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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선지자와 예언 원문보기 글쓴이: 성령의 인도함
교회의 선택기준과 세워짐에 대하여 - 정원 목사
나는 많은 성도들과 교회의 선택의 기준에 대한 상담을 하였었습니다. 나의 책을 읽고 교회이전을 놓고 고민하고 있던 성도들이 조언을 구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목회를 하고 있을 때에는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또한 내가 사역하고 있는 교회에 오고싶다는 분들을 말리느라고 고생해야 했었습니다. 아직도 내가 목회를 하고 있는 줄 알고 근처에 와서 교회를 찾고 헤메다 돌아가시는 분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하는데 너무 죄송할 뿐이지요... 이제 내가 목회를 내려놓았고 주님께서 나에게 목회를 더 시키실 의향이 없으신 것 같기 때문에 나는 이제 조금 자유롭게 이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교회를 선택해야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여러 가지 이유로 선택합니다. 거리가 가깝다, 교회가 크고 건물이 멋지다, 프로그램이 많다, 주차시설이 좋다, 사람들이 많아서 교제나 사업에 유리하다, 말씀이 좋다, 친한 분들이 많다... 등 다양합니다. 우리는 일생동안 많은 선택을 합니다.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 결혼은 누구랑 할까? 교회는 어디로 가지? 등등을 선택합니다. 점심에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40일 금식기도하는 사람은 아마 없겠지요. 처절하게 부르짖으며 "주님... 제발 응답해주세요... 뭘 먹어야 해요? 엉엉... 순두부입니까? 떡복이인가요? 그것도 아니면 청수냉면에 밥말아 먹을까요? 흑흑흑... 제발..." 만약 그런다면 웃기겠지요? 그건 그냥 먹고 싶은 것 먹으면 됩니다. 그건 코메디입니다. 그런데 제가 느끼기에는 그런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별것 아닌 것은 목숨을 걸고 기도하고 응답이 없으면 죽네, 사네... 하나님이 자기를 미워하시네.. 하면서 정작 기도해야할 것은 전혀 안합니다. 눈이 열려야겠지요... 결혼문제는 그것보다 좀 더 중요하겠지요. 어떤 사람이 결혼했습니다. 누가 묻습니다. "왜 결혼하셨어요?"
어떤 사명을 받은 이들은 주님께로부터 <너는 이 곳을 지키고 중보하라. 사역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성숙하고 영적 전쟁에 대하여 아는 분들에게 주님께서 그러한 명령을 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외이며 일반적으로는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양육을 받아야 하며 자녀가 부모를 키우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사역자의 수준은 어떠합니까? 그는 주님의 임재를 알고 있습니까? 그는 주님께 대한 뜨거움, 목마름,추구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는 죄에서의 해방과 승리의 삶이 무엇인지 아는지요? 그는 영적 전쟁에 대하여 아는가요? 그는 성도의 영적 상태와 수준을 분별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성도에게 어떠한 훈련과 연단이 있을 것인지 분별하고 인도할 수 있습니까? 그의 삶의 열매는 어떻습니까? 그는 자기 부인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그의 가정은 천국입니까? 그는 아내와 자식들을 잘 섬기고 돌보고 있습니까? 그러한 것이 분별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10년, 20년 인생에서 각종 의미없는 고생을 하는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며 자신들의 사명이 무엇인지, 자신들의 영의 수준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무슨 훈련을 받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이 처리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부도, 이혼, 대인관계의 재앙... 각종 고통들을 겪으며 세월을 보냅니다.
