이 불러 모운 성도들에게 하시고자 하는 일들이다,
우리는 옳은 것을 진심과 사심이 없으면 옳은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다 옳은 것은 옳게 될 때까지 기다리는 마음이다,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율법교사 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