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
이영광
어딘가 아픈 얼굴들을 하고 시인들이 앉아 있다
막 입원한 듯 막 퇴원한 듯 위중해도 보인다/
암 투병 중인 여류시인 문병 갔다가 걸어서 연말 술자리에 갔더니
울긋불긋한 선거 현수막이 만장같이 나부끼더니
얼음장 아래 모인 한 됫박의 마른 물고기들처럼
오직 시인들끼리, 시인들이 모여 있다
자리에 앉았는데도 멀리 떠난 얼굴을 한 아픔도 있고
어디든 너무 깊이 들어앉아 칼끝처럼 자기를 잊은 아픔도 있다
면도로 민머리에 예쁜 수건을 쓴 마른 몸이 생각났다
젖과 자궁을 들어내고 젊은 죽음 냄샐 풍기는 몸들이 생각났다
아픈 그녀의 자리는 여기 없고
그녀는 이곳보다 더 춥고 어두운 들판을 걸어가고 있고, 시인들이
이름 부르면 끌려 나가야 할 인질들처럼 모여 있다
많은 것을 버렸는데도 아직 더 버릴 게 있다는 얼굴들이다
별로 얻은 게 없는데도 별로 얻을 게 없다는 표정들이다
시인들은 영원히 딴 곳을 보고 있다
무섭게 아프고 무섭게 태연하다
간혹 한눈팔지 않는, 사촌 같은 아픔도 끼여 있는데
병을 흉내 내는 것이 더 큰 병임을 알기에
모르는 척 속은 듯 함께 앓아 넘기기도 한다
나는, 여기 머물면서도 여기가 어딘지 모르는 사람들이 좋다
이상(異常)한 것에 정신없이 끌리는 사람들이 좋다
제가 아픈지 안 아픈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좋다
처음부터 지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좋다
마음 가난과 어지러움은 면허 같은 것이니 길이 보전들 하시되
내년에도 몸이나, 어떻게든 몸 하나만은 잘들 보살피시라고
나는 조등(弔燈)처럼 노랗게 취하며 기원했다
얼음 물고기들이 순한 주둥이를 뻐끔대며 옹송그리는
차디찬 환영이 나무 벽 위로 자꾸 지나갔다
진통제를 꽂고도 시 읽고 시 읽어 달라던 안 아픈 영혼
아직 시집 한 권 낸 적 없는 그녀 생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