교회에서 그것을 얻지 못하면 사람들은 영혼의 허기를 채우기 위하여 여기저기 얻어먹으려 돌아다니게 되겠지요... 그리고 사역자들은 자기의 조직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것을 필사적으로 막습니다. 결국 사역자들은 주님을 대적하는 자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아 왕이 되었으나 나중에는 자신의 왕국을 세우려고 혈안이 되듯, 주님의 실상을 경험하지 못한 사역자들은 나중에는 자신의 교회, 단체, 조직을 세우기 위하여 추하게 되어가는 것입니다. 사역자든 성도든, 영이 자라지 않아서 영의 세계와 전쟁을 이해하지 못하면 얼마든지 사단의 도구로 쓰여질 수 있으며 이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역자들이 선량하고 착합니다. 그들도 처음에는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청중의 확보와 기득권의 유지를 위해 몸부림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열정적이며 최선을 다합니다. 문제는 주님의 실제입니다. 많은 아름다운 사역자들이 주님의 실상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영은 너무 어리고 사람의 냄새를 많이 풍깁니다. 그들의 소명과 사명은 확실하겠지만 그들의 영은 좀 더 자라야 합니다. 그들의 열정과 상관없이 그들은 성도들의 속에 있는 아담의 요소를 분별하고, 둘째 아담으로 세우기 위한 생명적인 사역에 대하여 잘 모르는 것입니다. 자연히 이런 곳에는 시기와 질투와 아집과 무관심, 냉냉함, 형식주의... 각종 나쁜 기운과 열매들이 생산되며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교회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들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원인의 시작은 사역자의 수준입니다. 그들은 아름답고 착합니다. 그들은 성도들을 돕기 원합니다. 그들은 바른 교회를 세우고 싶어합니다. 문제는 그들의 눈이 열려있지 않으며 주님의 실상을 모르며 성도들의 영을 보지 못하며 자신의 상태도 알지 못하고 무엇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기 저기를 다니면서 이것 저것을 배우고 그 배운 것들을 적용하기도 하지만 곧 다시 방법을 바꾸게 되고 본질적인 방향을 잡지 못하여 방황하게 됩니다. 영이 눈을 뜨지 않으면 그는 시대의 유행을 따라 유명하거나 눈에 띄게 나타나는 교회의 운동이나 사역을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목표로 삼고 따라가기 때문에 그는 방황을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따라가기 때문에 그것이 바른 사역이라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 올바른 것은 아닙니다. 영이 어느 정도 자라지 않으면 그는 바른 것들을 분별할 수 없으며 그의 의도의 순수함과 상관없이 그는 사역의 도구로 쓰여지기 어렵습니다. 그는 주님의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일반적으로 사역자의 수준이상으로 성장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역자가 영적으로 애굽의 수준에 있는데 성도들이 가나안에 있을수는 없습니다. 애굽은 아직 물질적인 것, 환경이 크게 보이고 거기에 지배를 받는 수준의 단계입니다. 여기에 있는 분들에게 주님의 깊은 세계를 100만번 이야기해도 그들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들의 관심과 목표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그들은 이해는 할지 몰라도 그들의 성향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 단계를 벗어나야 알 수있고 보이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인생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배워나갑니다. 사랑, 순종, 예의, 성실함, 인내... 등 귀중한 가치를 배우면서 자랍니다. 만일 부모에게 배우지 못하면 자신의 삶에서 많은 고통을 지불하면서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성도들이 고통을 겪는 중요한 이유인 것입니다. 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영적인 수준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어느 정도 앞서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크게 뛰어넘지는 못합니다. 각 교회는 그 교회가 속해있는 수준의 영계와 연결되어 있으며 그 영계로부터 비슷한 영적 파동, 비슷한 영적 에너지를 같이 수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리고 그것은 그들이 영원히 살게되는 장소와 아주 비슷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의 영에 파격적인 변화가 생겨서 성장하거나 떨어져서 그 영계의 파장과 일치하지 않게 되면 그는 현실의 교회에서도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사실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면서 고통을 많이 겪고 있는 사람은 그가 소속한 영계와 교회가 속해있는 영계의 파장이 맞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때는 아주 은혜가 되었다가 나중에는 별로 시큰둥하게 되는 경우도 대체로 그의 영계의 위치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교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문제의 영적 근원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교회의 개혁을 위하여 제도를 바꾸려고 애를 씁니다. 목사 정년제를 도입하자, 장로정년제... 참으로 아름다운 휴머니스트들이지만 그런 것은 비본질적인 것입니다. 