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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世양중 緣起가 中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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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시 [아비담마 길라잡이 6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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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esaṃ saṅkhatadhammānaṃ ye dhammā paccayā
yathā taṃ vibhāgam ih’ edāni pavakkhāmi yathārahaṃ
이제 나는 형성된 법들과 그 조건이 되는 법들과
또 그들이 어떻게 [서로 관련되어 있는지] 그 분석을 적절하게 설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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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간략하게 설하면: 두 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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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paṭiccasamuppādanayo paṭṭhānanayo cā ti paccayasaṅgaho duvidho veditabbo.
조건의 길라잡이는 (1) 연기(paṭicca samuppāda, 빠띳짜 사뭅빠다)의 방법과
(2) 상호의존(paṭṭhāna, 빳타나)의 방법 2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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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iti kho bhikkhave yā tatra tathatā avitathatā anaññathatā idappaccayatā :
ayaṃ vuccati, bhikkhave, paṭiccasamuppādo ti
evaṃ paticcasamuppādaṃ desentena tathatādīhi vevacanehi paccayadhammā va paṭiccasamuppādo vuttā.
tasmā jarāmaraṇādīnaṃ dhammānaṃ paccayalakkhaṇo paṭiccasamuppādo,
dukkhānubandhanaraso, kummaggapaccupaṭṭhāno ti veditabbo.
[청정도론 XVII]: “5. … 연기는
늙음과 죽음 등의 법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괴로움이 뒤따르는 것이 역할이며 나쁜 길로 나타난다라고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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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imenā ti paccayasāmaggi-paridīpakena paṭiccapadena ^522 pavatti
22. 첫 번째 단어에 의해서, 빠띳짜[緣]라는 단어는 조건의 결합을 가르킨다.
dhammānaṃ paccayasāmaggiyaṃ āyattavuttittā
sassatāhetu-visamahetu-vasavattivādappabhedānaṃ sassatādīnaṃ abhāvo paridīpito hoti.
생기는 법들은 조건의 화합을 의지하여 존재하기 때문에 그 빠띳짜[緣]라는 단어는
영원하다거나, 원인 없이 [생긴다거나], 다른 원인으로부터 [생긴다거나],
지배자에 의하여 존재한다는 학설 등으로 분류되는 영원함 등이 없음을 보여준다.
kiṃ hi sassatādīnaṃ ahetu-ādivasena vā pavattānaṃ paccayasāmagiyā ti ?
영원하다거나 원인 없이 생긴다는 [견해] 등에게 이 조건의 화합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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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chimena ca padenā ti dhammānaṃ uppādaparidīpakena samuppādapadena
paccayasāmaggiyaṃ dhammānaṃ uppatito
vihatā uccheda-natthika-akiriyavādā ti ucchedādi-vighāto paridīpito hoti.
22. 두 번째 단어의 의해서 사뭅빠다[起]라는 단어는 법들이 일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조건이 결합할 때 법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단멸이라거나 허무하다거나 지음이 없다(도덕적 행위의 결과가 없다)는 견해는 논파되었다.
그러므로 이 사뭅빠다라는 단어는 단멸이라는 등이 논파되었음을 보여준다.
purima-purimapaccayavasena hi punappuna uppajjamānesu dhammesu
kuto uccheda-natthikā-kiriyavādā cā ti ?
이전의 조건에 따라 계속해서 법들이 일어날 때
어떻게 단멸하고, 허무하고 지음이 없는 견해가 발붙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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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ayenā ti sakalena paticcasamuppādavacanena,
tassā tassā paccayasāmaggiyā santatiṃ avicchinditvā
tesam tesaṃ dhammānaṃ sambhavato majjhimā paṭipadā.
24. 두 단어로써 즉 전체 단어인 빠띳짜 사뭅빠다[緣起]로써
각 조건의 화합의 흐름[相續]을 방해하지 않고
각각의 법들이 생기므로 중도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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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karoti, so paṭisaṃvedeti; añño karoti, añño paṭisaṃvedetī ti vādappahānaṃ
janapadaniruttiyā anabhiniveso samaññāya anatidhānaṃ
janapadaniruttiyā anabhiniveso samaññāya anatidhāvanan ti ayaṃ ñāyo paridīpito hotīti
ayaṃ tāva paṭiccasamuppādo ti vacanamattassa attho.
