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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투표를 ‘못’했습니다” 유권자의 분통 | ||||||||||||||||||||||||||||||||||||||||||||||||
장애인 접근성 고려되지 않은 사전투표소…“국민의 의무이자 권리에서 차별된 대한민국 모든 장애인의 현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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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사무국장은 서울시 영등포구 당산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가장 가까운 당산 1동 주민센터를 찾았다. 다음달 4일 투표 당일과 내일까지 진행되는 사전투표 이틀 모두 일정이 빈틈 없이 짜여져 있어 오전 잠깐 어렵게 시간을 냈다.
당산 1동 주민센터 투표소 측에서는 장애인 기표대를 1층에 설치에 임시 기표대를 마련했지만, 기표만 가능할 뿐 신분증을 제시해 본인확인을 하거나 기표한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는 것은 투표사무원과 참관인의 손을 빌려야 했다. 박 사무국장은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투표소에 들어가 본인화인과 기표, 투표함에 넣는 모든 과정을 직접 행사하겠다.”고 요구했다. 사전투표는 유권자가 살고 있는 해당 지역 뿐 아니라 전국 어디에서나 투표할 수 있도록 국민 편의를 위해 30일과 31일 양일간 실시된다. 관외 투표를 원하는 유권자는 사전투표소를 찾아 본인확인을 한 뒤 현장에서 인쇄된 본인의 해당지역 투표용지를 받을 수 있고, 기표 후 동봉해 투표함에 넣으면 사전투표가 완료된다. 사전투표는 전산망 등을 이용해야 하는 등 이유로 대부분 전국 주민센터에 사전투표소가 마련됐다. 하지만 사전투표소가 주민센터의 강당 또는 유휴 공간에 마련되다 보니, 2층 또는 지하에 위치하게 돼 장애인의 접근성이 고려되지 못한 것. 박 사무국장은 “국민의 한사람으로 참정권을 행사하기 위해 찾아왔지만 투표소 접근은커녕, 비밀선거에도 위반되는 투표를 하게 생겼다.”며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등에관한법률에서 정하는 명백한 장애를 이유로 한 배제·분리·차별에 해당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국민의 편의를 위해 사전투표 제도를 시행한다면 당연히 국민의 한 사람인 장애인의 접근성도 고려했어야 한다.”며 “유권자로서 당연히 보장 받아야 할 투표 과정을 무시한 채 선거를 할 수는 없다.”고 강경하게 대응했다. 이에 당산 1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 투표관리관은 선거사무원과 참관인 입회 아래 본인확인은 서류를 통해 임시기표대가 설치된 1층에서 진행한 뒤 기표를 진행하고, 기표된 용지를 선거사무원과 참관인이 2층에 올라가 투표함에 넣겠다는 방법을 제시했다. 하지만 박 사무국장은 이 또한 장애인 차별이기에 응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한 시간여의 시간이 흐른 뒤 영등포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가 장애인차량을 이용해 접근이 가능한 투표소로 이동해 투표를 지원하겠다고 찾아왔다. 박 사무국장은 “투표 당일 업무 등으로 투표를 하지 못하는 유권자를 위해 시행된 사전투표의 취지대로 나 역시 사전투표에 임하기 위해 이곳에 찾아왔다. 하지만 장애인 접근성이 고려되지 않은 투표소 상황 때문에 오늘 오전 일정이 모두 밀려버렸다.”며 “장애인의 시간은 늘렸다 줄였다 하는 고무줄 시간이 아니다. 당연히 장애인의 접근성 까지 고려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이에 영등포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오늘 시간이 안 된다면 내일이라도 가능한 시간에 장애인차량을 보내 접근성이 가능한 곳으로 이동을 지원하겠다.”고 해명해봤지만, 박 사무국장은 “이미 짜여 진 일정이 선거관리위원회 등의 잘못으로 미뤄지고 있다. 더 이상 지체할 수도 다른 곳으로 이동해 투표를 할 수도 없다. 나는 투표를 ‘못’한 것이다.”라고 분개하며 투표소를 떠났다.
박 사무국장은 “당산 1동 주민센터는 가까운 거리에 장애인 접근이 가능한 영등포구청 등 다른 기관도 있지만, 이러한 대안은 전혀 고민조차 되지 않았다.”며 “장애인들의 권리와 편의에 대해 목소리 높이고 문제제기를 하지 않으면 신경도 쓰지 않는 것이 선거관리위원회의 태도.”라고 지적했다. 이어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한 사람의 유권자로서 권리이자 의무인 참정권을 행사하고자 했지만 ‘투표를 안 한 것’이 아닌 ‘투표를 못 한 것’이 됐다.”며 “이러한 현실은 사전투표소는 물론 당일 투표소 접근성 까지, 나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모든 장애인이 직면해 있는 문제.”라고 지적하며 법적 문제 제기를 예고했다. 한편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에 따르면 1층에 사전투표소가 마련된 곳은 전국 사전투표소 중 9%에 불과하다. 이에 전국 곳곳에서 사전투표소 접근성 문제로 투표를 하지 못한 장애인들의 문제 제기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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