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휴가에 그동안 한번쯤은 찾아보아야겠다고 생각한 완도의 추씨 마을을 찾았다. 2009년 7월 30일 목요일 오후에 당초 청산도의 추씨를 찾고자 완도에 도착하였으나, 다음날 서울 성균관에 출장을 갈 일이 있어 다음 기회로 미루고 완도읍을 경유 비교적 추씨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알려진 고금도(古今島-고금면)를 찾기로 하였다.
신지도(薪智島-신지면)의 송곡항에서 배를 타고 고금도에 도착할 당시의 시각이 벌써 오후 5시를 넘고 있었다. 먼저 고금면사무소를 찾았다. 완도로 가는 도중에 114에 문의하여 고금면사무소로 전화를 하여 고금면 일대에 추씨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다는 민원실 여직원의 안내가 있어 정보를 얻고자 방문하였더니 아주 친절하게 고금면의 상세지도와 일대에 거소하는 추씨들의 전화번호 등을 알려주었다.
또 우리 고금면에도 추모(秋某)씨가 근무하고 있는데 오늘 마침 도청에 출장중이라 한다. 휴대폰 번호를 물어 면사무소에 근무한다는 추모 종친에게 전화를 한바 지금 손님을 만나고 있으니 조금 있다 전화를 주시겠다하여 기다렸으나, 이후 씨(氏)로부터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고금면에서 식당을 경영하신다는 모(某) 종친에게 전화를 하여 멀리 대구에서 왔는데 일가 어른께 인사를 좀 올리고자 한다는 뜻을 전하자 기꺼이 방문을 허락하셨다. 종친께서는 해변가 마을에 거소하고 계셨는데 교(敎)자 항렬이라 말씀하신다. 싱싱한 회(鱠)를 대접하시면서 반가이 맞아 주셨으나 식당일이 바쁜 관계로 제대로 대화가 되지 않았다. 인근 마을에 종사(宗事)일에 능하신 종친의 함자(銜字)와 위치를 알려 주시면서 미안해하신다. 내일 다시 찾아오라는 정겨운 말씀을 뒤로한 채 어둑어둑해지는 때에 인근마을로 향하였다.
몇 번의 길을 물어 알려준 종친 거소마을을 찾았다. 참고로 이곳은 네비게이션에도 찍히지 않는 지역으로 기기는 무용지물이었다. BMW 700시리즈를 타시는 분에게 물었더니 친절하게 자기 차를 따라 오시라 해서 안내를 해 주신다. 마을 입구에 까지 안내해 준 후 자신은 다시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 그 친절함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종친댁으로 찾아 들어 갔는데 호(鎬)자와 교(敎)자 항렬이시다. 인사를 올리고 종사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완도의 종친들은 임진왜란 후 완산부원군의 장자이신 돈암공파로, 입향은 완도군에 속하는 청산도 옆의 작은 섬인 대모도로 입향하였으며, 완도의 모든 추씨는 대모도 입향조의 후손들이라 하신다. 종사 관련 문적이 있으면 보여 주십사하였더니 이번 대종회에서 간행 분질한 병술대동보와 일제시대에 민족종교적인 성격을 띠면서 한때 번성한 보천교(普天敎) 관련 교첩(敎牒)과 보천교 관련 고문서 약간을 가져오신다. 보천교라는 종교관련 서류를 잠시 살펴보니 구(求)자 항렬의 추모(秋某)어른께서 일제 당시 완도지역의 보천교 책임자로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 완도(莞島)의 종회장(宗會長)께서 인근 신지도(신지면)에 거소하신다하여 전화를 올리자 반가이 맞아 주신다. 완도 종회장이신 족장(族丈)께서는 작년 인흥서원 중수준공식 때 만나 뵌 적이 있는 어른이시라, 소개를 올리자 알아보시고는 완도까지 왔으니 꼭 들러보고 가라는 말씀에, 당초 당일 고금도에서 강진으로 올라가서 대구로 향발(向發)하려 했으나, 정중한 권유에 일박(一泊)을 결정하고 인근 모텔에 여장을 풀었다. 이튿날 7월 31일 금요일 아침에 다시 추씨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용초마을 등을 찾아가 마을 전경사진을 찍은 후, 다시 항구로 가서 배를 타고 신지도(신지면)로 향하였다.
신지도에 도착하여 엽(燁)자 항렬의 종회장님을 만나 댁을 방문하였다. 완도에는 추씨들이 250여호가 살고 있는데 모두 대모도 입향조의 같은 후손들이시란다. 완도종친회의 총무님은 완도읍에 근무하고 있으며 완도군의회 의장(議長)을 하셨던 종친도 계시다고 말씀하시면서 당신께서는 완도군 유도회장(儒道會長)과 완도향교의 전교(典校)를 역임하셨노라 하시면서 임명장을 보여 주신다. 또 종가에는 교지(敎旨)도 보관되어 있다면서 신지면지(薪智面紙)에 실린 교지류(敎旨類)의 사진을 보여주시고 자손 교육용으로 만들었다는 가계(家系)계통도(系統圖)도 보여 주신다.
완도의 추씨들은 대모도에서 인근 큰섬인 완도(莞島)와 고금도(古今島), 신지도(薪智島), 약산도(藥山島), 청산도 등에 이주 분포하여 거소하고 있으며 추계추씨 돈암공파로 분류된다. 현 추계추씨대종회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우리의 선조이신 거유(巨儒) 문헌공 노당선조의 자랑스러운 후예답게 유림(儒林)에 몸을 담아 유도(儒道)에 관심을 갖고 완도군의 유도회장(儒道會長)과 완도(莞島)향교(鄕校)의 전교(典校)를 배출하였다는 것은 실로 자랑스러우며 문중을 빛낸 일이라 사료됨에, 완도의 추씨 일가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정중히 올리면서 완도종중(莞島宗中)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