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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일반]
'4·3
박진경 대령'의 마지막 부대원
"30만 도민 희생설?
새빨간 거짓말"
한성택 예비역 소령
"암살 옹호한 안내판…
정말 고약한 해코지"
----2025년 12월 18일 제주시 연동 산록북로에
위치한 박진경 대령 추모비 옆에서 한성택 예비역
소령이 4.3 사건과 박진경 대령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다----
< 장경식 기자 >
“역사는 진실되게, 바르게 써야 하는 것
아닙니까.
‘새빨간 거짓말’을 어떻게 역사라고 합니까.”
노병(老兵)은 목소리를 높였다.
마치 마지막 기운을 짜낸 것 같았다.
한성택(95) 예비역 육군 소령이다.
한 소령은 1948년 제주 4·3 사건 초기
수습을 맡았던 고(故) 박진경(1920~1948)
대령이 이끌었던 9연대 장병 중 마지막
생존자다.
그는
“남로당 무장 세력의 폭동으로 제주 4·3
사건이 일어났다”
며
“당시 박 대령은 민간인을 학살하거나
강경 진압한 적이 없다”
고 했다.
----1948년 제주 4·3 사건 당시
박진경(맨 오른쪽 원) 대령----
< 다큐스토리 >
18일 오후 박 대령의 추도비가 있는
제주도 제주시 한 카페에서 만난
한 소령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한 건
박 대령이
‘폭동 진압을 위해선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
고 했다는 이른바 ‘30만 희생설’을 두고
한 말이었다.
‘30만 희생설’은 박 대령 암살범 중
한 명인 손순호 하사의 법정 진술에서
나온 말이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5일 박 대령의 국가 유공자 지정 취소
검토를 지시했다.
한 소령은 이에 대해
“‘30만 희생설’ 같은 허위 사실을 잘못
보고받고 한 어처구니없는 지시”
라고 했다.
한 소령은 제주도청이 박 대령 추도비
옆에 암살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듯한
안내판을 세운 데 대해선
“목숨 걸고 제주도민을 지키다
암살당한 분을 해코지하는 고약한 짓”
이라며
“당장 없애버려야 한다”
고 했다.
한 소령은 인터뷰에 응한 이유에 대해
“당시 9연대에서 복무한 장병 550명이
모두 죽고 이제 나만 남았다”
며
“있는 그대로 후세들에게 역사를 전하는 게
어른들의 책무”
라고 했다.
그는
“4·3 사건은 정말 잘못 알려졌다”
며
“지금도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다.
내가 ‘산 증인’이니 정부가 부르면 있는
그대로 증언하겠다”
고 했다.
고령으로 귀가 잘 들리지 않지만,
당시 상황을 말할 때는 거침이 없었다.
◇“부하에게도 존댓말 쓰던 박 대령…
주민들 피난시켜"
----2025년 12월 18일 제주시 연동 산록북로에
위치한 박진경 대령 추모비 옆에서 한성택 예비역
소령이 4.3 사건과 박진경 대령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다----
< 장경식 기자 >
18일 오후 1시 한성택 소령은 고(故)
박진경 대령의 추도비가 있는 제주시
어승생한울누리 공원을 찾았다.
그는 하지 정맥류로 거동이 불편하다.
한 소령은 추도비로 걸음을 옮길 때
주춤거렸고 도랑을 만났을 땐 기자 손을
잡고 겨우 건넜다.
그러나 추도비 앞에선 몸을 꼿꼿이
세우고 거수경례를 올렸다.
그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국가보훈부는 박 대령이 1950년
받은 을지무공훈장을 근거로 지난달
10일 그를 국가 유공자로 지정했다.
그런데 제주 4·3 단체와 현 여권
일각에서
“박 대령은 학살자”
라고 반발하자 이 대통령이 박 대령에
대한 국가 유공자 지정을 사실상
철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같은 날 제주도청은 박 대령 추도비
옆에 암살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듯한
안내판도 세웠다.
이에 대해 한 소령은
“박 대령이 부임한 지 한 달 뒤
암살당할 때까지 상황을 지금도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박 대령이
학살자란 주장은 명백한 허위”
라며
“어떻게 일부 세력의 일방적인 말만
듣고 그런 지시를 하는지 모르겠다”
고 했다.
