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오니 모임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 모임에서는 제게 장소를 정하라기에 예전에 지인이 추천해 준 일식집, 중국집, 한정식집을 찾아보았습니다. 고급스런 실내에 맛깔스런 음식, 쉽게 접하기 어려운 찬품을 보고 마음이 동했지만 가격을 보고 흠칫했습니다. 기본이 인당 6만 원에서 7만 원 정도. 꽤 센 금액이었지만, 그보다 더 제 선택을 가로막았던 건 소주 가격이었습니다. 한 병에 7천 원. 소주가 아닌, 메뉴에 맞는 특화된 술 가격이 높다면 그건 문제 될 게 없겠습니다만, 아직도 소주는 한 병에 4천 원이 대세인데 비싼 요릿집에서 소줏값으로 돈 벌 생각이라뇨? 바로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제 기억에서도 지웠습니다.
예전부터 제게는 확실한 선이 있었습니다. 소주 한 병에 3천 원 할 때, 5천 원 받는 일식집은 제가 주장해서는 절대 다시 가지 않았습니다. 그즈음, 횟집도 소주 값은 3천 원이었습니다. 현재도 횟집은 식당과 가격이 같고, 일식집은 2천 원 이상 더 비쌉니다. 밥집에 대한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근래에 코로나19 팬데믹 여파, 원재료가 상승으로 식단가가 올랐지만, 그전까지 밥 한 끼의 기준은 7천 원이었습니다. 7천 원까지는 현금으로 내고 -다섯 명이라면 3만 5천 원 현금- 그 이상이면 카드를 끊었습니다. 연말정산에서 한 푼이라도 더 환급받으려면 단돈 천 원이라도 카드 끊는 게 좋지만, 현금 결제는 밥값 7천 원 이하를 유지하는 분들께 대한 고마운 응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기준을 이제는 만 원 정도로 올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만큼 물가가 올랐다는 얘기지요.
제 단골집은 아직도 소줏값 4천 원 받는 집이 대다수입니다. 4,500원 받는 곳도 일부 있지만 그 정도까지는 제게 용인이 됩니다. 소주 유통 가격이 200원 정도 올랐으니까요. (그래도 실제 식당의 구매가는 병당 1,730원 정도에 불과합니다만) 하지만 5천 원 받는 집은 제 리스트에서 지웁니다. 이 기준이 다른 이에게는 우스워 보일 수도 있고 좀스러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제게는 진지한 선택 기준입니다. 엔데믹 이후, 소줏값 4천 원 받는 식당에 대해서는, 예전보다 더 자주 찾는 것으로 제 나름의 보답 아니, 감사의 뜻을 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과 맞물려, 경제 상황을 보면 참 답답합니다.(정치 상황은 더하지만, 너무나 암담하기에 당분간 억지로 잊고 지내기로 했습니다) 중소기업 지원 15년 동안 방문 기업들은 매년 어렵다, 어렵다를 반복해 왔고, 외환위기, 팬데믹 등 수없는 파고를 넘어왔지만, 올해 만난 220여 기업체 대표가 얘기하는 체감 경기와, 재무 자료, 경제지표 등을 보면 올해만큼 어려운 해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소상공인은 더 합니다. 거기다가 올해 임금 상승률이 2.2%에 그쳤으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7%랍니다. 물론 체감 물가상승률은 훨씬 높지만요. 그래서 서민들은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송년, 신년 모임 약속 잡을 때 규모 작고, 가격 착한 음식점-주로 제 단골식당 스타일-을 추천해야겠습니다. 제 주머니 아끼고, 서민식당, 제 단골식당을 지키는 길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이리 답답할 때는 자연을 만나러 나갑니다. 마음이 뻥 뚫립니다. 잠시 세상사 잊습니다. 구미의 보호수 리스트에 없었던, ‘19년에 보호수로 지정된 송당정사 모과나무를 보았습니다. 그보다, 강변의 소나무 숲을 낀 송당정사는 더 좋았습니다. 샛강에도 철새가 찾아왔습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3273970025
세상과 절연한 듯, 11월 하순인데도 동락서원 은행나무에는 아직 노랑과 초록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3273572136
샛강의 휴일(모셔온 글)=======
강을 흔드는 바람이 깃털을 물고
사라진 연꽃의 몸뚱어리를 잡으려
헤엄치는 붕어의 지느러미가 숨차다
겨울이 가둔 샛강의 고니 가족
청둥오리가 삶의 터전을 옮겨와
푸른 다리 밑에 둥지를 틀고
한낮의 꿀잠을 풀어놓고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시린 바람 한 줄기
그대와의 산책을 방해라도 하듯
목청껏 날갯짓으로
고음을 토하는 청둥오리 떼
태양을 삼킨 노을이 맴도는 들녘
철새들은 또다른 비행의
꿈의 발자국을 더듬거리며 퍼덕거린다.
-----박남숙 시인의 <세 번째 스무 살의 비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