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상 고통 버티고 책임감·전우애 발휘
김근호 상병은 장정환 상병과 함께 수도사단 제1연대의 비호6호 작전에서 수훈을 세운 또 다른 영웅이다. 일병으로 전투에 참가한 김근호는 적의 사격으로 종아리가 관통된 후에도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는 투혼을 보였다.
당시 김일병이 소속된 7중대가 고보이평야 중간지역에 투입돼 소대 단위로 수색을 시작했을 때였다. 1소대 무전병이었던 김일병은 소대장 김수길 소위를 따라 작전지역 남쪽에서 수색을 계속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은거지가 노출된 베트콩들이 저항을 시작했다. 곳곳에서 그들이 발사한 박격포와 소총사격이 난무했다. 그때마다 3~4명씩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처럼 위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소대장 김소위는 앞장서서 소대를 이끌며 베트콩 진지를 격파하며 전진했다. 그가 워낙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갔기 때문에 뒤따르던 김일병도 덩달아 뛸 수밖에 없었다.
그때 전방에서 적의 총구가 불쑥 나타났다. 이를 먼저 본 김일병이 “소대장님, 엎드려요”라고 소리치자, 소대장이 허리를 숙이는 순간 베트콩이 발사한 총탄이 소대장의 철모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김일병은 옆에서 날아온 소총탄에 종아리를 관통당하며 쓰러졌다.
목숨을 건진 소대장은 김일병의 상처에 압박붕대를 감아 지혈시킨 후 후송을 명령했다. 그러나 김일병은 “제가 후송되면 소대장님은 어떻게 소대를 지휘할 겁니까”라며 다리를 절뚝거리며 소대장을 뒤따랐다. 통증이 심각했지만 다행히 뼈를 다치지 않아 걸을 수 있었다. 김소위 역시 무전병이 있어야 소대를 지휘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김일병의 후송을 강요하지 못했다.
공격은 계속됐다. 소대장을 뒤따르던 김일병은 소대장이 금방 밟고 지나간 지면에서 약간 올라온 검은 물체를 발견했다. 순간적으로 들여다 보니 움직이는 베트콩의 총구였다. 즉각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은 김일병이 안전손잡이를 놓은 후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센 후 구멍으로 굴려 넣었다.
그 순간 굉음과 함께 분해된 채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베트콩을 볼 수 있었다. 그곳에는 베트콩 두 명이 은거하고 있었다. 만약 김일병이 그들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베트콩은 소대장과 김일병의 뒤통수를 가격했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1일 작전을 마친 소대장은 저녁시간을 이용해 다시 김일병의 후송을 지시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김일병은 한사코 거부했다. 위생병으로부터 야전 응급조치를 받은 김일병은 위생병이 건네준 진통제로 통증을 달래며 견뎌냈다.
다음날 작전도 오후까지 계속됐다. 그러나 어제 호되게 당했던 베트콩 주력은 밤을 이용해 도주해 버리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부녀자들뿐이었다. 초인적인 힘으로 소대장을 뒤따르던 김일병은 작전이 끝난 후 집결지에 도착해 수송 차량을 보는 순간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너무 긴장한 탓에 잠시 동안 기절한 것이다.
즉각 뀌년 후송병원에서 한 달 동안 입원 치료한 김일병은 5중대 장정환 일병과 함께 충무무공훈장과 본국 휴가 특전이 주어졌다. 그러나 두 사람은 자신들의 공적은 소대원 모두가 함께한 것이라며 휴가를 반납했다. 그 같은 내용을 보고받은 채명신 주월한국군사령관은 특별 명령을 내려 두 사람을 남쪽 바닷가 붕따우에 위치한 한국군 휴양소 관리병으로 임명했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남은 파병 기간을 마무리한 후 귀국했다.
<최용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