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뉴스 284/1028]아니온 듯 다녀가소서
어제 하루, 젊은 시절 한창 재밌게 일하며 사귀었던 ‘전전전前前前 직장’ 친구 네 명과 ‘임실任實 나들이’를 나섰겠다! 맨먼저 성수산聖壽山(해발 860m) 상이암上耳庵이라는 암자를 찾았다. 제법 높고 깊은 산 정상 근처에 자리잡은 이 절은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다. ‘여덟 명의 임금을 만드는 곳’이란다. 실제로 고려 왕건이 백일치성을 드린 후 임금이 되어 너무 기뻐서 ‘환희담歡喜潭’이라 쓴 고색창연한 비석이 있는가하면(도선국사가 왕건의 아버지 왕융에게 이곳서 치성을 드리면 나라를 창업할 수 있다고 훈수를 주었다는데, 믿거나말거나이다), 이곳에서 삼업三業을 깨끗이 닦았다며 태조 이성계가 쓴 ‘삼청동三淸洞’이라는 어필御筆이 비각 속에 모셔져 있다. 친필 확인과정을 거쳤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 바위 틈에서 자라난 낙락장송落落長松이 여러 그루다. 가히 감탄지경. 대웅전 앞 마당에 솟은 30여m의 화백나무도 장관이다. 단풍이 30%쯤 들었을까? 가을 속으로 풍덩 빠진 듯한 느낌, “이 절 정말 마음에 드는데” 일행이 모두 한 목소리로 탄복한다. 칠성각 옆 ‘상이암카페’는 사진으로 꼭 보여드리고 싶을 정도로, 누구라도 들어가 차 한잔 끓여마실 수 있도록 한 앙증맞게 작은 공간. 그곳에 앉아본다. 바쁘지만 않다면 멍때리는 시간을 1시간을 가져도 좋을 곳이다. 이럴 때 하는 말이 항상 ‘아내랑 꼭 한번 같이 오겠다’이지 않던가. 그래놓고 ‘꼭 한번 같이 가본’ 적이 몇 번이나 있던가. 사진의 달인이 몇 번이고 탄복을 하며 셔터를 눌러댄다. 하여 이 근처 숲 이름이 ‘왕의 숲’이다. 두 명을 탄생시켰으니 앞으로 여섯 명의 임금(대통령)이 나올 명소일까? 대권 후보들은 이 말 들으면 몰래몰래 다녀갈 것같다.
임실하면 치즈를 맨먼저 떠올릴만큼 치즈는 임실군으로 치면 최고의 ‘효자상품’이다. 그 뒤에 벨기에 출신의 지정환신부가 계시다는 것을 아는 분은 얼마나 될까(찬샘뉴스 266편 참조. http://cafe.daum.net/jrsix/h8dk/833)? 임실군에서는 지정환 신부 송덕비 몇 개를 세운다해도 부족할만큼 고마운 분이다. 온갖 종류의 국화꽃이 만발해 얼굴의 주름살을 마구마구 펴준다. 코로나 때문에 치즈축제는 취소되었지만, 평일인데도 꽃구경 오신 분들이 제법 많다. 어린이집 병아리들이 단체복을 입고 체험관에서 동영상도 보며 치즈를 만들고 있다. 치즈아이스크림을 먹어본다. 찢어먹는 치즈, 구워먹는 치즈 등 종류도 많은데 여타 치즈보다 값이 비싼 편이란다. 시간만 허락되면 화덕치즈피자도 맛 봤으면 좋으련만, 아쉽다.
옥정호 국사봉 전망대에 올라 ‘붕어섬’을 바라본다. 신기하게도 영락없이 금붕어가 꼬리를 흔드는 모양새다. 배를 타고 갈 수밖에 없는 곳에 민간인이 살고 있다는데, 전망대는 사진작가들의 명소 중의 명소이다. 안개 가득한 옥정호 사진을 한두 번 본 적이 있으리라. 구경도 좋지만 때가 넘으니 배가 고프다. ‘옥정호산장’ 기업형 식당이다. 옥정호 전경을 바라보며 새우탕과 메기탕을 먹어본 사람들은 알리라. 평일 오후 1시가 넘었는데도 인산인해人山人海. 하루도 소비되는 메기와 민물새우가 몇 마리일까? 대단하다. 어느 총리가 가족들과 봉고차로 두 번을 조용히 다녀갔는데, 할머니 등 식당손님들의 사인을 받으러 줄을 섰다는 후문이다.
