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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이 사이트는 서초동 느낌저아님께서 보관한 것입니다
1. About Phantom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얼굴을 하얀
오페라 가면에 가린 채 무대 뒤에서 여주인공의 모습을 훔쳐보는 '오페라의 유령'.
세기를 뛰어넘어 종영을 예측할 수 없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86년, 런던 허 머제스티스
극장(Her Majesty's Theatre)에서 초연된 이래, 십여 년이 넘는 세월을 쉬지 않고 공연 중이지만, 세기를 뛰어넘어 종영의 날을 예측할 수 없다. 영국 역사상 뮤지컬
음반이 판매 1위에 오르는 진기록도 세웠고, 전 세계로 수출돼 13개 국가, 100여 개 도시에서 공연됐다.
「오페라의 유령」의 원작은 1911년 프랑스 작가 가스통 르루(Gaston Leroux)의 동명 소설이다. 그는 특유의 기사체 문장으로, 마치 직접 사건으로 뛰어들어가 문제를 해결하는 구성의
소설을 많이 발표했다. 오페라 하우스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을 역추적해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 내용의 괴기 소설,
「오페라의 유령」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오페라의 유령」은 1920년대 할리우드 괴기물의 대표적 배우, 론 채니(Lon Chaney)가 주연해 1925년
유니버설 영화사에 의해서 흑백 무성영화로 제작돼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다.
화려함의 극치,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를 그대로 옮겨놓은 무대
작품의 배경이 되는 프랑스 파리의 오페라하우스도 이색적인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건물의 정식 명칭은 국립 음악 무용
아카데미. 파리 중심가의 최대 관광명소로 1875년 샤를르 가르니에(Charles Garnier)란 건축가가 171:1의
설계공모에 당선돼 14년간 공사 끝에 완성된 것이다. 전체를 대형 그림과 대리석 조각상으로 뒤덮은 화려한 건물이다. 「유령」의 무대는
바로 이 화려한 건축물의 이미테이션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이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 카메론 매킨토시, 해롤드 프린스 등 뮤지컬의 거장들 참여
「오페라의 유령」은 수준 있는 무대와 완성도로 영국 뮤지컬의 자존심이라는 '마이다스 작곡가' -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 서구의 대표적 흥행 대작인 뮤지컬 빅 4의 기획자, 카메론 매킨토시(Cameron
Mackintosh), 무대 연출의 거장 해롤드 프린스(Harold Prince) 등 쟁쟁한 제작자들이 참여했다.
그러나 웨버가 「오페라의 유령」을 최초로 뮤지컬로 만든 사람은 아니었다. 베르디나 오펜바흐 등 잘 알려진 오페라 아리아를
개사해 만든 영국인 작곡가 켄 힐(Ken Hill)의 「유령」(Phantom)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뮤지컬이 영국에서
상연되던 1984년, 우연히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라프(Daily Telegraph)誌에 실린 비평기사를 접한 웨버는
그만의 「유령」 제작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 웨버는 바로 카메론 매킨토시에게 전화를 걸어 「오페라의 유령」 제작 여부를
타진했고, 이미
「캐츠」(Cats), 「송 앤 댄스」(Song and Dance) 등 웨버의 작품 기획을 통해 그와 함께 작업을 한
바 있던 매킨토시는 처음부터 「오페라의 유령」이 예사롭지 않은 작품이 될 것임은 직감했다. (켄 힐의 뮤지컬 「유령)은
국내에서도 공연된 바 있어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오페라의 유령)이 국내에서 공연된 적이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물론 두 작품은 완전히 다른 뮤지컬이다) 감독 및 연출은 뮤지컬 계의 거장, 해롤드 프린스(줄여서 그냥 할 프린스라고도
부른다)가 맡았다. 그는 「파자마 게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지붕 위의 바이올린」, 「카바레」 그리고 웨버와
팀 라이스의 뮤지컬 「에비타」의 감독을 맡았었다. 반면 작사가의 경우, 초창기에는 「마이 페어 레이디」, 「지지」
그리고 「카멜롯」 등의 제작에 참여했던 제이 러너(Jay Lerner)가 참가 의향을 밝히나, 작품이 제작되는 도중에
암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웨버의 오랜 동료인 팀 라이스는 당시 뮤지컬 「체스」의 제작에 전념을 하고 있어
「오페라의 유령」의 제작에는 동참하지 못하고, 결국 무명의 25살 짜리 작사가 '찰스 하트(Charles Hart)'가
바통을 이어받게 된다. 그리고 이 젊은 작사가는 석 달간의 노력 끝에 과거 어느 영화보다 더 원작 소설에 가까운,
로맨틱한 구성의 이야기를 창조해 내는 데 성공한다
세계적인 스타로 거듭난 사라 브라이트만과 마이클 크로포드
작품에 참여하는 배우들도 빼놓을 수 없다. 아름답고 순수한 고음의 사라 브라이트만(Sarah Brightman)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된 것은 아무래도 「오페라의 유령」이 계기가 됐음은 부인할 수 없다. 한편 '유령'으로는 초창기
스티브 할리(Steve Harley)가 참여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마지막에 마이클 크로포드(Michael Crawford)로
배역이 확정된다. 원래 BBC TV 시리즈에서의 코믹 연기로 유명했던 그는 「오페라의 유령」을 통해 브라이트만과 함께
절정의 앙상블을 선보여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십수 년의 세월동안 유령과 크리스틴을 거쳐간 배우는 무수히 많지만,
아직도 세계 도처의 유령 팬들에게는 그 누구보다 이들의 목소리가 깊게 각인되어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특수효과와 볼 거리 압도적
오페라의 유령」의 무대는 수많은 특수효과와 볼거리로 유명하다. 30만개의 유리구슬로 치장한 0.25톤 무게의
상들리에가 머리 위를 날아다니고, 괴기영화의 한 장면 같은 유령의 특수분장은 객석 청중의 간담을 서늘케 한다. 화려한
오페라 장면을 연상케 하는 황금빛 장식과 무대의상들, 거대한 계단 세트에서 파리 하수구 밑의 음침한 지하 세계에 이르기까지
「오페라의 유령」은 무대라는 제한공간을 얼마만큼 효과적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지를 여실히 증명해 준다.
「오페라의 유령」의 한국 공연은 투어 공연이 아닌 국가로는 열네 번째 나라, 도시로는 아흔 두 번째의 공연이다.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는 네 번째이지만, 자국어로 번역돼 원 제작진과 현지 스탭이 함께 참여하는 것으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다.
「오페라의 유령」의 신화가 한국에서도 계속 이어질까.
설레는 첫 공연이 기다려진다.
이 글은 "thephantom" 홈에서 가져와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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