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시도 안 되어서 남편은 건너밭에 일할 어르신들을 모시러 나가고 없는데
아들이 갑자기 무섭다고 방에서 튀어 나왔습니다
밖에서 계속 뭐가 문을 드드린다는 것입니다.
에구 촌넘 딱따구리가 나무를 파는 소리가 무섭다고 그 야단이었습니다.
우리집 밤나무에 아무래도 청딱따구리가 집을 지으려는 모양입니다.
며칠째 나무를 파고 있거든요.
우리집 숫캐 호동이는 이제 완전히 총각이 되어서 야단입니다.
작은개 포동이와 포순이의 말썽 때문에 이렇게 우리를 짓고 이리로 옮겨 왔는데
호동이가 없으니 하도 야단들이라 덕분에 같이 이 우리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아무튼지 목줄이 끌러져서 어찌 보면 낫기도하고 어찌보면 사람사랑을 덜 받게 되어서
그게 그거 입니다.
이웃집에 뭐떡 같이 생긴 암캐가 자주 내려오는데 아주 야단법석입니다.
그 암캐는 전혀 관심도 없는데 하도 야단이라 제가 다 자존심이 상합니다.
딱밤을 한대 주면서 <정신차려 이 친구야~>
했더니 말을 알아 듣고 좀 멋적어 합니다.
일하실 분들을 모시러 갔던 남편은 그냥 왔습니다.
어렵게 사람을 얻었는데 서울에 비가 오고 있다고 하여 일의 진행이 안될 것 같다고 판단이 되었나 봅니다
가까운 주천에도 비가 내린다고 하여 그냥 잠시잠깐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남편은 포크레인으로 집 주변을 정리하고 저는 효소담는일을 계속 하였지요.
오늘은 어제 뜯어온 쑥과 칡순을 담그었습니다.
그리고 웅덩이에 샘도 하나 만들었지요.
호동이녀석은 안 보는척 하면서 여전히 암캐에게 눈이 가 있습니다.
가끔 제 눈치를 보면서~
금방 비가 내릴 것 같더니 점심때가 지나도록 비는 내리지를 않아서 뭣을 시작하기도 애메하고
안하기도 그렇고 참 난감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는동안 전화는 열통이 넘게 왔습니다.
<비 오는데 뭐해 안 올거야?>
하구 말이지요.
비가오면 놀러 가겠다고 약속을 남발한데가 그렇게 많은줄 새삼 알았습니다.
비가오면 황둔 휴양림 성주씨에게 가서 흑맥주 하는걸 배우기로 하였었고,
비가오면 모여서 고기잡아 매운탕 끓여 먹기로 하였었고
비가오면 원주로 피자 먹으러 가기로 친구와 약속했었고
비가오면 태기산 농부님 댁에 놀러 가기로 하였었고
비가오면 하늘아래 님 댁에 모여 나물 부침개 부쳐 먹기로 하였었고
비가오면 좋은 방 내 줄 터이니 휴양림에 와서 하루 쉬어 가라는 동기생도 있었고
비가오면 서울로 새살림 차린 친구네집 구경도 가기로 하였었고
비가오면 그동안 밀린 사진들 올려 주기로 하였었고
비가오면 짜장면 먹으러 가기로 하였었고
비가오면 잃어버린 나물 동추를 찾아 가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비가오면.......
그런데 우리동네는 비가 안오고 다른동네만 비가 오니 어쩌면 좋겠습니까
그래도 한편으로는 너무나 행복하였습니다.
산골짜기에 살아도 이렇게 기다려주고 전화해 주고 함께 해 주는 아는 분들이 많으니
도시에 사는 것 못지않게 심심치 않으니 얼마나 행복한 비명이에요~
결국 비는 오지 않는데도 비오는날 하기로 한 일을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목적지는 원주시 부론면 귀농하신 밑돌님댁을 방문하는 일입니다.
밑돌 님댁을 방문하는 목적은 풀을 제초할 수 있는 기계인 딸깍이와 풀미러를 보러 가는 것입니다.
