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물 오른 뽀얀 속살, 그 유혹에 행복이 펑!펑 터지네
충남 보령 천북 굴 구이
석화(石花). 돌에 핀 꽃이라, 이름 한번 기가 막힌다.
어디 이름 뿐이랴. 게딱지처럼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껍질 안에 수줍게 들어낸 뽀얀 속살을 베어 물면 입안 가득 퍼지는 싱그러운 향에 감동한다. 미끈하면서도 감칠맛을 나는 육질을 갖고 있는 바다의 보물. 혹여나 누가 먼저 가져 갈까 두려워 갯벌 속 깊이 묻힌 굴을 캐러 일찌감치 길을 나선다.
영양만점, 맛 만점인 굴은 가을에 살이 차기 시작해 겨울이 되면 최적의 상태가 된다
"어유~ 너무 물컹물컹해서 싫어. 그리고 비린 걸 어쩜 그렇게 많이 먹어?"
한 자리에 앉아서 굴 50개 이상은 너끈히 먹는 '굴 포식가' 기자에게 동생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한마디 한다. 너는 모른다. 굴의 물렁함과 향이 싫어 입에도 대지 않는다는 당신은 결코 모른다! 입 속 가득 퍼지는 향긋한 굴의 참맛을 …. 만화 '맛의 달인' 에서도 굴 요리의 매력은 향기에서 나온다고 할 정도로 향기 없는 굴은 더 이상 굴이 아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굴을 먹는 것은 간간한 바다의 향기를 마시는 것이라 할까?
어린시절 굴, 그리고 보물찾기
기자가 어렸을 적 김장김치 사이에 꼭꼭 숨어있던 굴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젓가락을 뒤적거리다 어머니께 혼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모진 수난 끝에 젓가락 사이로 굴 하나가 삐죽이 뽀얀 속살을 드러내며 빙긋이 웃을때의 그 기쁨이란, 소풍날 보물찾기에서 '공책 10권' 이라 쓰여 있는 쪽지와도 바꿀 수 없을만큼 황홀하고도 격정적인 순간이었다. 식도락가들이여! 드디어 상큼한 바다내음이 스민 굴을 즐길 때가 돌아왔다. 바야흐로 '바다의 우유' 라 불리는 굴의 계절! 굳이 원행을 하지 않아도 탐스럽게 자란 싱싱한 굴이 만 원짜리 두 장이면 한 판 가득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시절인가.
배타는 어부의 딸은 얼굴이 까맣고,
굴 따는 어부의 딸은 하얗다?
[왼쪽/오른쪽]뽀얀 속살을 드러낸 굴 / '굴 구이' 하면 단연 보령시 천북면에 있는 굴 단지가 원조다
예로부터 굴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랑받아온 해산물이다. 특히 해산물을 날 것으로 먹지 않는 서양에서도 유독 굴만은 생으로 즐겼다고 할 정도. 우스갯소리지만 '굴을 먹으면 더 오래 사랑하리라' 말이 있을 정도로 남성들에게는 자양식, '배타는 어부의 딸은 얼굴이 까맣고 굴 따는 어부의 딸은 하얗다' 고 할 정도로 여성들에겐 피부미용식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지방이 적고 미네랄이 풍부해 영양만점, 맛만점인 굴은 8월까지의 산란기를 끝내고 가을에 살이 차기 시작해 겨울이 되면 최적의 상태가 된다. 그래서 11월에서 2월까지 잡히는 것을 최상품으로 치는 것.
왔다! 굴의 계절이, 가자! 바다의 우유를 찾아서
천북굴단지 전경
그 시기에 잡히는 굴은 그야말로 날로 먹어도 무쳐 먹어도 끓여 먹어도 맛이 좋다. 물론 생굴로 먹는 것이 굴에 대한 예의지만, 껍질째 석회에 구워먹는 굴 구이의 맛을 한 번쯤 본 사람이라면 그 고소함과 쫄깃함에 예의도 불사할 정도.
보통 '굴' 하면 경남 통영이 떠오르겠지만 ,'굴구이' 하면 단연 보령시 천북면에 있는 굴 단지가 원조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광천IC에서 나와 남당리를 지나 천북면 소재지를 거쳐 10 여 분간 내달리다보면 천북굴단지에 다다른다. 멀리서도 바닷가쪽으로 굴 구이전문점임을 알리는 간판들이 일렬로 죽 늘어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어두컴컴한 저녁에 가면 그 간판들이 오색 조명을 켜고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손님을 반기니 초행길이라도 쉽게 찾을 수 있들 듯.
엄마야 누나야, 올 겨울에는 천북 굴 밭에서 살자
천북굴단지에서 내려다본 자그마한 항구의 모습
천북굴단지는 인근 장근리 포구 앞 바다 갯벌에서 채취한 자연산 굴들로 조리하는데 굴맛이 좋기도 유명하다. 이유인 즉은 장근리 등 천수만 일대가 바닷물과 민물이 고루 섞인 뻘이 발달해 미네랄이 풍부하고 또한 일조량도 많기 때문이라고. 소문난 굴 맛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천북' 이라는 조그만 마을이 유명인사가 된 까닭도 이 연유에서다. 사실 천북 굴 단지에서는 사시사철 굴을 먹을수 있다. 하지만 최고로 신선한 굴 맛을 즐기기는 겨울만큼 좋은 때가 없다. 그래서인지 이맘때가 되면 살이 꽉차 오르는 굴과의 조우를 위해 찾아오는 손님들로 발디딜 틈도 없다고 한다.