이것은 "그가 짓고 그가 경험한다, 그가 짓고 제 3자가 경험한다(S.ii.20)"라는 견해는 버린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언어를 고집하지 않는다. 표준적인 명칭을 넘어서지 않는다.
이와 같이 전체 단어인 빠띳짜 사뭅빠다는 이 [네 가지] 바른 방법을 보여준다.
이것이 빠띳짜 사뭅빠다라는 단어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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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attha tabbhāvabhāvībhāvākāramattopalakkhito paṭiccasamuppādanayo,
paṭṭhānanayo pana āhaccapaccayaṭṭhitim ārabbha pavuccati,
ubhayaṃ pana vomissetvā papañcenti ācariyā.
그 중에서 연기의 방법은 어떤 것(bhāva)을 [의지하여] 다른 어떤 것이 단지 드러나는 것이 그 특징이다.
그러나 상호의존의 방법은 조건들의 효능과 관련하여 설한다. 스승들은 두 방법을 혼합하여 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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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2. 어떤 다른 상태를 [의지하여] 어떤 상태가 단지 드러나는 것:
이 특이한 합성어는 초기경에서 추상적으로 정형화되어 나타나는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나다"라는 연기의 대원칙을 묘사하는 말이다.
여기서 tabbhāva는 tat(그)-bhāva(상태, 성질)는 '다른 상태'라고 옮겼는데 조건이 일어나는 것을 뜻하고,
bhāvī는 그 조건 따라 생긴 결과를 뜻하며
bhāva(상태의) -ākāra(모양)- matta(단지)는 '단지 드러남'정도의 의미인데
조건 따라 생긴 법이 단지 일어나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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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기의 방법 paṭiccasamuppāda-naya [아비담마 길라잡이 6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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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연기는 본질적으로 윤회(vaṭṭa)의 연기구조에 대한 설명이다.
이것은 나고 죽는 윤회의 바퀴를 지탱하여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돌아가게 하는 조건들을 밝힌 것이다.
주석서에서는 연기를
pacca-sāmaggiṇ paṭicca samaṃ phalānaṃ uppādo.
'조건이 결합함을 반연하여 결과가 균등하게 일어남'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것은 어떤 한 가지 원인도 단독으로 결과를 일어나게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나아가서 결과들의 집합을 일어나게 하는 조건들의 집합이 있다라는 뜻이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라는 연기의 졍형구에서
하나의 법이 다른 것의 조건이라고 했을 때
이것은 조건들의 집합 가운데 주원인을 골라내어
결과의 집합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결과와 연관짓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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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본 정형구
4. tattha
(1) avijjāpaccayā saṅkhārā,
(2) saṅkhārapaccayā viññāṇaṃ,
(3) viññāṇapaccayā nāmarūpaṃ,
(4) nāmarūpapaccayā saḷāyatanaṃ,
(5) saḷāyatanapaccayā phasso,
(6) phassapaccayā vedanā,
(7) vedanāpaccayā taṇhā,
(8) taṇhāpaccayā upādānaṃ,
(9) upādānapaccayā bhavo,
(10) bhavapaccayā jāti,
(11) jātipaccayā jarāmaraṇa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sambhavanti.
evam 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o hotī ti,
ayam ettha paṭiccasamuppādanayo.
여기서
(1) 무명을 조건으로 상카라(업형성)들이[無明緣行]
(2) 상카라들을 조건으로 알음알이가[行緣識]
(3) 알음알이를 조건으로 정신-물질이[識緣名色]
(4)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名色緣六入]
(5)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감각접촉이[六入緣觸]
(6)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觸緣受]
(7)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受緣愛]
(8)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愛緣取]
(9)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取緣有]
(10)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有緣生]
(11)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이 일어난다. [生緣老死憂悲苦惱]
이와 같이 모든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일어난다.
