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스토리] 상앙 편-제3회: 진나라의 잃어버린 땅을 되찾다
제3회 진나라의 잃어버린 땅을 되찾다
상앙의 변법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진효공은 상앙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랐다.
상앙이 대량조가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위(魏)나라는 마릉(馬陵) 전투에서 원기를 상했고 방연(龐涓)이 죽자 더는 나라를 지킬 장군이 없게 되었다.
상앙은 이 때가 기회라고 인정하고 효공에게 말했다.
“진나라의 이웃인 위나라는 진나라로 말하면 큰 우환입니다. 서쪽에 험준한 중조산(中條山)에 의지하고 안읍을 국도로 하는 위나라는 또 큰 강물을 천혜의 보호벽으로 삼아 효산(崤山)의 동쪽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는 나라와 군대가 강하고 위나라는 한 번 실패로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기회를 틈타 위나라를 공격하면 위나라는 필히 저항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서하(西河)를 차지하면 위나라는 국도를 동쪽으로 천도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진나라는 큰 산과 큰 강을 차지한 지리적 이점을 보유하게 되어 동쪽으로 제후국들을 다스리기 좋고 이로써 제왕(帝王)의 대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효공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상앙을 파견해 위나라를 공격하게 했다.
상앙이 군대를 거느리고 위나라를 정벌하러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위나라가 들썩였다. 위혜왕은 신하들을 모아 놓고 대책을 상의했다.
공자 앙(昻)이 나섰다.
“상앙이 위나라에 있을 때 신과 가장 돈독했습니다. 저는 그를 대왕께 천거하기도 했으나 대왕께서 그를 등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그가 위나라를 정벌하러 오니 신이 군대를 이끌고 가서 강화를 쟁취하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강화에 성공하지 못하면 성을 지키고 있을 테니 그 동안 대왕께서는 한(韓)나라와 조(趙)나라에 구원병을 청하십시오.”
신하들은 모두 공자 앙의 방법이 괜찮다고 여겼고 위혜왕은 급히 공자 앙을 출발시켰다. 공자 앙은 서하의 오성(吳城)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오성은 과거 오기(吳起)가 서하를 지킬 때 축조한 성으로 견고하기 그지없었다. 오성은 무력이 아니라 지혜로 탈취해야 한다고 생각한 상앙은 오성을 지키는 위나라 장수가 공자 앙이라는 것을 알자 너무 기뻤다.
“이번에 서하를 차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자 앙까지도 우리 사람으로 만들 수 있겠다.”
이렇게 생각한 상앙은 공자 앙에게 서찰을 보냈다.
상앙은 서찰에서 지난 날을 추억하면서 의관지회(衣冠之會) 참석차 옥천산(玉泉山)으로 오라고 공자 앙을 초청했다. 마침 상앙을 만나 회합을 하고 관포지교(管鮑之交)를 나누며 진나라와 위나라의 화합을 생각하던 공자 앙은 대뜸 의관지회의 정확한 일자를 알려주면 반드시 모임에 참석하겠다는 답장을 적어서 사신에게 주었다.
상앙은 공자 앙의 답장을 읽어 보고 속으로 은근히 기뻐서 즉시 공자 앙의 요구대로 모임의 구체적인 일자를 적어서 보냈다. 이와 동시에 상앙은 몰래 옥천산 주변에 군대를 매복시키고 산 위에서 발포소리가 들리면 공자 앙과 함께 온 위나라 사람은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전부 생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약속한 그 날이 되자 상앙은 사람을 공자 앙에게 보내서 자신은 이미 2백 여명을 거느리고 옥천산에 올랐다는 전갈을 보냈다. 그 전갈을 받은 공자 앙도 2백 명의 수종을 데리고 술과 안주거리를 가지고 모임장소에 이르렀다. 오랜만에 만난 두 벗은 기분이 아주 좋았다. 술이 세 순배 돌자 공자 앙은 갑자기 계곡을 뒤흔드는 포소리를 들었다.
