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을 고소한 탈북자들, 스스로의 무덤 팠다
1980년 전남도청 앞마당에서 찍힌 현장사진 한 커트에 유명인이 된 탈북자 50명 정도가 들어 있다. 나는 탈북자들 얼굴과 이름에 관심도 없었고, 어쩌다 한 번씩 체널A의 이만갑 방송 장면을 조금씩 스쳐 지났을 뿐이었다. 내가 무심히 지나친 장면들을 노숙자담요는 지켜보고 있었다. 여기에서 확실히 할 것이 있다. 노숙자담요는 탈북자 열굴이 광주현장에서 발견되었다고 했을 뿐, 그들을 처음부터 위장한 사람들이라 하지 않았다. 탈북광수들은 대부분 어렸을 때 구색맞추기 선전선동용 세트 장식물로, 특수군 위장 목적으로 동원돼 온 어린 존재들이다. 그렇다면 솔직히 “내 의지와는 달리 동원된 건 사실이다”: 이렇게 말해 주면 될 일이었다. 이렇게 했다면 모든 국민이 박수를 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침략행위 자체가 없었다고 극구 부인한다. 그래서 국민들로부터 백안시당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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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송, 박상학, 이민복
이 50명 중에는 김유송이 들어 있었다. 그는 2010년경에 나에 접근해 왔고, 그 후 500만야전군에 핵심 간부로 충성해 왔다. 나에게는 가장 가까운 의논상대였고, 그의 두뇌는 매우 명석했다. 그래서 그와 나는 형제라 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나의 안 사람은 친구들로부터 모금을 하여 박상학에게 70만원을 보냈고, 회기동에서 치른 이민복 결혼식에 나는 커다란 플랜트를 가지고 가서 축해해 주었다. 박상학은 그 후 여러 차례 만나 외국에서 전해온 성금들을 전달해 주면서 그의 애국활동을 격려해 주었다. 시스템클럽을 통해 박상학을 도와주십사 부탁을 드리는 글도 썼다. 그런데 어느 날 노숙자담요가 ‘서울광수’들을 얼굴분석과 함께 보내왔다. 이 중에는 이 세 사람의 얼굴들이 있었다.
개인적인 친분관계를 더 중요시했다면 나는 이들의 아름만이라도 뺐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역사기록은 공명정대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이들의 이름을 빼지 않았다. 12.12역사를 쓸 때에도 그랬다. 불과 몇 시간 전에도 내 건강이 염려된다면서 따뜻한 전화를 걸어 명약을 추천해 주시던 윤성민 장관, 장관시절에는 내 연구결과를 가지고 5년 동안 나와 함께 군 예산개혁을 추진했던 그분의 기록을 뺄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쓴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은 가장 공명정대하게 쓰인 책이다.
나도 노숙자담요도 탈북자들에 원한 없었다
명예훼손죄는 ‘허위사실인지 뻔히 알면서 오로지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시킨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글을 써야 성립한다. 하지만 나는 50여명의 탈북자들을 노숙자담요가 분석해 줄 때까지 전혀 알지 못했다. 국가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 정확한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4년 동안 밤낮으로 오로지 영상분석에 매진해온 노숙자담요와 그 팀의 노력을 전문가도 아닌 내가 어떻게 명단에 올리고 빼고 할 수 있겠는가? 국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왜 이 위험하게 시달릴 일을 추진하겠는가? 내가 탈북자 수십 명을 어찌 안다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들의 명예를 무슨 목적으로 훼손시키려 마음을 먹었겠는가?
지만원 고소했으면 애국자 행세 말라
광화문 태극기 집회 주최단체들은 모두 다 양양가를 애창한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기꺼이 한목숨 바친다‘는 가사의 노래다. 우리사회에서 활동하는 탈북자들은 누구나 다 자신들이 애국자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작은 이익을 위해 애국의 선봉에 서 있는 우익장수들 중 한 사람인 지만원을 감옥에 넣겠다며 하태경과 같은 반역자의 인솔을 받아 검찰에 고소를 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들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도 하태경과 같은 부류라고 한다.
