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고고학 이야기(허황옥 왕비의 루트)
김해에 있는 허왕비의 릉 비에는 "가락국의 수로왕비 보주 태후 허씨 릉"이라는 글씨가 써있고, 묘 입구의 홍살문에는 쌍어문(물고기가 서로 쳐다보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쌍어는 조화, 화합의 뜻
위의 자료와 삼국유사, 가락국기를 근거로 고고학자 김병모 교수가 인도와 중국을 여러차례 방문하면서 밝혀낸 기록을 아래에 옮겨 본다.
1. 아유타국 : 가락국의 수로왕비 허황옥은 아유타국 출신으로 서기 48년 배를 타고 가락국에 도착했다. 그 배에는 20여명이 타고 있었으며, 많은 결혼예물(한나라의 상품들)이 실려있었다. 이들의 도착과 함께 물고기를 상징으로 하는 신어사상이 한국에 소개되었다. 아유타국은 현재 인도의 아오디아다. 기원 전 6세기경 16개의 나라로 분열되어 있었던 것을 마우리아 왕조가 통일하고, 이후 숭가왕조에 이르렀을 기원 전 1세기경 북쪽에서 쿠샨족이 침입하여 지배를 하게 된다. 이 때문에 아오디아의 사제계급과 왕족들이 쫓겨나게 된다.
2. 물고기 숭배사상 : 인도인에게 물고기는 매우 신성한 동물이다. 힌두교에서 파생된 자이나교에서 21개의 주신 중 하나로, 라마교 사원에서도 8가지 상서로운 신물 중 하나로 취급한다.
3. 보주 : 보주는 중국 안악현의 옛 이름이다. 송나라 때까지 보주라 불렸고 안악시내에는 상점이나 식당 이름에 보주라는 간판이 많이 있다. 안악현 내에는 보주 허씨 성을 가진 인구가 약 15만 명은 된다고 하며 집성촌도 14개나 있다고 한다. "서운향"이란 집성촌에는 암벽에 신정(우물)이 있는데 신어상 한조가 새겨져 있고 신정을 설명하는 비문이 있다. 그 내용 중에 허황옥이라는 글자와 신정의 유래가 분명히 새겨져 있다. 당시 보주는 촉나라였는데 후한 때인 서기 47년에 토착민족인 남군에서 한나라 중앙정부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고, 그 주모자가 허성이였다. 그 당시 허씨는 지도급 인사였기 때문에 체포를 피하여 허황옥이 가락국으로 온 것으로 되여 있다.
4. 정리 : 허황옥의 선조들은 기원 전 1세기경 쿠샨족의 침입으로 인도의 아유타국을 탈출
(탈출 년도를 기원 전 54년으로 봄)하여 중국의 보주에서 세력을 형성, 촉의 주류세력이 되여
서기 47년까지 한나라의 정부군에 대항하다가 실패하자 허황옥 일행이 서기 48년 피신하여
가락국에 도착한 것으로 보고있음. <이상은 김병모 교수의 저서 "허황옥 루트 인도에서 가야까지"에서 발췌>
# 참고 : 가락이라는 말은 고대 인도어로 물고기를 뜻한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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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어문 손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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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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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양 : 손금을 보는 관상서인 마의상법에서는 쌍어문을 손금에 가지면 학문을 대성할 큰 그릇이라 하였다. 일반적으로 쌍어는 임금을 좌우에서 보필하는 최측근의 상징이며, 한 마리 물고기는 청절(淸節)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상징 : 물고기는 용이 될 인재를 의미하며 어변성룡(魚變成龍 : 물고기가 변해서 용이 된다)이라는 말이나 고구려 개국신화에서 고주몽을 위기에서 구해준 물고기 이야기 등은 모두 우리문화 속에서 물고기가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백제 무령왕릉 두침의 용머리 물고기, 고려 동경이나 청자의 용머리 물고기, 연생귀자도의 물고기 역시 귀인이자 용이 되는 재상 혹은 임금 자신이기도 하였으므로 결국 물고기는 높은 신분을 상징하기도 했다. 