이것이 여기서 연기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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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청정도론 XVII] "36.
kasmā pan' ettha avijjā ādito vuttā ?
kiṃ, pakativādinaṃ pakati viya, avijjā pi akāraṇaṃ mūlakāraṇaṃ lokassā ti ?
na akāraṇaṃ ;
āsavasamudayā avijjā samudayo ti hi avijjāya kāraṇaṃ vuttam.
atthi pana pariyāyo yena mūlakāraṇaṃ siyā ; ko pan' eso ti ?
vaṭṭakathāya sīsabhāvo.
왜 여기서 무명을 첫 번째로 설했나?
상캬학파에서 주장하는 빠까디처럼 이 무명도 원인 없는 이 세상의 근본원인인가? 그렇지 않다.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번뇌가 일어나기 때문에 무명이 일어난다.(M9/i.54)"고 무명의 원인을 설했다.
이것이 근본원인이라고 설 할만한 방편이 있다. 무엇인가?
윤회의 설명에서 출발점이 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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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hagavā hi vaṭṭakathaṃ kathento dve dhamme sīsaṃ katvā katheti :
avijjaṃ vā, yath' āha:-
purimā, bhikkhave, koṭi na paññāyati avijjāya ito pubbe avijjā nāhosi, atha pacchā sambhavī ti.
evañ c' etaṃ, bhikkhave, vuccati, atha ca pana paññāyati idappaccayā avijjā ti,
37. 세존께서 윤회를 설명하시면서 두 가지 법 중의 하나를 출발점으로 설하셨다.
(1) 무명을 출발점으로 하셨다. 왜냐하면 이와 같이 설하셨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 이전에 무명이 없었고 그 이후에 무명이 생겼다'라고
무명의 첫 시작은 꿰뚫어 알아지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무명은 조건지워졌다고 꿰뚫어 알아진다고 말한다(A.v.113)"라고,
bhavataṇhā vā, yath' āha:-
purimā, bhikkhave, koṭi na paññāyati bhavataṇhāya,
ito etaṃ, bhikkhave, vuccati, atha ca pana paññāyati idappaccayā bhavataṇhā ti.
혹은 (2) 존재에 대한 갈애를 출발점으로 하셨다. 왜냐하면 이와 같이 설하셨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 이전에 존재에 대한 갈애가 없었고 그 이후에 존재에 대한 갈애가 생겼다'라고
이렇게 존재에 대한 갈애의 첫 시작은 꿰뚫어 알아지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존재에 대한 갈애는 조건지워졌다고 꿰뚫어 알아진다고 말한다.(A.v.116)"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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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2:20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여기서 진실함, 거짓이 아님,
다른 것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님, 이것의 조건 짓는 성질, 이것을 일러 연기라 한다.”
Iti kho, bhikkhave, yā tatra tathatā avitathatā
anaññathatā idappaccayatā – ayaṃ vuccati, bhikkhave, paṭiccasamuppādo.
수행승들이여, 여기서 여실한 것, 허망하지 않은 것,
다른 것이 아닌 것, 구체적인 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연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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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46:4
5. “도반들이여, 만일 내게 마음 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일어나 있으면
‘이것은 무량하다.’라는 생각도 있고 ‘이것은 아주 잘 닦아졌다.’라는 생각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지속되면 ‘지속되고 있다.’라고 꿰뚫어 알고
만일 이것이 내게서 줄어들면 ‘이러한 조건 때문에 이것은 내게서 줄어든다.’라고 꿰뚫어 압니다.
Satisambojjhaṅgo iti ce me, āvuso, hoti, ‘appamāṇo’ti me hoti, ‘susamāraddho’ti me hoti,
tiṭṭhantañca naṃ ‘tiṭṭhatī’ti pajānāmi. Sacepi me cavati, ‘idappaccayā me cavatī’ti pajānāmi
5. [싸리뿟따]
1) "벗들이여, 만약 '새김의 깨달음 고리'에 대한 생각이 나에게 생각나면,
'그것은 한량이 없다.'는 생각이 나에게 생겨나고,
'그것이 잘 완성되어 있다.'는 생각도 나에게 생겨나고,
지속되는 동안 '그것이 지속된다.'라고 분명히 압니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나에게서 쇠퇴한다면, '이러한 조건 때문에 나에게서 쇠퇴한다.'고 분명히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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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smā pana bhagavā vaṭṭakathaṃ kathento ime dvedhamme sīsaṃ katvā kathetī ti ?
sugati-duggati-gāmino kammassa visesahetubhūtattā ;
38. 세존께서 윤회를 설명하실 때 왜 이 둘을 출발점으로 만들어 시작하셨나?