함께 가기로 한 사람은 동추를 찾으러 가기로 했던 나눔의 기쁨 님 내외와 짜장면을 먹기로 했던 옙분 님과 강선생님을 중간에서
만나서 함께 갔습니다.
우리차에 여섯명이 타고 남한강변을 달려 밑돌님댁에 도착 하였습니다.
엊그제 만났지만 또 만나니 반갑습니다.
오늘 야콘을 심으셨다고 막 일을 끝내고 내려 오시는 중이었습니다.
호수가 있는 아름다운 정원에 녹음이 짙어졌고 꽃들이 활짝 피었습니다.
잘 가꾸어진 정원이 정말 부럽습니다.
밑돌 님이 얼른 풀미러와 딸깍이를 꺼내 오셨습니다.
곧 시험에 들어 갔지요.
골에 풀을 메주는 기계입니다.
제초제를 치지 않고 풀을 관리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화염방사기도 생각을 해 보았는데 아무리 풀이지만 너무 잔인하게 죽이는 것 같아
이것을 고려해 보려고 일부러 보러 왔습니다.
무엇을 결정할 때에 먼저 한 이들에게 조언을 받으면 많은 도움이 되지요
실수도 적고 후회도 덜하게 됩니다.
한사람씩 돌아 가면서 해 봅니다.
마치 놀이를 하는 것 같습니다.
여자들도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지가 아니고 돌자갈이 많은 우리 같은 밭에는 좀 그렇기는 하겠지만 일단 마음을 굳혀 봅니다.
처음 만났을 때 전혀 농사 짓는 것과는 무관할 것 같은 밑돌 님의 옆지기 님이 이제는
약간씩 농부티가 납니다
직접 해 본 사람만이 아는 고충 때문에 바라보는 시선이 약간 염려 스럽습니다.
아무튼지 잘 하고 있음에 만날 때마다 대견한 마음이 들고 안스러운 마음도 듭니다.
마당에 예쁜 단풍이 열매를 맺은걸 오늘 처음 알았다구요.
농사에 신경 쓰다 보면 그걸 언제 다 신경 쓰겠어요.
층층나무 꽃도 피었습니다.
이건 옙분님을 위한 소나무 사진입니다.
그리고 차를 마시며 귀농에 대한 발전적이고 건설적인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저는 이런 시간이 너무나 좋습니다.
미래가 있는 농촌을 보는 것 같아서 말이지요.
내 주신 생강향이 나는 목련차가 일품이었습니다.
옙분님이 직접 만드신 차에 붙여 놓는 잠시주차증을 가지고 오셔서 직접 글씨도 쓰고
아크릴로 색도 칠해 보았습니다.
각자 쓰고픈 문구를 써 넣었습니다.
밑돌님은 산처럼 물처럼 나눔의기쁨 님은 나눔의기쁨이라고 그리고 아무렴은 너희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이렇게 쓴뒤
위에다 아크릴로 마무리 하였습니다.
집을 나서는데 이쁜 강아지 한마리가 나무뒤에 숨어서 어쩔줄을 모릅니다
강아지 인줄 알았더니 새끼를 가진 어미개래요.
어쩌면 이렇게 순하고 예쁘게 생겼는지 놀아주고 싶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나선곳은 귀래에 있는 손짜장집을 들렸습니다.
비오는 날 하기로 했던 일 중에 하나입니다.
손으로 늘리는 국수가닥을 보는 재미가 신기해서 주방으로 쫒아가서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반죽에서 이렇게 국수가닥이 되기까지 참 재밌고도 신기합니다.
만날 먹는모델 한다고 남편이 투덜거립니다.
그럼 남편만 빼고 ㅎㅎㅎ
그리고 마지막 코스로 들린집은 제천에 있는 제천에 있는소이 님 집입니다.
아버지께서 농사하신 꿀을 주문해서 가지고 들린 것이지요.
소이 님은 논술과외를 하시는데 우리가 도착하니 우루루 현관문을 나서는 아이들이 꽤 여러명입니다.
읽을 만한 책들이 아주 많아서 함께 책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중학교 때 없는 돈을 모아서 사 본 책들이 그대로 색이 바랜채 있었지요.