사람의 영이 중요하며 제도가 바뀌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도는 악을 누르고 있는 것이며 영의 변화는 내면으로부터 성향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런 개혁보다 100만배는 중요한 것은 사역자의 수준입니다. 수준의 향상입니다. 사역자의 영이 주님을 만나고 알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완전한 이상적인 교회가 세워진다는 것이 아니고 바른 방향이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바른 방향이라는 것은 교회는 주님을 추구하고 주님을 알아가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사역자와 성도들의 영이 자라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들은 대부분 사역을 참 많이 강조합니다. 아니, 한국 교회뿐이 아니겠지요. 영이 열리지 않은 세계의 모든 교회는 그럴수 밖에 없습니다. 사역은 교회의 중요한 존재목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사역의 기초가 되는 것은 영의 성장입니다. 주님의 생명을 모르며 주님의 생명의 통로가 되지 않는 사람은 사역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바퀴벌레가 어떻게 사람을 낳겠습니까? 일을 하여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본성이 바뀌어 벌레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생명입니다. 이것은 충분히 자랄 때까지 모든 사역을 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성장과 주님의 기름부으심, 그 분량 속에서 일하는 것에 익숙한 체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선교사 가정이 아내에 대한 지나친 남편의 구타로 결국 귀국한 경우를 보았습니다. 또한 적지 않은 목회자의 가정이 지옥과도 같이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사역할 때가 아닙니다. 그들은 치유와 안식이 필요하며 영이 좀 더 자라야 합니다. 유감이지만 그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는 상태에서 사역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목회자의 가정이 천국이 아니라면 그들은 성도들을 천국의 가정으로 이끌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아내와 남편을 섬기고 자식을 사랑하며 순종시키지 못한다면 그들은 아무 것도 가르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직 그들은 주님을 개념으로 알고 있을 뿐 실제의 주님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실제의 주님을 경험하게 되면 사랑하게 되며 자연히 삶이 달라지게 됩니다. 목회자의 아내나 목회자들의 사이트에 들어가면 여러가지 비참한 상황들에 대한 호소가 많이 올라옵니다. 부사역자가 담임사역자의 비리를 많이 알게 되자 짤리지 않으려면 조심하라고 협박을 당하는 경우.. 성적 불륜, 가정불화, 물질적인 범죄... 어떤 독자는 교회에서 재정을 맡고 있는 장로님이신데 목회자의 사기에 가까운 물질관리에 심각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을 판단하고 정죄할 입장에 있지 않습니다. 죄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랑스러운 주님의 사람들이며 교회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라야 합니다. 그들은 주님을 좀 더 경험해야 합니다. 그들은 성도들에게 주님의 임재와 사랑을 공급하는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품에 안겨서 그 아름다우심 속에서 자라나며 죄에서의 해방과 자아에서의 해방을 배워나가야 합니다. 드러난 죄는 별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고 윤리적이고 도덕적이고 문제가 없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와 주님의 관계, 영의 수준...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영이 자라지 않은 분의 윤리적 선함은 악행보다 그리 나을 것이 없습니다. 어차피 선이나 악이나 생명이 아니며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이 어린 분들이 열심히 자기를 눌러서 죄를 억제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넉넉히 승리의 삶을 사는 영의 수준과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교회가 건물이 아름다우며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그것이 성공적인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으면 성공적인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그것은 물질적이고 세상적인 가치관일 뿐입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는 통하지만 영원한 곳에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이 땅의 많은 교회들이 병들어 가고 사역자들은 지쳐있습니다. 그들은 지치고 피곤하고 고통스럽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많은 세미나들이 행해지고 사역자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그리로 몰려듭니다. 그러나 어설픈 교회의 외적 성장의 방법론을 제시할 뿐 주님과의 연합과 관계회복과 사역자의 영을 성장시키고 이끄는 본질적인 부분을 다루는 곳은 많지 않은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사역자가 주님의 실상을 접하고 그분의 영광에 사로잡히지 않는 한 결코 문제는 끝이 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성공이란 열매를 통해서만 알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사모함과 그리움의 분량,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주님의 마음의 인식, 주님의 뜻에 대한 순복과 사모함, 주님의 나라에 대한 열망, 자기를 잃어버린 교제와 공동체에 대한 사랑, 삶 속에 나타나는 순결함과 온유, 겸손, 아름다움... 