왜냐하면 이것이 선처와 악처로 인도할 업의 두드러진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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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hi idappaccayā jarāmaraṇa’nti iti puṭṭhena satā, ānanda, atthītissa vacanīyaṃ.
‘Kiṃpaccayā jarāmaraṇa’nti iti ce vadeyya, ‘jātipaccayā jarāmaraṇa’nti iccassa vacanīyaṃ.
<idappaccayā = Kiṃpaccayā = jātipaccayā> jarāmaraṇ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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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緣(性)[idappaccayā, idappaccayatā]이 緣起(paṭiccasamuppādo)
<A緣 B>에서 此(ida)는 因이 되는 A法이고 緣已生法(paṭiccasamuppannā dhammā)은 果가 되는 B法.
즉 A法이 緣起(法)이고 B法이 緣已生法(paṭiccasamuppannā dhammā)
[tabbhāva는 tat(그)-bhāva(상태, 성질)는 '다른 상태'라고 옮겼는데 조건이 일어나는 것]...에서의
tat(그) = 此.
此有故 彼有에서도 此(ida)는 因이 되는 A法이 緣起 혹은 緣起法
....에 대한 설명을 여러 측면에서 분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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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ayenā ti sakalena paticcasamuppādavacanena,
tassā tassā paccayasāmaggiyā santatiṃ avicchinditvā
tesam tesaṃ dhammānaṃ sambhavato majjhimā paṭipadā.
24. 두 단어로써 즉 전체 단어인 빠띳짜 사뭅빠다[緣起]로써
각 조건의 화합의 흐름[相續]을 방해하지 않고 각각의 법들이 생기므로 중도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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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道(majjhimā paṭipadā)라는 표현이 나타납니다.
경문에서
Ete te, bhikkhu, ubho ante anupagamma majjhena tathāgato dhammaṃ deseti
'中에 의해서 法을 드러낸다.'라는 표현에서의 中을 中道로 분석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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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A法을 緣하여...라는 측면에서 상주론(극단/邪道)이 타파되고,
A법으로부터 (B法이) 起...라는 측면에서 단멸론(극단/邪道)이 타파되므로,
緣-起는 양극단을 모두 의지하지 않는 中이며 中道라는 취지의 내용 같습니다.
즉 緣-起[=무명-행-식----유-생-노사] = 中 혹은 中道(줄여서 緣-起는 中/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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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도식에서
1. 무명 = 中/道, 행 = 中/道, 식 = 中/道....... 노사 = 中/道...라면 오해^^
즉 無明이 中이라는 것도 오해?, 中道라고 이해하는 것도 오해? ...이하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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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무명 緣 행, 행 緣 식, 식 緣 명색...... 유 緣 생, 생 緣 노사 = 苦의 集...이라는 해석도 가능할 것?
즉 老死라는 緣已生法의 緣起法은 生, 生이라는 緣起法은 또한 어떤 法으로부터 생긴 緣已生法인가....
....行이라는 緣起法이면서 緣已生法은 어떤 연기법으로부터 생긴 것인가....
무명은 연하여 행이, 행을 연하여 식이.... 등등으로 苦가 생겨난다.....는 것을 아는 것은
中道(8正道)에 의해서 알고나서, 中에 의하여 法을 드러낸다.... 이러면 의미 연결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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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緣起(法)=因을 관찰 혹은 因果=緣起法은 緣生法이라는 사유가 中/道
<*앞 서문 paṭiccasamuppādo ti ..... , kummaggapaccupaṭṭhāno 緣起는 邪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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緣起는 中/道라는 오해의 소지가 많은 표현에 대한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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緣起法이면서 緣生法을 소멸하여 가는 도 닦음이 中道입니다.