동그라미 해 놓은 것이 사서 본 책들이랍니다.
저도 이 책들을 빌려 보느라고 별짓을 다했었지요.
책가방을 들어다 주거나 숙제를 대신 해 주거나 설겆이를 해 주거나 하면서요.
책 한줄 더 읽으려고 잠도 안자고 몰래 헛간에서 호롱불을 켜놓고 읽다가 불을 낼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모인사람들이 다 이 책에 대한 추억이 비슷하였습니다.
책속에 오래된 나팔꽃 말린것이 들어 있습니다 30년도 넘게 그 책속에 있었으면서도
우리가 옛추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던 것처럼 그도 그 속에서 고스란히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지요.
소이 님은 퀼트에도 한솜씨 하셔서 곳곳에 솜씨가 있었습니다.
광목천으로 만든 커텐 그리고 인형들
이건 봉지아줌마라는 것입니다
이 속에다 허드레 봉지들을 넣어 두는 것이지요
솜씨가 너무 좋아 따로 사진을 찍어 왔는데 그것은 따로 올리지요.
많이 먹고도 또 먹었습니다.
그리고 향기로운 생강나무꽃차도 마시고 옛이야기 나누며 시간을 나누었답니다.
그리고 많은 책들중에 꼭 읽고 싶은 책 몇권을 빌려 왔습니다.
비오는 날에 모두 읽을거에요 내일 비오는 날 말구요.
돌아오는 차 속에서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좋은 사람을 많이 알고 있는 우리는 부자라구요.
비는 오지 않았지만 핑계로 만난 만남이 우리를 더욱 행복하게 하였습니다.
영월에 왔을 때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내일은 비가 온다고하니 다시 비오는 날 할 수 있는 일을 계획합니다.
첫댓글 비가 오면 할 일이 더 많은게 우리 여자들인데요. 일은 많은데 하기 싫고 파전이나 빈대떡 생각 간절한 것이 더 현실입니다.
단비는 와서 좋고, 비 핑계 삼아 이우지끼리 인정 나눠 좋고... 아, 소이 님 집은 역시나 깔끔 센스 모드네요. 금자 님 댁에서 설거지를 어찌나 과학(^^)적으로^^ 잘 하는지 저 같은 얼치기 주부는 아주 뒤로 밀려났지요. 낮은 책장도 맘에 들고...ㅎㅎ 비가 오니 생강차 한 잔 마시고 싶네요. ^^
세울님에게 칭찬 받으니 갑자기 설겆이를 해야겠다는...ㅎㅎ
비 오는 날엔 이우제 간다! 비 오는 날엔 자장면을 먹는다! 비 오는 날엔 빌려 온 책을 읽는다! 또 비 오는 날엔 이렇게 댓글도 단다.ㅋㅋㅋ
소이 집이 저렇구나. 담에 놀러 가야지..
저를 먹는 모델로 써주세요, ㅎㅎ 동강의 물빛만큼이나 단아하게 사는 아무렴그러치 내외분의 모습을 봅니다.
그러치 님의 글은 읽을 수룩 맛입니다. 사람 사는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봉지아줌마 ㅋㅋ, 재미있는 인형이네요. 저도 봉지가 굴러다니지 않게 이 아줌마 한번 만들어 봐야 겠어요. 그렇잖아도 제일 하고픈게 퀼트인데 손가락도 안 좋고 시간이 없다는 핑게로 늘 미루고 있어요.
나도 봉지 인형이 제일 탐이 나네요~~
샘요 올해가 가기전에 하나 만들어 드릴게요. 아마도 울 언니에게 부탁해야 할 듯...ㅎㅎ 퀼트 잡고 있음 숙제도 못해요~~^^
금자님 일기에 제가 자주 등장하니 신기해요. 그저께도 만나고 어제도 만나고 가까운 곳에 사시니 자주 만나서 좋아요.^^
내일은 나한테 금자님 양보해. 화명동에서 만날 테니.. 봉지 인형 크리스마스 선물로 예약해둘게.. 언니가 뭘 좋아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