그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런 사달이 난다”
며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또 박 대령을
국가유공자로 모실 것이냐”
고 했다.
박 대령은 4·3 사건의 수습 임무를
맡았던 조선경비대(국군의 전신)
9연대장이었다.
남로당은 1948년 5·10 선거와 대한민국
수립을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제주에서
무장 폭동을 일으켰다.
폭동 발생 한 달 정도 후인 5월 6일
박 대령은 제주 9연대에 부임했다.
서귀포 출생인 한 소령은 이로부터
1년 전인 6월 30일 입대해 9연대에서
복무 중이었다.
당시 18세 병장이었다.
한 소령은
“당시 제주도민들은 남로당에 들어가거나
군대 가거나 두 길밖에 없었다”
며
“거리 곳곳에 남로당 홍보 전단이 붙어
있었는데 나는 나라를 지키기로 결심하
고 입대했다”
고 했다.
그는
“박 대령이 취임할 때가 생생히
기억난다.
항상 미소를 짓는 분이라 부하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며
“박 대령은 경상도 사투리를 썼지만
부하들에게도 존댓말을 썼다”
고 했다.
한 소령은 박 대령이
"폭동 진압을 위해선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
고 했다는 ‘30만 희생설’에 대해
“그런 말을 한 사람과 직접 만나
대화하고 싶다”
며
“제주도민을 다 죽이겠다고 하면
민족 반역자 아니겠느냐
상식적으로 군인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느냐”
고 했다.
‘30만 희생설’은 암살범 중 한 명인
손순호 하사의 법정 진술에서 나온
말이다.
손 하사는 위생병 신분으로 암살에
가담했다.
위생병까지 이런 작전 방침을 알았다면
부대원 대다수가 이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한 소령은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며
“남로당에서 지어낸 말이다.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고 했다.
그는
“오히려 박 대령은 공비(남로당 무장 세력)
들이 산간 마을로 끌고 간 주민들을
피신시켰다”
며
“공비들이 그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으니
산에 있으면 다 죽었던 건데….
박 대령이 ‘놔두면 다 죽는다’며
데리고 온 것”
이라고 했다.
노무현 정부 때 나온 ‘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4·3 보고서)’에도
당시 소대장이었던 채명신
(전 주베트남 한국군사령관)은
“박 대령은 폭도들에 대한 토벌보다는
입산한 주민들의 하산에 작전의 중심을
뒀다”
고 진술했다.
박 대령이 주민들을 남로당 무장 세력과
떼어놓는 선무(宣撫) 작전에 주력했다는
것이다.
박 대령은 부임 한 달여 만인 같은 해 6월
대령 진급 축하 회식을 마치고 숙소에서
잠자던 중 부하들에게 암살당했다.
한 소령은
“새벽 3시, 자고 있던 천막에서 약 50m
떨어진 박 대령의 천막에서 총소리가
났다”
며
“비상이 걸려 연대 전체가 집합했다”
고 했다.
당시 6월인데도 새벽 날씨가 유독
선선했다고 한다.
한 소령은
“그날 오후 미군이 박 대령을 암살한
범인을 찾기 위해 부대 내 탄약과 총기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며
“연대 전체가 초상집 분위기였다”
고 했다.
그는
“박 대령 장례식이 서울에서 열려 나를
포함한 9연대 장병들은 조문도 못 갔다”
며
“부모님 장례를 못 챙긴 것처럼 부대원들이
침통해했다”
고 했다.
한 소령은
“박 대령의 장례식이 국군 1호장으로
성대하게 치러져 그나마 위안이 됐었다
”고 했다.
박 대령이 부임한지 나흘 뒤인 5월 10일
작성된 남로당 측의
‘제주도 인민 유격대 투쟁보고서’
는
“반동의 거두 박진경 연대장 이하 반동
장교들을 숙청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 썼다.
남로당이 처음부터 박 대령 암살을
계획했음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한 소령은 박 대령 암살 주범인
문상길 중위에 대해
“입대할 때 문 중위에게 교육을 받았었다”
며
“그가 남로당에 흡수되지 않았다면
제주도민의 희생이 이렇게 크지 않았을 것”
이라고 했다.
한 소령은 6·25전쟁 때는 낙동강 전투 등에
참전했다.