고대로부터 목걸이를 비롯하여 각종 주전자, 백자, 사찰, 민화 등에서 물고기 문양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
* 마의상법 : 수상, 관상보는 기본서로서 달마의 제자 마의(송나라 초기사람)가 만든 상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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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고기의 상징성 - 다복다산·부부의 금실·벽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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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물고기는 알을 많이 낳는 생물 중 하나로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여 부인방 · 신혼방의 그림 및 가구류에 장식되었고, 부녀자들의 노리개 삼작에도 많이 응용되었다. 또한 물고기는 금실 좋은 부부를 상징하기도 하는데, 이는 동방의 바다에 산다는 전설적인 물고기인 비목어(比目魚)와 관련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 물고기는 눈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암컷과 수컷이 나란히 하여야 비로소 헤엄친다고 한다. 그래서 부부가 서로 의지하고 반려가 됨을 상징하여 쌍어(雙魚) 무늬를 애용하였다. 한편 물고기는 그 속성상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눈을 뜨고 있기 때문에 항상 그릇된 것을 경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다락문이나 벽장문에 물고기그림을 붙여 놓았고 뒤주에는 물고기형 자물쇠를 달아 놓기도 하였다. 어해도(魚蟹圖)는 물고기와 조개류 및 게 등[魚蟹·魚蝦]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어해도에는 붕어 · 잉어 · 숭어 · 방어 · 쏘가리 · 메기 · 가오리 · 홍어 · 게 · 새우 · 전복 · 조개 · 대합 등이 그려지는데, 이들 물고기들은 암수 쌍으로, 혹은 새끼를 거느린 모습으로 나타나며 수초 및 꽃과 새들까지도 함께 등장한다. 각종 어족들이 자유분방하게 노니는 모습은 답답한 삶의 현실에서 벗어난 해탈의 경지를 느끼게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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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성(金官城)의 파사석탑(婆娑石塔)
금관(金官)에 있는 호계사(虎溪寺)의 파사석탑(婆娑石塔)은 옛날 이 고을이 금관국(金官國)으로 있을 때 세조(世祖) 수로왕(首露王)의 비(妃) 허황후(許皇后) 황옥(黃玉)이 동한(東漢) 건무(建武) 24년 갑신(甲申; 48)에 서역(西域) 아유타국(阿踰타國)에서 배에 싣고 온 것이다.
처음에 공주가 두 부모의 명을 받들어 바다를 건너 동쪽으로 향하려 하는데, 수신(水神)의 노여움을 받게 되어서 가지 못하고 돌아와 부왕(父王)께 아뢰자 부왕은 이 탑을 배에 싣고 가라고 했다. 그리하여 편하게 바다를 건너 남쪽 언덕에 도착하여 배를 대었다. 이때 그 배에는 붉은 돛과 붉은 깃발을 달았고 아름다운 주옥(珠玉)을 실었기 때문에 지금 그곳을 주포(主浦)라고 한다. 그리고 맨 처음에 공주가 비단 바지를 벗던 바위를 능현(綾峴)이라 하고, 붉은 기(旗)가 처음으로 해안에 들어가던 곳을 기출변(旗出邊)이라 한다.
수로왕(首露王)이 황후(皇后)를 맞아서 같이 150여 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해동(海東)에는 아직 절을 세우고 불법(佛法)을 신봉(信奉)하는 일이 없었다. 대개 상교(像敎)가 전해 오지 않아서 이 지방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가락국본기(駕洛國本記)>에는 절을 세웠다는 글이 실려 있지 않다. 그러던 것이 제8대 질지왕(질知王) 2년 임진(壬辰; 452)에 이르러 그곳에 절을 세우고 왕후사(王后寺)를 세워(이것은 아도阿道와 눌지왕訥祗王의 시대에 해당된다. 법흥왕法興王 이전의 일이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복을 빌고 있다. 또 겸해서 남쪽 왜국(倭國)을 진압시켰으니, <가락국본기<駕洛國本記)>에 자세히 실려 있다.
탑은 모진 4면이 5층으로 되었고, 그 조각(彫刻)은 매우 기묘(奇妙)하다. 돌에는 희미한 붉은 무늬가 있고 품질이 매우 좋은데, 우리 나라에서 나는 종류가 아니다. 본초(本草)에 말한, "닭의 볏의 피를 찍어서 시험했다"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금관국을 또한 가락국이라고 하니, <가락국본기(駕洛國本記)>에 자세히 실려 있다.
찬(讚)해 말한다. 석탑을 실은 붉은 돛대 깃발도 가벼운데,
신령께 빌어서 험한 물결 헤치고 왔네.
어찌 황옥(黃玉)만을 도와서 이 언덕에 왔으랴.
천년 동안 왜국의 노경(怒鯨)을 막고자 함일세.
수로왕비 허황옥의 능