또한 中道에 의하여 緣法이면서 生法을 알고 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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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世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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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Tattha tayo addhā, dvādas’aṅgāni, vīsat’ākārā, tisandhi, catusaṅkhepā,
tīṇi vaṭṭāni, dve mūlāni, ca veditabbāni.
3가지 시기[三世]가 있고, 12가지 각지(各支)와 20가지 형태와, 3가지 연결과, 4가지 포함과,
3가지 회전과, 2가지 뿌리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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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Kathaṃ? Avijjāsaṅkhārā atīto addhā, jātijarāmaraṇaṃ anāgato addhā,
majjhe aṭṭha paccuppanno addhā ti tayo addhā.
어떻게? 무명과 상카라[行)들은 과거에 속한다.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은 미래세에 속한다.
중간에 여덟 가지 각지는 현재세에 속한다. 그러므로 세 가지 시기[三世]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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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Avijjā saṅkhārā viññāṇaṃ nāmarūpaṃ saḷāyatanaṃ phasso vedanā
taṇhā upādānaṃ bhavo jāti jarāmaraṇanti dvādasaṅgāni.
무명, 상카라[行]들, 알음알이[識], 정신-물질[名色], 여섯 감각장소[六入], 감각접촉[觸], 느낌[受],
갈애[愛], 취착[取], 존재[有], 태어남[生], 늙음-죽음[老死]이 12가지 각지이다.
8.
Sokādivacanaṃ pan’ettha nissandaphalanidassanaṃ.
비애(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 등의 용어는
부수적으로 일어나는 태어남의 결과로 보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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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Avijjā-saṅkhāraggahaṇena pan’ettha taṇh-upādāna-bhavā pi gahitā bhavanti,
tathā taṇh’-upādāna-bhavaggahaṇena ca avijjāsaṅkhārā,
jāti-jarāmaraṇaggahaṇena ca viññāṇādiphalapañcakam eva gahitan ti katvā
무명과 상카라[行]들을 취함으로써 - 갈애[愛]와 취착[取]과 존재[有]가 포함되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갈애와 취착과 존재를 취함으로써 - 무명과 상카라들이 포함되었다.
태어남과 늙음*죽음을 취함으로써 - 알음알이(, 명색, 여섯 감각장소, 감각접촉, 느낌) 등
다섯 가지 결과도 포함되었다.
그러므로,
10.
Atīte hetavo pañca, idāni phalapañcakaṃ.
Idāni hetavo pañca, āyatiṃ phalapañcakan ti;
과거에 속하는 다섯 가지 원인이 있고 [*무명-행 & 애-취-유]
현재에 속하는 다섯 가지 결과가 있고 [*식-명색-육입-촉-수]
현재에 속하는 다섯 가지 원인이 있고 [*무명-행 & 애-취-유]
미래에 속하는 다섯 가지 결과가 있다. [*식-명색-육입-촉-수]
Vīsat’ākārā tisandhi, catusaṅkhepā ca bhavanti.
이와 같이 20가지 형태가 있고, 3가지 연결이 있고, 4가지 포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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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Avijjā-taṇh’-upādānā ca kilesavaṭṭaṃ,
kammabhavasaṅkhāto bhav’ekadeso saṅkhārā ca kammavaṭṭaṃ,
upapattibhavasaṅkhāto bhav’ekadeso avasesā ca vipākavaṭṭan ti tīṇi vaṭṭāni.
무명과 갈애와 취착은 오염원들의 회전에 속하고,
업의 존재[業有]라 불리는 한 부분과 상카라[行]들은 업의 회전에 속하고,
재생으로서의 존재[生有]라 불리는 존재의 한 부분과 나머지는 과보의 회전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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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Avijjātaṇhāvasena dve mūlāni ca veditabbāni.
무명과 갈애가 두 가지 뿌리(원인)라고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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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Tesam eva ca mūlānaṃ, nirodhena nirujjhati.
Jarāmaraṇamucchāya, pīḷitānamabhiṇhaso;
Āsavānaṃ samuppādā, avijjā ca pavattati.