그러한 열매로 참된 부흥에 대하여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진정 아름다운 교회들이 이 땅에 많이 세워지기를 소원하고 또 소원합니다. 지금의 수준은 너무나 가슴이 아플 정도로 주님의 향기를 경험하기가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서로 분리되고 찢겨져 있으며 자기의 조직에 대한 충성만을 가르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들의 찢김과 경쟁을 보면서 나는 주님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이 땅의 교회와 사역자들을 생각하면 나는 시도 때도 없이 가슴이 찢어지며 눈물이 흐릅니다. 그것은 주님의 마음이며 주님의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느 자매의 눈물어린 말을 기억합니다. "목사님... 교회에 가는 게 지옥가는 것 같이 괴로와요... 하지만 저는 죽어도 우리 목사님을 배반할 수 없어요..." 오늘날 인간적인 의리, 휴머니즘... 주님의 마음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는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의 종이 아니며 마지막 날에 우리를 심판하실 분은 사역자나 사람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신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입니다. 같이 신앙생활을 하는 남편이라고 해도 아내가 신앙에 빠진다고 싫어합니다. 그것은 그가 주님보다 자신을 더 중심에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믿는 부모들이 자녀들이 부모보다 신앙에 빠진다고 화를 내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것도 자신을 주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내에게 항상 이야기합니다. "여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아요. 주님께 미치고 빠져야 합니다. 밥도 안하고 빨래가 밀리고 집안꼴이 아수라장이 되어도 괜찮으니 주님께만 빠져요..." 아이들에게도 이야기하지요. "주님은 아빠보다 너희를 100만배도 더 사랑하신단다... 너희들도 아빠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으니 오직 주님을 사랑해야 한단다..." 물론 그 말은 어폐가 있지요. 주님을 사랑하면 부모와 배우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으며 집안 일이나 맡은 일에 충성을 하게 됩니다. 그만큼 본질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지요. 우리의 영은 자라야 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더 주님을 깊이 알아가야 합니다. 나는 성도들이 주님보다 사역자를 두려워하고 눈치를 보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들은 사역자가 저주를 하면 어떻하나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사역자가 성도들을 두려워하고 눈치를 보며 사역을 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성도든 사역자든 심령이 약한 사람은 사람들의 종이 되며 그들은 주님을 따를 수도 없으며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할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사역을 할바에는 사역을 그만두고 노가다를 하면서 전도를 하는 것이 주님나라의 확장에 도움이 되겠지요. 왜냐하면 영이 눌려있는 사람은 사람들을 주님께 이끌고 양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선택... 그것은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변화받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좋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성장하기 원한다면, 주님을 더 깊이 알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지도자와 인도자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안내자가 필요합니다. 조금 더 앞서서 우리에게 영적인 길, 주님의 길을 제시해 줄 안내자가 필요합니다. 단언하건대 이것은 우리의 인생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부디 제가 그런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아님을 이해해주십시오. 저는 정말 자신이 없는 사람이며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귀중한 원리를 함께 나누는 것뿐입니다. 나는 순수하고 알려져있지 않은 아름다운 사역자들이 이 땅에 많이 숨겨져 있고 존재하는 것이 감사합니다. 그들은 여전히 주님의 아름다운 교회들을 세워나가려 합니다. 사람의 왕국이 아닌 주님의 아름다운 모임을 세워나가려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는 것이 참 기대가 됩니다. 주님을 먹고 마시며 그분을 누리고 그분을 향하여 나아가기를 원하는 젊은 종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성의 유명한 교회에 그다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아닌 기존의 강력한 영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앞으로 젊고 신선한 주님의 사람들,그러한 분들을 통하여 이 땅에 아름답고 주님을 사모하는 교회가 많이 세워지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부족하지만 오직 주님을 더 깊이 알기를 원하며 그분만을 사모해가는 사역자... 