'탁탁' 껍질 벌어지니 '좔좔' 뽀얀 속살에 군침도네
인상좋은 고향굴구이 주인아주머니(좌)와 쫄깃쫄깃한 굴구이(우)
천북굴 단지 일대에는 아침부터 분주하게 석화를 손질하는 아주머니들로 활기가 넘친다. 비록 굴 껍질처럼 투박한 손이지만, 그 손에서는 바다에서 갓 건져낸 굴의 그것마냥 싱싱함이 묻어나오는듯 하다. 그많은 석화구이집 중에서 어머니의 손맛을 느낄 수 있다는 '고향굴구이' 에다 자리를 잡는다. 과연 소문대로 인상좋게 생기신 아주머니가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신다. 굴 구이를 주문하니, 금세 갯가에서 막잡아 올린 굴 한 바구니를 들고 오신다. 한 바구니에 2만 5천원. 온 가족이 실컷 먹고도 남을 만큼 넉넉하다. 이윽고 숯불이 켜지고 그 위에 못생긴 석화가 껍질 째 소북이 올려진다. 그리고 양손에는 장갑이 끼워진다. "탁","탁". 흡사 난타에서 들었던 리듬마냥 경쾌한 소리를 내며 신나게 굴이 익어간다. 3분 정도 구웠을까? 껍질이 벌어지고 뽀얀 국물과 함께 속살이 드러난다. 역시 능수능란한 주인 아주머니가 뾰족한 칼로 뜨거운 굴 껍질을 확 벌리더니,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속살을 꺼내 초고추장에 하나씩 떨어 뜨려 준다.
"굴 맛이…굴 맛이…꿀맛이예요"
담백한 국물이 일품인 굴칼국수도 별미
"뜨거우니까 호호 불어서 먹어요. 너무 맛있다고 정신없이 먹다간 입안이 다 허니까."
가게 안은 석쇠에서 굴이 갈라지는 소리와 굴 까먹는 소리 뿐.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맛이 바로 이 맛이었던가. 굴 맛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너무 많지않나 걱정했던 바구니의 굴은 어느새 바닥을 드러내고, 깨끗하던 테이블에는 굴껍질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백번 들어도 한번 먹어본 만 못하겠지만, 혹 그 맛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굴 특유의 짭짜름한 맛에 숯불에 익으면서 고소함마저 얹혀져 담백하면서도 쫄깃쫄깃함 이랄까. 거기다 소주 한잔 곁들이면 금상첨화겠다. 굴 맛도 맛이지만 네댓 개가 함께 붙어 있는 것도 있어 굴 까는 재미도 제법 솔솔하다. 굴 구이 외에도 굴로 시원하게 맛을 낸 굴 물회도 별미. 전날 과음한 사람들이라면 구수하고도 담백한 국물이 일품인 굴 칼국수도 함께 곁들이는 것이 좋겠다.
키조개로 유명한 오천항(좌)과 낙조가 아름다운 천수만방조제(우)
천북은 굴 말고도 보고 돌아올 거리가 많다. 먼저 오천항이 있는데 오천항은 이맘때 많이 잡히는 키조개가 유명하다. 싱싱한 굴로도 성에 차지 않는다면 오천항에 들려 키조개로 겨울 미각을 탐닉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천수만에 들려 갈대밭 사이로 장엄하게 낙화하는 해의 모습을 보는 것도 더욱 낭만적인 천북굴기행의 마무리가 될 터.
여행정보
▶ 천북굴단지 가는 방법
서해안고속도로 : 광천IC에서 나와 우회전후 500M 오다가 전방 3거리에서 (청양,광천)방향으로 유턴식 우회전후 직진하다보면 서해안 고속도로 밑으로 지나가게 됨. 천북 굴구이단지 이정표 따라 오면 삼거리 우회전, 약 2Km직진하면 천북면사무소 지나 작은 항구와 굴단지가 나온다.
▶ 천수만방조제 가는 방법
1) 서해안고속도로 서산I.C →32번 국도 → 서산 → 649지방도로 → 부석 →서산 AB지구방조제 → 천수만
2) 경부고속도로 천안I.C → 아산 → 예산 → 29번국도 → 덕산 →해미 → 서산 → 부석 → 서산AB 지구 방조제 → 천수만
▶ 굴구이로 맛있는 집
천북면 장은리에 있는 고향굴구이(041-641-8966)는 굴 맛도 맛이지만 주인아주머니의 정겨운 서비스가 일 품. 4인 기준 굴구이는 2만 5천원, 굴칼국수가 5000원, 굴물회는 10000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