Vaṭṭamābandham icc’evaṃ, tebhūmakam anādikaṃ;
Paṭiccasamuppādo ti, paṭṭhapesi mahāmuni.
그 원인이 소멸함으로써 회전이 그친다.
늙음-죽음과 더불어 혼미함에 의해
끊임없이 핍박을 받은 중생들에게
번뇌가 일어남으로써 무명이 일어난다.
뒤얽혀 있고, 시작이 없고, 삼계에 속하는 그 회전을
대성인께서 연기라고 천명하셨다.
..............................................
과거에 속하는 다섯 가지 원인이 있고 [*무명-행 & 애-취-유]
현재에 속하는 다섯 가지 결과가 있고 [*식-명색-육입-촉-수]
현재에 속하는 다섯 가지 원인이 있고 [*무명-행 & 애-취-유]
미래에 속하는 다섯 가지 결과가 있다. [*식-명색-육입-촉-수]
......에 대한 의견
現在 혹은 現世에 대한 기준
1. 死後(愛-取<行>-生有를 포함하는) 生- 老 -死를 現世라고 할 수도 있고
이 가운데 있는 老를 現在-지금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으며
2. 死後(무명-行-識-名色을 포함하는)
六入-觸-受-愛-取-(業)有=名色-識까지를 現世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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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연기에서 원인과 결과는
원인이면서 결과이고, 이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고, 이 원인에서 결과가 이어짐.
즉 연기법은 연이생법을 생겨나게 하고 이러한 연이생법이 또 다시 연기법이 되고.....
이러한 流轉하는 도미노 현상을 연기 혹은 연기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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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위 8.
Sokādivacanaṃ pan’ettha nissandaphalanidassanaṃ.
비애(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 등의 용어는
부수적으로 일어나는 태어남의 결과로 보여졌다.
...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死後의 苦 = 受로 설명할 수 있고
특히 upāyāsā(절망)은 갈애에 이어지는 取(行)으로도 즉, 有의 緣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Odahanakārako upāyāso.
고뇌<*放下>를 야기하는 것이 절망이다.
Taṃ bhavassa padaṭṭhānaṃ.
그 [절망<*放下>은] 존재(有)<*變成>의 근접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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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āni bhavaṅgāni yadā samaggāni nibbattāni bhavanti,
그 존재<*變成>[를 이루는] 부분<*變成/有-分: 바왕가>들이 합쳐져서 발생하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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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bhavo.
그 때 그것이 존재(有)<*變成>이다.
Taṃ saṃsārassa padaṭṭhānaṃ.
그 [존재는<*變成>] 윤회의 근접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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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현히 전승되어 있는 경문을 의도적으로 없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경문
S55:21
사람의 몸은 물질이라서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로 이루어진 것이며, 부모에게서 생겨났고,
밥과 죽으로 집적되었으며, 무상하고 파괴되고 분쇄되고 해체되고 분해되기 마련이며,
tassa yo hi khvāyaṃ kāyo rūpī cātumahābhūtiko [cātummahābhūtiko (sī. syā. kaṃ.)] mātāpettikasambhavo
odanakummāsūpacayo aniccucchādanaparimaddanabhedanaviddhaṃsanadhammo.
마하나마여, 몸은 물질로 이루어지고 네 가지 광대한 존재로 구성되어 부모에게서 태어나
음식으로 부양되고, 무상하고, 파괴되고, 분쇄되고, 찢겨지고, 흩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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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떼가 쪼아 먹고, 독수리 떼가 쪼아 먹고, 솔개 무리가 쪼아 먹고, 개 떼가 뜯어먹고,
자칼들이 뜯어먹고, 별의별 벌레들이 다 달려들어 파먹겠지만
Taṃ idheva kākā vā khādanti gijjhā vā khādanti kulalā vā khādanti sunakhā vā khādanti
siṅgālā [sigālā (sī. syā. kaṃ. pī.)] vā khādanti vividhā vā pāṇakajātā khādanti;
이 몸을 까마귀들이 삼키고, 독수리들이 삼키고, 매들이 삼키고, 개들이 삼키고, 승냥이들이 삼키고,
여러 종류의 야생동물들이 삼킨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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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마음은 오랜 세월 믿음으로 굳건하고 계행과 배움과 보시와 통찰지로 굳건해졌기 때문에
위로 올라가고 특별한 경지로 가게 된다.”
yañca khvassa cittaṃ dīgharattaṃ saddhāparibhāvitaṃ…pe… paññāparibhāvitaṃ
taṃ uddhagāmi hoti visesagāmi.
