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名士)의 봄예찬
손 원
수필가 안병욱교수의 "봄의 예찬"이다.
/ 봄은 처녀, 여름은 어머니, 가을은 미망인, 겨울은 계모. 일년 사계절을 여인에 비유한 폴란드의 명언이다. 봄은 처녀처럼 부드럽다. 여름은 어머니처럼 풍성하다. 가을은 미망인처럼 쓸쓸하다. 겨울은 계모처럼 차갑다.
봄처녀가 불룩한 생명의 젖가슴을 갖고 부드러운 희열(喜悅)의 미소를 지으면서 우리의 문을 두드린다. 봄은 세가지의 덕을 지닌다. 첫째는 생명이요, 둘째는 희망이요, 세째는 환희(喜)다.
봄은 생명의 계절이다.
땅에 씨앗을 뿌리면 푸른 새싹이 난다. 나뭇가지마다 신생의 잎이 돋고 아름다운 꽃이 핀다. 봄의 여신은 생명의 여신이다. 생생육육은 천지의 대덕이다. 세상에 생명이 자라는 것처럼 아름답고 신비롭고 놀라운 일이 없다. 시인이여, 생명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여라. 화가여, 생명의 신비를 그려라. 생명의 경이(驚異)를 외쳐라. 밀레와 고호는 "씨 뿌리는 젊은이"를 그렸다. 네 마음의 밭에 낭만의 씨를 뿌려라. 네 인격의 밭에 성실의 씨를 뿌려라. 네 정신의 밭에 노력의 씨를 뿌려라.
봄은 희망의 계절이다.
북풍한설의 겨울이 지나가면 온난한 봄바람이 만물을 따스하게 감싼다. 봄바람은 은혜로운 바람이다. 봄바람이 우리의 얼굴을 스치면 누구나 마음이 훈훈해진다. 봄바람이 초목을 어루만지면 향기로운 꽃이 핀다. 한국의 봄은 개나리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뒤를 이어 한스러운 진달래꽃이 피고, 청순한 목련이 피고, 향기가 짙은 라일락꽃이 핀다. 봄의 태양은 따스하다. 봄의 바람은 은혜롭다.봄의 대지는 인자하다. 봄의 공기는 상쾌하다. 봄의 여신은 우리의 가슴을 밝은 희망으로 안아준다. 인간은 희망을 먹고 사는 동물이다. 희망의 활력소로 네 생활을 힘차게 건설하여라.
봄은 환희의 계절이다.
우울의 날이여 가거라. 비애의 날이여 사라져라. 절망의 날이여 없어져라. 고목처럼 메말랐던 가지에 생명의 새싹이 돋아난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냐. 얼어붙었던 땅에서 녹색의 새 생명이 자란다는 것은 얼나 감격스러운 일이냐.
창 밖에 나비가 찾아오고, 하늘에 종달새가지저귀고, 벌판에 시냇물이 흐르고, 숲속에 꽃이 핀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
춘분을 맞이하니 완연한 봄이다. 혹독한 추위때는 따스한 봄이 먼 것 같더니 어느 덧 화사한 봄날의 햇살이 우리를 반겨 주고 있다. 겨우 내내 얼었던 땅도 녹기 시작하고 나무도 잔디도 푸릇푸릇 싹을 틔우고 있다.
코로나 펜데믹의 긴 터널을 다 지나 온 듯하다. 이번 주 부뒤는 외출 시 의무적이었던 마스크 착용도 권고로 변경되었다. 세 번의 봄을 날려버렸고 긴 겨울잠 을 잤다. 이제사 진정한 봄을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긴 겨울 얼음을 뚫고 나온 새싹처럼 우리의 마음에도 조금씩 봄의 기척에 꿈틀거린다. 봄은 이렇게 아주 작은 새싹에서부터 그리고 얼음이 녹아 내리는 물방울 하나에서부터 시작된다. 봄은 겨울에도 그렇게 숨어서 생명을 키우고 있다. 새로 돋아난 봄의 싹과 풀들을 우리의 희망이다.
지난 3년간의 코로나는 우리의 삶에 다가오는 꽃샘추위 같은 어려움이기도 했다. 살다보면 거듭되는 실패, 보장되지 않는 내일,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다가 정력이 소진되고 주저 앉고 싶을 때도 있다. 그것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단계일 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삶이니까 희망도 절망도 함께 있는 것이다.
봄에는 설레임도 있다. 봄의 따뜻함과 신선함은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동장군의 위세에 눌려 집안에 갇혀 지낸 어린이들은 제철을 만나 밖으로 나가자고 엄마를 재촉하고 노인들은 따스한 양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젊은 날의 화려함을 자랑하며 아가씨들은 봄기운과 함께 ‘백마 탄 왕자’를 맞이하는 기대를 갖게 만든다. “봄 처녀 제 오시네, 새 풀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 오시는고”의 우리 가곡은 처녀뿐만 아니라 봄을 맞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한 노래이다.
이해인 시인은 "춘분 연가"를 읊었다.
/ 밤의 길이 낮의 길이
똑같은 오늘
흰 구름 닮은 기쁨이
뽀얗게 피어오르네
봄 꽃들은 조심스레 웃고
봄을 반기는 어린 새들은
가만히 목소리를 가다듬고
그대를 향한 나의 사랑도
밤낮이 똑같은 축복이 되기를
이웃 향한 나의 우정도
일을 향한 나의 열정도
밤낮이 똑같을 수 있기를
나의 인품도 조금씩
더 둥글어져서
일 년 내내
일생 내내
똑같을 수 있기를
기도해보는 오늘!
바람이 차갑게 불어와도
마음엔 따스함이 스며드는
춘분의 축복이여 /
(2023. 3.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