친구 두 명이 저녁 약속으로 서울을 가야 한다기에 정읍역으로 내달렸다. 3시 KTX 기차를 간신히 탔다. 남은 우리 3명은 청량산 문수사文殊寺 단풍숲이 궁금해 물어물어 찾아갔건만, 아직은 좀더 있어야겠다. 열흘쯤이면 온산이 단풍으로 꽃을 피울까? 400∼500년 된 당단풍나무 400여그루가 우람하게 숲을 이루고 있는 문수사 단풍나무숲은 천연기념물로 유일하게 기록된 곳이다. 여행작가들이 강추하는 국내 단풍숲 영순위. 11월초 10일쯤이면 절정일 것이라하니 놓치지 마시라. 추천해준 저에게 100% 고마워라 할 것이다.
이윽고 어제의 목적지 ‘축령산 휴림(http://cafe.daum.net/hyulim)’이다. 그곳을 이야기하려면 소설책 한 권도 부족할 듯하니 생략한다. 편백나무로 지은 기발한 휴림, 그곳에는 ‘인문학이란 짜-안헌 것“이라고 외치는 방외지사方外之士가 살고 있다. 그분이 날마다 꼭두새벽에 온갖 단상斷想을 보내오는데, 구절마다 받아적고 기억해야 하는 어록語錄투성이이다. 오늘은 <모든 사물은/요리저리/맞추어 사용하면/퍼즐이 완성되어/오염을 방지하면서/새롭게 탄생시킨다//꿈이 있으면/외출하고 돌아올 때/빈손으로 들어오지 않는다>고 썼다. 어디에서 문화재급 문짝을 10여개 얻어와 나흘만에 발효타워 옆구리에 뚝딱뚝딱 법당을 지은 소감이다. 그것 참, 그저 놀랍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오는 11월 11일엔 ‘광인狂人 3인’의 그림을 최초로 전시한다고 한다. 기대해도 좋은 문제의 전시회이다.
그제부터 순창, 남원, 임실 관광을 마치고 돌아가는 동료 중 오모(D일보 논설위원 출신)씨가 불쑥 묻는다. “최형, 시골생활이 적적하지 않소? 정인보인지 최남선인지가 지은 아주 좋아하는 시조 한 수가 있는데 아느냐”고 묻는다. ‘아 그 시조를 말하는구나’ 즉석에서 전문을 낭송을 하니 그도 놀랐다. 대화가 통하는 사이라는 것은 이런 경우를 말함이렷다.
가만히 오는 비가 낙수 져서 소리하니
오마지 않은 이가 일도 없이 기다려져
열릴 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주 가더라
지은이는 육당 최남선이다. 정말 표현이 기가 막힌다. ‘오마지 않은 이가’‘일도 없이’ ‘열릴 듯 닫힌 문’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말로 이런 시조를 읊었을가? 물론 적적하다. 대문을 활짝 열어놓은 것도 그런 까닭이겠다. 누가 온다거나, 오기로 약속한 것도 아닌데, 일 삼아서 대문가를 연신 쳐다보는 것은 또 무슨 까닭일까?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 될텐데 말이다. 점입가경漸入佳境, 오형은 처마밑 풍경소리를 들으며 정호승의 ‘풍경소리’를 읊더니, 미당 서정주의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같이’를 운운하는 게 아닌가. 어쩌면 그리 내 마음과 통했을까? 관련 졸문을 즉석에서 카톡으로 보내줬다. 이러니 나들이가 어찌 재미가 없을손가(찬샘뉴스 258편 참조하시압. http://cafe.daum.net/jrsix/h8dk/824).
첫댓글 우리 야은(冶隱) 길재(吉再) 할아버지가 지으신
五百年(오백년) 都邑地(도읍지)를 匹馬(필마)로 도라드니
山川(산천)은 依舊(의구)하되 人傑(인걸)은 간 듸 업다
어즈버 太平烟月(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다음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조
고교시절 구름재 박병순선생님이 낭랑한 목소리로 들려주시던 시조
아파트 창문밖을 바라보며 지금도 누군가를
기다리며 읇조리는 시조
가슴이 저며오는 시조
첫사랑 소녀가 떠오르는 시조
육당 최남선의 "혼자앉아서"
가만히 오는 비가 낙수 져서 소리하니
오마지 않은 이가 일도 없이 기다려져
열릴 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주 가더라
선생님에게 시조의 영향을 받고 소년의 꿈을
키우며 학창시절 즐거이 보낸것같다.
우리 전라고 출신들 선생님 덕으로
술한잔 거나하게 마시면
시조 한 구절씩 멋지게 읊을수있는 능력자들이
아니던가?
나도 눈감고 시조 몇개는 줄줄 외운다고 ㅋ
갑자기 오누이 시인 이호우 이영도 시인이 떠오르는 가을날이다.
문을 바르기전에도ㆍㆍ
깊어가는 가을 날 찬 바람에 낙엽이 떨어지나봐
열릴듯 닫힌 문으로 문을 지긋이 밀고 들어올것같은 가슴이 쓸쓸한 가을 날
누군가 보고싶다
올것 같다
문을 지긋이 열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