그 오랜 세월 동안 믿음으로 닦여지고, 계행으로 닦여지고, 배움으로 닦여지고, 보시로 닦여지고,
지혜로 닦여진 마음은 상승하여 승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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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44:9
“왓차여, 중생이 이 몸을 내려놓고 아직 다른 몸을 받지 않았을 때는 갈애가 연료라고 나는 천명한다.
왓차여, 그 경우에는 갈애가 연료이기 때문이다.”
‘‘Yasmiṃ kho, vaccha, samaye imañca kāyaṃ nikkhipati,
satto ca aññataraṃ kāyaṃ anupapanno hoti,
tamahaṃ taṇhūpādānaṃ vadāmi.
Taṇhā hissa, vaccha, tasmiṃ samaye upādānaṃ hotī’’ti [hotīti…pe… (ka.)].
[세존] "밧차여, 뭇삶들이 이 몸을 버리고 아직 다른 몸을 받지 않았다면,
그때 갈애에 의해 태워지고 있다고 나는 설합니다.
밧차여, 그때 갈애<*愛>야 말로 그 연료<*取=食>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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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른 몸을 받는 과정은
‘‘avijjānīvaraṇassa, bhikkhave, bālassa taṇhāya sampayuttassa evamayaṃ kāyo samudāgato.
3. “비구들이여,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여서 어리석은 자의 이 [몸]은 이와 같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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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2:19, S18:22등 많은 경)
l←.....무명 - 行 - 識→.............l. .l.......................名色 - .....→ l 六入
...................."ayañceva ① kāyo. .bahiddhā ca ②-1 nāmarūpaṃ" 혹은
"imasmiṃ ca saviññāṇake ① kāye. .bahiddhā ca ② sabbanimittes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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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Yato ca kho, bhikkhave, mātāpitaro ca sannipatitā honti, mātā ca utunī hoti,
gandhabbo ca paccupaṭṭhito hoti –
비구들이여, 어머니와 아버지가 교합하고 어머니가 월경이 있고
간답바가 있어서,
evaṃ tiṇṇaṃ sannipātā gabbhassāvakkanti hoti.
이와 같이 세 가지가 만날 때 수태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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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aṃ, bhikkhave, dhātūnaṃ upādāya gabbhassāvakkanti hoti;
여섯 가지 요소[*6界들]에 의지하여 모태에 들어감이 있다.
okkantiyā sati nāmarūpaṃ,
듦(入胎)이 있을 때 정신·물질[名色]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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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어떤 문파 혹은 어떤 학자들에 의해서 무시되고 있는 경문을 종합하면
取된 蘊들이 무너져 몸과 마음으로 해체되고 나면
4대(소취) (색)身은 지상에 남아 동식물들의 먹이가 되지만
마음은 올라간다고 합니다.
그렇게 올라간 心이 아직 새로운 身(이때는 名<身=心行> cf.色<身=身行>)을
혹은 다시 蘊을 取하기 전에는 愛가 取(연료)라고 합니다.
즉 무명에 덥히고 갈애에 묶인 상황입니다.
이 때의 無明, 혹은 愛취(Avijjā-taṇh’-upādānā)는 死後 아직 새로운 몸을 받지 못한 中陰 상태입니다.
이 상황을 아비담마 길라잡이에서는 오염원들의 회전(kilesavaṭṭaṃ)이라고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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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中陰상태에서
(4蘊= 心行= 名)身을 取하면, 알음알이를 가진 이 몸(saviññāṇake ① kāye = arūpabhavo)
추가적으로 色蘊
4大(= 身行 =色)身을 取하면, 外~ 名色(bahiddhā ca ②-1 nāmarūpaṃ = rūpabhavo)
혹은
Channaṃ, bhikkhave, dhātūnaṃ upādāya gabbhassāvakkanti hoti; okkantiyā sati nāmarūpaṃ
6界-取하여 名色(=生有). 生 - 6處
6處(안이비설-身口意=舊業 = kāmabhavo).