아래 사진들을 보고 판단하는 대한민국 국민 얕보지 말라
아래 사진들을 보라. 맨눈으로만 보아도 ‘똑같은 얼굴들“이라고 감탄한다. 안찬일이라는 자는 내가 광수로 지정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광수라고 이실직고 했다. 얼굴이 드러난 광수들보다 더 이상한 자가 바로 안찬일이다. 노숙자담요는 안찬일이 분명 광수일 것이라고 가정하고 열심히 찾았지만 아직은 찾지 못했다.
아래의 얼굴들에 대해 국민은 판단할 것이다. “정말 같은 얼굴이네” 이렇게 판독하는 국민들 많을수록 나를 고소한 아래 사람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더구나 강철환은 인터부에서 5.18에 북한이 개입했다는 사실마저 극구 부정했다. 바로 이 점이 그의 치명적 약점이 될 것이다.
1. 황장엽
2. 강철환
3. 김성민
4. 김영순
5. 김용화
6. 안명철
7. 안찬일
8. 이민복
9. 이순실
10. 임영선
11. 장진성
12. 정광일
13. 최주활
비공개 2인
2019.1.20.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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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폭동 때 북한군 1,441명 전사 및 행방불명
북한인권운동가 김주호 박사 “5.18 당시 북한 특수군 490명 침투했다”
시민단체, 5.18 북한군 개입설 증거사진 공개 논란 "北, 5.18 뒤 함경북도 청진에 추모
비설치..비석 뒷면 158명 이름 있다.
"이 사진이 5.18 사태 당시 남한에 침투했다가 사망한 북한군 정찰국 소속
특수부대원들을 위한 ‘가묘’"라고 설명했다.
김 박사에 따르면 함경북도 청진 시 낙양 동에 있는 ‘열사 추모비’는 광주사태 직후인 1980년 8월 세워졌으며 1998년 2월 8일 새로 단장됐다. 현재 ‘인민군영웅들의 열사 묘’는 일반 북한 주민 누구나 출입이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비석의 뒷면을 찍은 사진에는 ‘홍성표’, ‘리진혁’ 등 모두 158명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홍성표 리진혁 등 외 332명의 인민군 영웅 렬사들이 잠들고 있다”
사진과 김 박사의 설명을 종합하면 80년 광주사태 당시 남한에 침투한 북한군은 이름이 밝혀1“비 에 이름이 새겨진 158명이 ‘남조선혁명투쟁에서 희생된 인민군 영웅들’이라는 사실을 다른 문건에서 중복 확인했다” “사망자의 ‘죽은 날’로 기록된 1980년 6월 19일은 소속부대의 광주남파작전 종결일로, 사망일을 이 날짜에 맞췄다”
김주호 박사는 이번에 공개한 사진이 ‘5.18북한군 개입설’을 증명하는 증거의 일부라며 광주시민의 억울한 희생을 강요한 가해자에 대한 실체규명을 거듭 강조했다. “북한군 개입 증거발표로 우리의 공적 (公敵)이 북한임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 “북한이 펼친 대남공작의 진실을 밝혀 광주시민에게 2중 3중의 고통과 억울한 희생을 강요한 가해자의 정체를 가려내야 한다.” 김 박사는 이날 증거 공개가 "사건의 실체규명을 위한 것으로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돼서는 안 된다"며 정치적 해석을 경계하기도 했다. “이번 발표는 국민대화합과 국민대통합을 위한 것. 우리 내부의 새로운 갈등과 대립, 불화와 반목의 불씨가 돼서는 안 된다” 이날 발표에 대해 회견 참석자 중 일부는 사망자의 숫자가 너무 많다며 의구심을 표하기도 했으나, 김 박사는 확실한 자료와 근거에 따른 숫자라며 사진의 신뢰도에 문제가 없다고 답변했다. “확실한 자료와 근거에 입각한 숫자이기 때문에 많다 적다 단정하기는 곤란하다” “광주 인근 야산에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신 수백여구가 암매장됐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오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사망자 명단이 늘어 날 가능 성도 있다” 이날 기자 회견에 참석한 서석구 변호사 역시 공개된 사진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 평가했다. “공개 사진과 증거자료를 살펴 본 결과 이 정도면 법적인 증거력을 갖는데 하자가 없을 것으로 본다.”“일반국민이 쉽게 납득할 수 있도록 추가 증거와 자료를 보강해 누구도 부정하거나 반론을 펴지 못 하게 되길 바란다.”