그는
“함경북도 두만강 부근까지 진출했는데
중공군이 밀려와 강원도 묵호까지
후퇴했다”
며
“나만큼 전투를 많이 치른 군인이 없다.
목숨 걸고 나라를 지켰다”
고 했다.
그는
“휴전 이후로도 군 생활을 계속한 건
진급해서 박 대령처럼 되고 싶었기 때문”
이라며
“그만큼 나라를 사랑했다”
고 했다.
"연대장을 암살한 9연대 출신"
이라는 딱지가 붙어 다른 군인들에게
차별도 많이 당했다고 했다.
그러나 한 소령은
“9연대 출신 군인들이 가장 잘 싸웠기 때문에
결국에는 인정받았다”
고 했다.
그는 전쟁 중 대퇴부에 입은 총상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1963년 3월 소령으로
제대했다.
한 소령은 지난 10년간 박 대령을
‘가해자’
로 모는 4·3 단체들에 수차례 서신을 보내
“사실 왜곡을 멈춰 달라”
고 해왔다.
그는 서신에서
“박 대령이 주민들을 학살하거나 강경
진압을 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없는 사실을
주장할 수 있느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고 호소했다.
하지만 한 소령은
“아무런 답을 듣지 못했다”
며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고 했다.
한 소령은
“4·3 사건으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분도
많다.
희생된 분들께 애도의 뜻을 전한다”
며
“그러나 4·3 사건은 남로당 무장 세력이
주도해 시작된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고 했다.
그는
“남로당 잔류 세력이 군을 반역자로
몰아세우고 자기들은
‘열사’
로 치켜세우는 상황이 개탄스럽다”
며
“진실된 기록을 통해 제주도에 봄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고 했다.
제주=장윤 기자
[출처 : 조선일보]
[100자평]
불루마운틴
멸공방첩.
회원80735389
토착 왜구나 학살범등을 제대로 청산하지 않은
대가가 12.3 내란이지~~
이번엔 윤수괴와 그 부역자들 확실히 엄벌해야지..
대장군
이게 나라냐?
죽창 든 남로당 후예들 세상이지.....
직필논객
제주 4.3 무장 폭동 내란은 남로당 김달삼
(본명 이승진) 무리가 일으킨 것이다.
봉선동이
아직도 좌우 이념이 지배하고 있는 불행지역.
순국선열이 지켜준 자유대한에 살고 싶다
남로당 잔존파(암살범이 빨간문가 였네)
좌파 종북 주사파 선동꾼들아 너희들 이상국
북 아니면 중러 어서가라
토종오리
숨어있던 남로당 2세대, 3세대 모두 머리를
내민다.
두더쥐를 잡자!
도리천
확인된 희생자 14,822명..
그외 신고되지 않는 희생자까지 합치면 추정치로
25,000~30,000명이다.
30만명? 어림도 없는 소리..
당시 제주도민 인구가 몇 만인데 헛소리는..
사건의 발단도 김일성과 박헌영의 지시를 받은
남로당 제주도당이 벌인 경찰서 습격과 경찰과
가족들을 학살한데서 발생했다.
남로당 제주도당 유격대의 게릴라 전투였다.
제주도에 전라도 사람들 70% 이상 산다.
하여간에 국가 세금 뜯어먹는 데는 도가 텄다.
grandfathe****
박진경 대령 암살범의 30만 희생설의 진위에
상관없이 재명이가 대한민국 영웅을 북괴 빨치산을
토벌했다고 미워서 국가 유공자 취소한다고
한 것 아닌가?
김정은의 지령받았나 아니면 지도원 여사님의
명령을 받으셨나?
대통령이 나서서 영웅을 매도하니 이게 나라냐?
아니면 북조선의 남 식민지냐?
대통령이 아니라 남 식민지 총독인가?
청개구리
4.3, 여수 순천 반란 사건 이 모두가 힘 없는
민족의 서러움이다.
스스로도 지키지 못하는 조선의 노비같은
백성으로 살면서 수탈만 당하고 교육받지
못한 탓에 좌우의 이념이 뭔지도 몰랐던
탓이며 생각된다.
이제라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이다.
천년향
역사는 승자의 중심으로 서술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알 수 있다.