외적 성공을 추구하지 않고 오직 주님을 맛보며 나누기를 원하는 사역자... 그리고 주님을 그리워하고 더 자라기를 원하며 자기를 깨뜨리고 영의 더 깊고 아름다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아름다운 성도들... 그러한 만남과 모임들... 교회들이 많이 세워지기를 소원합니다. 초대 교회와 같이 서로의 마음에 그리움과 사랑이 가득하며 서로 보고있기만 해도 행복하고 각자의 삶속에 사랑으로 임재하시고 역사하시는 주님을 나눔으로써 더욱 행복해지는 만남들... 그러한 교회들이 많이 많이 이 땅에 세워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교회의 선택, 자신이 삶을 나누고 교제를 나눌 성도들의 선택은 너무나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원한 운명과 미래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니 그저 발길이 닿는대로 가고, 집에서 가깝다고 가고, 아는 사람이 있다고 가고, 목사님과 가깝다고 가고... 그러한 것이 얼마나 자신의 영혼을 소홀히 여기는 것이겠습니까! 자신의 영원을, 영혼의 성숙을 결정짓는 중대한 요소를 그저 한끼의 식사 메뉴를 결정하듯이 결정하는 것이 정말 얼마나 처구니 없는 일일까요... 눈이 열리지 않는 어리석은 영혼이 여성을 선택할 때 외모를 중하게여기며 자기 눈에 좋은 대로 결정합니다. 남성을 선택할 때 학벌과 자기 취향과 재력을 중시해서 인생과 영원을 망칩니다. 그러나 여성의 외모보다 100만배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여성의 영적 성숙도이며 주님을 사모하는 분량입니다. 남성의 재력이나 외적 매력보다 중요한 것은 영적 성숙도이며 주님께 사로잡힌 정도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은 주님께 사로잡힌 여성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성은 주님께 빠진 사람입니다. 어떤 열심히 기도하는 자매가 그녀가 결혼하려는 불신자 남자친구를 이야기하면서 너무 리더쉽이 있고 멋지다고 이야기하길래 그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시체가 멋지고 리더쉽이 있으면 뭐하지?" 낭만과 이상과 고생 안하는 편안한 삶을 보장할 것 같은 돈많은 사람과의 만남, 자기를 사랑해주고 잘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몇억배나 중요한 것은 영적인 것을 추구하고 사모하는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러한 가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영혼은 이 땅에서 너무도 낮고 비참한 영역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중요한 결혼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교회의 선택이며 영적 교제의 선택입니다. 육신의 취향을 따라 만난 만남이 얼마 지나지 않아 형식적이고 의무적인 관계로 전락해서 짧은 인생에서 서로 억압하고 괴롭히다가 영원히 헤어지지만 주안에서 같은 주님을 추구하는 영적 교통과 만남은 영원히 헤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나는 주님께 열심있는 자신의 아내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자신은 대충 교회에 나가고 영적인 세계에 관심이 없는 형제에게 이런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형제. 아내를 정말 사랑한다면, 그래서 5-60년 같이 살고 영원히 헤어지는 것이 싫다면, 아내보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곳에서 영원히 헤어져야 해요..." 부디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어가십시오. 정말 멋진 교회와 만남을 이루어 가십시오. 만약 당신이 아직 교회를 정하지 못한 분이라면, 교회의 이전 문제로 갈등하고 있는 분이라면... 외적으로 부족해도 진정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나아가기를 원하며 그분께 사로잡히기를 원하는 아름다운 종들을 찾으십시오. 당신의 심령 속에 주님에 대한 연모의 불을 일으키는 종을 찾으십시오. 진정 원할 때 주님은 그러한 분들과의 만남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인생의 시시한 문제들을 가지고 씨름하지 말고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기 위하여 목숨을 거십시오. 주님께서 당신을 통하여 이 땅에 그분의 원하시는 아름답고 귀한 교회들을 세워나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 주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교회, 모임들이 많이 세워지도록.. 오, 주님... 임하시고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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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옮기면 정말 저주를 받을까[정원목사]
아내가 전화통화를 한 참 하고 나더니 연신 한숨을 내 쉰다.
우리 집에는 상담을 요청하는 전화가 수시로 온다. 처음에는 내가 열심히 상담을 해주다가 나중에는 지쳐서 포기를 했다. 그래서는 하루종일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주로 메일로 상담을 받고 간단한 전화는 아내가 받는다.
아내에게 독자가 상담을 요청한 모양이다. 나는 내용을 물었다.
“왜 그래요?”
“세상에.. 기가 막혀..”
“무슨 일인데?”
“어느 성도가 어떤 단체에 속해있었는데 자기와 잘 안 맞는 것 같고 많이 힘이 들어서 거기에서 나오겠다고 했더니 거기를 떠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해서 망설이고 있나봐요.”
아이고.. 심하다.
나는 다시 묻는다.
“그래서 뭐라고 했어요?”
“직접 나오라, 말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 것은 본인이 기도하고 결정할 문제니까.. 다만 하나님은 억지로 강요하시는 분이 아니고 어떤 곳을 나온다고 해서 저주하고 치시는 분은 아니라고 대답해주었지요.”