그리고 이후 身口意= 新業(66들→5蘊→取→名色=業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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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지금 현재, 6處인 身口意는
舊業의 果(緣已生法)이면서 <=名色(生有)緣 六入> -----無明緣起. idappaccayā avijjā
동시에 新業의 因(緣起法). <=六入緣 5蘊/名色(業有)> -愛支緣起. idappaccayā bhavataṇh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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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緣起 = 流轉(門) = 苦集 = 邪道.
....라고 읽혀집니다.
글쎄요...........?????????????
그렇게 보시면............
@아위자 <流轉(門)에 대한 '앎(智)'이 없는 상황>이 사도를 걷는 이유라면 모를까..........
@아위자 녜. _()_
流轉(門)에 대한
<'앎(智)'이 없는 상황>= 無明(=)緣起 = 流轉(門) = 苦集 = 邪道
......이런 맥락으로 말씀드리면...??
@봄봄 明도 <연기된 '연이생의 dhamma'>이거든요.............
@봄봄 모든 것이 있다 고 하는 것이 하나의 극단이다. 모든 것은 없다고 하는 것이 두 번째 극단이다. 여래는 이러한 양 극단을 의지하지 않고 中에 의해서(majjena) 법을 설한다(드러낸다). 에서도
"의지하지않는
anupagamma" 빠알리어를 "의지하지않게 하는"것으로 고쳐 보면,
"여래는 이러한 양 극단을 의지하지 않게하는 가운데(中)에 의해서(majjena) 법을 설한다. 라는 연기조건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majjhena가 수단 도구격이라고 합니다.
@봄봄 게시판 '용어의 정확한 개념연구' 7월24일자 글 찾아올립니다.
PTS Pali English Dictionary 에서
https://suttacentral.net/define/anupagamma -> (see upagamma 합니다.) 그래서 다시 PTS 웹검색하면
https://suttacentral.net/define/upagamma --> "approaching; having entrered upon" 다가가다, 접근하다 뜻입니다.
PTS 좌측에서 upagamma의 동의어 upagacchati 를 다시 웹조사하면
https://suttacentral.net/define/upagacchati
---> approaches; undergoes; undertakes., approach/go to/undergo 의 "다가가다." 입니다.
anupagamma에서의 an 은 부정어 not 이므로 anupagamma는
"~에 다가가지 않다." 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생성소멸하는 법을 12연기의 각지가 곧 중도 임을 ...
밑에 글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두 단어로써 즉 전체 단어인 빠띳짜 사뭅빠다[緣起]로써
각 조건의 화합의 흐름[相續]을 방해하지 않고
각각의 법들이 생기므로 중도를 가리킨다."
→ 中에 의해서 法을 드러낸다.'라는 ~하는 가운데의 생멸법이 곧 중도!
"緣起法이면서 緣生法을 소멸하여 가는 도 닦음이 中道입니다.
또한 中道에 의하여 緣法이면서 生法을 알고 보는 것 같습니다."
A6.61에서 과거 미래의 두변으로부터 가운데 '중'은 현재이다. 갈애가 기워서 이런저런 존재로 태어나게한다. 라고 합니다.
과거 현재 미래 세는 지금 여기 여기에서 연기조건 가운데(majjhena)에 따른 존재들(삼세)입니다
지금 여기에서의 무명의 원인 갈애는 존재의 근원이다는 아래에서,
"비구들이여, 그러나 무명은 조건지워졌다고 꿰뚫어 알아진다고 말한다(A.v.113)"라고
혹은 (2) 존재에 대한 갈애를 출발점으로 하셨다. 왜냐하면 이와 같이 설하셨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 이전에 존재에 대한 갈애가 없었고 그 이후에 존재에 대한 갈애가 생겼다'라고
이렇게 존재에 대한 갈애의 첫 시작은 꿰뚫어 알아지지 않는다." 갈애가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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