1)폭풍군단 우레 30여단의 침투
➀ 1980년 4월28일 밤, 함경도 신포출발, 29일 새벽에 남포도착
➁ 군단장, 군단정치 지도원등이 마중 나옴.
➂ 1980년 5월2일, 새벽3시 잠수정이용 남포출발, 다음새벽 2시경 남한의 전남 영암군 염전면두우리 백바위 해변상륙, 미리 온 대기자 및 안내원을 따라 제1차 집결지인 무등산X호 지역에 모임.
➃ 육지로 침투한 자는 강원도 철원군 땅굴로 침투, 전주부근 대둔산에 야영을 치고 땅굴 출구에는 노인이 대기하고 있었음.
➄ 잠수정에는 크기에 따라 3명 내지 10명의 잠수정 운행자가 있었고 3-10명의 전투 요원들이 승선할 수 있었음.
2)북한군이 수행한 작전
➀ 1980, 5, 21 오전8시 20사단 지휘부 차량공격, 탈취 및 운행.
➁ 아세아 자동차공장 공격, 장갑차60대, 군트럭305대, 버스100대, 고속버스 5대등을 탈취 및 운행
➂ 군부대 무기고등, 49(47)개의 무기고 공경 및 무기탈취
➃ 전남도청 점령 작전
5,광주교도소 5차례 공격
➅ 장흥교도소 공격
➆ 전남도청 지하실에 8톤 트럭 1대 분량의 폭발물 설치(약2,600상자)
➇ 잔혹한 시민학살
3, 5.18사건 북한군 전사자
➀ 전사자는 총490명이며 475명은 광주부근에 암매장 됨.
➁ 약11명은 망월 동 묘지에 매장되고 4명은 귀환도중 사망.
➂ 폭군군단 우레3여단 300명 참전자중 생존귀환자는 57명,(이중 부상자는 46명)
➃ 폭군군단 300명중, 사망 및 행방불명자는 243명, (사망자165명, 행방불명자78명)
➄ 다른 부대는 300명중 생존귀환자 53명, (사망 및 행방불명은 247명)
(사망자: 820명, 행방불명자: 321명 기타: 약300명 )
➅ 전사자 관리부대: 534군부대 158명, 108군부대 112명, 806군부대 74명, 총 전사자 490명
➆ 124군 부대 후신 534부대 158명 전사.
4, 북한군 작전종결일
➀ 작전 종결일은 1980년 6월19일.
➁ 8월1일자로 “당과 수령님을 위하여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라는 제목으로 사망자 명단을 만듬
➂ 1980년 8월 인민군 영웅들의 열사 묘 조성, 1998년 2월8일 에는 묘비 세움.
➃ 2012년 9월 한국에서 인민영웅들의 열사 묘 및 비석발표
➄ 2013-2014년 인민군 영웅들의 열사 비석을 6,25 참전 인민으로 열사 묘로 교체하며 숨김.
인민 무력 부 534군부대 전사자 묘비
5.18 폭동은 민주화운동이 아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잘못 기록된 역사를 바로잡고 나라의 역적놈들이 국가유공자니 하고 떠드는 자들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Dec. 28, 2018
You tube에서 자료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