“잘 했어요.”
사실 비슷한 내용의 상담을 전화나 메일로 참 많이 받은 편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교회를 떠나고 싶은데 목사님이 저주를 하시는 것이 두려워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어쩌면 좋으냐고 묻는 것이다. 어떤 목사님은 강대상에서 직접적으로 떠난 이들을 욕하고 저주를 퍼붓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성도들은 그 곳을 떠나고 싶어도 혹시라도 무슨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을까 두려워한다고 한다.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어떤 영적인 단체나 교회를 떠나면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저주를 퍼부으시는 것이 사실일까? 나는 그렇게 믿지 않는다.
믿는 사람이 신앙을 버리고 세상의 길로 간다면 그것은 가슴아픈 일이다.
그 날 밤, 천사들은 중무장을 하고 그 집에 쳐들어간다. 그리고 큰 칼을 들고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말한다. ‘너.. 교회를 옮겼지? 이 배신자! 그러고도 네가 무사할 것 같으냐?’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이야기는 조폭 영화에서야 나오는 것이니까..
그와 같은 위협은 아니지만 회유와 애원으로 설득하는 이야기도 사실 많이 들었다. 어떤 목회자는 간곡하게 부탁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목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가서야 되겠느냐고.. 심지어 자기를 죽이고 가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다.
나의 경우에도 목회 사역을 하는 동안 많은 성도들이 떠나갔다. 그래서 그 이별의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안다. 사랑하고 교제를 나누던 이들과 헤어지는 것은 정말 아픈 느낌이다. 그것은 일종의 실연과 비슷한 감정이다. 가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과도 같다. 한동안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목회 사역이란 원래 자녀를 키우는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언젠가는 사랑하는 자식들은 장성하게 되고 부모와 헤어질 날이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딸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을 걸어가는 아버지의 마음은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운다. 딸은 신이 나서 웃으면서 걸어가지만 아버지는 그 날 밤새동안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는 딸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생각하며 지난 세월들이 그냥 그립고 그립고 그리울 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는 딸의 행복을 위하여 그러한 그리움을 접어둔다. 그러한 애틋함을 가슴 속 깊이 밀어 넣는다.
부모란 원래 그러한 존재가 아닌가.. 자식들에게 주고 또 주어도 더 주고 싶고.. 그리고 그들을 그리워하고.. 하지만 그들을 위해서 희생을 하면서 그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 자식들을 통해서 덕을 보려고 하는.. 그러한 마음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목회도 그러한 것이 아닐까..
영적으로 어린 성도들에게 주님의 말씀과 사랑을 가르친다. 헌신과 행복을 가르친다. 참 삶에 대해서 가르치고 나눈다. 그리고 그렇게 오랜 세월을 지내다보면 서로 혈연을 넘어서는 애정과 일체감이 생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별이 생긴다.
거주의 이전과 같은 물리적인 것이 원인이 되기도 하고 사소한 마찰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신앙 스타일에 대한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또한 오래 동안 쌓여진 사랑의 관계가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인하여 마음에 벽이 생기게 되는 경우도 있다.
죄우간 어떻게 되었던 간에 이별은 아픈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을 각오할 수밖에 없는 것이 부모의 입장이고 목회자의 입장이다. 부모란, 목회자란 희생의 기초 위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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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적으로 그러한 흐름을 막고 있으면 영적인 장애가 오게 된다. 내게로 올 사람도 오지 못하며 평화가 깨어지고 영적 에너지를 상실하게 된다. 주님의 임재도 멀어지게 된다.
목회란, 신앙이란 참 자유의 길을 제시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육신에 속한 사람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집착과 욕망에 사로잡혀 산다. 그러나 영에 속한 사람들, 주님께 속한 이들은 자유함과 초월과 비워짐으로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세상 사람들과 같은 수준에서는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반응은 어떨까?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한국 교회의 수준은 헤어짐에 있어서 유치한 수준에 속하는 것 같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같은 교회에 다닐 때는 아주 친밀하게 지내지만 어떤 이유로 그 교회를 떠나게 되면 서로간의 모든 왕래가 끊어져 버린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살아도 모든 교제는 끊어진다. 어쩌다가 길에서 눈이 마주쳐도 지극히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릴 뿐이다.