노적바위
진실의 역사를 찢어버리는 대통령은 나라를
위해서 물러나야 한다.
골든핑거
4.3사건이 뭔지도 모르는 우매한 독자들에게
선동질이나 하고 자빠진 조선.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남로당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 과정에서 다수의
무고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
몇 안되는 남로당 넘들 잡겠다고 25,000~30,000명의
중산간 지역 민간들이 잡아 처형시킨 사건.
정부의 제주 4.3사건 진상보고서 마저 부정중인
조선아. 역사의 근간을 뒤흔들고 나라를 분열시키는
니가 바로 윤석열이 말하는 반국가세력은
아닐런지....
이모난
양민학살자를 유공자로 둔갑시켰다면
이 또한 큰 잘못이다.
그날이오면
그때나 지금이나 똑 같다. 대한민국 반역자들이
이 나라를 파괴하려 하고 있고 실제 파괴하고 있다.
하루빨리 이죄명이와 그 패거리들 저 붉은 무리들을
처단해야 ~~~
01011
재명아 이스라엘은 너 같은 짖거리 안한다.
Enfnal
좌익들이 사실을 뒤엎고 공산주의자들의 세상을
만들려면 보수 우익이 총궐기해서 세상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ookang26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헌신한 분을 이렇게
모욕하는 일부 국민과 정부를 하늘이 꾸짖을 것이다.
팅바리
북조선을 흠모하는 정부라 그런 겁니다!!!
회원94875478
니들은 일방적 주장만 기사화 하는건 문제 있다
생각하지않냐?
이미 법적으로 정해진것을 가해자의 일방적
주장만 진실인듯 주장하는구나... 기렉....
백일
역사를 바로, 진실되게 쓰면 되나요?
남로당 빨치산 거지들 역사를 조작하고 날조해야
되는데,,,
찢재명은 절대 그렇게 할 넘이 아니지요.
그냥 찢어요~
썬써니0693
나라를 위해 목숨바쳐 싸우신 박대령님이 얼마나
억울하실까요.
고 박대령님의 진실을 밝혀주신 한소령님
고맙습니다.
한 소령님을 인터뷰해주셔서 진실을 알려주신
기자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당신 같은 기자분이 계셔서 세상이 어둡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
거밍
두고 보세요. 조금 있으면 6.25도 북침이라고
역사를 조작할 겁니다.
내일의 태양
남로당 잔류 세력의 끊임 없는 왜곡 시도.
맞는 말입니다.
남로당 잔류들이 정체를 숨기고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김선생
재명아, 대통령이 되었으면 함무로 입을 놀리지 말고
곰곰히 생각해 보고 말해야 하는것도 모르냐?
자기입으로 뱉은 말이 사실이 아닐때 도로 주어
담을 수 있나?
백일
지금 권력 쥐었으니 남로당 빨치산 후손들의 역사
날조 조작 사업이지.
중국 것들이 고구려 역사 조작해서 동북공정 하는
것과 같구만.....
회원19694499
전라도와 제주도는 악귀들이었다.
이 점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살아야 한다.
유공자 보상금도 터무니 없다.
뽀다구
우군을 넘어 혼군이 지잘났다고 설치는 나라치고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다.
좋으냐? 7시.
백일
남로당 추종 세력이 정권 잡았구나,,,
남로당 빨치산 후손들.
제주 4.3사건은 남로당 빨치산의 무장 폭동이
명확하다.
부역한 제주도민이라면 전부 사살함이 마땅한
일이다.
KEVIN91
버얼건 무리들의 상습적인 행동
첫째는 나는 예외, 둘째는 아
니면 말고,
세째 곤란해지면 자살 당하기,
네째는 개나 줘버려
복바위
지금 홍천 11사단은 전쟁이 나면 닥치고
평양으로 진격하는 7군단 의 주력부대지만
지리산 덕유산 빨치산 토벌할때 9연대
2대대가 거창신웡 양민을 학살한 부대였고
고향이 거창인 나도 9연대 출신이지만
어릴적 학교 다닐때는 쉬쉬 했다고 알고
있네요!
자유민주옹립
이 나라가 되집어 지기를 끝임 없이 시도하고
환경을 만들어 갈 것이고 이놈들은 이 나라에
공산주의가 되도록 할 것이니 이들을 반드시
물리쳐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