공자 앙이 놀라서 물었다.
“무슨 일인가?”
상앙이 웃으며 대답했다.
“자네는 잠시 그대로 계시게. 좀 있다 설명하겠네.”
일이 잘못된 줄 안 공자 앙은 급히 자리를 뜨려다가 상앙이 배치한 군사들에게 잡혔으며 그의 수종들도 전부 생포되었다.
상앙은 공자 앙을 죄인 호송차에 타게 하면서 말했다.
“나에게 의탁하러 찾아왔다 치고 일단 여기 계시게. 내가 오성을 공략한 다음 우리 다시 회포를 푸세.”
상앙은 공자 앙의 수종들을 찾아가 몸소 포박을 풀어주고 술을 권하면서 말했다.
“너희들을 다시 돌려보낼 테니 돌아가서 장군이 돌아왔다고만 말하라. 그 쪽에서 성문을 열면 큰 상을 내리겠다. 만약 기밀을 누설하면 한 명도 살아 남지 못할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한 공자 앙의 수종들은 상앙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상앙은 공자 앙으로 위장해서 차에 올랐고 장수 임비(衽鄙)가 수종으로 옆을 지켰다. 그들이 오성에 이르자 성안의 사람들은 공자 앙이 돌아온 줄 알고 성문을 열었다. 상앙과 진나라 군사들이 성안으로 밀려 들어갔고 곧 이어 대군이 이르러 순조롭게 오성을 점령했다. 위나라 군대는 장수가 생포되고 오성을 잃자 더는 서하를 지킬 수 없다고 여겨 싸우지도 않고 도주했다.
상앙은 서하를 점령한 후 파죽지세로 안읍을 공격했다. 당황한 위혜왕은 대부 용가(龍賈)를 파견해 상앙과 화의를 청했다.
상앙이 용가 대부에게 말했다.
“공격을 중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오기가 점령한 진나라의 7백 리 서하 땅을 돌려주면 됩니다.”
위혜왕은 울며 겨자 먹기로 서하의 지도를 상앙에게 바쳤다. 서하를 잃자 안읍은 진나라의 코앞에 드러나서 위혜왕은 대량(大梁)으로 천도하는 수밖에 없었고 그로부터 위나라는 양(梁)나라라 불리기도 했다.
진효공은 상앙이 큰 공을 세우자 그에게 상어(商於)의 15개 성읍(城邑)을 상으로 내리고 상군(商君)이라 봉했다. 그로부터 사람들은 위앙(衛鞅)이라는 이름 대신 그를 상앙이라 불렀다.
공자 앙은 물론 진나라에 항복해 상앙의 부하가 되었다. 그날 상앙이 잔치를 베풀었는데 공자 앙이 화를 내며 말했다.
“자네가 애초에 변법을 시행하면서 사람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국도의 남쪽 성문에서 목재 한 대를 북쪽 성문까지 옮기면 황금 10일(鎰)을 준다고 했다 들었네. 그런데 믿는 사람이 없어서 상금을 50일로 증가했고 후에 누군가 그 목재를 옮기자 정말로 황금 50일을 그 사람에게 상으로 주었다고 말이네. 그로부터 명령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들었네. 자네는 그토록 성실과 신뢰를 중히 여기면서 왜 이 오랜 벗은 기만했는가?”
“이보시게. 이는 별개의 일이네. ‘병법은 궤도(詭道)’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그 때 우리는 전쟁 중이었지 않는가? 자네 설마 내가 송양공(宋襄公)처럼 전쟁에서 중상을 입은 병사를 다치게 하지 않고 연장자를 붙잡지 않으며 적군이 전열을 다 갖추기 전에는 북을 울리지 않기를 바라는가? 하하하…”
상앙이 어리석은 귀족의 인정을 베푼 송양공을 비웃는 것을 본 공자 앙은 떳떳하고 정당한 귀족인 자신이 기만술인 궤도(詭道)만 논하는 악인을 만났으니 그에게 생포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해 입을 다물었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