이것은 너무나 유치한 수준이 아닐까.. 내게 속한 이들은 다 내편이며 그렇지 않은 자들은 적으로 여기는.. 정말 너무나 낮고 편협한 가치관에 속한 것이 아닐까..
보편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의식 수준이 대체로 이러한 수준에 있기 때문에 그들은 사회에서 잘 적응을 하지 못하며 편협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융통성과 여유로움으로 사람들을 포용하고 리드할 수 있어야 세상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본 교회 목사님께 이런 이야기를 드리면 다른 곳은 다 이단이라고 하는 바람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 많은 성도들을 본다.
하지만 나도 어떤 교회가 영적인지 잘 모른다. 교회가 크고 많이 알려져 있다고 영적이며 주님께로 가까이 가는 데에 유리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어떤 교회를 추천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다. 그것은 각자가 구해야 할 문제다.
굳이 한 마디 하자면 교회는 담임 사역자의 목회철학에 의해서 가장 큰 영향을 받으니 담임 목회자가 사역이나 외형적인 성장 자체보다도 주님 자신을 추구하는 분이 있으면 그 쪽으로 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뿐이다.
교회에서 시키는 대로 많은 봉사와 일을 하고 교회의 행사에 참여하지만 기쁨이 없고 힘들고 지치기만 할 뿐이라는 이야기를 나는 많이 듣는다. 그러면서 정말 주님 안에서 안식하면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교회를 찾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는 많이 듣는다. 그러다가 왜 목회사역을 하지 않느냐고 나에게 항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것만 해도 너무 바쁘니 목회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좋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양 도둑질
지은이
윌리엄 채드윅 지음 | 전의우 옮김
출판사
규장
가격
9,500원 → 최저가 8,550원
출간일
2002.05.21 | 261p | ISBN : 8970468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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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정보
국립중앙도서관
책 소개 | |
교인들이 한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로 롬겨갈 때, 전문가들은 이를 가리켜 "수평이동성장"(transfer growth)이라고 한다. 예배당 회중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교회 쇼핑(church shopping)이라고 한다. 윌리엄 채드윅은 이것이 교회가 최근 몇십 년 동안 직면하는 가장 위험한 경향이라고 지적하고 이것을 "양도둑질"(stealing sheep)이라고 표현하였다. 우리 주변의 모든 교회가 사람들을 끌어들일 좀더 효과적이고 좀더 창의적인 방법을 찾고 있다. 이를 위해 더 힘있는 설교, 더 나은 예배, 더 많은 영성, 더 극적인 상황을 제시한다. 교계가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지만 실제로 생전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신에 기존 교인들이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옮기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경향이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가? 그 원인을 정확히 집어낼 수 있는가? 만연한 양도둑질이 실제로 전체적인 교회성장에 어떤 해를 끼쳤는가? 목회자들이 직시해야 할 윤리적인 문제들은 무엇인가? 이것들은 이 책이 대담하게 다루고 있는 많은 도전적 질문 가운데 몇 가지에 불과하며 "진정한 성장"을 원하는 모든 교회가 읽어야 할 책이다. | |
목차 | |
1부 교회는 적자생존의 정글이 아니다 |
첫댓글 남의 양을 흠치는 행위는 결코 좋은일은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져 하는것은 실제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가 어떤것인가를 먼저 안다면 이런 행동은 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교회는 건물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인 진리를 소유하고 있는 거듭난 존재들을 말합니다. 즉 예수님 자신이 교회인것 처럼 ..."너희가 하나님이 거하는 성전인것을 모르느냐" 이렇게 오늘날 살아있는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오류없는 진리를 소유하고 있는 참 목자를 말하는것입니다.
예수께서 낳신 베들레헴이 아주작은 고을이지만 그 어느 고을보다 크다(귀하다)라고 하신 말씀도 있읍니다.이렇듯 불에 태워버릴 쭉정이가 수십만 수백만이 된다해도 알곡 하나만도 못한것 입니다.여기서 알곡이라함은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낳음을 입은 열두사도가 수많은 유대인들보다 귀 하듯이 오늘날 교리와 전통으로 내려오는 교회법으로 신앙 생활이 아닌 종교 생활을 하는 쭉정이와 같은 기독교인들이 아무리 많은들 예수님의 오류없는 진리를 소유하고 있는 좁은길인 생명길로 가는 소수의 존재들을 하나님은 원하시고있읍니다.
구약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앙이 어릴적에는 젓과같은 유교병(누룩섞인 말씀)을 먹고 신앙생활을하다가 조금자라면홍해바다를건너 출애굽을 하여 이들은 단단한 식물인 무교병(가감하지 않은 말씀)으로 신앙생활을 했던사실을 성경에서 보았을것입니다.하나님의 백성들이 비로소 광야에 나왔을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늘의 법인 십게명을 주신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율법이 우선되어서 그 율법으로 철저하게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함에도 오늘날 기독교의 교리와 윤리 도덕적인 유전(유대교의 전통)이 하나님의 법을 땅속 깊숙히 묻어버리고 각종 교파들의 법이 하나님의 법보다 우선시되는
(여호와 증인)이나 (몰몬교)등 이단 , 사이비들의 대표적인 특징을 보면,----영혼구원에 촛점을 맞춰 불신자 전도 하는것이 아니라---- 다른교회성도나 믿느자들에게 접근하여 양도적질하여 지옥자식을 만든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과는 아무상관없는 종교 집단인 것입니다. 에배나 기도를 자기 욕심껫 해놓고 끝에다 예수이름만붙이면 모두 하나님께서 받는줄 아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교회는 육신의 복을 빌어주는 개인의 욕심을 채워주는 그런 교회가 아닙니다.자신의 욕심을 자신의 힘으로는 채울수없기에 하나님의 힘을빌려서 그 욕심을 채울려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이방종교나 만신이 하는짓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에수께서도 요한복음에서 육은 육이요 살리는것이 영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도대체 하나님의 영은 어떤것을 말하는지를 모르는 오늘날 삯군목사나 그하수인들은 교리로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기독교인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두가지가있는데 하나는 돌비(성경책)에 새겨진 말씀이있고 또하나는 산자의 입에서 나오는 "타레마타"말이있읍니다. 예수께서도 내 입에서 나오는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요한복음에서 말씀한것처럼 생명(능력)이있는 말씀은 반듯이 산 사람입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령이라는것은 성스러운 말씀.진실된 말씀(오류없는진리)을 말합니다.진실은 유대인이나 기독교인들에게 있는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진리로 나음을 입은 열두제자와 그로부터 낳고낳고의 역사속에서 좁은 생명길을 통하여 오늘날까지 소수의 무리들에게 이어져오고 있읍니다.유대당시에도 유대교 안에는 육신으로 오신 예수가 없었지만 밖에는 항상 있어서 예수님의
예수님의 제자들만 육신의 예수를 영접하여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날도 육신의 모양은 다르지만 그 속에 담고있는 진실한 진리는 2천년전에 오셨던 오류없는 말씀을 소유한 참목자가 있읍니다.
좁은길에서 하나님의 진리를사수하며 가는 영혼을찿습니다.010-3004-1905
성경에서 말하는 이단과 기독교적(유대교)인 이단이 있읍니다.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와 그 제자들을 이단시하여 모두 돌(비진리)로 쳐죽였읍니다. 오늘날도 기독교가 말하는 이단은 좁은 길에서 자신을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께서 가신길(오직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을 묵묵히 가는 자들입니다. 다시말하면 기독교가 말하는 이단들만이 천국을 가는것입니다.사도바울도 철저한 유대교의 교리를가지고 예수와 그제자들을 피박했지만 결국 같은동포인 유대인들에게 이단의 괘수라는소리를 들었지 않습니까 . 물론 성경적인 이단을 가장한 무리들이 많이 있읍니다. 그렇다고 그들 때문에 기독교의 교리에서 나오지 못한다면 자신
의 영혼은 남과 다를바가 무엇입니까. 이런 사이비집단과 성경적인 이단을 가장한 집단들이 너무 많기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알고 부지런히 구하고.찿고.두드리는삶이 필요한것입니다. 주저않아서 누구는이렇고 누구는 저렇다고 하기전에 나부터 확실한 표대와 생명길을찿아야하는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을 의인 열명이 없어 유황불로 멸망시킨 하나님의 심판을 안다면 남의 탓을할것이아니라 자신이 진정한진리를소유한의인이 되어야하지않을까요 에수님의 은헤님"-이름은좋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